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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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설 - 환국, 배달국, 고조선(왕검조선)의 중심지 찾기 - 최초주장

윤여동설 - 환국, 배달국, 고조선(왕검조선)의 중심지 찾기 - 최초주장 위 지도를 보면 우리 민족의 중심강역이 지금의 대흥안령 줄기 남쪽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는데, 환국의 중심은 우하량 선사유적지가 있는 능원 부근으로 보이고, 환웅 배달국의 도읍 신시(神市)의 위치는 태백산 신단수 아래라고 하였는데, 내봉골 적봉 부근으로 비정되며, 고조선(왕검조선)의 첫 도읍 아사달의 위치에 대해서는, 규원사화 단군기에, “여러 고을 땅의 길흉을 판단하여 도읍을 태백산 서남쪽(필자주 : 동남쪽의 오기가 아닐까?) 우수하 언덕에 정하고 왕검성이라고 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태백산 부근이 고조선(왕검조선)의 중심강역이었음을 알 수 있고, 또 “우수하 가에 산지 10년 만에 도읍을 백산의 남쪽과 패수의 북쪽으..

카테고리 없음 2013.09.06

윤여동설 - 한반도 경주 토함산 석굴암 천정 뚜껑돌(감개)은 무엇을 형상화 한 것일까? - 최초주장

윤여동설 - 한반도 경주 토함산 석굴암 천정 뚜껑돌(감개)은 무엇을 형상화 한 것일까? - 최초주장 신라 김대성이 전생의 부모를 위해 지었다고 전해지고 있는 경주 석굴암(?). ☆ 김대성은 현생의 부모를 위해 불국사를 지었고, 전생의 부모를 위해 석불사를 지었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 한반도 경주 석굴암 천정을 마감한 뚜껑돌이 세 조각으로 깨어져 있다. 그리하여 어떤 사람은 삼국유사 효선 제9 “대성 효2세부모 신문왕대”의 기록 즉 “장차 석불을 조각하고자 하여 큰 돌 하나를 다듬어 감개를 만드는데, 돌이 갑자기 세 조각으로 갈라졌다. 대성이 애석하게 여기다가 잠깐 졸았는데 밤중에 천신이 내려와 다시 만들어 놓고 돌아갔으므로 대성이 잠에서 깨어 일어나 급히 남쪽 고개로 달려가서 향을 태워 천신을 공양했다...

카테고리 없음 2013.08.23

윤여동설 - 백제 무광왕, 모도왕, 곤지왕자, 동성왕, 무령왕의 관계를 명쾌하게 밝힌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백제 무광왕, 모도왕, 곤지왕자, 동성왕, 무령왕의 관계를 명쾌하게 밝힌다 - 최초주장 [반도백제 무광왕과 왕비의 능으로 추정되는 익산 쌍릉의 위치] [대륙백제] 13대 근초고왕 12대 계왕 ↓ ↓ [반도백제] 14대 근구수왕 시조 무광왕 ..............................I.................... ↓ ↓ ↓ 15대 침류왕 16대 진사왕 ?(실명) ↓ ↓ 17대 아신왕 ?(실명) ↓ ↓ 18대 전지왕 ?(실명) I............................................ ↓ ↓ ↓ 19대 구이신왕 20대 비유왕 모도왕 ...............I................... ↓ ↓ ↓ 21대 개로왕(근개루왕) 22대 문주왕 곤지 ...

카테고리 없음 2013.08.17

윤여동설 - 쌍계사 진감선사비 이수에 새겨진 두전(頭篆)의 첫 글자는 당(唐)" 자가 아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쌍계사 진감선사비 이수에 새겨진 두전(頭篆)의 첫 글자는 "당(唐)" 자가 아니다 - 최초주장 有唐新羅國故知異山雙谿寺 敎諡眞鑑禪師碑銘(유당신라국고지리산쌍계사 교시진감선사비명)을 보면, 『선사의 법휘는 혜소(慧昭)이며 속성은 최씨(崔氏)이다. 그 선조는 한족(漢族)으로서 산동(山東)에 살았는데, 수나라가 군사를 일으켜 요(요동)를 정벌할 때 많은 군사들이 고구려군에게 죽자 항복하여 변방의 백성이 된 사람들이 있었는데, 당나라가 4군(요서군, 우북평군, 어양군, 상곡군을 말하는 듯)을 차지하자 (선사의 선조는) 지금의 전주 금마사람이 되었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진감선사의 선조는 한족이었고, 원래 산동(지금의 산동성) 출신이었으며, 고구려와 당나라 간의 전쟁 중에 항복하여 전주 금마 사람이 되었..

