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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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설 - 거란 야율아보기의 발해상경 침공로를 밝힌다 - 최초공개

윤여동설 - 거란 야율아보기의 발해상경 침공로를 밝힌다 - 최초공개 발해의 민심이 흉흉해지자 거란의 야율아보기는 10만 대군을 이끌고 925년 윤12월 발해 상경을 향하여 진격한다. 가까운 길목에 부여성이 있었으나 926년 1월 3일 경신일에 함락되었는데, 부여성은 거란군이 성을 포위하자 단3일 만에 성문을 열고 항복해 버렸다. 그렇게 부여성이 무력하게 함락되자 발해에서는 급히 상경으로 오는 길목에 3만의 방어군을 배치했으나 이 군사들 역시 거란군과의 전투에서 패하고 항복해 버리자 거란군은 홀한하를 건너 신속하게 발해 상경인 홀한성(忽汗城 : 상경용천부 )을 포위하게 된다. 이때 발해의 마지막 왕 대인선은 병에 걸려 요양 중에 있었다고 하고, 사기가 꺾인 장수들도 더 이상 거란군에 맞서 싸우려는 사람이 ..

카테고리 없음 2015.04.26

윤여동설 - 발해(대진국)는 왜 멸망했을까?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발해(대진국)는 왜 멸망했을까? - 최초주장 [신당서 발해전을 보면, 용원(동경용원부)은 일본으로 갈 때 이용하는 길이고, 남해(남경남해부)는 신라로 갈 때 이용하는 길이며, 압록(서경압록부)은 중국으로 갈 때 이용하는 길이며, 부여는 거란으로 갈 때 이용하는 길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발해(대진국)의 멸망원인은 지금까지 미스테리였다. 백두산 화산폭발 때문에 갑자기 멸망했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었으나 화산이 아무리 강하게 폭발했다고 하더라도 발해처럼 사방 5천리에 이르렀다는 큰 나라가 그로인하여 멸망했을 것이라는 주장은 말이 되지를 않고, 사실 발해는 지금의 백두산 부근에 위치하고 있지도 않았었다. 발해(대진국)는 지금의 내몽골 파림우기 부근에서 건국되었는데, 그 곳이 중경현덕부(中京顯德府)였고..

카테고리 없음 2015.04.18

윤여동설 - 거란(요)은 부여문화권에 속했던 민족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거란(요)은 부여문화권에 속했던 민족 - 최초주장 부여는 아주 먼 옛날 고조선 단군왕검의 아들 부여에게 주어졌던 나라 서쪽의 영지였고, 후일에 이르러 북부여, 동부여, 졸본부여가 되었다. ☆ 북부여는 졸본부여에 병합되었고, 졸본부여는 후일 고구려가 되었으며, 동부여는 5백여년 후 고구려에 통합되었다. 북부여는 해모수가 건국하여 기원전 232년에 천제의 자리에 올라, 해모수리, 해해사, 해우루, 해부루로 왕위가 이어졌고, 졸본부여는 동명왕이 기원전 108년에 건국하여 기원전 86년에 북부여를 병합하였다. 그러자 북부여 해부루왕은 북부여 땅을 빼앗기고 일부 유민들을 이끌고 동북쪽으로 이동해 가서 다시 나라를 세우고 국호를 동부여라 하게 되고, 다른 일부 역시 북부여를 떠나 흩어져 실위, 고막해,..

카테고리 없음 2015.04.12

윤여동설 - 한반도 북쪽 백두산이 고대부터 중국 땅이었다고? 웃기는 소리

윤여동설 - 한반도 북쪽 백두산이 고대부터 중국 땅이었다고? 웃기는 소리      중국 동북삼성 역사학자들이 한반도 북쪽의 백두산이 옛날부터 중국 땅이었다고 주장하는 책을 펴냈다고 한다.   그러나 산해경에서 말하는 불함산 등 우리 고대역사와 깊은 관련이 있는  원래의 태백산은 지금 칠로도산 산맥의 최고봉인 대광정자산(2,067m)을 말하는 것이고,   고대의 요동은 지금의 북경 부근을 말하는 것인데,   한반도 북쪽의 백두산이 어떻게 고대부터 중국 땅일 수 있었다는 말일까?   지금의 북경 서쪽 영정하(필자주 : 이 강이 바로 고대의 요수였다)로부터 동북쪽으로 요하까지는 원래 우리의 고조선, 삼한, 삼국, 고려 땅이었고,   한반도는 고려를 이어 건국된 조선이 대륙의 개경으로부터 한반도의 한양(현 서울..

