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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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설 - 발해의 홀한하(忽汗河)는 지금의 서랍목륜하(西拉木倫河) 또는 사간목륜하(査干木倫河)일 가능성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발해의 홀한하는 지금의 시라무렌하 또는 사간무렌하일 가능성 - 최초주장 신당서 북적전 흑수말갈조를 보면, “..........잘 알려진 것이 속말부로서 가장 남쪽에 위치하고 태백산에 이른다. 도태산이라고도 하는데 고구려에 접했다. 속말수에 의지하여 사는데 이 강의 수원은 (태백)산 서쪽에서 흘러나와 북쪽으로 흘러 타루하(它漏河)로 들어간다” 라고 기록되어 있고, 신당서 북적전 발해전을 보면, “만세 통천(A.D.696-697) 중에 거란의 이진충이 영주도독 조홰(조문홰)를 죽이고 반란을 일으키자 사리 걸걸중상이라는 자가 말갈추장 걸사비우 및 고구려의 남은 무리와 함께 동쪽으로 달아나 요수를 건너 태백산 동북쪽을 거점으로 하여 오루하(奧婁河)를 사이에 두고 성벽을 쌓아 수비했다”라고 기록되어 ..

카테고리 없음 2015.12.20

윤여동설 - 신라 최초의 소경 아시촌(阿尸村) 찾기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신라 최초의 소경 아시촌(阿尸村) 찾기 - 최초주장     삼국사기 신라본기 22대 지증왕 15년(A.D.514) 조를 보면,   “봄 정월에 소경을 아시촌(阿尸村)에 설치하고, 가을 7월에 6부와 남쪽지방 사람들로 그곳을 채웠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이때 신라 최초로 아시촌소경(阿尸村小京)을 강역의 북쪽에 설치했었다는 것을 알게 한다.   그런데 이 아시촌소경에 관한 기록은 이후에 전혀 언급되지 않고, 후대에 5소경(중원소경, 북원소경, 금관소경, 서원소경, 남원소경)을 설치할 때에도 일체 언급되지 않는다.   그리하여 아시촌소경이 구체적으로 신라 땅 어디에 설치되었고, 언제까지 존속되었으며, 무슨 이유로 그 이후의 기록에 전혀 나타나지 않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 신증동국여지승..

카테고리 없음 2015.12.12

윤여동설 - 부여씨와 해씨, 고씨의 패권경쟁이 곧 백제와 고구려의 역사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부여씨와 해씨, 고씨의 패권경쟁이 곧 백제와 고구려의 역사 - 최초주장 부여는 원래 단군왕검의 넷째아들 부여에게 주어진 영지로부터 유래했으므로 국호를 부여라 했고, 고조선의 서쪽지역에 위치했다. 원래 부여왕실의 성씨는 부여씨였던 것으로 보이는데, 세월이 흐르자 부여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어오게 된다. 그리하여 해씨인 해모수가 부여의 왕위를 찬탈하게 되자 그에 반발한 부여씨 동명왕이 다시 왕위를 제자리로 돌려놓게 되고, 패한 해씨들은 북쪽으로 도망쳐 예를 밀어내고 다시 나라를 세우게 되는데, 역사에서는 이를 동부여라 한다. ☆ 동부여에게 그 땅을 빼앗긴 예는 동쪽으로 이동하여 임둔을 밀어내고 다시 그 땅에 예(동예)를 건설하는데, 이때 밀려난 임둔은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다. 혹시 이들이 베링..

