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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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설 - 한반도의 차 시배지는 과연 어디일까? - 최초주장

윤여동설 - 한반도의 차 시배지는 과연 어디일까? - 최초주장 삼국사기에는 지리산에 대하여, 신라본기 42대 흥덕왕 3년(828) 12월 조에 “사신을 당나라에 보내 조공하니 문종이 인덕전에서 그를 불러 차등을 두어 연회를 베풀어 주었다. 당나라에 갔다가 돌아온 사신 대렴이 차 종자를 가지고 왔으므로 왕이 지리산(地理山)에 심게 하였다. 차(茶)가 선덕왕(선덕여왕) 때부터 있었는데, 이때에 이르러 매우 유행하였다”고 기록되어 있고, ☆ 삼국사기에는 지리산(地理山)이라 기록되어 있는데, 지금 한반도의 지리산은 지이산(智異山)이라 쓰고 지리산이라 읽는다. 왜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게 되었는지는 잘 알 수 없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지리산(智異山)이 진주목의 서쪽 1백리에 위치한 산이라고 하였으나 지금 한반도 ..

카테고리 없음 2009.07.27

윤여동설 - 기자조선의 비밀을 풀었다

윤여동설 - 기자조선(箕子朝鮮)의 비밀을 풀었다 지금 우리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기자조선이 실제로 존재했느냐, 존재하지 않았느냐 하는 것이 화두 중의 하나로 부각되어 있는데, 요즈음에는 대체로 많은 연구자들이 기자조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없자 실존하지 않은 허구의 왕조로 인식하고 있다. 기자조선이 실존했을 것으로 주장하는 사람들은 왕검조선이 기원전 2,333년에 건국되어 47대 단군 고열가 때 멸망했다면 그 왕검조선의 존속기간을 1천여년쯤으로 볼 수밖에 없는데, 위만조선이 건국된 시기가 기원전 194년이므로 그 사이 기간인 1천여년이 공백으로 남고, 준왕이 기자의 41대 후손이라는 구체적인 기록이 있기 때문에 그 사이 기간을 기자조선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고, 그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삼국유사..

카테고리 없음 2009.07.16

윤여동설 - 가야산 해인사가 원래는 요녕성 호로도에 있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가야산 해인사가 원래는 요녕성 호로도에 있었다 - 최초주장 [가야산 정상 부근에 나타나는 소머리 형상] 가야산 해인사는 삼국사기 신라본기 40대 애장왕 3년(A.D.802) 조에 “8월 가야산 해인사를 창건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이때 해인사가 창건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으로부터 무려 1,200여년 전이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한반도 경남 합천 가야산에 있는 해인사가 바로 신라 애장왕 때 창건된 가야산 해인사라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신라는 원래 한나라 때의 낙랑 부근에서 건국된 나라였다. 한나라 때의 낙랑 땅이란 지금의 중국 하북성 승덕시 일원을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가야산 해인사에 관한 기록은 해석을 전혀 다르게 할 수 있게 된다. 즉 원래의 가야산..

카테고리 없음 2009.07.03

윤여동설 - 신라왕자 김수충은 32대 효소왕의 유복자였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신라왕자 김수충은 33대 성덕왕의 장자가 아니라 32대 효소왕의 유복자였다 - 최초주장 우리 역사에서 기록은 전해지고 있으나 명쾌하게 밝히지 못하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삼국사기 신라본기 성덕왕 조에 나타나는 신라왕자 김수충과 성정왕후의 신분이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33대 성덕왕 3년(A.D.704) 조를 보면, "여름 5월에 승부령 소판 김원태의 딸을 맞아들여 왕비로 삼았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15년(A.D.716) 조를 보면, "성정(엄정이라고도 한다)왕후를 궁에서 내 보내는데, 비단 5백 필, 밭 2백 결, 벼 1만석, 저택 한 구역을 주었는데, 집은 강신공의 집을 사서 주었다" 라고 기록되어 있어 사람들은 이 기록을 보고는 성정왕후가 성덕왕의 첫 부인이었으나 이때에 이르러 무언가 잘..

