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북경요동군설 10

윤여동설 – 진5군(秦五郡)과 한4군(漢四郡)의 진짜 위치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진5군(秦五郡)과 한4군(漢四郡)의 진짜 위치 – 최초주장 [후한서에는 낙양에서 동북쪽으로 3,600리에 요동군이 위치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지금 낙양에서 북경까지의 고속도로 거리가 약 800km이다. 옛 거리단위인 10리를 2.3km로 환산하면 3,478리가 된다. 따라서 고대의 요동군(遼東郡)이 지금의 북경 부근을 말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연5군(燕五郡), 진5군(秦五郡)은 어양군(漁陽郡), 우북평군(右北平郡), 상곡군(上谷郡), 요서군(遼西郡), 요동군(遼東郡)을 말하고, 한4군(漢四郡)은 낙랑군(樂浪郡), 진번군(眞番郡), 임둔군(臨屯郡), 현토군(玄菟郡)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후한서에는 낙양으로부터 각 군(郡)까지의 거리를 아래와 같이 기록해 놓았다. 어양군(漁陽郡) ..

카테고리 없음 2023.01.27

윤여동설 – 요동군 서안평(西安平)과 거란(요) 상경임황부(上京臨潢府)의 관련성 여부에 대한 새로운 가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요동군 서안평(西安平)과 거란(요) 상경임황부(上京臨潢府)의 관련성 여부에 대한 새로운 가설 - 최초주장 전한서 요동군(遼東郡) 조를 보면, 요동군의 통현 18개현 중에 “서안평현(西安平縣)”이 있고, 왕망이 북안평 (北安平)이라 고쳤다고 기록되어 있고, 또 후한서 요동군 조에도 11개현 중에 서안평현(西安平縣)이 기록되어 있는데, 필자의 연구에 의하면, 고대의 요동(遼東)은 지금의 북경(北京) 일원을 말하는 것이고, 요수(遼水)는 지금의 영정하(永定河)를 말하는 것으로서 고대에는 대개의 경우 이곳은 중국과 동이 세력 간 상호 공수의 요충지인 접경 지역이었다. 그런데 후대에 이르러 거란(요)이 발해를 멸망시키고는 이 요동(지금의 북경부근)을 차지하자 처음에는 남경(南京)이라 하였는데, 그 후..

카테고리 없음 2020.10.03

윤여동설 - 한민족의 활 맥궁(貊弓)과 낙랑단궁(樂浪檀弓)의 원래 생산지 찾기 - 최초주장

윤여동설 - 한민족의 활 맥궁(貊弓)과 낙랑단궁(樂浪檀弓)의 원래 생산지 찾기 - 최초주장                                                                     [몽골인들의 활쏘기 : 화살이 활 몸통의 좌측에 위치하게 하고 쏜다]             후한서 고구려전 구려조를 보면,   “구려(句驪)는 일명 맥(貊)이라 한다. 별종으로서 소수(小水 : 소요수)에 의지하여 살기 때문에 소수맥(小水貊)이라 한다. 좋은 활이 생산되는데, 소위 맥궁(貊弓)이라 한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삼국지 고구려전에도,   “또 소수맥이 있는데, 구려가 대수(大水 : 대요수) 유역에 나라를 세우고 살았고, 서안평현의 북쪽에 소수(小水 : 소요수)가 있는데, 남쪽으로 흘..

카테고리 없음 2018.01.19

윤여동설 - 임둔군(臨屯郡)의 진짜위치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임둔군(臨屯郡)의 진짜위치 - 최초주장 우리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 중에 "임둔군(臨屯郡)"의 명칭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인데, 막상 그 위치가 어디였는가라는 질문을 받으면 대답하기가 마땅치 않다. 그런데 자치통감 권21 한기(漢紀)13 세종효무황제 원봉 3년(B.C.108) 조의 주를 보면, “臣瓚曰 茂陵書 臨屯郡治 東暆縣 去長安六千一百三十八里 領十五縣(신찬왈 무릉서에는 임둔군의 치소는 동이현이고, 장안에서 6,138리 떨어져 있다고 하였다)” 라고 기록되어 있고, 후한서 지제23 군국5에는, 낙양으로부터 동북쪽으로 요동군이 3,600리, 현토군(필자 주 : 초기 동옥저에 설치되었던 곳에서 이동하여 구려의 서북쪽에 다시 설치한 현토군을 말한다)이 4,000리, 낙랑군이 5,000리 떨어져 ..

카테고리 없음 2017.10.07

윤여동설 - 우리 역사해석의 핵심은 고대의 요동군(遼東郡) 찾기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우리 역사해석의 핵심은 고대의 요동군(遼東郡) 찾기 - 최초주장 [위 기주협우갈석도 상 어양군, 우북평군, 상곡군은 그 위치가 잘못 배치되어 있다] 우리의 고대 역사는 요동군(遼東郡)이 어디였느냐에 따라 많이 달라지게 된다. 요동군의 위치를 올바르게 찾는 것이 바로 우리 역사해석의 핵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구려와 백제는 요동 동쪽 1천여리에 위치하고 있었고, 고구려의 졸본, 국내성, 환도성, 평양성과 백제(대륙백제)의 위례성, 미추홀, 한성, 남한성도 그 부근에 위치하고 있었고, 신라, 가야는 백제의 동쪽 또는 동북쪽에 위치하고 있었다. 따라서 삼한인 마한, 진한, 변한도 그 부근에 위치하고 있었고, 위만조선도 그 부근에 있었고, 한사군도 그 부근에 있었다. 옛날 한 무제가 위만조선을..