카테고리 없음 2015.04.05

윤여동설 - 북경에서 낙랑 출신의 묘가 발견된 이유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북경에서 낙랑 출신의 묘가 발견된 이유 - 최초주장 북경 남쪽 대흥구에서 1,500년전 무덤이 발견되었는데, 낙랑 조선현 출신 한현도라는 사람이고 539년에 죽었다는 명문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은 그가 한반도의 평양 부근 출신으로서 무슨 사연이 있어 북경 부근으로 옮겨가 살다가 죽어 묻힌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러나 필자의 연구에 의하면 북경 부근은 5군 중 요동군이었고, 영정하 서쪽은 요서군이었으며, 낙랑군은 그 가까이에 위치하고 있었다. 하북성 승덕시 부근이 전한낙랑군이었고, 흥륭부근은 후한낙랑군이었고, 보정 부근은 진(晋)낙랑군이었으며, 북위 때의 낙랑군도 보정 부근이었을 것이고, 동위 때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한반도의 평양은 낙랑국도 아니었고, 낙랑군도 아니었..

카테고리 없음 2015.03.29

윤여동설 - 고구려 대무신왕의 동부여 침공로 - 최초공개

윤여동설 - 고구려 대무신왕의 동부여 침공로 - 최초공개 [독석구에 있는 옛 장성인데, 중국에서는 명대에 쌓은 장성이라 한다. 그러나 필자는 옛날 고구려 때 북방 유목민족의 침공을 막기 위해 쌓은 장성의 흔적일 가능성이 많다고 생각한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를 보면, 고구려 대무신왕과 동부여 대소왕의 악연에 대한 기록을 남기고 있는데, 그를 보면, 유리왕 28년(A.D.9) 가을8월 동부여 대소왕이 사신을 보내어 왕을 책망하며 동부여를 상국으로 모실 것을 강요하자, 왕의 아들인 무휼(후일의 대무신왕)이 누란(累卵)을 이야기 하다. 유리왕 32년(A.D.13) 겨울11월 동부여가 고구려를 침공하자 무휼(후일의 대무신왕)이 군사를 숨겨 놓았다가 동부여 군사들이 학반령에 이르자 급습하여 전멸시킨다. 대무신왕 3..

카테고리 없음 2015.03.22

윤여동설 - 동부여의 도읍 부여성(夫餘城, 옛 예성)은 지금의 어디였을까? - 최초공개

윤여동설 - 동부여의 도읍 부여성(夫餘城, 옛 예성)은 지금의 어디였을까? - 최초공개                                [동부여의 도읍 부여성(옛 예성)으로 추정되는 원 상도성터]     아직까지 부여(동부여)의 위치를 정확하게 밝힌 사람은 없고, 따라서 그 도읍의 명칭이 무엇이었는지, 그 위치가 어디였는지 역시 확실하게 알지 못한다.  그렇다면 비록 확실하지는 않다하더라도 그 동부여의 도읍 부여성(옛 예성)을 찾아 보는 것도 역사연구에 있어 매우 의미있는 일이라 생각된다.   후한서 부여국(동부여)전을 보면,   “부여국은 현토의 북쪽 1천리에 있다. 남쪽은 고구려, 동쪽은 읍루, 서쪽은 선비와 접하였고, 북쪽에는 약수가 있다. 땅이 2천리인데 본래는 예(濊)의 땅이었다” 라고 ..

카테고리 없음 2015.03.16

윤여동설 - 당나라 안동도호부(安東都護府)의 위치이동 - 최초공개

윤여동설 - 당나라 안동도호부(安東都護府)의 위치이동 - 최초공개     안동도호부에 대한 신당서의 기록을 보면,   “안동상도호부는 총장 원년(A.D.668)에 이적이 고구려를 평정하고 176성을 얻었기 때문에 그 땅을 나누어 도독부9, 주42, 현1백을 만들고, 안동도호부를 평양성에 설치하여 그를 통치하게 하였고, (고구려의) 추장과 거수들을 도독, 자사, 현령으로 임명하였다.[필자주 : 고구려의 평양성은 지금의 하북성 승덕시를 말하는 것이다]  상원3년(A.D.676)에 요동군고성으로 옮겼고,[필자주 : 고대의 요동군은 지금의 북경을 말하는 것이다]  의봉2년(A.D.677)에 또 신성으로 옮겼으며,[장가구시 선화고성, 필자주 : 북경 동북쪽 밀운수고 동북쪽의 신성자진 부근을 말할 수도 있다]  성..

카테고리 없음 2015.0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