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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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논쟁 - 역사를 이은 자와 땅을 차지하고 있는 자의 역사전쟁

역사논쟁 - 역사를 이은 자와 땅을 차지하고 있는 자의 역사전쟁 옛날 유구한 역사를 가진 어느 나라가 있었는데, 그 나라가 쇠약해져 옛날부터 도읍이 위치하고 있던 땅의 대부분을 이웃나라에게 빼앗기고 지도층과 일부 백성들이 멀리 변두리 땅으로 옮겨가 그곳에 새로이 도읍을 정하고 나라를 유지해 왔고 이제는 강국이 되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옛날에 빼앗긴 땅의 역사를 자신들의 역사라고 하게 되었고, 언젠가는 회복해야할 땅이라고 하면서 후손들에게 그 땅의 역사까지를 가르치게 된다. 그런데 그 땅을 빼앗아 차지한 이웃 나라에서도 그 땅의 역사를 자신들의 역사라고 주장하게 된다. 그리하여 두 나라는 그 땅의 역사를 놓고 다투게 된다. 한편은 역사의 정통성을 자기들이 가지고 있으니 그 땅의 역사는 당연히 자기네 역사라..

카테고리 없음 2009.03.13

윤여동설 - 포상8국은 어디에 위치했었을까? - 최초공개

윤여동설 - 포상8국은 어디에 위치했었을까? - 최초공개 "포상8국(浦上八國)"이라는 기록은 삼국사기 신라본기 10대 나해이사금 14년(A.D.209)년 조에, "가을 7월에 포상8국이 공모하여 가라(加羅)를 침범하자 가라왕자가 구원해 주기를 요청해 왔다. 왕이 태자 우로와 이벌찬 이음으로 하여금 6부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구원해 주도록 하였는데, 8국 장군들을 격살하고 포로 6천여 명을 잡아 돌아왔다"라고 하면서 나타나는데, 삼국사기 열전 물계자전에는, 신라 10대 나해이사금 때 "8포상국이 공모하여 아라국(阿羅國: 아라가야)을 치니 아라에서 사신을 보내 구원해 주기를 요청해 왔다. 이사금이 왕의 손자 나음을 시켜 부근의 군과 6부의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구원해 주도록 하였는데, 곧 8국의 병사들이 패..

카테고리 없음 2009.03.09

윤여동설 - 한반도 최초로 풍수지리설에 따라 조성된 덕흥리 고분

윤여동설 - 한반도 최초로 풍수지리설에 따라 조성된 덕흥리 고분 유주자사진의 묘 유주(幽州)라는 지역이 한반도가 아닌 지금의 중국 산서성 대동 부근으로부터 북경 부근까지를 말한다는 것은 이미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새삼스럽게 다시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북한 평남 덕흥리에서 발견된 고분의 주인공이 바로 그 유주지역을 다스리던 유주자사 진이라는 사람이었고, 주인공의 모습과 13군 태수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자사(刺史)는 지금의 도지사와 비교해 볼 수 있을 것이고, 태수(太守)는 군수쯤이 될 것인데, 그의 무덤 속에 13군 태수가 유주자사 진에게 업무를 보고하는 그림을 그려 놓았다는 것은 유주자사 진이 바로 그 유주 13군을 관할하는 직책을 맡고 있었다는 것을 확인해 준다고..

카테고리 없음 2009.03.06

윤여동설 - 대방군은 한반도 황해도에 없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대방군은 북경 동쪽에 위치하고 있었다 - 최초주장 삼국유사 대방군 조의 새로운 해석 북대방(北帶方) 북대방(北帶方)은 본래 죽담성(竹覃城)이다. 신라 노례왕(弩禮王) 4년에 대방(帶方) 사람들이 낙랑(樂浪) 사람들과 함께 신라에 투항해 왔다. (이것은 모두 전한 때에 설치한 두 군의 이름이다. 그 후에 참람하게도 나라라고 불러오다가 이때에 와서 항복한 것이다). 우리 역사를 찾는데 낙랑군의 위치를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하듯 이 대방군의 위치 역시 우리 역사와 아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대방군은 후한 건안(A.D.196-220) 중에 공손강이 둔유현 남쪽 황무지를 나누어 설치했다고 전해오는데, 전한낙랑군 25개현 중 대방현이 있으니 대방이라는 명칭은 매우 오래 되었을 것이다. 앞서 위만조..

카테고리 없음 2009.03.04

윤여동설 - 왜국 천황의 시호에 들어가 있는 "신(神)" 자의 비밀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왜국 천황의 시호에 들어가 있는 "신(神)" 자의 비밀 - 최초주장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 했으니 마음에 썩 내키지는 않지만 왜국 천황과 그 역사에 대하여도 알아둘 필요가 있다. 일본서기를 보면, 고대 왜국의 천황 중에 그 시호에 "신(神)"자가 들어간 사람은 세 사람이다. 초대 신무(神武), 10대 숭신(崇神), 15대 응신(應神)인데, 일본 사람들은 신무를 왜국의 건국시조로 받들고 있다. 그렇다면 신무는 왜국의 건국시조라는 의미와 그가 혼란스런 나라를 무력으로 평정하고 나라를 세웠다는 의미로 신(神)자를 넣어 시호를 정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고구려의 대무신왕(大武神王)과 같이 마치 귀신처럼 군사들을 움직여 전투에서 승전했던 듯하다. 어떤 사람은 신무를 신화 속의 인물로 치부하기..

