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고조선 12

윤여동설 -고조선(왕검조선)의 아사달(阿斯達), 왕검성(王儉城), 장당경(藏唐京)의 위치 - 최초공개

윤여동설 -고조선(왕검조선)의 아사달(阿斯達), 왕검성(王儉城), 장당경(藏唐京)의 위치 - 최초공개     [고조선의 첫 도읍 아사달성(阿斯達城)으로 추정되는 내몽골 영성현 대명진의 대형토성터. 규모는 가로 약2.1km, 세로 약1.6km이고, 좌표는 동경119도08분49초, 북위41도33분59초이다. 성의 내부면적이 약 100만평쯤 된다]   [아사달성으로 추정되는 내몽골 영성 서쪽 대형토성터의 무너진 성벽과 불탑. 중국학자들은 이곳을 요 중경대정부터라고 하고 있는데, 순 엉터리 비정이다]  [왕검조선의 두번째 도읍 왕검성(王儉城 : 평양성)으로 비정되는 하북성 승덕시의 피서산장(열하행궁). 성의 내부가 약 170만평 정도로 매우 넓고 풍광도 아름답다. 과연 옛날 고조선의 단군들과 고구려의 왕들이 살..

카테고리 없음 2020.01.25

윤여동설 - 단군왕검(檀君王儉)은 환웅천왕(桓雄天王)의 아들이 아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단군왕검(檀君王儉)은 환웅천왕(桓雄天王)의 아들이 아니다 - 최초주장 산해경(山海經) 대황북경(大荒北經)을 보면, 대황가운데 산이 있어 이름하여 불함인데, 숙신씨의 나라에 있다.(大荒之中 有山 名曰不咸 有肅愼氏之國) 산해경(山海經) 해내경(海內經)을 보면, 동해의 안쪽 북해의 모퉁이에 나라가 있는데, 이름하여 조선이다.(東海之內 北海之隅 有國 名曰朝鮮) 환단고기(桓檀古記) 안함로(安含老) 삼성기(三聖記) 전상편(全上篇)을 보면, 뒤에 신인왕검(神人王儉)께서 불함산(不咸山)의 단목지허(檀木之墟)에 내려 오셨다. 그는 신의 덕과 성인의 어짐을 겸비하였으니 이에 능히 조칙을 받들어 하늘의 뜻을 이었다. 나라를 세운 뜻과 법은 높고도 넓고, 강하고도 열렬하였다. 이에 구환(九桓)의 백성들이 마음 깊..

카테고리 없음 2019.09.16

윤여동설 - 위만조선 때 진번국(眞番國)과 임둔국(臨屯國)의 진짜위치 - 최초공개

윤여동설 - 위만조선 때 진번국(眞番國)과 임둔국(臨屯國)의 진짜위치 - 최초공개 삼국유사 위만조선 조를 보면, “연왕(燕王) 노관이 한(漢 : 전한)나라를 배반하고 흉노(匈奴)로 들어가니 연(燕)나라 사람 위만도 망명하고자 무리 1,000여명을 모아 동쪽으로 도망쳐 요새를 넘고 패수(浿水)를 건너 진(秦)나라의 옛 빈터인 상하장에 자리를 잡고 살았다. 그리고는 차츰 진번(眞番), 조선(朝鮮)의 오랑캐들과 옛 연나라, 제나라에서 망명해 온 사람들을 모아 왕이 되고, 왕검성에 도읍했다. 위만은 군사의 위력으로 이웃의 조그만 나라들을 침략하여 항복시켰다. 이에 진번(眞番)과 임둔(臨屯)이 모두 복종해 와서 그에게 예속되니 땅이 수천리나 되었다. 위만은 아들에게 왕위를 전하고, 손자 우거에 이르렀다........

카테고리 없음 2018.06.08

윤여동설 - 환국, 배달국, 고조선(왕검조선)의 중심지 찾기 - 최초주장

윤여동설 - 환국, 배달국, 고조선(왕검조선)의 중심지 찾기 - 최초주장 위 지도를 보면 우리 민족의 중심강역이 지금의 대흥안령 줄기 남쪽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는데, 환국의 중심은 우하량 선사유적지가 있는 능원 부근으로 보이고, 환웅 배달국의 도읍 신시(神市)의 위치는 태백산 신단수 아래라고 하였는데, 내봉골 적봉 부근으로 비정되며, 고조선(왕검조선)의 첫 도읍 아사달의 위치에 대해서는, 규원사화 단군기에, “여러 고을 땅의 길흉을 판단하여 도읍을 태백산 서남쪽(필자주 : 동남쪽의 오기가 아닐까?) 우수하 언덕에 정하고 왕검성이라고 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태백산 부근이 고조선(왕검조선)의 중심강역이었음을 알 수 있고, 또 “우수하 가에 산지 10년 만에 도읍을 백산의 남쪽과 패수의 북쪽으..

