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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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설 - "마한이 고구려" 라고 말한 것은 최치원의 실수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마한이 고구려" 라고 말한 것은 최치원의 실수 - 최초주장 최치원은 "마한은 고구려이고, 진한(辰韓)은 신라(新羅)다" 라고 말했다. (본기에 의하면 신라는 먼저 갑자년에 일어났고, 고구려는 그 뒤 갑신년에 일어났다고 했다. 여기에 말한 것은 조선왕 준을 가리킨 것이다. 이것으로 본다면 동명왕이 일어날 때에 마한까지 차지했던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고구려를 마한이라고 한 것이다. 지금 사람들은 혹 금마산(金馬山)이 있다고 해서 마한을 백제(百濟)라고 하지만 이것은 대개 잘못된 말이다. 고구려 땅에는 본래 읍산(邑山)이 있었기 때문에 이름을 마한(馬韓)이라 한 것이다) "마한이 고구려" 라고 한 최치원의 말은 잘못이다. 고쳐 말하면 부여(졸본부여, 북부여)는 고구려이고, 마한은 ..

카테고리 없음 2009.01.14

윤여동설 - 한의 월지국(목지국)은 발해 북쪽 지금의 중국 하북성 당산시 풍윤부근 - 최초주장

윤여동설 - 한의 월지국(목지국)은 발해 북쪽 지금의 중국 하북성 당산시 풍윤부근 - 최초주장    마한(馬韓)   위지(魏志)에 이르기를,    "위만(魏滿)이 조선(고조선)을 공격하자 조선왕 준(準)은 궁인과 좌우근신들을 거느리고 바다를 건너 남쪽 한(韓)의 땅에 이르러 나라를 세우고 마한(馬韓)이라고 했다."   삼국지 한전에는 위만의 성씨를 "위(衛)"씨로 기록하고 있는데, 여기 삼국유사에는 위(魏)나라를 인식했는지 "위(魏)"씨로 기록하고 있어 혼란스러운데 아마 삼국유사가 잘못일 것이다.   그리고 삼국지의 한전 원문에는 준왕이 새로 세운 나라를 "마한"이라고 하지 않고 "조선(고조선)의 준왕이 위만에게 나라를 빼앗기고는 근신과 궁인들을 거느리고 도망하여 바다로 들어가 한의 땅에 거주하면서 스스..

카테고리 없음 2009.01.12

윤여동설 - 부여의 황금, 섭라의 백옥 보물찾기 - 최초공개

윤여동설 - 부여의 황금, 섭라의 백옥 보물찾기 - 최초공개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문자왕 13년(A.D.504) 조를 보면,  "여름 4월 위나라에 사신을 보내 조공했더니 위나라 세종이 우리 사신 예실불을 동당에서 접견했는데, 예실불이 나아가 말하기를, '우리나라가 누대에 걸쳐 온 정성을 다하여 토산물을 보내는 조공을 빠뜨리지 않았으나 다만 황금(黃金)은 부여에서 나오고, 가(珂: 백옥)는 섭라에서 나오는 것인데, 부여는 물길에게 빼앗겼고, 섭라는 백제가 병합해버렸으므로 금과 옥이 왕의 창고에 들어오지 못하는 것은 실로 두 도적 때문입니다' 하였다" 라고 기록하고 있고,   위서 고구려전에도,   "정시(A.D.504-507) 중에 세종이 동당에서 고구려의 사신 예실불을 인견하니 예실불이 나아가 말하..

카테고리 없음 2008.12.24

윤여동설 - 대륙고려와 반도조선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대륙고려와 반도조선 - 최초주장      왕건의 고려는 대륙의 하북성이 중심이었고, 이성계의 조선은 한반도가 중심이었다.    윤여동설에 의한 환인환국, 환웅단국으로부터 고조선, 삼한, 삼국, 발해, 고려까지 우리 역사의 중심은 한반도가 아니라 발해 북쪽 중국 하북성 난하를 중심으로 한 그 부근이라는 것이다.    환인환국의 중심강역은 하북성과 내몽골 적봉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칠로도산(七老圖山) 부근이고, 환웅단국의 중심강역은 칠로도산 동쪽 노로아호산(努魯兒虎山) 부근이며, 고조선(왕검조선)의 도읍인 왕검성은 지금의 중국 하북성 승덕시 부근으로서 이때 고조선의 최대강역은 서쪽으로는 황하 북부 오르도스 지역까지, 동쪽으로는 요하까지, 남쪽으로는 발해와 황하하류를 지나 산동반도까지, 북쪽으로는..