카테고리 없음 2009.06.28

윤여동설 - 신라 법흥왕에게 시집간 백제 동성왕의 딸 보과공주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신라 법흥왕에게 시집간 백제 동성왕의 딸 보과공주 - 최초주장 삼국사기 신라본기 진흥왕 14년(A.D.553) 계유년 조를 보면, “겨울 10월에 왕이 백제 왕녀에게 장가들어 작은 왕비로 삼았다” 라고 기록하고 있고, 백제본기 성왕 31년(A.D.553) 조에도, “겨울 10월 왕의 딸이 신라에 시집을 갔다” 라고 기록하고 있어 기록대로라면 이때 백제 성왕의 딸이 신라 진흥왕에게 시집갔다고 하는 셈인데, 사실 이때는 역사적으로 나제동맹이 깨어져 신라와 백제의 관계가 매우 악화되어 있을 때였으므로 어떻게 그러한 정치적인 상황과는 상관없이 백제의 성왕이 딸을 신라 진흥왕에게 시집보낼 수 있었는지 의아해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데 화랑세기 필사본에 의하여 신라로 시집간 백제공주가 26대 성왕의..

카테고리 없음 2009.06.25

윤여동설 - 삼국사기 기록 속 "완산주(完山州)"의 비밀이 풀렸다 - 최초공개

윤여동설 - 신라 진흥왕 때의 완산주와 신문왕 때의 완산주는 다른 곳이다 - 최초공개 신증동국여지승람 경상도 창녕현 조의 건치연혁을 보면, “본래 신라의 비자화군[비사벌이라고도 한다]이다. 진흥왕 16년(A.D.555)에 하주를 설치했다가 21년(A.D.560)에 (주를) 폐했다. 경덕왕이 화왕군이라 고쳤다. 고려 태조가 지금의 이름(창녕현)으로 고쳤고, 현종이 밀성군에 속하게 했다. (本新羅比自火郡[一云 比斯伐] 眞興王十六年置下州 二十一年罷 景德王改火王郡 高麗太祖改今名 顯宗屬密城郡)”라고 기록되어 있고, 전라도 전주부의 건치연혁을 보면, “본래 백제의 완산[비사벌이라고도 하고 비자화라고도 한다]이다. 신라 진흥왕 16년(A.D.555)에 완산주를 설치했다가 26년(A.D.565)에 주를 폐지하였다.[필..

카테고리 없음 2009.06.23

윤여동설화 - 고구려 22대 안장왕과 백제 처녀 한주의 사랑이야기

윤여동설화 - 고구려 22대 안장왕과 백제 처녀 한주의 사랑이야기 삼국사기 권제37 잡지제6 지리4 고구려, 백제 조를 보면, "왕봉현[개백이라고도 한다. 한씨 미녀가 안장왕을 만난 곳이라 하여 왕봉으로 불렀다]" "달을성현[한씨 미녀가 높은 산마루에서 봉화를 올려 안장왕을 맞은 곳이라 하여 후일에 고봉으로 불렀다]" 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이곳이 고구려 22대 안장왕과 백제 한씨 미녀의 사랑 이야기가 시작된 곳이라는 것을 알 수 있고, 우리 삼국 역사의 정사를 기록한 삼국사기에도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이것이 역사적 사실일 가능성이 많다고 할 수 있다. 옛날 고구려 문자왕의 아들인 흥안이 태자시절 왕명을 받아 신분을 감추고 장사꾼으로 변복하고 백제의 개백현으로 몰래 숨어 들어가 적정을 살피..

카테고리 없음 2009.06.21

윤여동설 - 선덕여왕(덕만)과 천명공주는 진짜 쌍둥이였을까?

윤여동설 - 선덕여왕(덕만)과 천명공주는 진짜 쌍둥이였을까? 드라마 선덕여왕 촬영지 월아천 요즈음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선덕여왕” 때문에 주변 사람들로부터 “선덕여왕과 천명공주가 진짜 쌍둥이였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드라마에 쌍둥이로 그려졌기 때문에 그것이 역사적 사실인지 아닌지 궁금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드라마는 화랑세기 필사본의 내용을 중심으로 제작되는 듯한데, 사실 화랑세기 어디에도 이들이 쌍둥이였다는 기록은 없고, 또 신라왕실에 쌍둥이가 태어나면 나라가 멸망할 것이라는 예언이 전해지고 있었다는 기록 또한 없으며, 더구나 덕만이 멀리 사막지역에서 살다가 돌아왔다는 기록 또한 없다. 모두가 극중 재미를 위해 픽션을 가미한 것이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에는, “선덕여왕이 왕위에 오르니 ..

카테고리 없음 2009.06.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