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안시성 15

윤여동설 - 당 태종이 안시성 동남쪽 모퉁이에 쌓았던 토산(흙산)의 진짜 위치 - 최초공개

윤여동설 - 당 태종이 안시성 동남쪽 모퉁이에 쌓았던 토산(흙산)의 진짜 위치 - 최초공개 서기 645년 당 태종이 직접 군사들을 이끌고 고구려를 침공했을 때의 일이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보장왕 조의 기록을 보면, “.........강하왕 도종이 군사들을 독려하여 성(안시성)의 동남쪽 모퉁이에 토산(흙산)을 쌓고 안시성으로 점점 가까워졌다. 성 안에서도 성을 더욱 높여 방어를 굳게 하고 군사들이 교대하면서 하루에 6,7회씩 싸웠다. 당나라 군사의 돌격차와 기계포의 돌이 성벽을 허물었으나 성안에서 그때마다 목책을 세워서 부서진 곳을 막았다. 도종이 발을 다쳤는데 당 태종이 몸소 침을 놓아 주었다. 밤낮을 쉬지않고 토산(흙산)을 쌓아 무릇 60일이 걸렸으며 품이 50만이나 들었다. 토산(흙산) 꼭대기가 성..

카테고리 없음 2016.01.10

윤여동설 - 당 태종 고구려 침공로와 철군로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당 태종 고구려 침공로와 철군로 - 최초주장 당 태종의 고구려를 침공로를 보면, 정관 18년(A.D.644) 10월 14일에 장안을 출발하여 낙양을 거쳐 정주로 와서 군사들을 출발시킨다. 그리고는 유주, 북평을 지나 요택과 요수를 건너 요동성(현 북경부근)을 점령하게 되고, 다시 안시성을 공격했으나 실패하고 11개월 만인 645년 9월 18일에 철군을 결정하게 되는데, 철군로를 보면, 안시성에서부터 정주까지는 갔던 길을 되짚어 왔으나 정주(定州)부터는 방향을 바꿔 병주(幷州 : 산서성 태원부근)를 거쳐 장안(현 서안)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림으로 그려보면 위와 같은데, 어느 사람은 당 태종이 안시성에서 양만춘이 쏜 화살에 눈을 맞아 애꾸가 되었다고 하기도 한다. 당 태종이 철..

카테고리 없음 2014.07.04

윤여동설 - 당 태종이 올랐던 안시성 밖 주필산(駐蹕山)을 찾았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당 태종이 올랐던 안시성 밖 주필산(駐蹕山)을 찾았다 - 최초주장 서기 645년 당 태종이 고구려를 침공할 때 요동성을 함락시키고 난 후 진군하여 안시성(安市城)을 공격할 때 올랐다고 전해지는 “주필산(駐蹕山)”이 지금 어느 곳에 위치하고 있는 산을 말하는지 아는 사람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까지 고구려 난공불락의 요새 “안시성(安市城)”의 위치 자체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옛 요동을 지금의 요동반도 부근이라고 이해하는 한 “건무 25년(A.D.49) 봄에 구려가 우북평, 어양, 상곡, 태원을 침입하여 노략질 하는 것을 요동태수 채동이 은의와 신의로 대하니 모두 요새 밖으로 철수하였다”라는 후한서 고구려전 구려 조의 기록을 설명할 수 없고, 중국 사서들에 “고구려와 백제..

카테고리 없음 2014.02.15

윤여동설 - 고대의 요동군(遼東郡)은 지금의 북경 부근, 요수는 영정하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고대의 요동군(遼東郡)은 지금의 북경 부근, 요수는 영정하 - 최초주장 전한서 권28하 지리지 제8하를 보면, “요동군은 진나라가 설치하였는데 유주에 속한다. 호수는 55,972호이고, 인구는 272,539명이며, 18개 현을 관할한다. 양평현,신창현,무려현,망평현,방현,후성현,요대현,요양현,험독현,거취현,고현현,안시현,무차현,평곽현,서안평현,문현,번한현,답씨현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고, 후한서 지제23 군국5를 보면, “요동군은 낙양동북 3,600리에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 후한서에는 요동군 이외에도 낙랑군은 낙양동북 5,000리에, 현토군은 낙양동북 4,000리에, 요서군은 낙양동북 3,300리에, 상곡군은 낙양동북 3,200리에 위치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또 우북평군은 낙..

