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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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자료실 - ○대조(代祖)와 ○세조(世祖) 그리고 ○대손(代孫)과 ○세손(世孫) 과연 어느 것이 옳은 표현일까?

윤여동자료실 - ○대조(代祖)와 ○세조(世祖) 그리고 ○대손(代孫)과 ○세손(世孫) 과연 어느 것이 옳은 표현일까? 요즈음 사람들 가운데 조상(선조)과 후손을 구분하는 호칭인 “대조(代祖)”와 “세손(世孫)”에 대하여 헷갈리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조상(선조)의 비석을 세우면서 10대손 아무개가 글을 지었다고 한다든지, 10세손 아무개가 글씨를 썼다는 식으로 대손(代孫)과 세손(世孫)을 구별없이 사용하고 있고, 또는 조상(선조)을 말할 때 15대조 또는 15세조 라고 하면서 대조(代祖)와 세조(世祖)를 구별없이 사용하기도 하는데, 과연 문제는 없는 것일까? 서기 414년 갑인년에 세운 고구려 호태왕비문을 보면, “還至十七世孫國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이라고 새겨져 있는데, 이는 “세월..

카테고리 없음 2015.02.15

윤여동설 - 조조의 노룡새(盧龍塞)는 어디를 말하는가? - 최초공개

윤여동설 - 조조의 노룡새(盧龍塞)는 어디를 말하는가? - 최초공개 [발해 해수면 20m 상승시 발해연안 지형변화도] 조조가 요서 오환을 정벌할 때 지났다는 곳이 그 유명한 “노룡새(盧龍塞)”라는 곳인데, 아직까지 아무도 그 정확한 위치를 알지 못한다. ☆ 많은 사람들이 노룡새의 위치를 아직까지 찾지 못한 것은 지금의 요하 서쪽을 요서군으로 인식하고, 난하부근을 우북평군으로 인식하고는 그 부근에서 노룡새를 찾으려 했기 때문이었는데, 사실 옛 요수는 지금의 영정하로서 원래의 요서군은 지금의 북경 서남쪽 방산 부근을 말하는 것이다. 207년 2월에 이르러 조조는 업성을 출발하여 북쪽으로 향하여 5월에 우북평군의 무종(無終)에 도착하게 된다. 그런데 홍수로 요서로 가는 도로가 불통이었기 때문에 난감한 상황이 ..

카테고리 없음 2015.02.08

윤여동설 - 진한(辰韓)과 탁수(涿水)는 무슨 관계였을까?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진한(辰韓)과 탁수(涿水)는 무슨 관계였을까? - 최초주장 삼국유사 기이 제1 진한(辰韓) 조를 보면, 『후한서에 이르기를 “진한(辰韓)의 노인이 말하기를 진(秦)나라에서 망명한 사람들이 한(韓)으로 오자 마한(馬韓)이 동쪽 경계의 땅을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서로 부르기를 도(徒)라고 하는데, 마치 진나라 말과 비슷하다. 혹은 진한(秦韓)이라고도 한다. 열두 소국이 있는데, 각각 1만호로서 나라를 칭한다.” 또 최치원은 이르기를 “진한은 원래 연나라에서 피난해온 사람들이다. 그리하여 탁수(涿水)의 이름을 따서 그들이 사는 읍과 동네의 명칭을 사탁, 점탁 등이라 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또 삼국지 한(韓) 전을 보면, “한은 대방의 남쪽에 있다............삼종이 있는데,..

카테고리 없음 2015.01.31

윤여동설 - 태강지리지는 왜 갈석산(碣石山)에서 장성(長城)이 시작되었다고 기록했던 것일까? - 최초주장

윤여동설 - 태강지리지는 왜 갈석산(碣石山)에서 장성(長城)이 시작되었다고 기록했던 것일까? - 최초주장 춘추전국시대 진장성(秦長城)은 농서(隴西)에서부터 북지(北地)를 지나 상군(上郡)까지였다고 하고, ☆ 농서는 감숙성 난주부근, 북지는 영하회족자치구, 상군은 섬서성 북부지역을 말하는 것이다. 춘추전국시대 조장성(趙長城)은 대(代)에서부터 고궐(高闕)까지 쌓고 운중(雲中), 안문(雁門), 대군(代郡)을 설치했다고 하였으며, ☆ 지금 산서성 태원 북쪽에 운중산이 있고, 안문관이 있으며, 대현도 있다. 조장성을 지금의 태원 북쪽에 쌓았음을 알 수 있다. 춘추전국시대 연장성(燕長城)은 조양(造陽)에서 양평(襄平)까지 쌓고, 5군 즉 요동군, 요서군, 상곡군, 어양군, 우북평군을 설치했다고 하였으며, ☆ 조양..

