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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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설 - 고구려 안시성(安市城)은 어디에 위치하고 있었을까? - 최초공개

윤여동설 - 고구려 안시성(安市城)은 어디에 위치하고 있었을까? - 최초공개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보장왕 3년(A.D.644) 조를 보면,   『가을7월 당나라 태종이 장차 군사를 출동시키기로 하고 홍주, 요주, 강주 3개 주에 명령하여 배 4백 척을 만들어서 군량을 싣게 하고,   영주도독 장검을 보내어 유주, 영주 두 도독의 군사와 거란, 해, 말갈 등을 거느리고 먼저 요동을 쳐서 그 형세를 보게 하고,   대리경 위정으로 괴수사를 삼아 하북의 여러 주들은 모두 위정의 지휘를 받게 하고, 위정으로 하여금 상황에 따라 황제의 명령을 기다리지 않고도 먼저 적당히 일을 처리하도록 하였다.   또 소경 소예에게 명하여 하남 여러 주의 식량을 바닷길로 운반하게 하였다.   겨울10월 당나라 황제(태종)가 ..

카테고리 없음 2007.10.08

윤여동설 - 덕흥리 고분벽화에 그려 있는 유주 13군은 어디를 말하는가?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덕흥리 고분벽화에 그려 있는 유주 13군은 어디를 말하는가? - 최초주장                                                                              1976년에 북한 평양의 서남쪽 평남 강서 덕흥리에서 유주자사진(幽州刺史鎭)의 무덤이 발견되었는데, 그 무덤 벽화에 유주 13군의 태수들이 유주자사에게 업무를 보고하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고, 무덤의 주인공이 광개토대왕 때인 영락 18년(서기 408년)에 죽었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유주 13군이란 연군, 범양군, 어양군, 상곡군, 광녕군, 대군, 북평군, 요서군, 창려군, 요동군, 현토군, 낙랑군, (대방군?)을 말하는 것이라 보여지는데,  지금 우리의 역사 상식으로 볼 때는..

카테고리 없음 2007.10.08

윤여동설 - 고구려의 광개토태왕은 최대 어디까지 정복했을까?

윤여동설 - 고구려의 광개토태왕은 최대 어디까지 정복했을까?                                                                                          압록강 북쪽인 길림성 집안(輯安)에서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비(호태왕비 또는 광개토왕비라고도 부른다)가 발견되어 광개토태왕이 평생에 과연 어디까지 정복했는가 하는 논쟁이 시작되었다.  광개토태왕 당시 고구려의 영향력이 과연 어디까지 뻗쳤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면 지금 조그마한 한반도에 갇혀 왜소해진 우리 국민들의 대륙기질을 잠 깨울 수 있을 것이다.       고구려 최대의 강역을 이룬 광개토태왕이 당시 어디까지 정복했을까 하는 것은 우리 민족의 자긍심과 가능성이 맞물려 있기 때문에 한민족..

카테고리 없음 2007.10.07

윤여동설 - 고구려가 우북평, 어양, 상곡, 태원까지 진출한 기록의 진실은?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고구려가 우북평·어양·상곡·태원까지 진출했다는 기록은 역사적 사실일까? - 최초주장    [위 : 요동 표시가 된 곳이 지금의 북경이다. 고대의 요동은 지금의 북경 일원이었고, 고구려와 백제는 요동 동쪽 1천여리에 위치하고 있었다고 여러 사서들에 기록되어 있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모본왕 2년(A.D.49) 조를 보면,  "봄에 장수를 보내 한나라(후한)의 북평(우북평의 오기), 어양, 상곡, 태원 등지를 습격했더니 요동태수 채동이 은의로서 대하므로 다시 화친했다" 라고 기록되어 있어 그 기록의 사실여부를 놓고 논쟁이 시작되었다.   이때 고구려의 도읍 국내성이 지금의 한반도 압록강 북쪽 집안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때 고구려가 지금의 요하 동쪽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어떻게 그 멀리 북경..

카테고리 없음 2007.10.07

윤여동설 - 삼국 건국시조 탄생설화의 새 해석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삼국 건국시조 탄생설화의 새 해석 - 최초주장 [신라 시조 혁거세의 어머니 파소(사소라고도 한다)공주로 추정되는 천후성모상] 고구려 건국시조 추모왕의 혈통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를 보면 주몽을 "추모 또는 중해라고도 한다" 라고 기록하고 있고, 호태왕 비문에도 고구려의 건국시조를 추모왕이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고구려 건국시조 주몽의 시호는 동명성왕이 아니라 추모왕이었음에 틀림없다. ☆ 삼국사기에는 주몽을 동명성왕이라 기록하고 있으나 이는 잘못된 것으로서 졸본부여의 건국시조인 동명왕과 고구려의 건국시조인 추모왕을 혼동한 결과이다. 이는 국강상광개토경 평안호태왕 비문에 고구려의 건국시조를 동명성왕이라 기록하지 않고 추모왕이라 기록하고 있는 것은 그를 확인시켜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주..