카테고리 없음 2016.01.03

윤여동설 - 연5군은 후대에 왜곡 분산 배치되었다

윤여동설 - 연5군은 후대에 왜곡 분산 배치되었다 전국시대 연나라의 진개가 동호(고조선)를 침공하여 그 땅을 빼앗아 설치했다는 연5군은 상곡군, 요서군, 요동군, 우북평군, 어양군이다. 그런데 원래의 연5군은 호타하 부근으로부터 하북성 역현 부근을 지나 북경부근까지에 설치되었던 듯 하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요동군은 요하 동쪽 요양 부근, 요서군은 요하 서쪽에, 북평군(우북평군)은 북경부근으로 알고 있다. 이는 언젠가 지명이 옮겨졌다는 말이 되는 것인데, 필자가 보기에 그 시기는 명, 청 대였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명, 청대 이전 사서의 기록에 나타나고 있는 5군의 지명들은 원래의 연5군 지역에서 찾아야 하고, 명, 청대 이후의 기록에 나타나는 지명들은 이동된 지역에서 찾아야 한다는 말이 된다. 이를..

카테고리 없음 2010.03.24

윤여동설 - 전국시대 연장성과 연5군의 위치를 찾았다 - 최초공개

윤여동설 - 전국시대 연장성(燕長城)과 연5군(燕五郡)의 위치를 찾았다 - 최초공개 지금까지도 그 위치가 밝혀지지 않고 있는 전국시대 연5군과 연장성의 위치를 찾아보자. 우리가 이 연5군의 위치를 찾으려 애쓰는 것은 바로 그 곳이 옛 고조선 땅으로서 그 위치를 찾으면 고조선의 서쪽 경계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연5군(燕五郡)”과 "연장성(燕長城)"은 사기 흉노전에 전국시대 연나라의 진개가 동호를 침공하여 1천여리(필자주 : 위략에는 2천여리라 했다)를 빼앗은 후 조양(造陽)으로부터 양평(襄平)까지 장성을 쌓고 그 땅에 설치했다는 어양군, 우북평군(북평군), 상곡군, 요서군, 요동군과 장성을 말하는 것이다. 전한서 권28하 지리지 제8하를 보면, "상곡군(上谷郡)은 진(秦)나라가 설치했다.(필자 주 :..

카테고리 없음 2010.03.21

윤여동설 - 지금의 북경은 옛 연경, 옛 북평이 아니라 고대의 요동이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지금의 북경은 옛 연경, 옛 북평이 아니라 고대의 요동이었다 - 최초주장     많은 사람들은 지금의 북경과 연경을 동일한 장소로 이해하지만 사실 그것은 틀린 것이다.   북평은 옛날 중국 세력들이 서안이나 낙양 등에 도읍하고 있을 때 그 동북쪽인 하북성 평원 지역을 일컫던 이름이었는데, 춘추전국시대부터 선비족인 연나라가 차지하고 도읍을 하게 되어 연경(燕京)이라고 불리웠던 곳이다.   요나라, 금나라, 원나라 등 북방세력들이 흥기하여 남하한 후 연경을 차지하고  도읍을 건설했는데, 요나라는 남경석진부라 했고, 금나라는 중도대흥부라 했으며, 원나라는 대도라 했고, 후일 명나라의 영락제가 북경을 건설하고 “북경순천부”라 명명하였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연경”이라 부르기를 좋아했다.    그렇게 ..

카테고리 없음 2009.09.22

윤여동설 - 신라왕들의 작위 속에 나타나는 신라의 위치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신라왕들의 작위 속에 나타나는 신라의 위치 - 최초주장     24대 진흥왕(재위 540-576)사지절 동이교위 낙랑군공 신라왕(A.D.565) : 북제※ 기록에 나타나는 신라 최초의 작위인데, 진흥왕은 555년 10월에 북한산(필자주 : 진황도 도산)을 순수하고 국경을 넓혀서 정했고, 556년에는 비열홀주(필자주 : 함경도 안변)를 설치하고, 557년에는 국원(필자주 : 충주)을 소경으로 만들었으며, 562년에는 대가야(필자주 : 호로도시 수중현 부근)를 쳐 없앴고, 564년에 이르러 해외로 눈을 돌려 북제에 사신을 보내자 북제에서 사신을 보내 진흥왕에게 사지절 동이교위 낙랑군공 신라왕이라는 작위를 주게 되는 것이다.   신라의 왕에게 엉뚱하게도 "진한군공"이 아닌 "낙랑군공"이라는 작위를..

카테고리 없음 2008.08.22

윤여동설 - 고구려가 우북평, 어양, 상곡, 태원까지 진출한 기록의 진실은?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고구려가 우북평·어양·상곡·태원까지 진출했다는 기록은 역사적 사실일까? - 최초주장    [위 : 요동 표시가 된 곳이 지금의 북경이다. 고대의 요동은 지금의 북경 일원이었고, 고구려와 백제는 요동 동쪽 1천여리에 위치하고 있었다고 여러 사서들에 기록되어 있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모본왕 2년(A.D.49) 조를 보면,  "봄에 장수를 보내 한나라(후한)의 북평(우북평의 오기), 어양, 상곡, 태원 등지를 습격했더니 요동태수 채동이 은의로서 대하므로 다시 화친했다" 라고 기록되어 있어 그 기록의 사실여부를 놓고 논쟁이 시작되었다.   이때 고구려의 도읍 국내성이 지금의 한반도 압록강 북쪽 집안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때 고구려가 지금의 요하 동쪽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어떻게 그 멀리 북경..

카테고리 없음 2007.1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