카테고리 없음 2013.08.01

윤여동설 - 의문의 내몽골 적봉시 영성현(寧城縣) 대성터 - 최초공개

윤여동설 - 의문의 내몽골 적봉시 영성현(寧城縣) 대성터 - 최초공개 지금 내몽골 적봉시 영성현에 가면 중국 학자들이 요 중경대정부(遼 中京大定府) 유지(옛터)라고 명명하고 표지석을 세워 놓은 커다란 옛 토성터가 있다. 그리하여 지금 그 표지석을 본 많은 사람들은 그 옛 토성터가 진짜 요 나라 때의 중경대정부 터라고 인식한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거란(요)은 후진의 석경당으로부터 연운 16주를 할양받음으로써 대제국으로 발전하게 되었는데, 그 연운 16주는 산서성 북부지역을 말하는 것으로서 요나라의 중심 강역은 산서성 북부로부터 그 북쪽 내몽골에 이르는 지역이었다. 따라서 지금의 적봉 부근은 요나라의 중심강역이 아닌 것이다. [동진단지리도에는 연운 16주의 위치가 지금의 북경부근으로부터 서쪽으로 태원, 오대..

카테고리 없음 2013.07.26

윤여동설 - 이사지왕(尒斯智王)은 누구인가?

윤여동설 - 이사지왕(尒斯智王)은 누구인가? 경주 금관총에서 출토된 환두대도에서 “尒斯智王(이사지왕)”이라는 명문이 발견되었다. 그런데 학자들은 금관총이 신라 어느 왕의 왕릉이었을 것이라고 말들하고 있지만 신라 56명의 왕 중에 이사지왕이라는 왕은 없었다. 그렇다면 금관총은 신라의 왕릉이 아니라 이사지라는 왕의 능이라는 말이 된다. 필자는 일찍이 한반도 경주에 신라왕릉은 하나도 없다고 주장한 바 있다. 왜냐하면 한반도 경주는 신라의 천년도읍지 서라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경주에 있는 옛 고총들은 과연 누구의 무덤일까? 필자가 보기에 투후 김일제의 후손들이 왕망의 신(新)나라가 멸망한 후 쫓겨 한반도로 도망쳐 와서 다시 세운 흉노족왕조의 왕릉들일 것이고, 이사지는 투후 김일제의 후손 중 이사지왕이라..

카테고리 없음 2013.07.05

윤여동설 - 고지도 기주협우갈석도(冀州夾右碣石圖)가 알려주는 춘추전국시대 연5군의 위치 - 최초공개

윤여동설 - 고지도 기주협우갈석도(冀州夾右碣石圖)가 알려주는 춘추전국시대 연5군의 위치 - 최초공개  [위 기주협우갈석도(冀州夾右碣石圖)에는 어양군, 우북평군, 상곡군의 위치가 잘못 그려져 있다. 왜냐하면 후한서에 어양군은 낙양동북2000리, 우북평군은 낙양동북 2300리, 상곡군은 낙양동북 3200리에 위치했다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후한서 권85 동이열전 제75 고구려 조를 보면,  “건무 25년(A.D.49) 봄 구려가 우북평(右北平) 어양(漁陽) 상곡(上谷) 태원(太原)을 약탈하였는데, 요동태수 제융[祭肜 : 삼국사기에는 蔡彤(채동)으로 되어 있다]이 은의와 신의로 대하니 모두 요새밖으로 철수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이때 구려(고구려)가 후한을 침공하였음을 알 수 있는데, 이때는 고..

카테고리 없음 2013.0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