카테고리 없음 2013.09.06

윤여동설 - 고조선이 위치했던 “동해지내(東海之內) 북해지우(北海之隅)”의 진짜 위치 - 최초공개

윤여동설 - 고조선이 위치했던 “동해지내(東海之內) 북해지우(北海之隅)” - 최초공개공개의 진짜 위치     산해경의 해내경에는 “東海之內 北海之隅 有國名曰朝鮮(동해의 안쪽, 북해의 모퉁이에 나라가 있는데 조선(고조선)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기록은 바로 우리 고조선(왕검조선)의 위치에 대한 기록이기 때문에 역사연구자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이 기록을 읽게 되고, 산해경에서 언급하고 있는 동해가 지금의 어디를 말하며, 북해가 어디일까 찾으려 하게 된다.  그런데 산해경이라는 책이 중국에서 만들어진 것이므로 산해경이 말하는 동해는 당연히 중국 사람들이 인식한 중국대륙 동쪽에 있는 바다를 말한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일 것이고, 북해가 문제인데, 지금의 발해(渤海)로 볼 수도 있고, 바이칼로 볼 수도 있을..

카테고리 없음 2011.08.13

윤여동설 - 한(漢) 고조 유방과 북부여 천제 해모수의 관계 - 최초주장

윤여동설 - 한(漢) 고조 유방과 북부여 천제 해모수의 관계 - 최초주장 지금 중국 사람들이 자랑스럽게 여기는 한(漢)나라가 북부여 해모수 천제의 도움을 받아 건국된 나라였다고 하면 중국 사람들에게는 자존심 상할 일일지도 모르지만 이는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로 보인다. 전한서 권1상 고제기 제1상 4년(B.C.203) 조를 보면, “北貉燕人來致梟騎助漢” 이라고 기록되어 있고, “貉在東北方三韓之屬皆貉類也” 라는 안사고의 주가 달려 있다. 이의 뜻은 “기원전 203년에 북맥과 연나라가 용감한 기병을 보내와 한나라를 도왔다"라는 뜻이고, “맥은 동북방에 있는 삼한의 지속으로 모두 맥류이다”라는 뜻이다. ☆ 중국 사람들은 주변의 민족을 동이(東夷), 서융(西戎), 남만(南蠻), 북적(北狄)으로 나누어 불렀..

카테고리 없음 2010.08.16

윤여동설 - 산해경이 말하는 북해(北海)는 지금의 발해인가 바이칼 호수인가

윤여동설 - 산해경이 말하는 “북해(北海)”는 지금의 발해인가 바이칼 호수인가    산해경(山海經) 해내경(海內經)을 보면,  “동해지내 북해지우 유국명왈조선(東海之內 北海之隅 有國名曰朝鮮 동해의 안쪽 북해의 모퉁이에 나라가 있는데 이름하여 조선이라 한다)” 이라 기록되어 있어 지금까지 과연 이 기록 속의 “조선(고조선)”이 어디에 위치했었느냐를 가지고 논란들이 참도 많다.   한반도를 기준으로 역사를 해석하는 사람들은 고조선이 북한 평양을 중심으로 위치하고 있었고 동해는 지금의 동해바다를 말하는 것이고, 북해는 흑룡강을 말하는 것이라 하기도 하고,   필자 같은 사람은 고조선이 하북성 승덕시(왕검성) 부근을 중심으로 사방 수 천리를 차지하고 있던 대제국이었다고 했고,   또 어떤 사람은 북해란 지금의 ..

카테고리 없음 2010.03.28

윤여동설 - 고조선이 연나라 진개에게 빼앗긴 땅은 지금의 어디일까?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고조선이 춘추전국시대 연나라의 진개에게 빼앗긴 땅은 지금의 어디일까? - 최초주장 전국책 권제29 연1을 보면, "蘇秦將爲從 北說燕文候曰 燕東有朝鮮遼東 北有林胡樓煩 西有雲中九原 南有呼 易水 地方二千餘里 帶甲數十萬 車七百乘 騎六千疋 粟支十年 南有碣石雁門之饒 北有棗栗之利 民雖不由田作 棗栗之實 足食於民矣 此所謂天府也 (소진이 장래 합종을 하기 위해 북쪽으로 가서 연나라 문후에게 말하기를, 연나라는 동쪽으로 조선요동이 있고, 북쪽으로는 임호누번이 있으며, 서쪽으로는 운중구원이 있고, 남쪽으로는 호타역수가 있어 땅이 사방 2천리입니다..................)"라고 말했다고 기록되어 있어 연나라의 중심 강역을 가늠해 볼 수 있게 하는데, 지금의 산서성 북부와 하북성 남부에 이르는 지역이다. [..

