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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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설 - 우리 역사의 정통성은 남한이 이었다

윤여동설 - 우리 역사의 정통성은 남한이 이었다 우리의 옛 역사는 환인시대, 환웅시대를 지나며 홍산문화(요하문명)를 꽃피웠고, 고조선에 이르러 청동기문화를, 다시 한과 위만조선, 부여시대에 이르러 철기문화를 꽃피우게 된다. 부여는 다시 고구려가 되고, 고구려는 한사군 중 임둔군, 낙랑군, 구현토군(낙랑동부도위)과 요동군, 대방군을 흡수함으로써 대제국이 되었다가 나당연합군에게 멸망당하고, 발해가 그 땅을 차지하게 되고, 발해는 다시 요·금·원·청·중국으로 이어지게 된다. 위만조선은 다시 한 무제의 침공을 받아 멸망하고 한사군이 되었다가 고구려에 복속되고, 한은 다시 삼한(마한, 진한, 변한)으로 나누어지게 되고, 마한에서 백제가, 진한에서 신라가, 변한에서 가야가 건국되었다가 통일신라가 되고, 통일신라가 ..

카테고리 없음 2009.05.14

윤여동설 - 발해 5경의 위치 - 최초공개

윤여동설 - 발해 5경의 위치 - 최초공개 [발해 5경을 위 지도와 같이 비정했을 경우 사서의 기록과 정확히 일치한다] 신당서 북적 발해전(新唐書 北狄 渤海傳)에는, "(발해의) 국토는 5경 15부 62주이다. 숙신의 옛 땅으로 상경(上京)을 삼으니, 용천부(龍泉府)이며, 용주(龍州), 호주(湖州), 발주(渤州)의 3개주를 다스린다. 그 남부를 중경(中京)으로 삼으니, 현덕부(顯德府)이며, 노주(盧州), 현주(顯州), 철주(鐵州), 탕주(湯州), 영주(榮州), 흥주(興州)의 6개주를 다스린다. [필자주 : 신당서 발해전을 보면 중경에서 상경까지 300리 떨어졌다고 했다] 예, 맥의 옛 땅으로 동경(東京)을 삼으니, 용원부(龍原府)인데, 책성부라고도 한다. 경주(慶州), 염주(鹽州), 목주(穆州), 하주(..

카테고리 없음 2009.05.10

윤여동설 - 발해의 건국지 동모산(東牟山) 위치 찾기 - 최초공개

윤여동설 - 발해의 건국지 동모산(東牟山) 위치 찾기 - 최초공개   [발해 중경현덕부 추정지 : 내몽골 파림우기]   구당서 발해말갈 전에,  “조영은 마침내 그 무리를 거느리고 동쪽으로 가서 읍루(필자주 : 원문은 계루로 되어 있으나 오기이므로 필자가 고쳤다)의 옛 땅을 차지하고 동모산(東牟山)에 웅거하여 성을 쌓고 살았다.  조영이 굳세고 용맹스러우며, 용병을 잘하자 말갈의 무리 및 고구려의 남은 무리가 점점 모여들었다.  성력(A.D.698~699) 중에 스스로 진국왕(振國王)에 올라 돌궐에 사신을 보내 통교하였다.  그 땅은 영주(營州) 동쪽 2천리에 있으며, 남쪽은 신라와 접했다.“ 라고 기록하고 있고,  신당서 발해 전에는,    “발해(渤海)는 본래 속말말갈(粟末靺鞨)로서 고(구)려에 부속..

카테고리 없음 2009.05.08

윤여동설 - 발해국의 중심강역은 연해주가 아니라 대흥안령산맥이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발해국의 중심강역은 연해주가 아니라 대흥안령산맥이었다 - 최초주장 삼국유사 말갈 발해(발해국) 조를 보면, 통전(通典)에 이르기를, "발해(발해국)는 본래 속말말갈이다. 그 추장 조영(祚榮)에 이르러서 나라를 세우고 국호를 스스로 진단(震旦)이라고 했다. 선천 연간(현종의 임자년:712)에 비로소 말갈(靺鞨)이라는 명칭을 버리고 오로지 발해(渤海)라고 일컬었다. 개원 7년(己未:719)에 조영이 죽자, 그 시호를 고왕(高王)이라 했다. 세자가 대를 이어 왕위에 오르자 명황은 그를 책봉하여 왕위를 잇게 했다. 사사로이 연호를 고치고 드디어 해동(海東)의 큰 나라가 되었다. 그 땅에는 5경(五京), 15부(十五府), 62주(六十二州)가 있었다. 후당 천성 초년에 거란(契丹)이 이곳을 쳐서 깨뜨렸..