카테고리 없음 2008.12.22

윤여동설 - 우리 고대사의 의문을 밝혀 줄 윤여동의 난하중심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우리 고대사의 의문을 밝혀 줄 윤여동의 난하중심설 - 최초주장 우리 고대사가 실제 이루어진 곳이 어디인가라는 문제에 대한 모범답안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이 말은 우리 고대 역사의 현장에 관한 한 아직 정설이 없고 가설만이 존재한다는 말이다. 가설이란 아직 검증되지 않은 개인의 의견이라 정의할 수 있으므로 우리 고대사가 이루어진 역사의 현장은 아직 정확히 찾지 못한 상태라 할 수 있다. 지금 우리 고대사의 현장이 과연 어디인가라는 질문에는 현격하게 다른 상반된 두 주장이 존재한다. 첫째는 한반도를 우리 역사의 중심지로 보고 해석하는 한반도중심설이 있고, 둘째는 발해 서북쪽 중국 하북성 난하를 중심으로 하는 그 부근 지역을 우리 고대사의 중심 강역으로 보는 난하중심설(윤여동설)이 있다. 한반..

카테고리 없음 2008.12.19

윤여동설 - 새로 옮긴 현토군의 치소는 하북성 장가구 부근 - 최초공개

윤여동설 - 기원전 75년(元鳳6년)에 새로 옮긴 현토군의 치소는 하북성 장가구 부근 - 최초공개 원봉(元封) 4년(B.C.107)에 설치된 초기 현토군의 위치는 지금까지도 오리무중이고, 원봉(元鳳) 6년(B.C.75)에 구려의 서북쪽으로 옮겼다는 현토군 역시 아직도 어디를 말하는지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다만 한반도 북한 평양을 낙랑군으로 인식한 조선시대 사람들은 초기 현토군이 함경도 함흥지역에 설치되었다가 요하 부근으로 옮겨갔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였다. 그렇지만 옛 고조선, 위만조선의 도읍 왕검성이었고, 전한 낙랑군의 치소였던 곳이 한반도 부근에 위치했던 것이 아니라 지금의 중국 하북성 승덕시 부근이라면 현토군의 위치 역시 지금까지 우리가 생각하고 있던 것과는 전혀 다르게 된..

카테고리 없음 2008.12.17

윤여동설 - 초기 현토군과 낙랑동부도위와의 관계 - 최초공개

윤여동설 - 초기 현토군과 낙랑동부도위와의 관계 - 최초공개 후한서 동옥저 전을 보면, "(한) 무제가 조선을 멸망시키고 옥저 땅으로 현토군을 만들었다. 뒤에 이맥의 침략을 받아 군을 고구려(필자 주 : 구려의 오기이다)의 서북쪽으로 옮기고는 옥저를 현으로 고쳐 낙랑의 동부도위에 속하게 했다. (후한) 광무제 때에 이르러 도위의 관직을 없애고 후에 모두 그 거수를 봉하여 옥저후로 삼았다. 그 땅이 작아 큰 나라 사이에 끼어 핍박을 받다가 마침내 (고)구려의 신하가 되었다" 라고 기록되어 있어, 옥저 땅에 초기 현토군의 치소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하고, 후한서 예전에는, "원봉3년(B.C.108)에 조선을 멸망시키고 낙랑·임둔·현토·진번으로 나누었는데, 소제 시원 5년(B.C.82)에 이르러 임둔과 진번을..

카테고리 없음 2008.12.15

윤여동설 - 후한 광무제가 설치한 후한낙랑군의 치소는 북경 동북쪽 하북성 흥륭 부근 - 최초주장

윤여동설 - 후한 광무제가 설치한 후한낙랑군의 치소는 북경 동북쪽 하북성 흥륭 부근 - 최초주장 미우나 고우나 우리 역사는 낙랑군과 밀접한 관련을 갖고 전개된다. 따라서 우리 역사를 정확히 해석하기 위해서는 낙랑군의 위치가 매우 중요한데, 삼국사기에 낙랑에 대한 기록은 서기 313년까지 나타난다. 그리하여 우리는 지금까지 한 무제가 설치했던 전한낙랑군이 기원전 108년부터 서기 313년까지 무려 421년 간 쭉 이어졌을 것이라고 이해하고 있었다. 그런데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대무신왕 20년(A.D.37)조를 보면, "왕이 낙랑을 습격하여 이를 멸망시켰다"라고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고, 또 대무신왕 27년(A.D.44) 조를 보면, "한(漢)나라 광무제가 군사를 보내 바다를 건너와 낙랑을 치고 그 지역을 빼앗..

카테고리 없음 2008.12.12

윤나영 - 고구려 유리왕의 일생(2)

윤나영 - 고구려 유리왕의 일생(2) 첫사랑 은영이 목매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유리는 하늘이 무너진 듯 밤새도록 엉엉 울었다. 처음으로 자기의 처지를 비관하며 아버지를 원망도 했고, 세상을 원망하기도 했다. 이 세상이 지옥처럼 여겨졌다. 그러한 유리를 바라보는 할머니 유화의 가슴은 찢어지는 듯 했다. 모든 것이 자신의 탓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그렇지만 유화와 예씨는 유리가 스스로 이겨내도록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동안 유리는 방안에서 나오지도 않았다. 밥도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유리는 다시는 사랑 같은 것은 하지 않으리라 마음먹었다. 그녀가 죽고 없는 동부여가 한없이 싫어졌다. 그리하여 이 지옥 같은 동부여에서 하루라도 빨리 탈출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동부여 군사들의 감시는 매우 심했다. 혼자..

카테고리 없음 2008.1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