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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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설 - 한민족은 첩의 자식의 후손들인가?

윤여동설 - 한민족은 첩의 자식의 후손들인가?   삼국유사 고조선(왕검조선) 조를 보면,    『위서(魏書)에 이르기를,   "지금으로부터 2,000년 전에 단군 왕검이 있었다. 그는 아사달[경에는 무엽산이라 했고, 또는 백악이라고도 하는데 백주에 있었다. 혹은 개성 동쪽에 있다고도 하는데 이는 바로 지금의 백악궁이다]에 도읍을 정하고 나라를 열어 조선(朝鮮)이라 했는데, 고(요임금)와 같은 시대였다"고 하였고,  고기(古記)에 이르기를,   "옛날 환인[제석을 말함이다]의 서자(庶子) 환웅이란 사람이 있었는데, 자주 천하를 차지할 뜻을 두어 인간세상을 탐내고 있었다.    그 아버지가 아들의 뜻을 알고 삼위태백(三危太伯)을 내려다보니 인간들을 널리 이롭게 해줄 만한 곳이었다. 이에 환인은 천부인 세 개..

카테고리 없음 2008.11.10

윤여동설 - 한국,중국,일본이 역사를 거짓말로 해석하는 이유(3) - 일본편

한국·중국·일본이 역사를 거짓말로 해석하는 이유(3) - 일본편 고대 역사를 착각하고 옛 땅이 어디에 있었는지도 모르고 역사강역을 잃어버리고 있는데도 그것도 모르는 바보 같은 한국, 청나라 때의 강역을 고착화시켜 역사강역을 최대한 넓히려고 안달하는 음흉한 중국, 천황의 정통성 때문에 자신들의 대륙역사 강역을 주장하지 못하고 진퇴양난에 빠진 일본. 지금 이 세 나라는 고대 역사의 해석을 모두 거짓말로 일관하고 있는데, 중국이나 일본은 그들이 목적하는 바가 있으나 한국은 아무 이득도, 명분도 없는 일에 멋도 모르고 덩달아 춤을 추고 있고, 옛 강역을 스스로 잃어버리고 있으니 정말 바보 같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천황의 정통성 때문에 고대역사를 왜곡해야 하는 진퇴양난의 일본 고대의 왜국은 일본열도가 아닌 지..

카테고리 없음 2008.10.31

윤여동설 - 한국,중국,일본이 역사를 거짓말로 해석하는 이유(2) - 중국편

한국·중국·일본이 역사를 거짓말로 해석하는 이유(2) - 중국편 고대 역사를 착각하고 옛 땅이 어디에 있었는지도 모르고 역사강역을 잃어버리고 있는데도 그것도 모르는 바보 같은 한국, 청나라 때의 강역을 고착화시켜 역사강역을 최대한 넓히려고 안달하는 음흉한 중국, 천황의 정통성 때문에 자신들의 대륙역사 강역을 주장하지 못하고 진퇴양난에 빠진 일본. 지금 이 세 나라는 고대 역사의 해석을 모두 거짓말로 일관하고 있는데, 중국이나 일본은 그들이 목적하는 바가 있으나 한국은 아무 이득도, 명분도 없는 일에 멋도 모르고 덩달아 춤을 추고 있고, 옛 강역을 스스로 잃어버리고 있으니 정말 바보 같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청나라 때의 넓어진 강역을 중국의 역사 강역으로 고착시키려 안달하는 음흉한 중국 - 청사공정(淸..

카테고리 없음 2008.10.29

윤여동설 - 한국,중국,일본이 역사를 거짓말로 해석하는 이유(1) - 한국편

한국·중국·일본이 역사를 거짓말로 해석하는 이유(1) - 한국편 고대 역사를 착각하고 옛 땅이 어디에 있었는지도 모르고 역사강역을 잃어버리고 있는데도 그것도 모르는 바보 같은 한국, 청나라 때의 강역을 고착화시켜 역사강역을 최대한 넓히려고 안달하는 음흉한 중국, 천황의 정통성 때문에 자신들의 대륙역사 강역을 주장하지 못하고 진퇴양난에 빠진 일본. 지금 이 세 나라는 고대 역사의 해석을 모두 거짓말로 일관하고 있는데, 중국이나 일본은 그들이 목적하는 바가 있으나 한국은 아무 이득도, 명분도 없는 일에 멋도 모르고 덩달아 춤을 추고 있고, 옛 강역을 스스로 잃어버리고 있으니 정말 바보 같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고대 역사를 착각하고 있는 바보 같은 한국 우리 역사의 상고시대로부터 고대 역사의 중심지는 한반..

카테고리 없음 2008.10.27

윤여동설 - 한반도 역사의 진실찾기 - 최초주장

윤여동설 - 한반도에서는 어떠한  고대역사가 전개되었을까? - 최초주장       필자는 지금까지 고조선으로부터 고려시대까지 우리 역사의 중심은 한반도가 아니라 발해 북쪽 중국 하북성에 있는 난하를 중심으로 한 그 부근 지역이라 하였고, 한반도는 이성계의 조선이 대륙에서 건국된 후 바로 도읍을 한반도의 한양으로 옮김으로서 비로소 우리 역사의 중심지가 되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고려 시대로부터 그 이전 한반도에는 어떠한 역사가 펼쳐졌던 것일까?   한반도에도 구석기 유물로부터 신석기, 청동기, 철기시대의 유물들이 출토되고 있고, 소량이지만 삼국시대, 고려시대의 유물들도 출토되고 있다.   다만 구석기 시대에 대해서는 너무도 오랜 옛날의 일이라 언급하지 않겠고, 고조선시대쯤부터는 많은 수는 아니라 하더라도 ..

