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만리장성 12

윤여동설 - 태강지리지는 왜 갈석산(碣石山)에서 장성(長城)이 시작되었다고 기록했던 것일까? - 최초주장

윤여동설 - 태강지리지는 왜 갈석산(碣石山)에서 장성(長城)이 시작되었다고 기록했던 것일까? - 최초주장    춘추전국시대 진장성(秦長城)은 농서(隴西)에서부터 북지(北地)를 지나 상군(上郡)까지였다고 하고,  ☆ 농서는 감숙성 난주부근, 북지는 영하회족자치구, 상군은 섬서성 북부지역을 말하는 것이다.     춘추전국시대 조장성(趙長城)은 대(代)에서부터 고궐(高闕)까지 쌓고 운중(雲中), 안문(雁門), 대군(代郡)을 설치했다고 하였으며, ☆ 지금 산서성 태원 북쪽에 운중산이 있고, 안문관이 있으며, 대현도 있다. 조장성을 지금의 태원 북쪽에 쌓았음을 알 수 있다.    춘추전국시대 연장성(燕長城)은 조양(造陽)에서 양평(襄平)까지 쌓고, 5군 즉 요동군, 요서군, 상곡군, 어양군, 우북평군을 설치했다고..

카테고리 없음 2015.01.24

윤여동설 - 춘추전국시대에 쌓았던 진장성(秦長城), 연장성(燕長城), 조장성(趙長城)을 찾았다

윤여동설 - 춘추전국시대에 쌓았던 진장성(秦長城), 연장성(燕長城), 조장성(趙長城)을 찾았다 사기 흉노전을 보면, “진(秦)나라가 농서(隴西), 북지(北地), 상군(上郡)을 차지하고 장성을 쌓아 호(胡)를 막았다”고 하였고, : 이것이 춘추전국시대 진장성이다. ☆ 농서는 농산(隴山)의 서쪽지역으로서 지금의 감숙성 난주 부근을 말하고, 북지는 영하회족자치구, 상군은 섬서성의 북쪽 유림시 부근을 말한다. “조 무령왕(B.C.325-299)이 또한 풍속을 바꾸어 호의 복장을 하고 말타기와 활쏘기를 익혀 북쪽으로 임호, 누번을 격파하고 장성을 쌓아 대(代)에서부터 음산(陰山)기슭을 따라 고궐(高闕)에 이르기까지 새(塞)를 만들고 운중(雲中), 안문(雁門), 대군(代郡)을 설치하였다"고 하였으며, : 이것이 춘..

카테고리 없음 2013.03.16

윤여동설 - 신라 김씨왕들은 정말 흉노족 김일제의 후예들일까?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신라 김씨왕들은 정말 흉노족 김일제의 후예들일까? - 최초주장      삼국사기 신라본기 탈해이사금 9년(A.D.65) 조를 보면,   "봄3월 밤에 금성 서쪽 시림 숲 속에서 닭 우는 소리가 들리자 왕이 날이 새자마자 호공을 보내어 둘러보게 하였더니, 호공이 돌아와 나무 가지에 조그마한 금괴가 걸려 있고 하얀 닭이 그 아래에서 울고 있었다고 보고하였다.   왕이 사람을 시켜 그 궤를 가져와 열었더니 그 속에 어린 사내아이가 들어 있었는데, 용모가 기이하고 위품이 있었다.   왕이 기뻐하며 좌우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이것이 어찌 하늘이 나에게 자식을 주시는 것이 아니겠는가?'하고는 거두어 길렀다.   그가 자라니 총명하고 지략이 많았으므로 이름을 알지(閼智)라 하고, 금궤에서 나왔으므로 성을..

카테고리 없음 2009.04.23

윤여동설 - 전한낙랑군 - 낙랑국 - 후한낙랑군의 위치 - 최초공개

윤여동설 - 낙랑의 위치를 찾아라 - 최초공개 윤여동설 - 전한낙랑군 - 낙랑국 - 후한낙랑군의 위치 싫든 좋든 우리 고대 역사와 “낙랑(樂浪)”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왜냐하면 옛날 고조선 · 위만조선의 도읍이 왕검성(왕험성이라고도 한다)이었고, 한사군 때 전한낙랑군의 치소가 왕검성이었으며, 또 고구려의 평양성과 고려의 서경 역시 같은 장소였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왕검성 즉 낙랑군의 치소를 정확히 찾는다면 우리 고대 역사를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낙랑(樂浪)" 이란 말이 원래 어디에서 유래하였는지 확실히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즐거울락(樂)”과 “물결랑(浪)” 자로 이루어진 것을 보면 경치가 좋은 내륙의 큰 강 또는 호수주변이나 큰 바다를 끼고 있는 ..

