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대륙삼국 14

윤여동설 – 우리 역사학자들이 상고사와 고대사의 현장을 헷갈리고 있는 이유 – 최초공개

윤여동설 – 우리 역사학자들이 상고사와 고대사의 현장을 헷갈리고 있는 이유 – 최초공개    지금 우리 역사학자들이 역사적 지명의 위치에 대하여 헷갈리고 있는 것 중에, 요수(遼水)와 요동(遼東) 그리고 갈석산(碣石山) 등이 있다.  요수와 요동의 위치를 잘못 비정하게 되면, 그와 관련되어 있는 우리 고대사의 기록들 모두를 잘못 해석하게 되고, 갈석산의 위치를 잘못 비정하게 되면, 고대 진장성(秦長城)의 시작점을 잘못 알게 되는 것 등이다.   그런데 지금 중국 발해(渤海) 동북쪽에 요하(遼河)라는 이름의 강이 있고, 요하의 동쪽을 요동(遼東)이라 하고 있으며, 지금 중국 하북성 진황도시 창려현에 갈석산(碣石山)이라는 이름의 산이 있고, 진황도 산해관에서 만리장성이 시작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

카테고리 없음 2022.09.03

윤여동설 - 거란지리지도(契丹地理之圖)와 추리도(墜理圖) 속 고구려, 백제, 신라 표기의 진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거란지리지도(契丹地理之圖)와 추리도(墜理圖) 속 고구려, 백제, 신라 표기의 진실 - 최초주장 거란지리지도에 표기되어 있는“고려백제신라계(高麗百濟新羅界)"의 진짜 의미     위 거란지리지도를 보고 재야 역사연구자들은 우리의 대륙사를 밝혀줄 왜곡되지 않은 보물같은 지도라고 반색하는 반면 강단사학자들은 말도 안되는 잘못 그려진 엉터리 지도라 폄훼한다.   그런데 진실은 하나 뿐일 것이다.  재야 역사연구자들이 틀렸거나 강단사학자들이 틀렸거나 둘 중의 하나만이 옳다는 말이 되는데, 필자는 고구려, 백제, 신라가 실제 지금의 북경(필자 주 : 북경 부근이 옛 요동이었고, 요나라, 금나라 때의 동경요양부였다) 동쪽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위와 같은 지도가 그려졌고, 그리하여 그곳에 “고려백제신라계..

카테고리 없음 2017.11.23

윤여동설 - 고대의 왜국(倭國)은 지금의 요동반도에 위치했었고, 임나가라(任那加羅, 임나국)는 진황도 부근에 위치했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고대의 왜국(倭國)은 지금의 요동반도에 위치했었고, 임나가라(任那加羅, 임나국)는 진황도 부근에 위치했었다 - 최초주장 고대의 왜국은 지금의 요동반도에 위치하고 있었고, 우리의 삼국 즉 고구려는 지금의 하북성 승덕시 일부, 장가구시 일부, 북경시 일부, 산서성 일부, 내몽골 일부를 차지하고 있었고, 백제는 하북성 당산시, 진황도시, 승덕시 일부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신라는 요녕성 금주시(錦州市), 조양, 부신 일원을 차지하고 있었고, 가야는 요녕성 호로도, 흥성, 수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우리의 고대 역사를 한반도를 중심으로 해석함으로써 임나(임나국)도 한반도 남부에 위치했었다고 해석한다. 이는 우리가 지금 한반도에 살고 있고, 일본이 지금의 일본열도에 위치해 있기 때문..

카테고리 없음 2017.02.04

윤여동설 - 우리는 왜 고대 지명들의 위치를 모두 잃어버린 것일까?