카테고리 없음 2013.12.02

윤여동설 - 수 양제의 고구려 침공로와 당 태종의 고구려 침공로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수 양제의 고구려 침공로와 당 태종의 고구려 침공로 - 최초주장 수 양제와 당 태종은 직접 고구려를 침공했던 사람들이다. 군사들의 출발지가 탁군(涿郡)과 정주(定州)로 달랐을 뿐 고구려 요동성(遼東城)을 향하여 진군했던 것도 같고, 진군 도중에 갈석산(碣石山)에 올랐던 것도 같으며, 결국 고구려 침공에 실패했던 것도 같다. 삼국사기 고구려 영양왕 22년(A.D.611)조를 보면, “봄2월에 수나라 양제가 조서를 내려 고구려를 치게 하였다. 여름4월에 양제의 행차가 탁군(涿郡 : 지금의 탁주시 부근)의 임삭궁(臨朔宮)에 이르니 사방의 군사들이 모두 탁군으로 모여들었다” 라고 기록되어 있고,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보장왕 4년(A.D.645) 조를 보면, “봄 정월에 당 태종이 정주(定州)를 떠나서..

카테고리 없음 2012.06.18

윤여동설 - 고구려 태조대왕 때 쌓은 요서10성의 축성 위치 - 최초공개

윤여동설 - 고구려 태조대왕 때 쌓은 요서10성의 축성 위치 - 최초공개 삼국사기 고구려 모본왕 2년(A.D.49) 조를 보면, “봄에 장수를 보내 한나라의 북평(우북평이라고도 한다), 어양, 상곡, 태원 등지를 습격하였더니 요동태수 채동이 은의와 믿음으로 대하므로 다시 화친하였다” 라고 기록되어 있고, 그로부터 6년 뒤인 태조대왕 3년(A.D.55) 조를 보면, “봄2월에 요서에 10개 성을 쌓아 한나라 병사(한나라의 침공)에 대비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모본왕 때 북평(우북평), 어양, 상곡, 태원 등지를 습격했을 때 요동군과 요서군의 일부지역을 후한으로부터 빼앗았음을 알 수 있고, 태조대왕 때 이르러 그곳을 수비하기 위하여 요서지역에 10개의 성을 쌓았음을 알 수 있게 한다. 물론 이때 태조대왕은..

카테고리 없음 2012.06.10

윤여동설 - 당 태종의 고구려 요동(遼東) 침공로 - 최초공개

윤여동설 - 당 태종의 고구려 요동(遼東) 침공로 - 최초공개  [당 태종이 고구려 요동성을 공격하기 위하여 진을 쳤다는 마수산. 산의 형태가 말의 머리모양을 닮았기 때문에 붙여진 것으로 보인다.]     당 태종이 서기 645년에 고구려를 침공했던 침공로는 아직까지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었고, 진군 도중에 당 태종이 올랐다는 갈석산의 위치 역시 아직 오리무중이며, 당 태종이 고생하며 지났다는 요택이 어디를 말하는지 분명치 않았으며, 당나라군이 요수를 건너 진을 쳤다는 마수산(말머리산) 역시 아직도 그 위치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사서의 기록에 의하면 당시 당 태종이 군사들을 이끌고 출발한 곳은 정주(定州)였다.   그리하여 반도사관론자들은 당 태종이 지금의 하북성 보정시 정주를 출발하여 동북쪽..

카테고리 없음 2012.05.19

윤여동설 - 고구려 “신성(新城)” 위치찾기 - 최초공개

윤여동설 - 고구려 “신성(新城)” 위치찾기 - 최초공개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13대 서천왕 조를 보면, “7년(A.D.276) 여름4월 왕이 신성[新城 혹자는 말하기를 신성은 나라 동북에 있는 큰 진이라 한다]에 가서 사냥을 하다가 백록을 잡았다. 가을8월에 왕이 신성으로부터 돌아왔다” 19년(A.D.288) 여름4월에 왕이 신성에 갔다. 겨울 11월에 왕이 신성으로부터 돌아왔다.” 라고 기록되어 있고, 또 14대 봉상왕 조를 보면, “2년(A.D.293) 가을8월에 모용외가 와서 침노하였다. 왕이 신성(新城)으로 가서 적을 피하려고 곡림까지 갔는데 모용외가 왕이 달아난 것을 알고 군사를 이끌고 추격하여 거의 잡히게 되매 왕이 두려워하였다. 이때에 신성성주인 고노자가 기병5백을 거느리고 나와서 왕을 영접..

카테고리 없음 2011.10.21

윤여동설 - 건안성(평곽)은 지금의 북경 동북쪽 난평 부근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건안성(평곽)은 지금의 북경 동북쪽 난평 부근 - 최초주장 645년 당 태종 고구려 침공시 난공불락의 요새 안시성을 먼저 쳐야 되느냐 안시성을 그대로 두고 건안성을 치고 평양성으로 향할 것이냐를 놓고 작전회의를 할 때, 이세적이 말하기를 “건안은 남쪽(필자주 : 북쪽의 오기일 것이다)에 있고, 안시는 북쪽(필자주 : 남쪽의 오기일 것이다)에 있는데, 우리의 군량은 모두 요동에 있습니다. 이제 안시를 넘어 건안을 치다가 만약 고구려 사람들이 우리의 군량 수송로를 끊게 된다면 어찌 되겠습니까?” 했다는 기록이 있음을 보면 안시성과 건안성은 모두 요동성 가까이 위치하고 있었고, 안시성이 남쪽(원문은 북쪽으로 되어 있다)에, 건안성이 북쪽(원문은 남쪽으로 되어 있다)에 위치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카테고리 없음 2011.10.17

