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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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설 - 고려시대 인물들의 묘가 한반도에 없는 이유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고려시대 인물들의 묘가 한반도에 없는 이유 - 최초주장 우리 나라 각 가문의 경우, 족보에 기록된 조선시대로부터 그 이후 인물들의 묘는 그 위치가 확실하게 전해지고 있으나, 고려로부터 그 이전에 살았던 선조들의 묘는 한결같이 실전되었거나 확실하지 않다. ☆ 현재 한반도에 있다고 하는 고려시대 인물의 묘는 그 피장자가 확실한 것이 하나도 없고, 대개 실전되었다가 조선중기쯤에 후손들이 찾아냈다고 하는 많은 기록들이 전합니다. 독자 여러분들 각 가문의 족보를 확인해 보시면 필자가 하는 말이 허언이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후손이 절손되었거나 후손이 모두 외국으로 이민 등을 가서 선조의 묘를 오랫동안 관리하지 않을 경우 그 위치를 잃어버리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되고, 또한 집안이 역..

카테고리 없음 2014.05.11

윤여동설 - 한반도의 원래 명칭이 “동국(東國)”이었다고라? - 최초주장

윤여동설 - 한반도의 원래 명칭이 “동국(東國)”이었다고라? - 최초주장 “동국(東國)”이란 동쪽에 있는 나라라는 의미로 중국 사람들이 우리나라를 칭할 때 사용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인용되어 있는 명나라 사람 동월이 지었다는 조선부(朝鮮賦)를 보면, "저 조선은 ........"이라고 하지 않고, “저 동국(東國)은........”이라고 조선을 동국이라 부르고 있는데, 이상하게도 고려 사람들 스스로도 “고려(高麗)”라는 국호가 엄연히 있었건만 “동국(東國)”이라는 명칭을 공공연히 사용했다. 마치 자기 자신들은 중국(中國) 사람이나 서국(西國) 사람인 듯이............... 고려시대 사람인 이규보가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이라는 책을 지었고, 또 동국중보(東國重寶), 동국통보(東國通寶) 등이 ..

카테고리 없음 2014.05.04

윤여동설 - 고구려 초기 조나(藻那)와 주나(朱那)의 추정위치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고구려 초기 조나(藻那)와 주나(朱那)의 추정위치 - 최초주장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6대 태조대왕 20년(A.D.72) 조를 보면, “봄2월 관나부(貫那部 = 灌奴部) 패자(沛者) 달가(達賈)를 보내 조나(藻那)를 쳐서 그 왕을 사로 잡았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 고구려 13대 서천왕의 동생 이름도 달가(達賈)로 나타나는데, 동명이인이다. 같은 책 태조대왕 22년(A.D.74) 조를 보면, “겨울10월 왕이 환나부(桓那部 = 順奴部) 패자(沛者) 설유를 보내 주나(朱那)를 쳐서 그 왕자 을음을 사로 잡아 고추가를 삼았다”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지금 기록 속 조나와 주나의 위치를 아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태조대왕은 평생에 강역을 많이 넓혀 고구려의 기초를 튼튼하게 닦았는데. 특히 북쪽, 동쪽..

카테고리 없음 2014.04.26

윤여동설 - 임유관(臨渝關)의 원래위치 찾기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임유관(臨渝關)의 원래위치 찾기 - 최초주장 수서 고구려전을 보면, 원(고구려 26대 영양왕)이 말갈의 기병 1만여명을 거느리고 “요서(遼西)”를 침공하였으나 영주(營州)총관 위충이 격파하여 쫓아버렸다. 수나라 고조가 이를 듣고 크게 노하여 한왕 량(諒)을 원수로 삼고 수군과 육군을 총동원하여 고구려를 치게 하는 한편 조서를 내려 (고구려 영양왕)의 작위(상개부 의동 삼사 요동군공 고구려왕)를 삭탈하였다. 이때 군량수송이 중단되어 6군의 식량이 떨어지고 또 군사들이 “임유관(臨渝關)”을 지났는데 전염병이 돌아 왕사의 군사가 기세를 떨치지 못하였다. 요수에 도착하자 원(고구려 영양왕)도 두려워하여 사신을 보내어 사죄하고 표문을 올렸는데, “요동 분토의 신 원 운운” 하였다. 고조는 이에 군사를..