윤여동설 - 우리는 왜 고대 지명들의 위치를 모두 잃어버린 것일까? 한서 권28하 지리지 제8하를 보면, “요동군은 진나라 때 설치했고 유주에 속한다. 55,972호이고, 인구는 272,539명이며, 영현은 18현이다” 라고 기록하고 나서 18개 영현을 나열했는데, 그를 보면 “양평현, 신창현, 무려현, 망평현, 방현, 후성현, 요대현, 요양현, 험독현, 거취현, 고현현, 안시현, 무차현, 평곽현, 서안평현, 문현, 번한현, 답씨현”이다. 그런데 고구려 미천왕은, 재위 12년인 311년에 장수를 보내 요동 서안평을 습격하여 빼앗았고, 재위 14년인 313년에는 낙랑군(후한낙랑군)을 침공하였으며, 재위 15년인 314년에는 대방군을 침공하고, 재위 16년인 315년에는 현토군을 침공한다. 그런데 우리는 지..

카테고리 없음 2014.10.25

윤여동설 - 정감록에서 800년 도읍지로 지목한 계룡산은 한반도 충남 계룡산을 말하는게 아니다

윤여동설 - 정감록에서 800년 도읍지로 지목한 계룡산은 한반도 충남 계룡산을 말하는게 아니다 [위 : 정감록에서 새로운 800년 도읍지로 지목한 대륙 계룡산과 그 남쪽 평원] [위 : 한반도 계룡산 남쪽 신도안. 나라의 도읍이 들어설 만한 평지 공간이 없는 산악지역이다] 정감록은 한민족의 미래를 예언하고 있다는 예언서인데, 한양 도읍기가 지나면 계룡산 남쪽에 새로운 800년 도읍지가 건설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 정감록에는 또 계룡산 800년 도읍기가 지나면 가야산 1,000년, 전주 600년, 그 후 다시 송악이 도읍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리하여 우리는 지금까지 새로운 800년 도읍지는 한반도 계룡산 남쪽에 건설될 것이라고 정감록을 해석했다. 어떤 사람은 신도안이라고도 불리우고 있는 지금의 충남..

카테고리 없음 2010.11.08

윤여동설 - 우리 역사의 정통성은 남한이 이었다

윤여동설 - 우리 역사의 정통성은 남한이 이었다    우리의 옛 역사는 환인시대, 환웅시대를 지나며 홍산문화(요하문명)를 꽃피웠고, 고조선에 이르러 청동기문화를, 다시 한과 위만조선, 부여시대에 이르러 철기문화를 꽃피우게 된다.   부여는 다시 고구려가 되고, 고구려는 한사군 중 임둔군, 낙랑군, 구현토군(낙랑동부도위)과 요동군, 대방군을 흡수함으로써 대제국이 되었다가 나당연합군에게 멸망당하고, 발해가 그 땅을 차지하게 되고, 발해는 다시 요·금·원·청·중국으로 이어지게 된다.    위만조선은 다시 한 무제의 침공을 받아 멸망하고 한사군이 되었다가 고구려에 복속되고,  한은 다시 삼한(마한, 진한, 변한)으로 나누어지게 되고, 마한에서 백제가, 진한에서 신라가, 변한에서 가야가 건국되었다가 통일신라가 되..

카테고리 없음 2009.05.14

윤여동설 - 발해 북쪽 대륙고려와 한반도의 반도조선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발해 북쪽 대륙고려와 한반도의 반도조선 - 최초주장      왕건의 고려는 발해 북쪽 대륙 하북성이 중심이었고, 이성계의 조선은 한반도가 중심이었다.    윤여동설에 의한 환인환국, 환웅단국으로부터 고조선, 삼한, 삼국, 발해, 고려까지 우리 역사의 중심은 한반도가 아니라 발해 북쪽 중국 하북성 난하를 중심으로 한 그 부근이라는 것이다.    환인환국의 중심강역은 하북성과 내몽골 적봉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칠로도산(七老圖山) 부근이고, 환웅단국의 중심강역은 칠로도산 동쪽 노로아호산(努魯兒虎山) 부근이며, 고조선(왕검조선)의 도읍인 왕검성은 지금의 중국 하북성 승덕시 부근으로서 이때 고조선의 최대강역은 서쪽으로는 황하 북부 오르도스 지역까지, 동쪽으로는 요하까지, 남쪽으로는 발해와 황하하류를 ..

