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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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나영 - 고구려 유리왕의 일생(1)

윤나영 - 고구려 유리왕의 일생(1) - 삼국건국의 아침(윤나영 지음, 경향미디어)에서 발췌- 고구려 유리왕은 고구려 건국시조 주몽왕(추모왕)의 장자로서 태어난 곳은 동부여이고, 때는 기원전 58년이었으며, 유리가 태어나기 전인 이해 봄에 그 아버지 주몽은 동부여에서 도망쳐 졸본으로 갔다. 그리고 유리왕의 할머니인 유화가 죽은 해는 기원전 24년이었고, 유리(후일의 유리왕)가 어머니인 예씨와 친구인 옥지, 구추, 도조와 동부여를 탈출하여 졸본에 도착한 때는 기원전 19년 4월이었다. 따라서 유리는 약 40세의 나이에 졸본으로 아버지 주몽을 찾아와 고구려의 태자에 봉해졌다는 말이 되고, 예씨 역시 20세쯤의 꽃다운 나이에 주몽과 헤어졌다가 60세쯤의 노파가 되어서야 주몽과 재회했던 것이다. ☆ 노총각 유리..

카테고리 없음 2008.12.08

윤여동설 - 한4군(漢四郡) 은 단단대령(칠로도산)을 중심으로 설치되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한4군(漢四郡)은 단단대령(칠로도산)을 중심으로 설치되었다 - 최초주장 한사군의 설치지역에 대해서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의견들이 서로 달라 아직까지도 명확한 결론을 도출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자 어떤 이는 중국 사람들이 위만조선과 한(漢) 나라와의 전쟁에서 실제는 한(漢) 나라가 패했으나 이를 숨기고 한(漢) 나라가 승리했다고 역사를 기록하기 위해 실제 설치된 적도 없는 한사군이라는 유령 군들을 설치했던 것처럼 꾸며 기록했다고 주장하는 사람까지도 나타나게 되었다. 한사군이 실제 설치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의견을 정리해보면, 첫째는 사마천 생존시에 쓰여진 사기 조선전에 "조선을 평정하고 네 군으로 만들었다"고 만 기록했을 뿐 구체적으로 낙랑, 진번, 임둔, 현토(필자주 :..

카테고리 없음 2008.12.08

윤여동설 - 위만조선의 도읍은 지금의 중국 하북성 승덕시 부근 - 최초공개

윤여동설 - 위만조선의 도읍은 지금의 중국 하북성 승덕시 피서산장(열하행궁) - 최초공개 원봉 2년(B.C.109) 한나라는 섭하를 보내어 (조선의) 우거를 회유하였으나 끝까지 수긍하지 않고, 조서를 받들지 않았다. 섭하는 돌아올 때 국경인 패수(필자 주 : 이때 한나라와 위만조선의 국경이 패수일 수는 없고 살수이어야 맞다. 만약 패수일 경우 패수 동쪽에 바로 위만조선의 도읍 왕검성이 위치했었다는 말이 된다. 사실이 이러했다면 위만조선은 도읍을 동쪽으로 멀리 옮기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인데, 위만조선은 멸망할 때까지 왕검성에 도읍하고 있었다)에 이르자 사람을 시켜 전송나온 조선의 비왕장을 죽이고 즉시 강을 건너 요새로 돌아와서 천자에게 조선의 장수를 죽였다고 보고하였다. 천자는 그것을 잘한 것으로 여겨 나..

카테고리 없음 2008.12.05

윤여동설 - 위만조선은 중국 하북성 난하를 중심으로 존재했던 나라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위만조선은 중국 하북성 난하를 중심으로 존재했던 나라 - 최초주장 우리는 싫든 좋든 위만조선의 역사를 알아야만 한다. 그것은 위만조선의 역사가 우리 역사의 한 장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고, 특히 위만조선이 멸망하고 한사군이 설치되었기 때문에, 위만조선의과 한사군을 빼버리고는 우리 고대사 역사의 현장을 명쾌하게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로 그 위만조선이 과연 어디에 위치했던 나라였는지, 한사군이 어디에 설치되었었는지 지금까지도 명쾌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으니 매우 난감한 일이다. 역사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역사의 현장이 어디였는지를 찾는 일인데, 고조선, 위만조선으로 이어진 그 역사의 현장이 어디인지를 확실히 알지 못하고 있으니 우리의 역사연구는 시작부터 장벽에 가로막혀 있는..

카테고리 없음 2008.12.01

윤여동설 - 고조선의 도읍 왕검성(王儉城)은 지금의 중국 하북성 승덕시 피서산장(열하행궁)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고조선의 도읍 왕검성(王儉城)은 지금의 중국 하북성 승덕시 피서산장(열하행궁) - 최초주장 위서(魏書)에 이르기를, "지금으로부터 2000년 전에 단군 왕검이 있었다. 그는 아사달(경에는 무엽산이라 했고, 또는 백악이라고도 하는데 백주에 있었다)에 도읍을 정하고 나라를 열어 조선(朝鮮)이라 했는데, 고(요임금)와 같은 시대였다" 고기(古記)에 이르기를, "(단군왕검은) 당고(당요) 즉위 50년 경인(당요즉위 원년은 무진년이므로 50년은 정사년이지 경인년이 아니다. 아마 사실이 아닐 것이다)에 평양성(지금의 서경)에 도읍하고 조선(朝鮮)이라 부르기 시작하였다. 또 도읍을 백악산 아사달(阿斯達)로 옮겼는데 궁홀산(일명 방홀산이라고도 한다) 또는 금미달이라고도 했다. 그 나라는 1,500년 간 존..