카테고리 없음 2015.01.24

윤여동설 - 산해경(山海經)은 어디에 대한 기록일까?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산해경(山海經)은 어디에 대한 기록일까? - 최초주장    산해경(山海經)은 역사이후 기록된 가장 오래된 지리서이다.   원래 요순시대에 기록된 것이 전해졌고, 후진(後晋)의 곽박(郭璞)이 정리하여 지금에 이르렀다고 하는데, 많은 사람들은 이 산해경이 워낙 난해하여 이해하기 어렵고 또 너무나 오래된 것이라서 기록 속 옛 지명을 비정하기가 어렵다고들 하고 있는데, 산해경 기록을 유심히 살펴보면 중심점이 남‧북 두 군데로 나타난다.   하나는 해내경을 중심으로 해내동경, 해내서경, 해내남경, 해내북경 또 그 외곽으로 해외동경, 해외서경, 해외남경, 해외북경 또 그 외곽으로 대황동경, 대황서경, 대황남경, 대황북경으로 기록되어 있고,   또 하나는 중산경을 중심으로 동산경, 서산경, 남산경, 북산..

카테고리 없음 2015.01.19

윤여동설 - “곤연(鯤淵)”은 어디를 말하는 것일까?

윤여동설 - “곤연(鯤淵)”은 어디를 말하는 것일까? 삼국사기 고구려본기를 보면, “부여왕 해부루가 늙도록 아들이 없으므로 산천에 기도하여 후사를 구하였는데, 어느 날 왕이 타는 말이 곤연(鯤淵)에 이르자 큰 돌을 보고는 마주 대하여 눈물을 흘렸다. 왕이 괴이하게 여겨 그 돌을 옮겼더니 어린아이가 있었는데, 금빛 개구리형상이었다. 왕이 기뻐하며 ‘이는 하늘이 나에게 아들을 주시는 것이로다’하고는 거두어 기르고 이름을 금와라 하였다. 그가 장성하자 태자를 삼았다”라고 동부여 금와왕 탄생설화가 기록되어 있는데 기록 속에서 “곤연(鯤淵)”이 언급된다. “곤(鯤)”이란 북해에 살고 있다는 전설 속의 큰 물고기를 말하는 것인데, 이것이 어느 때가 되면 “붕(鵬)”이라는 새로 변하여 9만리를 날아가 남쪽으로 간다고..

카테고리 없음 2015.01.10

윤여동설 - 일본에서도 왜 흉노 유물이 출토되는 것일까?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일본에서도 왜 흉노 유물이 출토되는 것일까? - 최초주장 후한(後漢)의 광무제가 왕망의 신(新)나라를 멸망시키고 한(漢)나라를 부활하자 신나라의 정치에 깊이 관여했던 지금의 산동성 하택시 부근에 봉해졌던 투후 김일제의 후예들은 어디론가 도망쳐야 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광무제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일단 가까운 요동(遼東)으로 도망치게 되는데, 고대의 요동은 지금의 북경 부근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후한 광무제의 추적은 집요했고, 요동 부근에 위치하고 있던 고구려, 백제는 도망자들을 선뜻 받아들이지 못한다. 괜히 강한 세력인 후한과 척을 지으면 침공을 당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인데, 어느 나라가 그러한 위험부담을 안고 도망쳐 온 사람들의 망명을 흔쾌히 받..

카테고리 없음 2014.12.28

윤여동설 - 새롭게 밝히는 고려 현종의 몽진루트

윤여동설 - 새롭게 밝히는 고려 현종의 몽진루트 [위 : 발해 해수면 20m상승시 발해연안의 지형변화도] 거란(요) 성종이 고려를 침공하여 개경에 침입하자 다급해진 고려 현종은 몽진길에 나서게 되는데,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에 기록되어 있는 현종의 몽진루트는 아래와 같이 정리할 수 있다. [고려사] 개경(開京) ⇒ 광주(廣州) ⇒ 비뇌역(鼻腦驛) ⇒ 장곡역(長谷驛) ⇒ 인의역(仁義驛) ⇒ 수다역(水多驛) ⇒ 노령(蘆嶺) ⇒나주(羅州) ⇒ 복룡역(伏龍驛) ⇒ 고부군(古阜郡) ⇒ 금구현(金溝縣) ⇒ 전주(全州) ⇒ 여양현(礪陽縣) ⇒ 공주(公州) ⇒ 청주(淸州) ⇒ 개경 수창궁(開京 壽昌宮) 환궁 [고려사절요] 개경(開京) ⇒ 광주(廣州) ⇒ 비뇌역(鼻腦驛) ⇒ 양성(陽城) ⇒ 사산현(蛇山縣) ⇒ 천안부(天安府..

카테고리 없음 2014.1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