카테고리 없음 2009.05.03

윤여동설 - 신라 김알지는 태조 성한왕(星漢王)이 아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신라 김알지는 태조 성한왕(星漢王)이 아니다 - 최초주장 전한 무제의 흉노정벌시 포로로 잡혀온 흉노 휴도왕의 태자 일제(당시 14세)는 한 무제에게 신임을 받게되어 소호금천씨의 성씨인 김씨성을 하사 받게 되고, 투후라는 벼슬을 받게되어 한나라의 귀족사회에 편입된다. 그리고 투후라는 벼슬은 세습되어 그 아들 상(賞)으로, 그 손자 상(尙)으로, 다시 그 증손자 국(國)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런데 국에게 아들이 없자 김일제의 둘째 아들인 건의 손자 당에게 투후벼슬이 세습되고, 다시 당의 아들 성(星)으로 세습되었다고 전한다. ☆ 투후 김일제(金日 ) → 투후 김상(金賞) → 투후 김상(金尙) → 투후 김국(金國)[절손] → 김건(金建) → ?(실명) → 투후 김당(金當) → 투후 김성(金星) 김..

카테고리 없음 2009.04.25

윤여동설 - 신라 김씨왕들은 정말 흉노족 김일제의 후예들일까?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신라 김씨왕들은 정말 흉노족 김일제의 후예들일까? - 최초주장 삼국사기 신라본기 탈해이사금 9년(A.D.65) 조를 보면, "봄3월 밤에 금성 서쪽 시림 숲 속에서 닭 우는 소리가 들리자 왕이 날이 새자마자 호공을 보내어 둘러보게 하였더니, 호공이 돌아와 나무 가지에 조그마한 금괴가 걸려 있고 하얀 닭이 그 아래에서 울고 있었다고 보고하였다. 왕이 사람을 시켜 그 궤를 가져와 열었더니 그 속에 어린 사내아이가 들어 있었는데, 용모가 기이하고 위품이 있었다. 왕이 기뻐하며 좌우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이것이 어찌 하늘이 나에게 자식을 주시는 것이 아니겠는가?'하고는 거두어 길렀다. 그가 자라니 총명하고 지략이 많았으므로 이름을 알지(閼智)라 하고, 금궤에서 나왔으므로 성을 김(金)씨로 하였다."..

카테고리 없음 2009.04.23

윤여동설 - 낙랑군과 낙랑국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낙랑군과 낙랑국 - 최초주장 대무신왕은 고구려의 3대왕으로서 2대 유리왕의 셋째 아들이었다. 유리왕의 장자 즉 다물후 송양의 큰딸이 유리왕과 혼인하여 낳은 아들 도절은 일찍 죽었고, 유리왕의 계비 화희가 낳은 둘째아들 해명은 유리왕이 졸본에서 국내로 도읍을 옮기려 할 때 그를 반대하다가 유리왕으로부터 스스로 자결하라는 명을 받고 죽었다. 그리하여 유리왕이 다물후 송양의 작은 딸을 다시 왕비로 맞아들여 낳은 아들이 바로 대무신왕 무휼이었다. 무휼(대무신왕)은 자라 15세의 나이에 왕위에 올라 모본호족의 딸을 왕비로 맞아들였고, 또 갈사왕의 손녀를 둘째 왕비로 맞아들여 아들을 낳았는데, 이가 바로 호동왕자였다. 이때까지도 원비였던 모본호족의 딸은 아들을 낳지 못했다가 나중에야 아들을 낳게된다. ..

카테고리 없음 2009.04.21

윤여동설 - 혁거세거서간 탄생설화와 신라건국 - 최초주장

윤여동설 - 혁거세거서간 탄생설화와 신라건국 - 최초주장 지금까지도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는 것이 신라 시조 혁거세거서간의 혈통이다. 아니 앞으로도 영원히 밝혀지지 않을 지도 모른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에는, "고허촌장 소벌공이 양산 기슭을 바라보니 나정 우물 옆 숲 가운데에 말이 꿇어앉아 울고 있었다. 즉시 가서 보니 갑자기 말은 보이지 않고 다만 큰 알이 있었다. 이를 쪼개니 그 속에서 어린 아이가 나오므로 이를 거두어 길렀다. 그의 나이 10여세가 되니 매우 숙성하여 6부 사람들이 그의 출생이 신기하고 이상하므로 떠받들어 높이더니 이 때에 이르러 그를 세워 임금을 삼았다" 라고 기록하고 있어 혁거세거서간의 출생에 대해 신화적으로 기록하고 있고, 삼국유사 신라시조 혁거세왕 조에는, "전한 지절 원년..

카테고리 없음 2009.04.19

윤여동설 - 국궁 쏘는 법이 잘못 전해졌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국궁 쏘는 법이 잘못 전해졌다 - 최초주장             태초에 인간은 돌을 던지거나 몽둥이로 짐승을 때려잡았을 것이고, 올가미로 잡거나 함정에 빠뜨려 잡았을 것이며 또는 긴 나무를 뾰족하게 깎아 찔러 짐승들을 사냥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빠른 짐승이나 높은 나무 위에 앉아 있는 새를 사냥하기 위해 활을 만들게 되었을 것이고, 이윽고 전쟁에도 활용하기에 이르렀을 것이다.  진서 숙신씨 전을 보면, 석자 다섯치의 단궁(檀弓)과 화살촉을 돌로 만든 호시가 있었다고 하고, 주 무왕 때 숙신씨가 호시와 석노를 바쳤다고 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단궁은 이미 아주 오래 전에 만들어져 사용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후한서 읍루전을 보면 읍루 사람들이 활을 아주 잘 쏘아서 사람..

카테고리 없음 2009.0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