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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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설 - 백제는 대방고지(帶方故地)에서 건국되지 않았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백제는 대방고지(帶方故地)에서 건국되지 않았다 - 최초주장 백제의 건국지를 말할 때 일반적으로 “대방고지(帶方故地 : 대방옛땅)” 또는 “패대지간(浿帶之間 : 패수와 대수 사이지역)” 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백제는 대방옛땅에서 건국되지 않았고, 패수(浿水)와 대수(帶水) 사이에서 건국되지도 않았으며, 대수와 패수를 건넌 진번(眞番) 남쪽 한산(漢山) 부근에서 건국되었다. ☆ 한사군 중 진번군의 설치위치에 대하여 논란이 있는데, 북한산이 위치하고 있는 그 북쪽 부근이 진번군이었다. 수서 백제전을 보면, “동명의 후손에 구태라는 자가 있었는데, 매우 어질고 신의가 두터웠다. 비로소 대방고지(帶方故地)에 나라를 세웠다. 한 나라 요동태수 공손도의 딸을 아내로 삼았는데, 나라가 점점 번..

카테고리 없음 2014.09.19

윤여동설 - 남천정(南川停)과 금돌성(今突城)의 위치찾기

윤여동설 - 남천정(南川停)과 금돌성(今突城)의 위치찾기 삼국사기 신라본기 태종무열왕 7년(A.D.660) 조를 보면, 나당연합군의 백제침공로가 나타나는데, 이때 신라군의 진격로 중 남천정(南川停)과 금돌성(今突城)이 있다. 기록을 보면, 『여름 5월 26일에 왕이 유신, 진주, 천존 등과 함께 군사를 거느리고 서울(금성)을 출발하여 6월 18일에 남천정(南川停)에 머물렀다. 소정방은 내주(萊州 : 지금의 산동반도)로부터 떠나는데 전선이 천리를 잇달아 물길을 따라 동쪽(필자주 : 서북쪽의 오기이다)으로 왔다. 6월 21일에 왕이 태자 법민으로 하여금 병선 1백척을 거느리고 덕물도에 가서 소정방을 맞게 하였다. 소정방이 법민에게 말하기를 “나는 7월 10일 백제에 도착하여 (사비의) 남쪽에서 대왕의 군사와..

카테고리 없음 2014.09.12

윤여동설 - 북한산(北漢山), 대야성(大耶城)의 위치 찾기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북한산(北漢山), 대야성(大耶城)의 위치 찾기 - 최초주장     삼국사기 신라본기 진흥왕 16년(A.D.555) 조를 보면,   “겨울10월 왕이 북한산(北漢山)을 순행하고 국경을 넓혀서 정하였다.  11월에 왕이 북한산으로부터 돌아와 교서를 내려 지나온 주와 군에 1년간 세금을 면제해 주고 지방 죄수들로서 중죄를 제외하고는 모두 사면하여 주었다.”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 학자들은 이때 진흥왕이 북한산을 순수하고 순수비를 세웠을 것이라고 하는데, 어느 곳에도 순수비를 세웠다는 기록은 나타나지 않고, 지금 서울 북한산의 옛 비석을 진흥왕북한산순수비라고도 하는데, 실소를 머금을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이때 진흥왕이 순수했던 진짜 북한산은 발해 북쪽 진황도에 있는 지금의 도산(都山)이었는데,..

카테고리 없음 2014.09.05

윤여동설 - 구월산(九月山)과 구월산성(九月山城)의 위치 찾기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구월산(九月山)과 구월산성(九月山城)의 위치찾기 - 최초주장 신증동국여지승람 황해도 문화현 산천 조를 보면, “구월산(九月山) : 현의 서쪽 10리에 있는데 곧 아사달산이다. 일명 궁홀산이라고도 하고, 일명 증산이라고도 하며, 일명 삼위라고도 한다. 세상에 전하기를 단군이 처음에 평양에 도읍하였다가 후에 백악으로 옮겼다고 하는 곳이 바로 이산이다. 주 무왕이 기자를 조선에 봉하니 단군이 당장경으로 옮겼다가 다시 이 산(필자주 : 사실은 이 산이 아니라 첫도읍 아사달성으로 들어갔다) 으로 돌아와 숨어 신이 되었다고 한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안악군 산천 조를 보면, “구월산 : 군의 서쪽 30리에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장련현 산천조를 보면, “구월산 : 현의 남쪽 10리에 있다” 라고 ..

카테고리 없음 2014.08.31

윤여동설 - 마한의 월지(금마저)는 지금의 하북성 당산시 풍윤(豊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마한의 월지(금마저)는 지금의 하북성 당산시 풍윤(豊潤) - 최초주장 마한의 도읍 “월지(月支)”는 과연 지금의 어디를 말하는 것일까? “월지”라는 곳은 우리 고대 역사에서 유서깊고 중요한 곳임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그 정확한 위치를 모르고 있는 곳 중 하나이다. 월지는 옛날 고조선의 마지막 단군 준왕이 기원전 194년에 위만에게 왕검성을 빼앗기고 급히 좌우궁인들을 이끌고 남쪽으로 도망쳐 와서 마한의 월지국(月支國)에 다시 도읍을 정하고 국호를 한(韓 : 마한이라 했다고도 한다)이라 했다는 곳이다. 그러다가 200여년이 지난 서기 8년에 백제 온조왕에게 도읍이었던 월지(月支)를 빼앗기게 되는데, 온조왕은 그곳 월지(月支)의 지명을 새로이 금마저(金馬渚)라 명명하게 됨으로써 “금마저(金馬渚)”..

