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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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시사 - 12421법칙

윤여동시사 - 12421법칙 - 최초주장 이 세상은 대개 “12421법칙”으로 이루어져 있다. “12421법칙”이란 세상을 구성하고 있는 거의 모든 요소들이 전체를 100으로 보았을 때, 약 10%, 20%, 40%, 20%, 10%씩의 비율로 분포되어 있다는 말이다. 이는 정치에 있어서도 예외가 아니어서 현 정권이, 정치를 아주 잘한다고 느끼는 적극지지층 약10% 정치를 잘한다고 느끼는 지지층 약20% 보통이라고 느끼는 중도층 약40% 정치를 잘못한다고 느끼는 부정층 약20% 정치를 아주 잘못한다고 느끼는 적극부정층 약10%로 나타나고, 정치인에 대해서도, 아주 좋아하는 극선호층 약10% 좋아하는 선호층 약20% 보통이라고 느끼는 중도층 약40% 싫어하는 혐오층 약20% 아주 싫어하는 극혐오층 약10%..

카테고리 없음 2020.12.08

윤여동설 – 낙랑동부도위 화려성(華麗城)과 불내성(不耐城)은 지금의 어디에 위치했을까?-최초주장

윤여동설 – 낙랑동부도위 화려성(華麗城)과 불내성(不耐城)은 지금의 어디에 위치했을까? - 최초주장     삼국지 동옥저 전을 보면, “한(漢)나라는 그 땅이 넓고 멀어 단단대령의 동쪽을 나누어 동부도위(낙랑동부도위)를 설치하고 치소를 불내성(不耐城)에 두어 별도로 대령 동쪽의 7개현을 관할하게 하였다............건무 6년(A.D.30) 변경의 군을 줄일 때 도위도 폐지하고 그 후 모두 현의 거수로서 현후를 삼으니 불내(不耐), 화려(華麗), 옥저(沃沮) 등의 여러 현이 모두 후국이 되었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삼국지 예전에도, “예(濊 : 동예)는 남쪽으로는 진한(신라), 북쪽으로는 고구려, 옥저와 접하였고, 동쪽으로는 대해에 닿았다. 지금 조선(고조선, 위만조선) 동쪽이 모두 그 땅이다...

카테고리 없음 2020.12.06

윤여동설 – 고구려 초기 황룡국(黃龍國)의 위치를 찾았다 - 최초공개

윤여동설 – 고구려 초기 황룡국(黃龍國)의 위치를 찾았다 - 최초공개 [황룡국 왕성 황룡성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지금의 원중도유지 : 동경114도37분16초 북위41도17분33초]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유리왕 27년(A.D.8) 조를 보면, “봄 정월 왕의 태자 해명이 옛 도읍(졸본)에 남아 있었는데, 힘이 세고 용감했다. 황룡국(黃龍國) 왕이 이 소문을 듣고 사신을 보내 강궁을 선물했더니 해명이 사신이 보는 앞에서 그 활을 잡아당겨 꺾으면서 ”힘을 쓰지 않았는데도 활이 약해 부러졌다"고 하여 황룡국왕이 그 말을 전해 듣고는 매우 무안해 하였다는 기록이 보인다. 이때 고구려는 졸본(卒本)에서 국내성(國內城)으로 도읍을 옮긴 때였는데, 해명태자는 도읍이전을 반대하며 국내로 가지 않고 계속 졸본에 머무르고 있..

카테고리 없음 2020.11.29

윤여동설 – 주몽은 동부여(東扶餘)에서 도망쳐 어느 길을 따라 졸본(卒本)으로 왔으며, 처음 자리 잡은 비류수(沸流水) 중류는 지금의 어디일까?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주몽은 동부여(東扶餘)에서 도망쳐 어느 길을 따라 졸본(卒本)으로 왔으며, 처음 자리 잡은 비류수(沸流水) 중류는 지금의 어디일까? - 최초주장 『“삼국사기 고구려본기를 보면, ......(동부여의) 왕자와 여러 신하들이 또 주몽을 죽이려고 꾀하니, 주몽의 어머니가 그 음모를 알고는 주몽에게 말하기를, “나라 사람들이 장차 너를 해하려 하니, 너의 재주와 지략을 가지고 어디를 간들 어떠하겠느냐? 여기에서 머뭇거리다가 욕을 당하기보다는 차라리 멀리 가서 큰일을 도모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에 주몽은 오이(烏伊), 마리(摩離), 협보(陜父) 등 세 사람과 더불어 벗을 삼아 엄호수[일명 개사수(盖斯水)라고도 하는데, 지금 압록(鴨綠) 동북쪽에 있다]까지 가서 물을 건너려 하였으나 다..

카테고리 없음 2020.11.21

윤여동설 – 백제 구마나리(久麻那利)는 지금의 하북성 진황도 노룡(盧龍)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백제 구마나리(久麻那利)는 지금의 하북성 진황도 노룡(盧龍) - 최초주장 일본서기 웅략천황 20년 조를 보면, 고구려 장수왕이 백제를 침공하였다는 기록과 함께 백제기(百濟記)의 기록을 인용하여 “개로왕 을묘년(A.D.475) 겨울 맥(고구려)의 대군이 와서 대성(大城 : 百濟漢城)을 친지 7일 7야에 왕성이 함락되어 드디어 위례(尉禮 : 慰禮城)를 잃었다.[필자주 : 당시의 백제 도읍이었던 한성과 위례성이 같은 성이거나 근접해 있던 성일 가능성이 있는 기록이다] 국왕 및 대후(왕후), 왕자 등이 모두 적의 손에 죽었다“라고 당시의 치열했던 전투상황과 당시 백제의 도읍 한성(漢城)이 함락될 때 백제 개로왕과 왕후, 왕자 등 일족이 모두 고구려군에게 잡혀 죽었다고 기록하고 있고, 21년 조를 보..

