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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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설 - 관세음응험기에 기록된 백제 무광왕(武廣王)은 과연 누구를 말하는가?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관세음응험기에 기록된  백제 무광왕(武廣王)은 과연 누구를 말하는가? - 최초주장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                                           1970년 일본에서 불교의 신기한 이적에 관한 사항을 기록한 관세음응험기라는 두루마리가 발견되었는데  그 기록 속에   "백제 무광왕(武廣王)이 지모밀지로 천도하고 정사(절)를 새로 지었다(百濟 武廣王 遷都 枳慕密地 新營精舍)" 라고 기록되어 있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백제에 무광왕이라는 왕이 어디 있는가 하고 의아하게 생각했다.  왜냐하면  삼국사기 백제본기에 무광왕이라는 왕이 나타나지 않고 또한 지모밀지라는 곳으로 도읍을 옮겼다는 기록도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

카테고리 없음 2007.10.12

윤여동설 - 백제가 지배한 요서 진평현은 어디를 말하는가?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백제가 지배한 요서 진평현은 어디를 말하는가? - 최초주장 송서 백제국 전에는, "백제국은 본래 고(구)려와 함께 요동 동쪽 1천여 리에 있다. 그후 고(구)려는 요동을, 백제는 요서를 경략하여 차지했는데, 백제가 통치한 곳을 진평군 진평현이라 한다(百濟國 本與高麗俱在遼東之東千餘里 其後高麗略有遼東 百濟略有遼西 百濟所治 謂之晉平郡晉平縣)"라고 기록되어 있어 이때 백제가 중국의 요서지역을 차지하고 있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그런데 기록에 나타나는 요서 진평군 진평현이 어디를 말하는지 아직까지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는데, 이러한 기록은 송서 뿐이 아니라 양나라의 역사서인 양서와 양직공도에도 기록되어 있다. 양서에는, "그 나라(백제)는 본래 (고)구려와 함께 요동의 동쪽에 있다. 진(晉)나라 때..

카테고리 없음 2007.10.12

윤여동설 - 온조백제의 건국지는 지금의 어디인가?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온조백제의 건국지는 지금의 어디인가? - 최초주장    우리는 삼국사기에 기록된 백제(온조백제)의 건국설화를 한반도에 비정하여,   비류와 온조가 졸본(환인)을 떠나 남쪽으로 내려와 압록강을 건너고, 패수(대동강)와 대수(예성강 또는 임진강)를 건너, 한산 부아악(서울 북한산)에 올라 지세를 살펴보고,   비류는 서쪽의 미추홀(인천)로 갔고 온조는 위례성(서울)에 도읍하였다고 해석한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까지 서울 부근에서 위례성의 확실한 흔적을 찾지 못했고, 인천에서 비류가 도읍 했던 미추홀의 흔적을 찾아내지 못했으며, 백제가 500여 년 간 도읍 했을 것이라는 지금의 서울지역에서 확실한 백제의 왕릉을 한 곳도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  ☆ 석촌동 적석총을 백제 왕릉으로 보는 견해..

카테고리 없음 2007.10.11

윤여동설 - 대방군(帶方郡)은 어디를 말하는가?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대방군(帶方郡)은 어디를 말하는가? - 최초주장 삼국지 한(韓) 전에는, "(후한) 환제와 영제 말기에 한(韓)과 예(濊)가 강성하여 군·현에서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여 군·현의 많은 백성들이 한국으로 흘러 들어가자 건안(A.D.196∼219) 중에 공손강이 둔유현 남쪽의 황무지를 나누어 대방군으로 만들고 공손모, 장창 등을 보내 유민을 불러모으고, 군대를 일으켜 한과 예를 정벌하자 옛 백성들이 점점 돌아왔고 그 후 왜와 한이 드디어 대방에 속하게 되었다. 경초(A.D.237∼239) 중에 명제가 몰래 대방태수 유흔과 낙랑태수 선우사를 보내 바다를 건너가서 두 군을 평정했다" 라고 기록되어 있어 대방군이 공손강에 의해 건안 중에 설치되었고, 그 위치는 둔유현의 남쪽이며, 주변에 한과 예 그리고..

카테고리 없음 2007.10.11

윤여동설 - 잃어버린 나라 정안국(定安國)의 위치 - 최초공개

윤여동설 - 잃어버린 나라 정안국(定安國)의 위치 - 최초공개     송사 정안국전(定安國傳)을 보면,   『정안국은 본래 마한의 종족인데, (발해가) 거란에게 격파 당하자 그 추수가 남은 무리들을 규합해서 (발해의) 서쪽 변방에 웅거하여 나라를 세우고 개원하면서 자칭 정안국(定安國)이라 했다.[필자주 : 정안국은 발해의 서경압록부를 중심으로 세워진 나라였는데, 발해의 서경압록부는 지금의 북경 동북쪽 밀운수고 부근의 고북수진을 말하는 것이다]   개보(開寶) 3년(A.D.970)에 정안국왕 열만화(烈萬華)가 여진이 파견한 사신을 통하여 표와 방물을 바쳤다.   태평흥국(太平興國) 연간(A.D.976∼983)에 (송) 태종이 원대한 계획을 세워 거란을 토벌하려고 하면서 정안국에 조서를 내려 기각의 형세를 ..

