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전체 글 1063

윤여동설 - 왕위찬탈로 얼룩진 백제 역사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왕위찬탈로 얼룩진 백제 역사 - 최초주장    백제 초기역사를 세밀히 들여다보면 백제가 왕위찬탈이 참 많았던 나라였고, 자손이 귀하여 간신간신히 왕위를 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필자주 : 아래에 백제 전기의 왕위계승도가 그려져 있으니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백제의 건국시조 온조왕의 출생 시기는 그 어머니인 소서노의 나이를 따져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삼국사기 백제본기 온조왕 13년(B.C.6) 2월 조에, "왕의 어머니가 죽으니 나이가 61세였다"라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소서노의 출생년도가 기원전 66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소서노가 18세쯤에 장자인 비류를 낳았다면 비류는 기원전 49년 생이 되고, 소서노가 20세쯤에 둘째인 온조를 낳았다면 온조는 기원전 47년 생이 된다...

카테고리 없음 2009.02.11

윤여동설 - 고대 동이와 중국과의 국경은 태행산맥 부근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고대 동이와 중국과의 국경은 태행산맥 - 최초주장 맹자 초상화 지금 중국이 자신들의 조상이라고 주장하는 황제헌원과 동이 환웅국(필자주 : 구려국이라고도 하고, 고구려라는 국호가 바로 이 구려에서 나왔을 것이라고도 한다)의 제왕이었다는 치우천왕이 서로 그 땅을 차지하기 위하여 국운을 걸고 무려 10년 간이나 전투를 했다는 곳은 탁록인데, 지금의 북경 서남쪽 탁주시 부근을 말한다. 이때 두 민족이 탁록에서 국운을 걸고 다투었다는 것은 그곳이 두 나라의 국경지역이었고, 상호 공수의 요충지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지금 요하 동쪽만이 우리의 옛 강역이었을 것으로 인식하고 있고, 순임금이나 우임금은 당연히 중국의 제왕이었을 뿐 우리와는 아무 상관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

카테고리 없음 2009.02.09

윤여동설 - 천부경은 숫자생성의 원리를 설명한 것

윤여동설 - 천부경은 숫자생성의 원리를 설명한 것 中本衍運三三一盡一 天 天本萬三大天三本始 符 地心往四三二一天無 經 一本萬成合三積一始 一太來環六地十一一 終陽用五生二鉅地析 無昻變七七三無一三 終明不一八人궤二極 一人動妙九二化人無 ※위에서 아래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으십시오 현재 우리에게 전해진 천부경은 신라말 고운 최치원이 옛 신지의 전문(篆文)을 옛 비석에서 보고 이를 한문으로 번역하고 첩(帖)으로 만들어 세상에 전했다는 것인데, 이 천부경에 대한 해석이 사람마다 달라 우리는 지금 어느 것이 정확한 해석인지 알 수가 없다. 최고운이 원문과 함께 해석도 같이 전하였더라면 지금과 같은 사태는 오지 않았을 것인데, 오직 천부경 81자 만을 전하였으니 그의 공은 크지만 아쉬움이 전혀 없다고 할 수도 없다. 그러나..

카테고리 없음 2009.02.04

윤여동설 - 선덕여왕은 왕이 아니라 최초의 여황제였다

윤여동설 - 선덕여왕은 왕이 아니라 최초의 여황제였다 여자로서 우리 역사상 최초로 왕위에 오른 신라 27대 선덕여왕. 우리는 지금 그녀를 별 생각없이 "선덕여왕"이라고 부르고 있지만 사실 선덕여왕은 "왕(王)"이 아니라 "황제(皇帝)"였다. 신라의 왕호는 거서간, 차차웅, 이사금, 마립간으로 불러오..

카테고리 없음 2009.02.01

윤여동설 - 호동왕자와 낙랑공주

윤여동설 - 호동왕자와 낙랑공주 고구려 대무신왕에게는 호동이라는 아주 잘 생긴 왕자가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호동왕자와 낙랑공주와의 이루지 못한 사랑 이야기가 전설이 되어 전해지고 있어 우리는 그들의 이루지 못한 사랑을 지금까지 매우 안타까워한다. 그러나 어쩌면 그들의 사랑은 애초부터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었는지도 모른다. 앞서 전한 왕실의 외척이었던 왕망은 서기 9년 1월 10일에 이르러 쇠약해진 전한(前漢)을 없애버리고 새로운 나라인 신(新)나라를 건국하고 황제에 오르는데, 이 혼란기를 틈타 낙랑군태수(조선사람이 그 땅을 되찾아 나라를 세우고 왕위에 올랐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였던 최리는 한 무제가 위만조선을 멸망시키고 설치했던 한사군의 한 군이었던 전한낙랑군 땅과 낙랑동부도위 땅을 ..