윤여동설 - 환도성(丸都城)과 안시성(安市城)은 같은 곳이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환도성(丸都城)과 안시성(安市城)은 같은 곳이다 - 최초주장 [학자들이 환도산성으로 비정하고 있는 집안 부근의 산성자산성 환도산성 표지석과 성벽인데 사실 이곳은 환도성이 아니다] 삼국유사 왕력 고구려 16대 국원왕(고국원왕) 조를 보면, “임인년(A.D.342) 8월 안시성으로 도읍을 옮기니 이것이 환도성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고, 또 흥법 순도조려 조에도, “상고해보면 고구려의 도읍은 안시성이며, 이곳을 혹은 안정홀(安丁忽 , 필자주 : 安寸忽의 오기인가?)이라고도 하는데 요수 북쪽에 있었다” 라고 기록하고 있어 우리를 매우 헷갈리게 한다. 왜냐하면 환도성은 서기 198년 고구려 산상왕 2년 2월에 처음으로 쌓았다고 하고, 서기 209년 산상왕 13년 10월에 국내성(국내위나암)으로부터 옮..

카테고리 없음 2010.05.30

윤여동설 - 고구려 안시성(安市城)을 찾았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고구려 안시성(安市城)을 찾았다 - 최초주장 신증동국여지승람 평안도 용강현(龍岡縣) 건치연혁 조를 보면, “고황룡국(古黃龍國)으로서 고구려가 병합하였고, 고려에서는 황룡성(군악이라고도 했다)이라 하였다. 후에 지금 이름(용강)으로 고치고 현으로 만들었는데, 본조(조선)에서는 그대로 따랐다” 라고 기록되어 있어 평안도 용강이 옛날에는 황룡국이었음을 알 수 있고, 성곽 조를 보면, “안시성(安市城)은 오석산(烏石山)에 있는데, 현의 치소와는 5리 떨어져 있으며, 험하고 견고하기가 비할 데가 없다. 돌로 쌓았는데 둘레가 1만2천5백80척이며 안에는 샘 열 개가 있는데 합쳐 흐르고 군창이 있다. 세상에서 이 성을 당 태종이 친히 치려하였으나 함락 시키지 못하였다고 한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신증동..

카테고리 없음 2010.03.08

윤여동설 - 당 태종이 고생하며 건넌 "요택(요동늪)"을 찾았다 - 최초공개

윤여동설 - 당 태종이 고생하며 건넌 “요택(요동늪)”을 찾았다 - 최초공개 당 태종이 고구려를 침공할 때와 철군할 때 고생 하며 건넜다고 전해지는 요택(요동늪)은 과연 지금의 어디를 말하는 것일까? 많은 사람들은 요택이 지금의 요하 하류의 저습지를 말한다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이는 엉터리 중의 엉터리 주장이다. 왜냐하면 고대의 요수는 지금의 요하를 말하는게 아니라 북경 서쪽을 흐르는 영정하이었고, 북경 부근이 옛 요동군이었기 때문이다. 서기 645년 당 태종의 고구려 침공 기록을 보면, 이때 당 태종은 정주(定州)에서 출발하여 요동을 향하여 가다가 (필자주 : 이때 갈석산에도 올랐다고 한다) 요택(요동늪)을 통과하고, 요수(遼水)를 건너 요동성에 도착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학자들은 이러한 기록을..

카테고리 없음 2010.03.01

윤여동설 - 한반도 북한 평양은 고구려의 도읍 평양성이 아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한반도 북한 평양은 고구려의 도읍 평양성이 아니다 - 최초주장 피서산장 옥좌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보장왕 조를 보면, 『서기 666년 겨울12월 (당)고종이 이세적으로 요동도행군대총관 겸 안무대사를 삼고, 사열소상 백안륙과 학처준으로 이를 보좌케 하고, 방동선과 설필하력으로 요동도행군부대총관 겸 안무대사를 삼고 기타 수륙군 모든 부대의 총관들과 전량사들인 두의적, 독고경운, 곽대봉 등은 모두 이세적의 지휘를 받게 하고 하북 여러 주들의 조세는 모두 요동으로 보내어 군용에 사용하도록 하였다. 26년 정묘(A.D.667) 가을9월 이세적이 신성을 함락시키고 설필하력을 시켜 지키게 하였다. 앞서 이세적이 요수(遼水)를 건너와서 모든 장수들에게 이르기를 "신성은 고구려 서쪽 변경의 요충이기 때문에 이..

카테고리 없음 2008.04.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