카테고리 없음 2009.04.03

윤여동설 - 임나일본부가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고라?

윤여동설 - 임나일본부가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고라? 우리나라 사람 중 대부분은 가야가 경남 김해 부근에 위치했다고 인식하고, "임나" 하면 "임나가라(임나국)"와 "임나일본부"를 떠올리게 될 것이다. 임나일본부에 대하여 일본학자들은 고대의 왜국이 한반도 남쪽 가야지역으로 진출하여 그곳에 임나일본부라는 것을 설치하고 한반도 남부를 일정기간 통치했다고 주장하고, 우리 학자들은 말도 되지 않는 주장이라고 일축하고 있다. 삼국유사 기이 제1 오가야 조를 보면, 아라가야, 고령가야, 대가야, 성산가야, 소가야를 5가야로 기록하고 있는데, 수로왕의 금관가야까지 합하면 6가야가 된다. 그리고 일연이 살았던 고려시대의 본조사략이라는 사서에는 "태조 천복 5년(A.D.940) 경자년에 5가야의 이름을 고쳤다. 첫째는 ..

카테고리 없음 2009.03.30

윤여동설 - 익산 미륵사지는 선화공주가 지은 절이 아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익산 미륵사지는 선화공주가 지은 절이 아니다 - 최초주장 (백제) 제30대 무왕(武王)의 이름은 장이다. 그 어머니가 과부가 되어 서울 남쪽 못 가에 집을 짓고 살았는데 못 속의 용과 관계하여 장을 낳았던 것이다. 어릴 때 이름은 서동(薯童)으로 재주와 도량이 커서 헤아리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항상 마를 캐다가 파는 것으로 생업을 삼았으므로 사람들이 서동이라고 불렀다. 신라 진평왕의 셋째공주 선화(善花 혹은 善化)가 매우 아름답다는 말을 듣고는 머리를 깎고 서울로 가서 마을 아이들에게 마를 먹이니 이내 아이들이 친해져 그를 따르게 되었다. 이에 동요를 지어 아이들로 하여금 부르게 하였다. 善花公主主隱 他密只稼良置古 薯童房乙 夜矣卯乙抱遣去如 (선화공주님은 남모르게 애인 만들어 놓고, 서동의 방..

카테고리 없음 2009.03.17

윤여동설 - 포상8국은 어디에 위치했었을까? - 최초공개

윤여동설 - 포상8국은 어디에 위치했었을까? - 최초공개 "포상8국(浦上八國)"이라는 기록은 삼국사기 신라본기 10대 나해이사금 14년(A.D.209)년 조에, "가을 7월에 포상8국이 공모하여 가라(加羅)를 침범하자 가라왕자가 구원해 주기를 요청해 왔다. 왕이 태자 우로와 이벌찬 이음으로 하여금 6부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구원해 주도록 하였는데, 8국 장군들을 격살하고 포로 6천여 명을 잡아 돌아왔다"라고 하면서 나타나는데, 삼국사기 열전 물계자전에는, 신라 10대 나해이사금 때 "8포상국이 공모하여 아라국(阿羅國: 아라가야)을 치니 아라에서 사신을 보내 구원해 주기를 요청해 왔다. 이사금이 왕의 손자 나음을 시켜 부근의 군과 6부의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구원해 주도록 하였는데, 곧 8국의 병사들이 패..

카테고리 없음 2009.03.09

윤여동설 - 신라와 낙랑 그 의문의 접촉기록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신라와 낙랑 그 의문의 접촉기록들 - 최초주장 낙랑은 신라 시조 혁거세거서간 30년(B.C.28)부터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나타나기 시작한다. 기록을 보면, "낙랑 사람들이 군사를 이끌고 와서 침입했는데, 변방 백성들이 밤에 대문을 잠그지 않고 노적가리가 들에 있는 것을 보고 서로가 말하기를 '이 지방의 백성들이 서로 도둑질하지 않으니 가히 도덕이 있는 나라라 할 수 있다. 우리가 몰래 군사로서 습격한다는 것은 도둑이나 다름없다. 부끄럽지 않은가? 하고는 군사를 이끌고 돌아갔다."라는 이상한 기록인데, 삼국유사 낙랑국 조에는 "국사(國史)에는 이런 말이 있다. '혁거세 30년에 낙랑 사람들이 신라에 항복했다' 라고 기록하고 있어 동일한 시기에 대한 신라와 낙랑과의 관계를 전혀 다르게 기록하고 ..