카테고리 없음 2008.12.22

윤여동설 - 한반도 역사의 진실찾기 - 최초주장

윤여동설 - 한반도에서는 어떠한  고대역사가 전개되었을까? - 최초주장       필자는 지금까지 고조선으로부터 고려시대까지 우리 역사의 중심은 한반도가 아니라 발해 북쪽 중국 하북성에 있는 난하를 중심으로 한 그 부근 지역이라 하였고, 한반도는 이성계의 조선이 대륙에서 건국된 후 바로 도읍을 한반도의 한양으로 옮김으로서 비로소 우리 역사의 중심지가 되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고려 시대로부터 그 이전 한반도에는 어떠한 역사가 펼쳐졌던 것일까?   한반도에도 구석기 유물로부터 신석기, 청동기, 철기시대의 유물들이 출토되고 있고, 소량이지만 삼국시대, 고려시대의 유물들도 출토되고 있다.   다만 구석기 시대에 대해서는 너무도 오랜 옛날의 일이라 언급하지 않겠고, 고조선시대쯤부터는 많은 수는 아니라 하더라도 ..

카테고리 없음 2008.10.24

역사논쟁 - 신라가 양자강 부근에서 건국되었다는 주장은 순 엉터리 거짓말

박창범은 신라가 양자강 부근에서 건국되었다고 말한 것이 아니다 박창범은 이 시대 최고로 멋진 책이름인 "하늘에 새긴 우리역사(김영사)"의 저자이다. 그는 천문학자로서 삼국사기 등에 나타나는 삼국의 일식 기록을 가장 잘 관측할 수 있는 곳 즉 일식최적관측지가 어디인가를 처음으로 밝힌 사람이다. 저자는 처음에는 고조선시대의 천문현상을 분석하여 고조선의 위치를 찾아보려 하다가 그것이 기록의 부정확성으로 여의치 않자 컴퓨터 프로그램의 정확성을 확인해 보고자 하는 차원에서 삼국사기 속의 일식기록 관측지가 정말로 한반도로 나타나는지를 확인해 보려고 했다고 한다. 물론 이때 박창범은 고구려, 신라, 백제 삼국이 한반도에 위치했던 것이 역사적 사실이라 생각하고 당연히 삼국사기 일식기록의 최적관측지가 한반도로 나타날 것..

카테고리 없음 2008.10.20

윤여동설 - 삼한(三韓)은 지금의 북경 동쪽에 위치했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삼한(三韓)은 지금의 북경 동쪽에 위치했었다 - 최초주장 삼한은 마한, 진한, 변한(변진)을 말하는 것으로서 지금 우리는 삼한이 사방 1천리쯤이 되는 한반도 남부를 나누어 서울, 경기, 충청, 전라도가 마한이었다고 하고, 경북일원을 진한이었다고 하며, 경남 일원이 변한이었다고 인식한다. 그런데 삼국지 한(韓)전을 보면, "조선후 준이 왕을 참칭하다가 연나라에서 망명한 위만의 공격을 받아 나라를 빼앗기고, 그의 좌우 근신과 궁인들을 이끌고 도망하여 바다를 건너 한의 땅에 살면서 스스로 한왕이라 했다. 그의 후손은 끊어졌으나 지금 한인 중에는 아직 그의 제사를 지내는 사람이 있다. 한나라 때는 낙랑군에 소속되어 철마다 조알하였다" 라고 기록되어 있어 기원전 194년 준왕이 위만의 침공을 받고, ..

