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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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지리 - 웅진(공주) 남쪽 50리 흑우망월형(黑牛望月形) 명당을 찾았다

풍수지리 - 웅진(공주) 남쪽 50리 흑우망월형(黑牛望月形) 명당을 찾았다  [위 : 흑우망월형 명당]   웅진(공주) 남방 50리허에 흑우망월형(黑牛望月形) 명당이 있다고 풍수지리서인 만산결, 성거사결에 전한다고 한다.  안산의 형태가 반월형(半月形)이고, 그곳에 묘를 쓰면 2년 후에 귀자를 얻는다고 한단다.  그리하여 풍수지리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은 공주 남쪽 50리쯤에 있다는 흑우망월형 명당을 찾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이미 누군가 그 명당을 찾아 묘를 썼다고도 하고, 아직 그 명당 자리를 찾지 못했다고도 한다는데, 필자가 그 흑우망월형 명당자리를 찾아 사진을 공개하니 관심 있는 분들은 열심히 찾아 보시기를....................

카테고리 없음 2014.12.05

윤여동설 - 신라의 태백산(太白山)은 어디에 있었을까? - 최초공개

윤여동설 - 신라의 태백산(太白山)은 어디에 있었을까? - 최초공개 삼국사기 신라본기 일성이사금 5년(A.D.138)조를 보면, "겨울10월 왕이 북방으로 순행을 하여 태백산에 친히 제사를 지냈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기림이사금 3년(A.D.300) 조를 보면, “3월 왕이 우두주(牛頭州)에 이르러 태백산(太白山)에 제사를 지냈다” 라고 기록되어 있어 우두주에 신라의 태백산이 위치한 것으로 착각하기 쉽다. 그리고 삼국사기 신라본기와 백제본기에는 우두주에 관한 기록이 여러 번 등장하고, 특히 신라와 백제가 그 우두주를 놓고 뺏고 빼앗기는 쟁탈전을 벌인 것으로 나타난다. 기록을 보면, 백제본기 시조 온조왕 18년(B.C.1) 조를 보면, “11월 왕이 낙랑의 우두산성을 습격하려고 구곡까지 갔다가 큰 눈을 만..

카테고리 없음 2014.11.29

윤여동설 - 신라의 천년도읍 서라벌은 지금의 요녕성 금주시(錦州市)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신라의 천년도읍 서라벌은 지금의 요녕성 금주시(錦州市) - 최초주장 삼국사기 신라본기 혁거세거서간 21년(B.C.37) 조를 보면, “서울에 성을 쌓고 이름을 금성(金城)이라 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신라에서 금성(金城)을 이때에 쌓았음을 알게 하는데, 학자들은 신라의 서라벌과 금성이 지금 한반도의 경주를 말한다고 하고 있다. 과연 그럴까? 필자는 신라의 천년도읍 서라벌의 위치를 지금의 중국 요녕성 금주시(錦州市)로 보고 있다. 신라는 천년 내내 서라벌이 중심이었고, 서라벌에서 건국하였다가 서라벌에서 멸망하였다. 그러한 신라의 서라벌과 금성, 월성을 한반도에서 찾는다고라? ㅎㅎ [참고] 신증동국여지승람 경상도 경주부 산천 조에, “낭산(狼山) : 경주부 동쪽 9리에 있는 진산이다. 토함산(..

카테고리 없음 2014.11.09

윤여동설 - 우리는 왜 고대 지명들의 위치를 모두 잃어버린 것일까?

윤여동설 - 우리는 왜 고대 지명들의 위치를 모두 잃어버린 것일까? 한서 권28하 지리지 제8하를 보면, “요동군은 진나라 때 설치했고 유주에 속한다. 55,972호이고, 인구는 272,539명이며, 영현은 18현이다” 라고 기록하고 나서 18개 영현을 나열했는데, 그를 보면 “양평현, 신창현, 무려현, 망평현, 방현, 후성현, 요대현, 요양현, 험독현, 거취현, 고현현, 안시현, 무차현, 평곽현, 서안평현, 문현, 번한현, 답씨현”이다. 그런데 고구려 미천왕은, 재위 12년인 311년에 장수를 보내 요동 서안평을 습격하여 빼앗았고, 재위 14년인 313년에는 낙랑군(후한낙랑군)을 침공하였으며, 재위 15년인 314년에는 대방군을 침공하고, 재위 16년인 315년에는 현토군을 침공한다. 그런데 우리는 지..