카테고리 없음 2009.02.15

윤여동설 -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은 어디에 장성을 쌓았을까? - 최초주장

윤여동설 - 한반도에서는 찾을 수 없는 장성(長城)의 흔적 - 최초주장 삼국사기를 보면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이 장성(長城)을 쌓았다는 기록이 있으나 실제 한반도에서 장성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고, 후대인 고려시대에 천리장성을 쌓았다는 기록이 있으나 그 역시 한반도에서는 찾을 수 없다. 고려가 서기 1033년에 천리장성을 쌓았다는 기록을 보면, "서해 바닷가의 옛 국내성과 압록강이 바다로 들어가는 곳의 중간지역으로부터 시작하여 동쪽으로 위원(威遠), 흥화(興化), 정주(靜州), 영해(寧海), 영덕(寧德), 영삭(寧朔), 운주(雲州), 안수(安水), 청새(淸塞), 평로(平虜), 영원(盈遠), 정융(定戎), 맹주(孟州), 삭주(朔州) 등 13주를 거치고 요덕(耀德), 정변(靜邊), 화주(和州) 등 3성에 ..

카테고리 없음 2008.03.03

윤여동설 - 한반도 대구는 신라의 달구벌(達句伐) 아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한반도 대구는 신라의 달구벌(達句伐)이 아니다 - 최초주장 신라 31대 신문왕은 삼국 통일의 위업을 달성하고 죽은 문무왕의 장자였다. 따라서 그는 그 아버지 문무왕으로부터 신라본토와 옛 백제 땅 그리고 고구려 남쪽 땅 일부를 물려받아 그 땅을 아홉 주로 나눈다. 넓어진 강역을 효율적으로 통치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리하여 원래의 신라지역을 나누어 상주·양주·강주라하고, 옛 백제지역을 나누어 웅주·전주·무주라 하며, 옛 고구려 남쪽지역을 나누어 한주·삭주·명주라 한다. 신당서에는 이때 신라의 강역이 횡으로 1천리, 종으로 3천리였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한반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북성 당산, 진황도, 요녕성 수중, 호로도, 내몽골 고륜기 부근까지를 말하는 것이다. ☆ 북사 신라전에는 ..

카테고리 없음 2007.10.23

윤여동설 - 신라의 서라벌(徐羅伐)은 지금의 요녕성 금주시(錦州市)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신라의 서라벌(徐羅伐)은 지금의 요녕성 금주시(錦州市) - 최초주장   [금주고탑 부근의 금주시 옛사진(1932) : 이때까지만 해도 성벽이 존재했었는데, 지금은 그 흔적을 찾기 힘들다]                                                                  북사 신라전을 보면,  "신라는 그 선조가 본래 진한의 종족이다. 땅이 고구려의 동남쪽에 있는데, 한나라 때의 낙랑 땅(필자주 : 이는 후대 신라가 낙랑 땅의 일부를 차지했기 때문에 이러한 기록이 남겨지게 되었다)이다. 진한을 진한(秦韓)이라고도 하는데,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진(秦)나라 때 사람들이 고역을 피해 그곳으로 오자 마한이 그 동쪽 경계를 분할하여 주어 그들을 살게 했는데, 그들이 ..

카테고리 없음 2007.10.18

윤여동설 - 고구려가 우북평, 어양, 상곡, 태원까지 진출한 기록의 진실은?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고구려가 우북평·어양·상곡·태원까지 진출했다는 기록은 역사적 사실일까? - 최초주장    [위 : 요동 표시가 된 곳이 지금의 북경이다. 고대의 요동은 지금의 북경 일원이었고, 고구려와 백제는 요동 동쪽 1천여리에 위치하고 있었다고 여러 사서들에 기록되어 있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모본왕 2년(A.D.49) 조를 보면,  "봄에 장수를 보내 한나라(후한)의 북평(우북평의 오기), 어양, 상곡, 태원 등지를 습격했더니 요동태수 채동이 은의로서 대하므로 다시 화친했다" 라고 기록되어 있어 그 기록의 사실여부를 놓고 논쟁이 시작되었다.   이때 고구려의 도읍 국내성이 지금의 한반도 압록강 북쪽 집안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때 고구려가 지금의 요하 동쪽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어떻게 그 멀리 북경..

카테고리 없음 2007.1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