카테고리 없음 2008.10.24

윤여동설 - 고구려왕들의 시호와 의미 - 최초공개

윤여동설 - 고구려왕들의 시호와 의미 - 최초공개 시조 추모왕(鄒牟王) "추(鄒)"는 산동반도 부근에 있었다고 전해지는 추 나라라고 하는 국가를 나타내는 추자이고, "모(牟)"는 탐하다는 의미가 담겨져 있는 글자인데, 주몽은 북부여의 후예로서 졸본부여의 왕위에 올랐다가 고구려의 건국시조가 된 사람이다. 남의 나라를 빼앗아 새로운 나라를 세웠다는 의미가 시호에 담겨진 것이 아닌가 싶다. 사고전서 경부 사서석지3 속권 하에는 "맹자는 추나라 사람인데 추나라는 춘추때 주나라였고, 주나라에 동이의 풍속이 섞여있으니 맹자가 이(夷)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겠는가?"라고 기록되어 있다. ※ 삼국사기에는 고구려의 건국시조인 주몽의 시호를 동명성왕(東明聖王)으로 기록하고 있으나 실제 고구려의 건국시조 주몽의 시호인지는 의..

카테고리 없음 2008.10.22

역사논쟁 - 신라가 양자강 부근에서 건국되었다는 주장은 순 엉터리 거짓말

박창범은 신라가 양자강 부근에서 건국되었다고 말한 것이 아니다 박창범은 이 시대 최고로 멋진 책이름인 "하늘에 새긴 우리역사(김영사)"의 저자이다. 그는 천문학자로서 삼국사기 등에 나타나는 삼국의 일식 기록을 가장 잘 관측할 수 있는 곳 즉 일식최적관측지가 어디인가를 처음으로 밝힌 사람이다. 저자는 처음에는 고조선시대의 천문현상을 분석하여 고조선의 위치를 찾아보려 하다가 그것이 기록의 부정확성으로 여의치 않자 컴퓨터 프로그램의 정확성을 확인해 보고자 하는 차원에서 삼국사기 속의 일식기록 관측지가 정말로 한반도로 나타나는지를 확인해 보려고 했다고 한다. 물론 이때 박창범은 고구려, 신라, 백제 삼국이 한반도에 위치했던 것이 역사적 사실이라 생각하고 당연히 삼국사기 일식기록의 최적관측지가 한반도로 나타날 것..

카테고리 없음 2008.10.20

윤여동설 - 유리왕의 막내아들 여진(如津) 왕자는 비류수 강물에 빠져 죽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고구려 유리왕의 막내아들 여진(如津) 왕자는 비류수 강물에 빠져 죽었다 - 최초주장 연속극 "바람의 나라"가 점점 흥미진진하게 전개된다. 역사적 사실이 아닌 부분이 많지만 재미를 위해 설정한 것이려니 이해하고 역사를 알고 새겨가면서 볼 수밖에 없다. 연속극에서는 무휼이 여진왕자를 인질로 잡고 해명태자를 죽게 한 유리왕을 유인하여 죽이려 하다가 유리왕이 자신의 아버지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으로 전개되고 있는데, 원래 유리왕은 40세에 동부여에서 졸본으로 와서 주몽왕(추모왕)의 태자로 봉해졌다가 아버지인 주몽왕이 죽자 고구려의 2대 왕위에 올랐다. 동부여에 있을 때 결혼을 했었다는 기록이 전혀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졸본으로 도망쳐 올 때까지 노총각 신세였던 듯 하다. 그리하여 그는 왕위에 오른 ..

카테고리 없음 2008.10.16

윤여동설 - 신라의 천년도읍 서라벌(금성)은 요녕성 금주시(錦州市)가 확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신라의 천년도읍 서라벌(금성)은 요녕성 금주시(錦州市)가 확실 - 최초주장 삼국유사 기이 제1 진한 조에는, "신라 전성기에는 서울(서라벌)에 178,936호, 1,360방, 55개 리(里), 35개의 금입택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어 호당 평균 5명의 식구가 있었다고 가정할 때 당시 신라의 도읍 서라벌의 인구가 894,680명(178,936호X5명) 정도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하여 어느 사람은 지금도 경주시내와 주변 면소재지까지를 포함한 경주시에 30만(275,659명 : 2008년 6월 30일 기준)이 안 되는 인구가 살고 있는데, 어떻게 1천여 년 전에 지금 경상북도 경주에 100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살았다고 기록되어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나타내기도 하고, 어느 사..

카테고리 없음 2008.10.16

윤여동설 - 백제의 마지막 도읍 사비는 하북성 당산시 난주(난현)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백제의 마지막 도읍 사비는 하북성 당산시 난주(난현) - 최초주장 백제26대 성왕은 서기 538년 봄에 이르러 사비로 도읍을 옮기고는 국호까지도 남부여(南扶餘)로 바꾼다. 따라서 엄격한 의미에서는 백제는 기원전 18년부터 537년까지로 끝나고, 538년부터는 남부여라고 불러야 마땅할 것인데, "남부여"라는 국호는 "옛 졸본부여의 영광을 남쪽 땅에 재현하겠다"는 명분을 세워 웅진에서 사비로 도읍을 옮길 때만 잠깐 언급했을 뿐 실제 국호로 사용하지는 않은 것 같다. 그렇다면 백제의 성왕은 왜 이때에 이르러 사비로 도읍을 옮겨야 했던 것일까? 학자들은 그 이유를 백제가 고구려의 압박 때문에 도읍인 웅진이 위험하다고 보고 더 남쪽으로 도읍을 옮겼을 것이라고 추정하기도 하는데, 과연 그것이 맞는 말일..

카테고리 없음 2008.1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