카테고리 없음 2009.01.29

윤여동설 - 백제 왕후들의 성씨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백제 왕후들의 성씨 - 최초주장 [익산 미륵사지 서탑 출토 사리봉안기 : 백제왕후가 좌평 사탁적덕의 딸이라는 명문이 있다] 백제왕들의 성씨가 "부여(扶餘)"씨라는 것은 기록으로 전해지고 있어 우리는 지금 그를 알고 있지만, 그 백제왕들이 과연 어느 성씨의 여인들을 왕후로 맞아들였는지는 거의 전해지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전북 익산 미륵사지서탑 해체과정에서 출토된 사리봉안기에 "我百濟王后佐平沙乇積德女(우리 백제왕후께서는 좌평 사탁적덕의 따님)"이라고 기록되어 있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오늘에 이르러 백제(반도백제)왕후 중 한 사람의 성씨를 정확히 알 수 있게 되었다. 삼국사기에서 백제(대륙백제) 왕후의 성씨에 대하여 추정해 볼 수 있는 기록은 지극히 단편적이지만 대체적으로 진(眞)씨와 해(解)씨..

카테고리 없음 2009.01.28

윤여동설 - 최리의 낙랑국은 중국 하북성 승덕시 일원에 위치했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최리의 낙랑국은 중국 하북성 승덕시 일원에 위치하고 있었다 - 최초주장            낙랑국(樂浪國)  전한(前漢) 때 처음으로 낙랑군(樂浪郡)을 두었다.    응소(應邵)는 이것이 "고조선국(古朝鮮國)"이라 했다.  신당서(新唐書)의 주에는, "평양성(平壤城)은 옛 한(漢)나라의 낙랑군(樂浪郡)"이라고 했다.  국사(國史 : 삼국사기)에는,  "혁거세 30년에 낙랑 사람들이 신라에 투항해 왔다. 또 제3대 노례왕(弩禮王 : 유리왕) 4년에 고구려의 제3대 무휼왕(無恤王 : 대무신왕)이 낙랑을 멸망시키니 그 나라 사람들은 대방(帶方: 북대방)과 함께 신라에 투항해 왔다.    또 무휼왕(無恤王) 27년에 광호제(光虎帝 : 후한 광무제)가 사자를 보내어 낙랑을 치고 그 땅을 빼앗아 군현을..

카테고리 없음 2009.01.23

윤여동설 - 익산 미륵사탑출토 사리봉안기의 비밀 - 최초공개

윤여동설 - 익산 미륵사탑출토 사리봉안기의 비밀 - 최초공개 "백제 무광왕이 지모밀지로 천도하고 새로이 절을 지었다. 그런데 정관 13년(A.D.639) 기해년 겨울 11월에 벼락이 떨어져 제석정사에 불이 났다" 라는 관세음응험기 기록 속의 무광왕(武廣王)에 대하여, 우리는 정관 13년인 서기 639년이 삼국사기 기록 속의 백제 무왕 재위기간이라 하여 백제 무광왕이 바로 백제 30대 무왕(武王)과 동일 인물일 것이라 생각한다. ☆ 지금 학자들은 무광왕이 지모밀지로 천도하고 절을 지은 시기와 절에 벼락이 떨어져 불탄 시기를 동일시기로 보고 있으나 절을 지은 시기와 불탄 시기를 왜 동일시기로 보는지 이해되지 않는다. 절을 지은 지 수백년 후에 절에 벼락이 떨어져 불탔다면 백제 무광왕이 지모밀지로 천도하고 절..

카테고리 없음 2009.01.21

윤여동설 - 위만조선은 72개(또는 78개) 소국으로 이루어졌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위만조선은 72개(또는 78개) 소국으로 이루어졌었다 - 최초주장 삼국유사 칠십이국(七十二國) 조를 보면, 통전(通典)에 이르기를, "조선의 유민(遺民)은 모두 70여 나라로 나뉘어 있는데 이들은 모두 땅이 사방 백리이다" 라고 했고, 또 후한서(後漢書)에는, "서한(西漢 : 전한)이 조선의 옛 땅에 처음으로 네 군(郡)을 두었다가 뒤에 두 부를 두었다. 법령이 차츰 번거로워지자 이것을 78개의 나라로 나누니, 이들은 각각 만호(萬戶)였다"고 했다. (마한은 서쪽에 있어 54개의 조그만 읍을 가지고 있었는데 모두 나라라고 불렀다. 진한은 동쪽에 있고 12개의 작은 읍을 차지했는데 모두 나라라고 했다. 변한은 남쪽에 있어 역시 12개의 작은 읍을 차지했는데 이들도 저마다 나라라고 일컬었다). ..

카테고리 없음 2009.01.19

윤여동설 - 이부란 소제 시원5년 이후의 낙랑군과 현토군을 말하는 것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삼국유사 이부(二府) 조의 새로운 해석이부란 소제 시원 5년 이후의 낙랑군과 현토군을 말하는 것 - 최초주장 이부(二府) 전한서(前漢書)에 이르기를, "소제(昭帝) 시원(始元) 5년(B.C.82) 기해년에 두 외부(外府)를 두었다. 이것은 조선(朝鮮)의 옛 땅인 평나(平那)와 현토군(玄토郡) 등을 평주도독부(平州都督府)로 삼고, 임둔(臨屯)·낙랑(樂浪) 등 두 군(郡)의 땅에 동부도위부(東部都尉府)를 둔 것을 말함이다."라고 했다. [내가 알기로는 전한서 조선전에는 진번·현토·임둔·낙랑 등 네 군郡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지금 이 글에는 평나(平那)가 있고 진번이 없으니 대개 한 지방을 두 이름으로 불렀던 것 같다] 기원전 108년에 한나라는 위만조선을 멸망시키고는 그 땅을 나누어 네 군을 ..

카테고리 없음 2009.0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