카테고리 없음 2008.06.19

윤여동설 - 삼국유사는 한반도에 관한 기록이 아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삼국유사는 한반도에 관한 기록이 아니다 - 최초주장 우리나라 사람 중에 일연의 삼국유사를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내용이 한반도에서 일어났던 일들의 기록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듯 하다. 삼국유사가 쓰여진 시기가 정확히 언제인지는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지만 저자인 일연이 죽은 때가 84세 때인 1289년이었으므로 그 이전 언젠가 삼국유사를 집필했을 것이다. 김부식의 삼국사기가 삼국이전의 우리 상고사에 대하여 다루지 않고, 오직 삼국시대 만을 다룬데 비해 일연의 삼국유사는 고조선, 왕검조선을 시작으로, 부여, 삼한, 한사군, 삼국과 가야, 후백제와 발해까지를 언급하고 있고, 불교에 관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어 훨씬 다양한 해석을 할 수 있게 한다. 그런데..

카테고리 없음 2008.06.05

윤여동설 - 삼국시대에는 과연 어떤 언어를 사용했을까?- 최초주장

윤여동설 - 삼국시대에는 과연 어떤 언어를 사용했을까? - 최초주장 우리는 지금 막연하게 옛날에 고구려는 주로 평안도 말을 사용했을 것이고, 백제는 서울· 경기·충청·전라도 말을 사용했을 것이며, 신라는 경상도 말을 사용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어느 영화에서는 백제의 계백장군은 전라도 말을 하고, 신라의 김유신장군은 경상도 말을 하는 것으로 각본을 만들어 사람들을 웃기기도 했는데, 삼국이 한반도에 존속했던 것이 역사적 사실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설정이었다. 그러나 삼국의 건국지가 한반도가 아닌 지금의 중국 북경 부근이었다면 그 멀리 떨어진 곳과 한반도의 언어가 동일했다고 보기는 어려우므로 당시 삼국 사람들이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한국어와 동일한 언어를 사용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해..

카테고리 없음 2008.02.25

윤여동설 - 삼국유사는 일연 개인의 저작물이 아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삼국유사는 일연 개인의 저작물이 아니다 - 최초주장 삼국유사는 왕명에 의해 만들어진 삼국사기와는 달리 한 승려가 전국에 흩어져 전해지고 있던 비전의 이야기들을 모아 만든 책이라 전해지고 있다. 삼국유사는 우리 상고사로부터 후백제까지의 역사를 먼저 언급하고 그 다음에 불교의 역사를 알 수 있도록 기록되어 있어 우리 고대역사와 불교의 역사를 동시에 알 수 있게 하는데, 그 내용이 정사인 삼국사기와는 달리 역사의 전면보다는 잘 보이지 않는 역사 뒷면의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어 우리 역사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데 필자는 이 책을 만든 목적이 일반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실은 사찰의 승려들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고, 또 일연 개인이 아닌 종단차원에서 삼국유사를 만들었..

카테고리 없음 2007.12.07

윤여동설 -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난하 부근 대륙삼국의 역사서이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난하 부근 대륙삼국의 역사서이다 - 최초주장 세상이 또 한번의 새 시대를 맞이하기 위해 용틀임을 하고 있는 이때 우리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들도 새 시대를 맞이하기 위한 준비를 해야 할 때다. 우리는 지금 조선시대 사람들처럼 한반도만이 우리 역사의 전부라고 인식하며 웅크리고 살 것인지, 우리 선조들이 내몽골 부근까지를 차지하고 주변 세력들과 끊임없이 다투고 경쟁하며 역사를 이어온 민족이었다고 자부하며 활개펴고 살 것인지 선택해야할 기로에 서 있다. 그런데 우리 역사를 논하려면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제외하고는 단 한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우리가 잘 알고 있다시피 삼국사기는 김부식을 비롯한 고려의 학자들이 인종의 명을 받아 1145년에 편찬한 신라· 고구려· 백제 ..

카테고리 없음 2007.1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