카테고리 없음 2008.11.26

윤여동시사 - 종합부동산세 - 어느 대한민국 가장의 푸념

윤여동시사 - 종합부동산세 - 어느 대한민국 가장의 푸념 종합부동산세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판결 이후 대책이 오락가락 하고 있다. 이 사람은 이 말하고 저 사람은 저 말을 하니 도대체 종잡을 수가 없다. 그는 불쌍한 대한 민국 가장이다. 먹을 것, 입을 것 줄여가며 월급 쪼개 적금 들고, 계 들어 몫 돈 만들어 간신히 탈 전세를 했고, 또 술, 담배끊고 지독한 구두쇠 소리 들어가며 조금씩 조금씩 돈을 모아 소형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자식새끼들이 커가 방 하나 더 있는 아파트가 필요하여 살던 소형아파트 팔고 은행 대출 끼고 중형 아파트로 다시 이사했다. 지금도 허리 띠 졸라매고 자식새끼 가르쳐 가며 대출금을 갚는 중이다. 그런데 몇 년 전 시골 고향에 살고 계시던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남겨 놓으신 유산을 ..

카테고리 없음 2008.11.25

윤여동설 - 왕검조선의 건국과 멸망시기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왕검조선의 건국과 멸망시기 - 최초주장   삼국유사 고조선(왕검조선 조를 보면,           "(단군왕검은) 당고(당요) 즉위 50년 경인(당요즉위 원년은 무진년이므로 50년은 정사년이지 경인년이 아니다. 아마 사실이 아닐 것이다)에 평양성(지금의 서경)에 도읍하고 조선(朝鮮)이라 부르기 시작하였다.   또 도읍을 백악산아사달(白岳山阿斯達)로 옮겼는데 궁홀산(일명 방홀산이라고도 한다) 또는 금미달이라고도 했다. 그 나라는 1,500년 간 존속했다.  주 호왕(무왕) 즉위 기묘년(B.C.1122)에 기자를 조선에 봉하자 단군은 장당경(藏唐京)으로 옮겼다가 뒤에 아사달(阿斯達)로 돌아와 은거하다가 산신이 되었다. 1,908세까지 살았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요임금(제요도당씨)은 기..

카테고리 없음 2008.11.24

윤여동설 - 일연이 본 "위서(魏書)"는 어느 시대 쓰여진 위서였을까?

윤여동설 - 일연이 본 "위서(魏書)"는 춘추전국시대 전국칠웅 중의 하나였던 위나라의 역사서인 위서(魏書) 였다     위서(魏書)에 이르기를,   "지금으로부터 2000년 전에 단군 왕검이 있었다.   그는 아사달(경에는 무엽산이라 했고, 또는 백악이라고도 했는데 백주에 있다고 했다. 혹은 개성 동쪽에 있다고도 했는데, 이는 바로 지금의 백악궁이다)에 도읍을 정하고 나라를 열어 조선(朝鮮)이라 했는데, 고(요임금)와 같은 시대였다"   위 기록 속에서 "지금으로부터 2000년 전"이라는 기록 속의 "지금"은 어느 시대를 말하는 것일까?   주장에 따라서는 일연이 삼국유사를 집필하던 때를 말하는 것이라고 하기도 하고, 또는 일연이 인용한 "위서(魏書)"가 쓰여진 시기를 말하는 것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필..

카테고리 없음 2008.11.20

윤여동설 - 환국(환인국)과 단국(환웅국)의 중심강역은 지금의 어디였을까? - 최초주장

윤여동설 - 환국(환인국)과 단국(환웅국)의 중심강역은 지금의 어디였을까? - 최초주장 [환인은 흑수백산의 땅에 환국을 세웠고, 환웅은 동남동녀 3천을 이끌고 태백산 동쪽에 신시를 세웠고, 다시 단군 왕검은 태백산 남쪽 왕검성에 도읍하고 고조선을 세웠다] 환인국은 과연 지금의 어디에 위치했었고, 환웅이 3천의 무리를 이끌고 옮겨가 나라를 세웠다는 태백산(太白山)과 신시(神市)는 또 어디를 말하는 것일까? 안함로의 삼성기를 보면, "어느날 동남동녀 800이 흑수(黑水)백산(白山)의 땅에 내려왔는데, 이에 환인은 또한 감군으로서...............뒤에 환웅씨가 계속하여 일어나 천신의 뜻을 받들어 백산(白山)과 흑수(黑水) 사이에 내려왔다. 사람이 모이는 곳을 천평(天坪)에 마련하고 그곳을 청구로 정했..

카테고리 없음 2008.11.17

윤여동설 - 한민족은 곰의 후예인가?

윤여동설 -  한민족은 곰의 후예인가?           이때 호랑이 한 마리와 곰 한 마리가 같은 굴속에서 살고 있었는데, 그들은 항상 신웅(神熊: 환웅)에게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고 빌었다. 그리하여 신웅이 신령스러운 쑥 한 줌과 마늘 20개를 주면서 말하기를 "너희들이 이것을 먹고 백일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곧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했다.   이에 곰과 호랑이가 그것을 받아서 먹었다.   삼칠일 동안 조심했더니 곰은 여자의 몸으로 변했고, 호랑이는 잘못하여 사람의 몸으로 변하지 못했다.   웅녀는 혼인할 사람이 없으므로 날마다 단수(신단수) 아래에서 잉태하기를 축원하였다. 이에 웅(환웅)이 잠깐 사람으로 변하여 혼인하였더니 곧 잉태하여 아들을 낳아 단군왕검(壇君王儉)이라 불렀다.       ..

카테고리 없음 2008.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