카테고리 없음 2014.08.24

화제 - 비전(秘傳)의 채소 “향갓” 그 오묘한 맛

화제 - 비전(秘傳)의 채소 “향갓” 그 오묘한 맛 [문정공팔송 윤황선생종택 안채]    지금 충남 논산시 노성면 장구리에 가면 민속문화재 제8호로 지정되어 있는 "윤황선생고택"이 있다.  윤황선생은 조선 선조 4년 신미년(서기1571) (음력) 11월 18일 축시[팔송연보에 의함]에 한성 서문 밖에서 태어나 인조 16년 기묘년(서기1639) (음력) 6월 4일에 69세로 별세하였다.   호는 팔송(八松)이고, 배위는 우계 성혼선생의 딸이며, 명재 윤증선생이 바로 그의 손자이다.  팔송 윤황선생이 활약했던 시기는 조선에 내우외환이 겹치는 시기였다. 임진왜란이 끝난 후 광해군 시기를 지나 인조반정이 일어났고 이괄의 난을 거쳐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을 겪었던 격랑의 시기였다.         [위 : 팔송 윤황선..

카테고리 없음 2014.08.16

윤여동설 - 고려와 후백제 최후의 전투지 “일리천(一利川)”의 위치

윤여동설 - 고려와 후백제 최후의 전투지 “일리천(一利川)”의 위치 삼국사기 견훤열전을 보면, 견훤은 옛 백제지역인 무진주에서 봉기하여 스스로 왕위에 올랐고, 전주, 공주 등을 차지한 후 도읍을 전주에 정하게 되나 후일 장자인 신검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금산에 있는 절에 석달 동..

카테고리 없음 2014.08.16

윤여동설 - 백제(대륙백제)의 전주(全州)는 지금의 하북성 당산(唐山)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백제(대륙백제)의 전주(全州)는 지금의 하북성 당산(唐山) - 최초주장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보장왕 9년(A.D.650) 조를 보면, “여름6월 반룡사(盤龍寺)에 있던 보덕화상(普德和尙)이 나라에서 도교를 숭상하고 불법을 불신한다하여 남쪽 완산(完山) 고대산(孤大山)으로 옮겨갔다” 라고 하면서 완산(完山)이 언급되는데, 당시 고구려와 적대관계에 있던 백제 완산주의 고대산으로 갔다는 말로 이해된다. ☆ 현재 우리나라의 많은 절들을 바로 이 보덕화상이 창건했다고 하는 설화가 있으나 이는 역사적 인물을 끌어들여 절의 권위를 높이기 위한 것이지 역사적 사실은 아니다. 그리고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이후에 이 완산주(完山州)는 전주(全州)로 이름이 바뀌게 된다. 그렇다면 백제(대륙백제)의 전주(全州)는 ..

카테고리 없음 2014.08.09

윤여동설 - 백제 마지막 도읍 사비(泗沘)는 발해 북쪽 지금의 하북성 난현(난주) - 최초공개

윤여동설 - 백제 마지막 도읍 사비(泗沘)는 발해 북쪽 지금의 하북성 난현(난주) - 최초공개       [난주고성]     삼국사기 백제본기 무왕 35년(A.D.634) 조를 보면,  “봄2월 왕흥사가 준공되었다. 그 절이 강 언덕에 섰으며, 채색을 하여 웅장하고 화려하였다. 왕이 자주 배를 타고 절에 가서 향을 피웠다.  3월 궁궐 남쪽에 못을 뚫어 20여리 물을 끌어들이고, 사면에 양류(수양버들)를 심고, 물 가운데 섬을 만들어 방장선산(方丈仙山)과 비슷하게 만들었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사진 뒤편에 자금탑이 보이는데, 옛날 무왕 때의 망해루로 생각되는 곳이다]      [백제 무왕이 궁궐 남쪽에 물을 끌어들여 못(池)을 만들고 가운데 섬을 방장선산 비슷하게 꾸미고, 수양버들을 심었다고 하였..

카테고리 없음 2014.08.01

윤여동설 - 훈요십조 제8조의 “차현이남 공주강외”는 발해 북쪽 하북성 난현(난주) 일원을 말한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훈요십조 제8조의 “차현이남 공주강외”는 발해 북쪽 하북성 난현(난주) 일원을 말한다 - 최초주장       훈요십조 제8조의 전체적 내용은,   "차현이남(車峴以南)과 공주강외(公州江外)의 산 모양과 지세가 모두 배역하니 인심 역시 그러하다. 그 아래의 주군 사람이 조정에 참여하여 왕후, 국척과 혼인하여 나라의 정권을 잡게 되면 국가를 혼란하게 하고, 백제가 통합 당한 원한을 가지고 왕을 범하는 죄를 저지르고 난을 일으킬 것이다. 한낱 관청의 노비이거나 진, 역, 잡척에 속한 무리라 할지라도 권세 있는 사람에게 붙어 신역을 면하거나, 왕후, 궁원에 붙어 간사하고 교묘한 말로서 권력을 농단하고 재변을 일으키는 자가 반드시 있을 것이니 비록 선량한 사람으로 보이더라도 벼슬을 주어 권세를 부리는..

카테고리 없음 2014.0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