카테고리 없음 2007.10.07

윤여동설 - 방 4천리 강역의 삼한은 한반도 남한에 위치할 수 없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방 4천리 강역의 삼한(三韓)은 한반도 남한에 위치할 수 없다 - 최초주장     사서들의 기록을 보면 한(韓: 삼한)이 방4천리에 이르는 넓은 강역을 차지하고 있었다고 되어 있는데, 우리는 지금  1천리에 지나지 않는 한반도 남한에 삼한이 위치하고 있었다고 역사를 해석한다.   삼국지 한전의 주를 보면,   『위략에 이르기를,  진(秦)나라가 천하를 통일 한 뒤 몽염을 시켜 장성을 쌓게 하여 요동에까지 이르렀을 때 조선왕 부(否)가 왕위에 올랐는데, 진나라가 공격할까 두려워하여 복속하는 체 했으나 조회에는 나가지 않았다.   부가 죽고 그 아들 준(準)이 즉위했다.  그 뒤 20여 년이 흘러 진항(진승과 항우)이 병기하여 천하가 어지러워지자 연나라·제나라·조나라 백성들이 괴로움을 견디다 못..

카테고리 없음 2007.10.06

윤여동설 - 한사군(漢四郡)은 한반도에 설치되지 않았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한사군(漢四郡)은 한반도에 설치되지 않았다 - 최초주장 [만리장성이 시작되는 발해의 산해관 노룡두이다. 앞에 관광객을 싣고 노룡두와 해신묘 앞바다를 한바퀴 돌며 구경 시켜주는 모터보트가 한가롭게 놓여있다.] 지금 우리 모두는 위만조선의 도읍이었던 왕검성(왕험성이라고도 한다)이 북한의 평양을 말하는 것으로 배웠고 그렇게 알고 있다. 그리하여 한 무제가 기원전 108년에 순체와 양복이란 두 장군을 보내 위만조선을 멸망시키고 그 땅을 네 조각으로 나누어 설치한 한사군이 지금의 북한 지역을 나누어 설치되었다고 역사를 이해한다. 즉 육군인 순체는 지금의 요하 쯤에서 출발하여 압록강, 청천강을 건너고, 대동강을 건너 왕검성으로 향했고, 수군인 양복은 산동반도를 출발해 동쪽으로 서해(황해)를 건너 대동강..

카테고리 없음 2007.10.06

윤여동설 - 원래의 창해군은 어디를 말하는가?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원래의 창해군은 어디를 말하는가? - 최초주장                                                                                                            원래의 창해군(蒼海郡)은 한사군 이전 중국 세력인 한(漢)나라가 동이지역에 설치했던 최초의 군현이었는데, 지금 그 창해군의 설치지역을 놓고 논란이 많다.     후한서 예전에는 "원삭 원년(B.C.128)에 예군 남려(南閭) 등이 우거를 배반하고 28만 구를 이끌고, 요동군으로 내속 해 왔으므로 (한) 무제는 그 땅을 창해군(蒼海郡)으로 만들었다가 수년 후에 파했다" 라고 기록되어 있으나,  아직까지 기록 속 창해군의 설치지역을 아무도 정확히 찾지 ..

카테고리 없음 2007.10.06

윤여동설 - 잃어버린 나라 동부여는 대흥안령 서쪽 내몽골에 위치하고 있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잃어버린 나라 동부여는 대흥안령 서쪽 내몽골에 위치하고 있었다 - 최초주장 역사적으로 나타나는 부여는 셋이다. 북부여, 졸본부여, 동부여가 그것이다. ☆ 후일 백제의 성왕이 웅진으로부터 사비로 도읍을 옮기고 국호를 남부여라고 했다는 기록이 삼국사기에 나타나고 있으나, 이후에도 백제는 남부여라 하지 않고 백제라는 국호를 계속 사용한 것으로 나타나는데, 백제는 졸본부여의 후예가 세운 나라였다. 북부여의 건국시조는 천제 해모수이고, 졸본부여의 건국시조는 동명왕이며, 동부여의 건국시조는 해부루왕이다. 삼국유사 기이 제1 북부여 조에는, "고기에 말하기를, '전한 선제 신작 3년 임술(B.C.59) 4월 8일에 천제가 흘승골성(訖升骨城: 요나라 의주 경계에 있다)에 내려왔다. 오룡거를 타고 도읍을 정..

카테고리 없음 2007.10.06

윤여동설 - 숙신에 다이아몬드 광산이 있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숙신에 다이아몬드 광산이 있었다 - 최초주장      [아이산 정상 마을 천지진(天池鎭)과 화산호들]   진서 숙신씨 전을 보면,  "숙신씨는 일명 읍루라고도 하는데, 불함산 북쪽에 있다.  부여에서 60일쯤 가야하는 거리에 있다.   동쪽으로는 대해에 닿고, 서쪽으로는 구만한국과 접했으며, 북쪽 끝은 약수에까지 이른다.   그 땅이 매우 넓어 사방 수천 리에 뻗쳐 있다.  심산궁곡에 살며, 그 길이 험준하여 수레나 말이 통행하지 못한다. 여름철에는 나무 위에서 살고 겨울철에는 땅굴에서 산다.........(중략).................  그 나라의 동북쪽에 있는 산에서 산출되는 돌은 쇠를 자를 수 있을 만큼 날카로운데, 그 돌을 채취하려면 반드시 먼저 신에게 기도해야 한다"라고 기록..

카테고리 없음 2007.1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