카테고리 없음 2020.11.07

윤여동설 – 고구려는 정말 졸본(卒本)에서 눌현(訥見)으로 도읍을 옮겼었을까? - 최초공개

윤여동설 – 고구려는 정말 졸본(卒本)에서 눌현(訥見)으로 도읍을 옮겼었을까? - 최초공개 [하북성 장가구시 적성현 주가요촌 부근의 지형] [북부여가 졸본부여 동명왕에게 그 땅을 빼앗기자, 북부여 해부루가 유민들을 이끌고 동북쪽으로 이동하여 가섭원에 세운 나라가 동부여인데, 사실 이 동부여 땅이 원래는 창해군 예의 땅이었다. 그런데 중국 사서들에는 이 동부여 땅이 동이 중에서 가장 평탄하다고 하였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석가모니의 제자인 마하가섭의 이름을 붙여 가섭원(迦葉原)이라 하였는데, 이는 패수의 최상류인 지금의 내몽골 섬전하(閃電河)가 정람기, 다륜 등을 위 사진처럼 둥그렇게 빙 돌아 감싸며 흐르는 형상이 마치 스님의 머리모양으로 보였기 때문인지 옛 사람들은 그곳을 가섭원이라 불렀다고 생각된다.] ..

카테고리 없음 2020.10.31

윤여동시사 – 목숨 걸고 독감예방주사를 맞아야 하는겨?

윤여동시사 – 목숨 걸고 독감예방주사를 맞아야 하는겨? 독감예방주사 접종 후 짧게는 수 시간, 길게는 며칠 후 수십 명이 죽었다고 하여 세상이 시끌시끌하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과연 독감예방주사를 맞아야 하는 것인지, 맞지 말아야 하는 것인지 매우 헷갈려 하고 있다. 그러자 관계 당국에서는 년 간 수천 명이 독감으로 사망하니 독감예방주사를 맞아야 한다고 권장하며, 지금까지 사망한 사람들은 독감예방주사를 맞지 않았어도 죽을 사람들이었고, 독감예방주사를 맞은 시기와 사망시기가 우연히 맞아 떨어졌을 뿐이라고 한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 격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쌩쌩하게 제 발로 걸어 가 독감예방주사를 맞고 돌아와 몇 시간도 안 되어 죽은 사람에게 그 사람은 독감예방주사를 맞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어차피 죽을 때..

카테고리 없음 2020.10.26

윤여동설 – 신라 말 군웅들의 할거지와 후삼국의 진짜 위치 - 최초공개

윤여동설 – 신라 말 군웅들의 할거지와 후삼국의 진짜 위치 - 최초공개 신라(新羅)는 한반도에 없었다. 신라의 서라벌(徐羅伐)은 한반도의 경주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중국 요녕성 금주시(錦州市)를 말하는 것이다. ☆ 한반도 경주는 왕망의 신(新)나라에 적극 협조했던 흉노족인 투후 김일제의 후손들이 후한(後漢) 광무제에게 쫓겨 한반도 남부로 도망쳐 와서 세운 흉노족 왕국의 도읍이었다. 지금 한반도 경주에 남아 있는 왕릉들과 문화유적들은 흉노족 왕국의 왕릉들이고, 그들이 남겨 놓은 문화의 흔적들이다. 요녕성 금주시(錦州市)가 진짜 신라의 서라벌(徐羅伐)이었고, 금성(金城), 월성(月城)도 바로 그곳에 있었다. 따라서 신라 말 혼란기에 군웅들이 할거하던 곳도 한반도가 아니라 발해 북쪽 지금의 중국 요녕성..

카테고리 없음 2020.10.18

윤여동설 – 신라 토함산(吐含山)과 그 서쪽 곡사(鵠寺) 원성왕릉(元聖王陵)의 진짜 위치 찾기 - 최초공개

윤여동설 – 신라 토함산(吐含山)과 그 서쪽 곡사(鵠寺) 원성왕릉(元聖王陵)의 진짜 위치 찾기 - 최초공개 [신라 토함산 추정지 능해 구화산공원 전경] [고니형상? 새형상?] 삼국사기 신라본기 원성왕 조를 보면, “재위14년(A.D.798) 겨울 12월 29일 왕이 죽으매 시호를 원성(元聖)이라 하고 유언에 따라 관 채로 봉덕사(奉德寺) 남쪽에서 불태웠다”고 기록되어 있고, 삼국유사 제2권 기이 제2 원성대왕(元聖大王) 조를 보면, “왕의 능이 토함산(吐含山) 서쪽 동네 곡사(鵠寺 : 고니사, 지금의 숭복사)에 있는데, 최치원이 지은 비문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고운 최치원 초상] ☆ 고운 최치원이 지었다는 초월산(初月山) 대숭복사비명(大崇福寺碑銘)을 보면 산의 바위가 고니형상을 하고 있어 곡사(..

카테고리 없음 2020.1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