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한성 11

윤여동설 - 백제의 한성(漢城)에는 북성과 남성이 있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백제의 한성(漢城)에는 북성과 남성이 있었다 - 최초주장 삼국사기 백제본기 근초고왕 26년(A.D.371) 조를 보면, “고구려가 군사를 동원하여 침공하여 왔다. 왕이 이 말을 듣고 패하(패수)가에 군사를 숨겨 놓고 기다리다가 그들이 도착하자 갑자기 치니 고구려 군사가 패배하였다. 겨울에 왕이 태자와 함께 정예한 군사 3만을 거느리고 고구려를 침공하여 평양성을 공격하니 고구려왕 사유(고국원왕)가 힘을 다하여 항전하다가 화살에 맞아 죽으매 왕이 군사를 이끌고 돌아왔다. 도읍을 한산으로 옮겼다(移都漢山)” 라고 기록되어 있고, 또 중국 사서인 송서와 남사 그리고 양직공도 백제국사에는 백제가 요서 진평현을 차지하고 그곳에 백제군을 설치했다는 기록도 보이는데, 이때 옮긴 도읍이 바로 한성(漢城)이었..

카테고리 없음 2017.05.27

윤여동설 - 고구려 삼경(三京) 평양성(平壤城),국내성(國內城), 한성(漢城)의 진짜 위치 - 최초공개

윤여동설 - 고구려 삼경(三京) 평양성(平壤城),국내성(國內城),한성(漢城)의 진짜 위치 - 최초공개 주서 이역전 고려(고구려)전을 보면, “고구려는 그 선조가 부여에서 나왔다........그 땅이 동쪽으로는 신라에 이르고, 서쪽으로는 요수를 건너니 동서 2천리요, 남쪽으로는 백제와 접하고, 북쪽은 말갈과 이웃하여 남북이 1천여리였다. 도읍은 평양성(平壤城)으로 그 성은 동서가 6리이며, 남쪽으로는 패수에 닿았다........그 외에 국내성(國內城)과 한성(漢城)이 있는데 별도의 도읍지이다. 그리고 다시 요동과 현토 등 수십 개의 성이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북사 고구려전을 보면, “고구려의 도읍은 평양성으로서 장안성이라고도 부르고, 그 외에 국내성과 한성이 있는데, 그 나라에서는 삼경이라 부른다”라..

카테고리 없음 2016.11.13

윤여동설 - 백제의 위례성 - 하남위례성 - 남한성 - 한성 - 북한성의 관계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백제의 위례성 - 하남위례성 - 남한성 - 한성 - 북한성의 관계를 새롭게 정리한다 - 최초주장 [백제 한산 부아악 추정지] 삼국사기 기록 중 백제의 위례성, 하남위례성, 남한성, 한성, 북한성의 관계에 관한 기록들은 매우 혼란스럽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은 아직까지도 백제의 도읍들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사람마다 주장들만 난무하고 있는 실정이다. 삼국사기 백제본기 시조 온조왕 조를 보면, “비류는 듣지 않고 백성들을 나누어 가지고 미추홀(弥鄒忽)로 돌아가서 살게 되었고, 온조는 하남위례성(河南慰禮城)에 도읍을 정하고 열 신하로서 보좌역을 삼아 국호를 십제라 하였는데, 이때는 전한 성제 홍가 3년(B.C.18)이었다”고 기록함으로서 비류가 세운 나라의 도읍은 미추홀이었고, 온조십제의 최초 ..

카테고리 없음 2010.09.06

윤여동설 - 고구려 장수왕릉은 하북성 흥륭현 수왕분(壽王墳)?

윤여동설 - 고구려 장수왕릉은 하북성 승덕시 흥륭현 수왕분(壽王墳)에 조성되었다?     고구려의 장수왕은 광개토대왕의 장자이다.   삼국사기는 그에 대하여, “체격이 우람하고 기개가 호탕했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   장수왕은 서기 394년에 출생하여 409년인 16세에 태자로 봉해졌고, 20세인 413년에 황성(평양동황성)에서 광개토대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이때 중국에는 남쪽에 동진(東晋)이 있었고, 북쪽은 5호 16국 시대가 끝나가고 있었는데, 탁발규의 북위와 선비족이 세운 북연이 마지막 결전을 앞두고 있었다.       그리하여 장수왕은 왕위에 올라 동진에 사신을 보내니 동진의 안제가 그에게 “고구려왕 낙안군공”이란 작위를 보내온다.       그러다가 420년에 이르러 남쪽에는 동..

카테고리 없음 2009.05.29

윤여동설 - 온조왕 탄생설화와 백제 건국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온조왕 탄생설화와 백제건국 - 최초주장    백제의 건국시조 비류왕과 온조왕의 혈통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기록에 나타난 탄생설화를 정리해 보면,   주몽과 졸본부여 공주 사이 탄생설,   주몽과 월군여인 사이 탄생설,   우태와 소서노 사이 탄생설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그리고 어느 사람은 비류는 우태와 소서노 사이에서 출생했고, 온조는 주몽과 소서노 사이에 출생한 이부동모(아버지는 다르고 어머니는 같다는 의미) 사이였을 것이라는 주장을 펴기도 하는데, 근거 없는 주장이다.    주몽과 졸본부여 공주 사이 탄생설은, 삼국사기 백제본기에 "백제 시조 온조왕은 그의 아버지가 추모인데 혹은 주몽이라고도 한다. 주몽이 북부여에서 난을 피하여 졸본부여에 이르렀더니 부..