카테고리 없음 2009.08.02

윤여동설 - 기자조선의 비밀을 풀었다

윤여동설 - 기자조선(箕子朝鮮)의 비밀을 풀었다 지금 우리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기자조선이 실제로 존재했느냐, 존재하지 않았느냐 하는 것이 화두 중의 하나로 부각되어 있는데, 요즈음에는 대체로 많은 연구자들이 기자조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없자 실존하지 않은 허구의 왕조로 인식하고 있다. 기자조선이 실존했을 것으로 주장하는 사람들은 왕검조선이 기원전 2,333년에 건국되어 47대 단군 고열가 때 멸망했다면 그 왕검조선의 존속기간을 1천여년쯤으로 볼 수밖에 없는데, 위만조선이 건국된 시기가 기원전 194년이므로 그 사이 기간인 1천여년이 공백으로 남고, 준왕이 기자의 41대 후손이라는 구체적인 기록이 있기 때문에 그 사이 기간을 기자조선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고, 그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삼국유사..

카테고리 없음 2009.07.16

역사논쟁 - 역사를 이은 자와 땅을 차지하고 있는 자의 역사전쟁

역사논쟁 - 역사를 이은 자와 땅을 차지하고 있는 자의 역사전쟁      옛날 유구한 역사를 가진 어느 나라가 있었는데, 그 나라가 쇠약해져 옛날부터 도읍이 위치하고 있던 땅의 대부분을 이웃나라에게 빼앗기고 지도층과 일부 백성들이 멀리 변두리 땅으로 옮겨가 그곳에 새로이 도읍을 정하고 나라를 유지해 왔고 이제는 강국이 되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옛날에 빼앗긴 땅의 역사를 자신들의 역사라고 하게 되었고, 언젠가는 회복해야할 땅이라고 하면서 후손들에게 그 땅의 역사까지를 가르치게 된다.  그런데 그 땅을 빼앗아 차지한 이웃 나라에서도 그 땅의 역사를 자신들의 역사라고 주장하게 된다.  그리하여 두 나라는 그 땅의 역사를 놓고 다투게 된다.  한편은 역사의 정통성을 자기들이 가지고 있으니 그 땅의 역사는 당연..

카테고리 없음 2009.03.13

윤여동설 - 고구려의 네번째 도읍 평양성의 위치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고구려의 네 번째 도읍 평양성의 위치 - 최초주장 고구려의 평양성은 옛 고조선의 왕검성(왕험성이라고도 한다)이었고, 위만조선의 도읍이었으며, 위만조선이 멸망한 후에는 한사군의 한 군이었던 낙랑군의 치소로 활용되다가 대무신왕이 전한 낙랑군을 멸망시키고 그 땅을 고구려에 편입시켰다. ☆ 사기 조선전의 주에는, "括地志云 高(句)麗都平壤城 本漢樂浪郡王險城 又古云朝鮮地也(괄지지에는 고구려의 도읍은 평양성인데 본래 한나라 낙랑군 왕험성이다. 또 고조선 땅이라고도 했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고조선의 왕검성이 곧 낙랑군의 치소였고, 고구려의 평양성 임을 알 수 있다. 그러다가 고구려가 동천왕 때 위나라 관구검의 침공을 받고 도읍인 환도성이 함락되어 불타버리자 247년 2월에 급히 평양성으로 도읍을 옮겼..

카테고리 없음 2008.07.29

윤여동설 - 고조선의 도읍 왕검성(王儉城)을 찾았다 - 최초주장

하가점 선사유적지                                                                      내몽골 적봉 홍산 윤여동설 - 고조선의 도읍 왕검성(王儉城)을 찾았다                                                                                                     한 민족 마음의 고향이며, 우리 역사의 중심지인 왕검성(王儉城, 왕험성이라고도 한다)은 과연 어디를 말하는 것일까?  우리는 지금까지 이 왕검성을 확실하게 찾지 못한 채 조선 시대에 이르러 역사를 착각한 일부 사람들이 한반도 북한 평양을 왕검성이라 비정해 역사를 해석함으로써 왜곡되고 축소된 역사가 사실인 것처럼 전해진 안..

카테고리 없음 2007.1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