카테고리 없음 2007.10.10

윤여동설 - 해동성국 발해의 5경 15부는 어디를 말하는가? - 최초주장

윤여동설 - 해동성국 발해의 5경 15부는 어디를 말하는가? - 최초주장                                             [북경 부근의 지도인데 지도 오른쪽에 발해,말갈, 여진, 숙여진, 장백산이 보이고, 또  고려, 백제, 신라계 라고 표시되어 있다]      신당서 북적 발해전(新唐書 北狄 渤海傳)에는, "(발해의) 국토는 5경 15부 62주이다.  숙신의 옛 땅으로 상경(上京)을 삼으니, 용천부(龍泉府)이며, 용주(龍州), 호주(湖州), 발주(渤州)의 3개주를 다스린다.   그 남부를 중경(中京)으로 삼으니, 현덕부(顯德府)이며, 노주(盧州), 현주(顯州), 철주(鐵州), 탕주(湯州), 영주(榮州), 흥주(興州)의 6개주를 다스린다.   예, 맥의 옛 땅으로 동경(東京..

카테고리 없음 2007.10.10

윤여동설 - 고선지 장군은 어떻게 파미르 고원을 넘었을까?

윤여동설 - 고선지 장군은 어떻게 파미르 고원을 넘었을까? 당나라는 고구려를 멸망시킨 후 고구려 지역의 5부 176성 69만여 호를 9도독부 42주 101현으로 만들고 평양에 안동도호부를 설치한다. 그리고는 고구려 백성 3만8천3백호를 끌고 가 중국 남쪽과 서쪽 변방으로 배치했다. 이때 고선지의 가족들도 포로로 잡혀가 안서지역에 배치되었는데, 고선지의 아버지 고사계는 그곳에서 무공을 세워 장군으로 승진한다. 그리하여 활쏘기와 말타기에 능했던 고선지도 그 아버지의 공으로 유격장군에 임명될 수 있었다. 고선지가 속한 부대는 안서도호부 산하로서 지금의 타림분지 부근에 주둔하고 있었는데, 임무는 실크로드의 천산 남북로를 보호하는 것이었다. 타림분지는 매우 넓은 지역으로서 북쪽으로는 천산산맥, 서쪽으로는 파미르고..

카테고리 없음 2007.10.10

윤여동설 - 고구려 900년 존속설과 부흥운동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고구려 900년 존속설과 부흥운동 - 최초주장 우리 민족 역사에서 가장 광대한 강역을 일구었던 고구려의 멸망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그리하여 어떤 이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지 않고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했더라면 우리가 지금도 매우 넓은 강역을 차지하고 있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한다. 그런데 당나라 사람인 가언충이라는 사람은 고구려비기라는 예언서에 고구려가 건국된 지 900년 만에 80대장에게 멸망당할 것이라고 예언되어 있었다고 하고, 고구려가 멸망한 서기 668년이 건국된 지 꼭 900년이 되는 해였다고도 말하고 있는데, 여기에서 이상한 것은 어떻게 서기 668년이 고구려가 건국된 지 900년이 되는 해라고 말하는지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왜냐하면 우리의 역사 상식으로는 ..

카테고리 없음 2007.10.09

윤여동설 - 세종대왕은 왜 한글을 창제했을까?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세종대왕은 왜 한글을 창제했을까? - 최초주장 백성을 가르치기 위한 글 훈민정음 조선 태조 이성계는 54세 때인 1388년에 위화도회군을 감행했고, 1392년 7월에 조선을 개국하고 개경에서 왕위에 올랐으며, 1394년 10월 도읍을 개경(현 중국 하북성 관성현)에서 한양(현 한반도 서울)으로 옮겼다. 1398년 8월 제1차 왕자의 난이 일어나자 태조는 다음 달 왕위를 둘째 아들인 방과에게 선위하고 상왕으로 물러앉았다. 태조의 둘째 아들인 정종 방과는 왕위에 오르자 다음해인 1399년에 다시 개성으로 도읍을 옮겼으며, 1400년 11월 정종으로부터 왕위를 선위 받은 태종 방원은 1404년 9월 다시 한양(현 서울)으로 도읍을 옮겼다. 따라서 이성계의 아들들인 방우, 방과(2대 정종), 방의,..

카테고리 없음 2007.10.09

윤여동설 - 새롭게 비정하는 고구려의 도읍과 그 위치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새롭게 비정하는 고구려의 도읍과 그 위치 - 최초주장  [청나라 때의 여름궁전인 하북성 승덕시 열하행궁(피서산장)의 정문인 여정문]    지금 압록강 너머 집안(輯安:集安)에는 호태왕비가 서 있고, 왕릉으로 추정되는 거대한 고분들과 그 집안 부근에는 돌을 쌓아 만든 적석분들이 즐비하다. 그리하여 우리는 지금 그곳을 고구려의 두 번째 도읍 국내성(國內城)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역사적 사실은 아니다.    국내성이란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2대 유리왕 22년(A.D.3) 조에,  "겨울 10월 왕이 국내로 도읍을 옮기고 위나암성을 쌓았다"라는 기록과   16대 고국원왕 12년(A.D.342) 조의 "봄 2월 환도성을 보수하고 또 국내성을 쌓았다" 라는 기록에 따라 지금의 집안을 국내성이라 추정한 것 ..

카테고리 없음 2007.1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