카테고리 없음 2014.04.06

윤여동설 - 수 양제 고구려 침공시의 좌12군 우12군 기록의 진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수 양제 고구려 침공시의 좌12군 우12군 기록의 진실 - 최초주장 수 양제 고구려 2차 침공 기록을 보면, 611년 여름 4월 “(수) 양제의 행차가 탁군의 임삭궁에 이르니 사방의 군사들이 모두 탁군(涿郡)으로 모여들었다”고 기록되어 있어 수 양제의 군사출발지가 탁군이었음을 알게 하고, 612년 봄 정월 임오일(초2일)에 수 양제가 내린 조서를 보면, “고구려의 하잘 것 없는 것들이 미욱하고 공손하지 못하여 발해와 갈석사이(勃碣之間 =渤碣之間))에 모여들어 요와 예의 지경(遼獩之境=遼濊之境)을 자주 침범하여 왔다” “거란의 무리들과 합세하여 바다 수비병들을 죽였으며, 말갈의 습속을 본받아 요서(遼西)를 침략하였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탁군, 발해와 갈석, 요, 거란, 요서 등의 지명이 언..

카테고리 없음 2014.03.30

윤여동설 - 거란 숭주(崇州)와 숭산(崇山)은 지금의 천진 계현부근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거란 숭주(崇州)와 숭산(崇山)은 지금의 천진 계현부근 [ “이 땅에 있었네 숭산준령 괴이한 돌 기이한 소나무”라는 의미인데, 바위에 이러한 글을 새긴 이는 지금의 반산이 옛 숭산(崇山)이었음을 알고 있었던가? : 북경 동북쪽 천진시 계현 반산(盤山)] 요사지리지 동경도 崇州 隆安軍刺史 本漢長岑縣地 渤海置州故縣三崇山溈木縁城皆廢 户五百 在京東北一百五十里 統縣崇信縣. 숭주(崇州) 융안군(隆安軍)이 설치되었으며 자사를 두었다. 본래 한나라 장잠현(長岑縣)이며 발해가 주를 설치하였는데, 옛 현은 숭산(崇山), 위수(潙水), 녹성(綠城) 등 셋이었는데 모두 폐지되었다. 호구수는 500이며, 동경에서 동북쪽으로 150리 떨어져 있다. 관할 현은 하나인데 숭신현(崇信縣)이다.

카테고리 없음 2014.03.15

윤여동설 - 주몽의 어머니 유화(柳花)의 고향은 지금의 어디였을까?

윤여동설 - 주몽의 어머니 유화(柳花)의 고향은 지금의 어디였을까?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시조 추모왕(주몽왕) 조를 보면,   “해부루가 죽고 금와가 왕위를 이었다.   (앞서 해부루왕이) 어느 날 태백산 남쪽 우발수(優渤水)에서 한 여자를 만나 물으니 ‘나는 하백의 딸로서 이름은 유화입니다. 동생들을 데리고 놀고 있는데 어떤 남자가 자칭 천제 해모수(의 후손이)라고 하면서 나를 웅심산(熊心山) 아래 압록강(鴨綠江)가에 있는 집안으로 유인하여 동침하고 가버린 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나의 부모는 내가 중매도 없이 남자와 관계한 것을 꾸짖고 우발수로 보내 귀양살이를 하게 하였습니다’ 하였다”라고 기록하고 있어 주몽의 어머니인 유화의 고향이 웅심산아래 압록강변이었음을 알게 하고, 하백(河伯..

카테고리 없음 2014.03.09

윤여동설 - 원래의 대방군(帶方郡)은 북경 동쪽 준화부근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원래의 대방군(帶方郡)은 북경 동쪽 준화부근 - 최초주장 전한서 권28하 지리지 제8하 낙랑군 조를 보면, 낙랑군 25개 현 중에 둔유현(屯有縣)과 대방현(帶方縣)이 있고, ☆전한낙랑군 25개현 : 조선현(朝鮮縣), 남감현(남邯縣), 패수현(浿水縣)), 함자현(含資縣), 점제현(黏蟬縣), 수성현(遂城縣), 증지현(增地縣), 대방현(帶方縣), 사망현(駟望縣), 해명현(海冥縣), 열구현(列口縣), 장잠현(長岑縣), 둔유현(屯有縣), 소명현(昭明縣), 누방현(鏤方縣), 제해현(提奚縣), 혼미현(渾彌縣), 탄열현(呑列縣), 동이현(東暆縣), 불이현(不而縣), 잠태현(蠶台縣), 화려현(華麗縣), 사두매현(邪頭昧縣), 전막현(前莫縣), 부조현(夫租縣) 후한서 지제23 군국5 낙랑군 조에도, 후한낙랑군 ..

카테고리 없음 2014.0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