카테고리 없음 2009.03.01

윤여동설 - 백제 무령왕 금제왕관장식에 목련꽃 활짝 피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백제 무령왕 금제왕관장식에 목련꽃이 활짝 피었다 - 최초주장 충남 공주의 백제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유물 중 가장 화려한 것은 단연 금제왕관장식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무령왕릉이 발굴된 지 수십년이 되었건만 금제왕관장식이 과연 무엇을 형상화 한 것인지 아직까지 확실하게 밝혀진 것이 없다. 그리하여 어떤 사람은 그것이 타오르는 불꽃을 형상화했다느니, 신령스런 영기(靈氣)문양이라느니, 연꽃이라느니 주장들이 제각각이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는 아무리 보아도 나뭇가지에 꽃이 핀 모양을 형상화 한 것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삼국사기 백제본기 고이왕 조를 보면, "28년(A.D.261) 봄 정월 초하루날에 왕이 자주색으로 된 큰소매 달린 도포와 푸른 비단바지를 입고, 금꽃으로 장식한 오라관을..

카테고리 없음 2009.02.26

윤여동설 - 고구려와 낙랑 그 의문의 접촉기록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고구려와 낙랑 그 의문의 접촉기록들 - 최초주장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에서 고구려와 낙랑의 접촉 기록은 3대 대무신왕 15년(A.D.32) 4월 조에, 낙랑왕 최리가 언급되고, 호동왕자와 낙랑공주 설화에 관한 기록이 나타나면서 시작되는데, 사실은 서기 30년에 이미 낙랑동부도위 땅을 고구려가 빼앗았던 듯하다. 그리고 대무신왕 20년(A.D.37) 조에, "왕이 낙랑을 습격하여 멸망시켰다"는 기록이 나타나고 다시 27년(A.D.44) 조에, "가을 9월 한나라(후한) 광무제가 군사를 보내 바다를 건너와 낙랑을 치고 그 지역을 빼앗아 군현을 만드니 살수 이남이 한나라에 속하게 되었다" 라는 기록이 나타난다. 그런데 우리는 이 기록의 의미를 지금까지도 명쾌하게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낙랑..

카테고리 없음 2009.02.18

윤여동설 - 신라와 낙랑 그 의문의 접촉기록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신라와 낙랑 그 의문의 접촉기록들 - 최초주장 낙랑은 신라 시조 혁거세거서간 30년(B.C.28)부터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나타나기 시작한다. 기록을 보면, "낙랑 사람들이 군사를 이끌고 와서 침입했는데, 변방 백성들이 밤에 대문을 잠그지 않고 노적가리가 들에 있는 것을 보고 서로가 말하기를 '이 지방의 백성들이 서로 도둑질하지 않으니 가히 도덕이 있는 나라라 할 수 있다. 우리가 몰래 군사로서 습격한다는 것은 도둑이나 다름없다. 부끄럽지 않은가? 하고는 군사를 이끌고 돌아갔다."라는 이상한 기록인데, 삼국유사 낙랑국 조에는 "국사(國史)에는 이런 말이 있다. '혁거세 30년에 낙랑 사람들이 신라에 항복했다' 라고 기록하고 있어 동일한 시기에 대한 신라와 낙랑과의 관계를 전혀 다르게 기록하고 ..

카테고리 없음 2009.02.15

윤여동설 - 백제와 낙랑 그 의문의 접촉기록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백제와 낙랑 그 의문의 접촉기록들 - 최초주장     백제는 기원전 18년에 건국된 나라이다.  그런데 백제(百濟)와 낙랑(樂浪)은 백제가 건국된 시점부터 국경을 직접 접하고 있었던 것으로 나타난다.  삼국사기 백제본기 온조왕 재위 4년(B.C.15) 조를 보면, "가을 8월 낙랑에 사신을 보내 우호관계를 맺었다" 라고 기록되어 있고, 재위 8년(B.C.11)조에는, 온조왕이 낙랑과의 접경지역에 마수성을 쌓고 병산에 목책을 세우자 낙랑태수가 사람을 보내 낙랑을 침공하려 하는 것이냐고 항의하면서 의심하지 않게 하려면 성과 목책을 헐어버릴 것을 요구하게 된다.   그런데 온조왕이 그 요구를 거부하자 그 일로 인하여 백제와 낙랑사이에 화친이 깨어지게 되었고, 그렇게 화친이 깨어진 재위 11년(B...

카테고리 없음 2009.0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