카테고리 없음 2015.12.04

윤여동설 - 백제초기 왕위계승의 비밀찾기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백제초기 왕위계승의 비밀찾기 - 최초주장 졸본부여 건국시조 동명왕 ..................................|............................. ↓ ↓ 2대 부여무서왕 ?(실명) ↓부마(사위) ↓ 고구려 건국시조 주몽왕(추모왕) 부여우태 = 소서노 (B.C.66년생) ......................|.................... ↓ ↓ ↓ 유리왕 비류 백제 건국시조 온조왕 ☆ 온조왕은 졸본부여 건국시조 동명왕의 후예이고, 주몽왕(추모왕)은 북부여 건국시조 천제 해모수의 후예로서 서로 혈통이 다르다. 백제시조 온조왕의 어머니 소서노는 기원전 66년생이었다. 따라서 그녀가 20세쯤에 장자인 비류를 낳았다면 비류는 기원전 47년생이 되고, 2년..

카테고리 없음 2015.11.01

윤여동설 - 제왕운기는 왜 백제에 34왕이 있었다고 기록했을까?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제왕운기는 왜 백제에 34왕이 있었다고 기록했을까? - 최초주장 이승휴의 제왕운기 백제기를 보면, “......소정방에게 명하여 사비로 진격해서 수륙으로 비처럼 시석을 퍼부었네. 수많은 궁녀들은 청류에 투신하고 낙화암만 대왕포에 우뚝 솟아있네. 돌아보니 678년에 34왕이 천복을 누리었네” 라고 노래하고 있다. 제왕운기는 고려 충열왕 13년(A.D.1287)에 당시 64세였던 이승휴(李承休)가 삼척 두타산에 은거하며 저술한 서사시로서 충렬왕에게 바쳐졌던 글인데, 내용 중 우리의 상식과 다른 부분들이 눈에 띈다. 그 중에서 우리의 역사상식으로는, 백제는 기원전 18년에 온조왕이 나라를 세워 서기 660년 31대 의자왕 때 이르러 나당 연합군의 침공을 받고 멸망했다. 그리하여 우리는 지금 백제가..

카테고리 없음 2015.10.25

윤여동설 - 광산김씨(光山金氏)가 신라왕자 김수충(金守忠)의 후손이 아닐까?

윤여동설 - 광산김씨(光山金氏)가 신라왕자 김수충(金守忠)의 후손이 아닐까? [사계 김장생 선생 묘비 : 유명조선국 가의대부 형조참판 증대광보국숭록대부 의정부영의정 겸영경연 홍문관 예문관 춘추관 관상감사 세자사 시문원공 사계 김선생지묘] 신라의 왕자 신분이라고 역사서에 확실하게 기록이 전하나 그 후의 행적이 묘연한 신라왕자 중의 한 사람이 바로 김수충(金守忠)이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33대 성덕왕 3년(A.D.704) 조를 보면, “여름5월 승부령 소판 김원태의 딸을 맞아들여 왕비로 삼았다”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삼국유사를 보면 이 왕비는 배소왕후이고 시호가 엄정왕후(嚴貞王后)였다. 그리고 13년(A.D.714) 조를 보면, “2월 왕자 김수충을 당나라에 보내 숙위 하게하니 당나라 현종이 집과 비단을 주..

카테고리 없음 2015.10.03

윤여동설 - 백제의 건국지가 정말 대방고지(帶方故地)였고, 건국시조는 구태(仇台)였을까?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백제의 건국지가 정말 대방고지(帶方故地)였고, 건국시조는 구태(仇台)였을까? - 최초주장    주서 백제전을 보면,   “백제는 그 선조가 대개 마한의 속국이며 부여의 별종이다. 구태(仇台)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비로소 대방 땅에 나라를 세웠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수서 백제전에는,   “동명의 후손에 구태(仇台)라는 자가 있었는데, 매우 어질고 신의가 두터웠다. 비로소 대방 옛 땅에 나라를 세웠다. 한(漢)나라 요동태수 공손도(公孫度)의 딸을 아내로 삼았는데, 나라가 점점 번창하여 동이 중 강국이 되었다”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북사 백제전에도,   “동명의 후손에 구태가 있었는데, 매우 어질고 신의가 있었다. 비로소 대방 옛 땅에 나라를 세웠다. 한나라 요동태수 공손도의 딸을 구태에..

카테고리 없음 2015.09.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