카테고리 없음 2009.04.15

윤여동설 - 백제의 남한성은 하북성 당산 천안시 건창영 부근 - 최초공개

윤여동설 - 백제의 남한성은 하북성 당산 천안시 건창영부근 - 최초공개     사실 백제 최초의 도읍, 더 엄격히 말한다면 온조십제 최초의 도읍이 위례성(慰禮城)이냐 하남위례성(河南慰禮城)이냐 또는 위례성과 하남위례성이 동일한 장소를 말하는 것이고, 한산에 남한산과 북한산이 따로 존재했느냐, 한성이 두개로서 남한성과 북한성으로 나누어져 있었느냐 하는 것은 아직까지도 결론이 나지 않은 논란거리다.   왜냐하면 삼국사기 백제본기에 "온조는 하남위례성에 도읍을 정하고 열 신하로서 보좌역을 삼아 국호를 십제(十濟)라 하였는데, 이때는 전한 성제 홍가 3년(B.C.18)이었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또 기원전 6년 조에는 "여름 5월에 왕이 신하들에게 말하기를 ".......내가 어제 나가서 순행하다가 한수(漢水..

카테고리 없음 2008.09.22

윤여동설 - 백제 역사의 미스테리가 풀렸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백제 역사의 미스테리가 풀렸다 - 최초주장       지금까지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백제는 매우 미스테리한 나라였다.   왜냐하면 백제에 대하여 깊이 연구하면 할수록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같은 기록들에 부딪치기 때문이었다.  ☆ 옛 사서의 백제 관련 기록들을 모두 한반도에 비정하여 해석하려했기 때문에 미스테리하게 느껴졌을 것인데, 사실 백제는 한반도에서 건국된 나라가 아니었다.   삼국사기에는 백제의 동쪽에 (신라가 있고,서쪽에) 낙랑이 있으며, 북쪽에 말갈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기도 하고, 신라의 서쪽에 백제가 위치했다고도 기록되어 있고, 신라의 남쪽에는 가야가 있다고도 했고, 마한의 동북쪽에 백제가 위치하고 있었다고도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중국 사서들은 백제가 요동 동쪽 1천여 ..

카테고리 없음 2008.08.11

윤여동설 - 새롭게 비정하는 백제의 도읍과 그 위치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새롭게 비정하는 백제의 도읍과 그 위치 - 최초주장 온조백제는 기원전 18년 건국하여 위례성에 도읍했고, 기원전 5년 남한성으로 도읍을 옮겼으며, 서기 371년에 한성으로 다시 옮겼고, 475년에 웅진으로 옮기고, 538년에 도읍을 사비로 또 옮겼는데, 결국 이곳 사비에서 나·당연합군의 침공을 받고 의자왕이 서기 660년 7월 18일에 항복함으로써 백제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도읍명 왕대 도읍이전년도 도읍기간 비고 위례성 온조왕 B.C.18 13년 건국지 남한성 온조왕 B.C.5 376년 비류백제통합후 한성 근초고왕 A.D.371 104년 요서진출후 웅진 문주왕 A.D.475 63년 한성함락당한후 사비 성왕 A.D.538 - 660 122년 국세회복을 위해 그런데 후한서 한(韓)전을 보..

카테고리 없음 2008.03.23

윤여동설 - 고구려가 백제(大陸百濟)를 백잔(百殘)이라 부른 이유는?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고구려는 왜 백제(大陸百濟)를 백잔(百殘)이라 불렀을까? - 최초주장 광개토대왕 비문 영락 6년 병신년 조를 보면, "百殘新羅舊是屬民 由來朝貢 而(倦)以辛卯年來 渡海破百殘OO新羅以爲臣民 以六年丙申 王躬率水軍 討伐殘國 "이라고 새겨져 있다. ☆ 위 기사 중 괄호 속의 글자는 원래 倦(게으를 권)자였으나 지금까지 이 글자가 글자 모양이 비슷한 倭(왜)자인 것으로 잘못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이 신묘년 기사의 해석을 놓고 한·일 간에 논란이 많았는데, 사실 이 조문은 왜와는 아무 관련도 없다. 압록강 너머 집안에 있는 호태왕 비는 413년 10월에 광개토대왕이 죽자 아들인 장수왕이 그 다음해인 414년 갑인년 9월 29일에 아버지인 광개토대왕 평생의 훈적을 새겨 능 앞에 세운 훈적비로서 당시 고구..

카테고리 없음 2008.02.20

윤여동설 - 온조백제의 건국지는 지금의 어디인가?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온조백제의 건국지는 지금의 어디인가? - 최초주장    우리는 삼국사기에 기록된 백제(온조백제)의 건국설화를 한반도에 비정하여,   비류와 온조가 졸본(환인)을 떠나 남쪽으로 내려와 압록강을 건너고, 패수(대동강)와 대수(예성강 또는 임진강)를 건너, 한산 부아악(서울 북한산)에 올라 지세를 살펴보고,   비류는 서쪽의 미추홀(인천)로 갔고 온조는 위례성(서울)에 도읍하였다고 해석한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까지 서울 부근에서 위례성의 확실한 흔적을 찾지 못했고, 인천에서 비류가 도읍 했던 미추홀의 흔적을 찾아내지 못했으며, 백제가 500여 년 간 도읍 했을 것이라는 지금의 서울지역에서 확실한 백제의 왕릉을 한 곳도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  ☆ 석촌동 적석총을 백제 왕릉으로 보는 견해..

카테고리 없음 2007.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