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북부여 10

윤여동설 - 거란(요)은 부여문화권에 속했던 민족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거란(요)은 부여문화권에 속했던 민족 - 최초주장 부여는 아주 먼 옛날 고조선 단군왕검의 아들 부여에게 주어졌던 나라 서쪽의 영지였고, 후일에 이르러 북부여, 동부여, 졸본부여가 되었다. ☆ 북부여는 졸본부여에 병합되었고, 졸본부여는 후일 고구려가 되었으며, 동부여는 5백여년 후 고구려에 통합되었다. 북부여는 해모수가 건국하여 기원전 232년에 천제의 자리에 올라, 해모수리, 해해사, 해우루, 해부루로 왕위가 이어졌고, 졸본부여는 동명왕이 기원전 108년에 건국하여 기원전 86년에 북부여를 병합하였다. 그러자 북부여 해부루왕은 북부여 땅을 빼앗기고 일부 유민들을 이끌고 동북쪽으로 이동해 가서 다시 나라를 세우고 국호를 동부여라 하게 되고, 다른 일부 역시 북부여를 떠나 흩어져 실위, 고막해,..

카테고리 없음 2015.04.12

윤여동설 - 지두우(地豆于)는 어디를 말하는가?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지두우(地豆于)의 위치 - 최초주장   지두우(地豆于)는 과연 어디를 말하는 것일까?    역사연구자들이 기를 쓰고 이 지두우의 위치를 찾으려 하는 것은 장수왕 때의 고구려 강역을 밝히는데 이 지두우의 위치가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위서(북위, 후위) 거란전을 보면, 고구려 장수왕은 서기 479년(북위태화3년)에 유유와 공모하여 이 지두우를 빼앗아 나누려 하였다고 했기 때문에 기록대로라면 당시 고구려는 이 지두우와 국경을 접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두우는 과연 지금의 어디쯤에 위치했던 나라였을까?      위서 권100 열전제88을 보면,  “지두우국(地豆于國)은 실위 서쪽 1천여리에 있다. 소와 양이 많고 명마가 산출된다. 짐승가죽으로 옷을 만들어 입..

카테고리 없음 2011.07.30

윤여동설 - 백제는 건국된지 768년 만에 멸망했다?

윤여동설 - 백제는 건국된 지 768년 만에 멸망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고구려는 기원전 37년에 건국되어 서기 668년에 당나라의 침공을 받고 도읍인 평양성을 함락당하고 보장왕이 항복함으로서 멸망했다. 따라서 우리는 지금 고구려가 건국된 지 705년 만에 멸망했다고 알고 있다. 그런데 당나라의 가언충이라는 사람은 서기 668년 시점에 고구려가 건국된 지 900년이 되었다고 당 고종에게 보고한 내용이 사서에 기록되어 전하고 있어 이 기록의 사실여부에 대하여 고려시대 때부터 논란이 되어 왔다. 그런데 알고 보니 가언충은 고구려의 역사를 말할 때 북부여의 건국시조 해모수가 북부여를 건국하고 천제의 자리에 오른 기원전 232년부터를 고구려의 역사로 보고 서기668년에 고구려가 건국된 지 900년이 되었다고 말..

카테고리 없음 2011.04.22

윤여동설 - 한(漢) 고조 유방과 북부여 천제 해모수의 관계 - 최초주장

윤여동설 - 한(漢) 고조 유방과 북부여 천제 해모수의 관계 - 최초주장 지금 중국 사람들이 자랑스럽게 여기는 한(漢)나라가 북부여 해모수 천제의 도움을 받아 건국된 나라였다고 하면 중국 사람들에게는 자존심 상할 일일지도 모르지만 이는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로 보인다. 전한서 권1상 고제기 제1상 4년(B.C.203) 조를 보면, “北貉燕人來致梟騎助漢” 이라고 기록되어 있고, “貉在東北方三韓之屬皆貉類也” 라는 안사고의 주가 달려 있다. 이의 뜻은 “기원전 203년에 북맥과 연나라가 용감한 기병을 보내와 한나라를 도왔다"라는 뜻이고, “맥은 동북방에 있는 삼한의 지속으로 모두 맥류이다”라는 뜻이다. ☆ 중국 사람들은 주변의 민족을 동이(東夷), 서융(西戎), 남만(南蠻), 북적(北狄)으로 나누어 불렀..

카테고리 없음 2010.08.16

윤여동설 - 동명왕(東明王)은 주몽이 아니라, 백제 온조왕의 증조할아버지를 말한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동명왕(東明王)은 졸본부여의 건국시조로서 백제 온조왕의 증조할아버지이다 - 최초주장     역사적으로 나타나는 부여(扶餘)에는 북부여와 졸본부여 그리고 동부여가 있었다.  부여(扶餘)는 원래 단군왕검의 막내아들 부여(扶餘)에게 봉해진 나라였다.   따라서 그 후예들은 국호를 부여(扶餘)라 했고, 성씨도 부여(扶餘)씨로 자처하게 된다.   그런데 2천여년 후 부여는 성씨가 다른 해씨 즉 해모수가 왕위에 오르게 된다.   해모수가 부여왕실과 무슨 관계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해(解)씨를 성씨로 삼은 것을 보면 부여의 직계혈손은 아니라는 말이 된다.[필자주 : 외손일 가능성이 많다]  그렇다면 이때 부여에 역성혁명이 일어나 부여씨에서 해씨로 왕실의 성씨가 바뀌었다고 할 수 있는데, 부여라는 국호는 ..