카테고리 없음 2014.10.25

윤여동설 - 백제 동성왕의 탐라정벌로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백제 동성왕의 탐라정벌로 - 최초주장    삼국사기 백제본기 문주왕 2년(A.D.476) 조를 보면,   “여름4월 탐라국(耽羅國)에서 토산물을 헌상하매 왕이 기뻐서 그 사자에게 은솔 벼슬을 주었다” 라고 기록되어 있고,   동성왕 20년(A.D.498) 조를 보면,   “8월 왕이 탐라(耽羅)에서 공납과 조세를 바치지 않기 때문에 그를 치려고 무진주(武珍州)에 이르니 탐라에서 이 소식을 듣고 사신을 보내어 사죄하므로 중지하였다[탐라는 곧 탐모라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어 이때 동성왕이 직접 군사들을 이끌고 탐라를 정벌하기 위해 무진주까지 출전했었음을 알 수 있다.  동성왕은 반도백제 모도왕의 둘째 손자로서 반도백제가 대륙백제를 흡수통합한 후 그 할아버지 모도왕의 명을 받고 한반도에서 발..

카테고리 없음 2014.10.19

윤여동설 - 백제는 실제 요동 동쪽에 위치하고 있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백제는 실제 요동 동쪽에 위치하고 있었다 - 최초주장 송서 백제국전을 보면, “백제국은 본래 고구려와 함께 요동의 동쪽 1천여리에 있었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양서 백제전을 보면, “백제는 그 선조가 동이에 있는 삼한국인데, 첫째는 마한이요, 둘째는 진한이며, 셋째는 변한이었다. 변한과 진한은 각각 12국이었고, 마한은 54국이었는데, 백제는 곧 그 중의 한개 나라였다. 후에 점점 강대해져서 여러 작은 나라들을 겸병했다. 그 나라는 본래 고구려와 함께 요동의 동쪽에 있었다”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남사 백제전에도 양서와 동일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북사 백제전을 보면, 수나라가 요동전쟁(遼東之役)을 일으키자 백제가 사신을 보내 군사의 길잡이가 되겠다고 하였다는 기록도 있다. 요동이 지금의 ..

카테고리 없음 2014.10.11

윤여동설 - 백제 부흥운동의 중심 주류성(周留城)과 임존성(任存城)의 위치 찾기 - 최초공개

윤여동설 - 백제 부흥운동의 중심 주류성(周留城)과 임존성(任存城)의 위치 찾기 - 최초공개 백제 부흥운동의 중심성이었던 주류성과 임존성은 과연 지금의 어디에 위치하고 있었던 성일까? 삼국사기 백제본기 의자왕 조를 보면, “무왕의 조카 복신이 일찍이 군사를 거느리고 있었는데, 이때에 중 도침과 함께 주류성(周留城)에 웅거하며 반하였다. 옛 왕의 아들로서 왜국에 볼모로 갔던 부여풍을 맞아들여 왕으로 삼으니 서북부에서 모두 호응하매 군사를 이끌고 사비 도성에 있는 유인원을 포위하였다. 당나라에서 조서를 내려 유인궤로서 검교대방주자사를 삼아 왕문도의 군사를 거느리고 신라군사를 적당하게 발동시켜 유인원을 구원하게 하니........(중략).........인궤가 군사를 엄숙하게 통제하여 싸우면서 전진하여 오므로 ..

카테고리 없음 2014.10.04

윤여동설 - 백제 한산부아악(漢山負兒嶽)의 위치 - 최초공개

윤여동설 - 백제 한산부아악(漢山負兒嶽)의 위치 공개 - 최초공개 삼국사기 백제본기 시조 온조왕 조를 보면, “.............이리하여 한산(漢山)에 이르러 부아악(負兒嶽)에 올라서 살만한 곳을 살피다가 비류가 바닷가에서 살고 싶어 하니 열 신하가 간하여 말하기를 ‘이 하남의 땅은 북대한수(북쪽으로 한수가 띠를 두르고)하고, 동거고악(동쪽은 높은 산이 있으며) 하며, 남망옥택(남쪽으로는 평야가 바라보이고)하고, 서조대해(서쪽은 대해로 막혀 있으니)하니 그 천험의 지리가 얻기 어려운 지세이오니, 이곳에 도읍을 정하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하였으나 비류가 그를 듣지 않고 그 백성들을 나누어 미추홀(弥鄒忽)로 돌아가 살았다. 온조는 하남위례성(필자주 : 한수 남쪽의 위례성이라는 의미)에 도읍을 정하고..

카테고리 없음 2014.09.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