카테고리 없음 2010.01.16

윤여동설 - 고구려 900년설과 700년설의 진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고구려 900년설과 700년설의 진실 - 최초주장 고구려가 건국된 지 705년 만에 멸망했다고 하는 것이 "고구려 700년설"이고, 900년 만에 멸망했다고 하는 것이 "고구려 900년설"이다. 고구려 700년설은 삼국사기에 고구려가 기원전 37년에 건국되어 서기 668년에 멸망함으로써 705년간 존속했다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대두된 설이고, 고구려 900년설은 신당서 고구려전에 시어사 가언충이 당 고종에게 보고하는 말 중에 "고구려가 한(漢)나라 때부터 나라가 있어 지금 900년이 되었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에 대두된 설이다. ☆ 삼국사기 신라본기 문무왕 조에는 또 고구려가 멸망한 후 문무왕이 신라로 망명해 온 안승을 고구려왕으로 삼는 책명문에 "공의 태조 중모왕은 덕을 북쪽 산에 쌓고 ..

카테고리 없음 2009.06.04

윤여동설 - 동부여는 내몽골 정람기 부근에 위치했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동부여는 내몽골 정람기 부근에 위치했었다 - 최초주장  [위 : 내몽골 정람기 동북쪽에 위치한 대형고성터. 지금 중국에서 원 상도유지라고 하고 있으나 사실 이곳은 옛 예성(濊城)이었을 가능성이 많은 곳이다]   [위 : 내몽골 정람기에 위치한 고성터로서 지금 사랑성(四郞城)이라 부르고 있다]    부여는 아주 오래된 나라의 이름이다.  옛날 고조선의 건국시조 단군 왕검에게는 네 아들이 있었다고 한다.  장자는 부루, 둘째는 부소, 셋째는 부우, 막내는 부여(夫餘, 扶餘)였는데, 단군왕검이 왕검성의 서쪽지역을 부여에게 영지로 내려주게 되어 나라 이름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부여는 고조선이 멸망하자 북부여, 졸본부여, 동부여로 나누어지게 되는데, 북부여는 고구려 왕실에 혈통..

카테고리 없음 2008.06.29

윤여동설 - 고구려 900년 존속설과 부흥운동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고구려 900년 존속설과 부흥운동 - 최초주장 우리 민족 역사에서 가장 광대한 강역을 일구었던 고구려의 멸망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그리하여 어떤 이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지 않고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했더라면 우리가 지금도 매우 넓은 강역을 차지하고 있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한다. 그런데 당나라 사람인 가언충이라는 사람은 고구려비기라는 예언서에 고구려가 건국된 지 900년 만에 80대장에게 멸망당할 것이라고 예언되어 있었다고 하고, 고구려가 멸망한 서기 668년이 건국된 지 꼭 900년이 되는 해였다고도 말하고 있는데, 여기에서 이상한 것은 어떻게 서기 668년이 고구려가 건국된 지 900년이 되는 해라고 말하는지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왜냐하면 우리의 역사 상식으로는 ..

카테고리 없음 2007.10.09

윤여동설 - 삼국 건국시조 탄생설화의 새 해석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삼국 건국시조 탄생설화의 새 해석 - 최초주장 [신라 시조 혁거세의 어머니 파소(사소라고도 한다)공주로 추정되는 천후성모상] 고구려 건국시조 추모왕의 혈통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를 보면 주몽을 "추모 또는 중해라고도 한다" 라고 기록하고 있고, 호태왕 비문에도 고구려의 건국시조를 추모왕이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고구려 건국시조 주몽의 시호는 동명성왕이 아니라 추모왕이었음에 틀림없다. ☆ 삼국사기에는 주몽을 동명성왕이라 기록하고 있으나 이는 잘못된 것으로서 졸본부여의 건국시조인 동명왕과 고구려의 건국시조인 추모왕을 혼동한 결과이다. 이는 국강상광개토경 평안호태왕 비문에 고구려의 건국시조를 동명성왕이라 기록하지 않고 추모왕이라 기록하고 있는 것은 그를 확인시켜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주..

카테고리 없음 2007.10.07

윤여동설 - 잃어버린 나라 동부여는 대흥안령 서쪽 내몽골에 위치하고 있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잃어버린 나라 동부여는 대흥안령 서쪽 내몽골에 위치하고 있었다 - 최초주장 역사적으로 나타나는 부여는 셋이다. 북부여, 졸본부여, 동부여가 그것이다. ☆ 후일 백제의 성왕이 웅진으로부터 사비로 도읍을 옮기고 국호를 남부여라고 했다는 기록이 삼국사기에 나타나고 있으나, 이후에도 백제는 남부여라 하지 않고 백제라는 국호를 계속 사용한 것으로 나타나는데, 백제는 졸본부여의 후예가 세운 나라였다. 북부여의 건국시조는 천제 해모수이고, 졸본부여의 건국시조는 동명왕이며, 동부여의 건국시조는 해부루왕이다. 삼국유사 기이 제1 북부여 조에는, "고기에 말하기를, '전한 선제 신작 3년 임술(B.C.59) 4월 8일에 천제가 흘승골성(訖升骨城: 요나라 의주 경계에 있다)에 내려왔다. 오룡거를 타고 도읍을 정..

카테고리 없음 2007.1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