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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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설 - 광개토태왕이 시조 추모왕(주몽왕)의 17세손이라는 호태왕비문의 기록은 정확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광개토태왕이 시조 추모왕(주몽왕)의 17세손이라는 호태왕비문의 기록은 정확했다 - 최초주장 "광개토태왕이 고구려 건국시조 주몽의 17세손이 맞다"고 하면,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기록에 따라 주몽으로부터 족보를 따져보면 호태왕은 주몽의 12세손에 불과한데 무슨 헛소리를 하고 있는 것인가?” 라고 할 지도 모르겠다. 물론 필자도 이전에는 호태왕 비문의 17세손이라는 기록에 대하여 북부여 시조 해모수로부터 계산하여 광개토대왕이 북부여 천제 해모수의 17세손이라 기록한 것으로 이해했었으나, 호태왕비문을 자세히 보면 “惟昔始祖鄒牟王之創基也(옛날에 시조 추모왕이 터를 잡고 창업했도다)” 라고 하면서 비문을 시작했다. 따라서 문맥으로 볼 때 호태왕(광개토태왕)이 그 17세손이라면 이는 시조 추모왕(주몽왕..

카테고리 없음 2012.10.07

윤여동설 - 아리랑과 쓰리랑의 진짜 의미

윤여동설 - 아리랑과 쓰리랑의 진짜 의미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라고 노래하는 한국의 대표적인 전래 민요 “아리랑”의 진짜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 아리랑에 대하여 사람마다 각기 다른 의미를 부여하고 있어 어느 주장이 진실인지 알기 어렵지만 가사만 보면 이 노래는 “이별가” 임이 분명하다. 즉 어느 사랑하던 남녀가 있었는데, 남자가 변심하여 여인을 버리고 떠나버리자 버림받은 여인이 자기를 버리고 간 님이 십리도 못가서 발병이 나서 되돌아올 것을 기원했지만 결국 그 님은 고개를 넘어가서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아리랑은 “我離郞(아리랑)”이며, “나를 버리고 떠난 님”으..

카테고리 없음 2012.10.04

윤여동설 - 고구려 태조대왕, 차대왕, 신대왕은 형제가 아니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고구려 6대 태조대왕, 7대 차대왕, 8대 신대왕은 형제가 아니었다 - 최초주장 재사 ○ (시조로부터 5대 모본왕까지는 해씨, 6대부터 28대까지는 고씨로서 재사의 혈손) ↓ ○ ( )는 왕위 재위기간 .................................|..................................... ↓ ↓ ↓ 6대 태조대왕(궁) ?(실명) ?(실명)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에는 (A.D.53-146) 6대 태조대왕, 7대 차대왕, 8대 신대왕이 ↓ ↓ 재사의 아들로서 형제라고 기록되어 있으나 7대 차대왕(수성) ?(실명) 연령 등을 감안할 때 (A.D.146-165) 이 세 사람을 형제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자 그런데 후한서 구려 조에는, 8대 신대왕(백고) 수..

카테고리 없음 2012.10.01

윤여동설 - 김유신의 어머니 만명부인은 숙흘종의 딸이 아니라 손녀였다

윤여동설 - 김유신의 어머니 만명부인은 숙흘종의 딸이 아니라 손녀였다 김유신의 증조할아버지는 김구해(혹은 구차휴)로서 금관가야 마지막왕 구형왕이고, 증조할머니는 계화왕비인데, 삼국유사 가 락국기를 보면, 가야가 서기 562년 9월에 신라 진흥왕의 침공을 받고 항복했다고 기록..

카테고리 없음 2012.09.22

윤여동설 - 탈해왕과 김알지의 숨겨진 관계

윤여동설 - 탈해왕과 김알지의 숨겨진 관계 삼국사기 탈해왕 조를 보면, “탈해는 본래 다파나국에서 태어났는데, 그 나라는 왜국 동북쪽 1천여리에 있었다. 앞서 다파나국왕이 여국왕(여인국왕)의 딸에게 장가들어 아내를 삼았더니 임신한 지 7년만에 큰 알을 낳았다. 왕이 말하기를 ‘사람으로서 알을 낳았으니 상서롭지 못하다. 마땅히 버려야 한다’하였다. 그 어머니가 차마 버리지 못하고 비단으로 알과 보물을 함께 싸서 궤 속에 넣어 바다에 띄워 보냈다. 그랬더니 처음에는 금관국 해변에 닿았으나 금관국 사람들이 괴이하게 여겨 주워들이지 않았고, 다시 진한(신라) 아진포구에 닿았다.........때마침 해변에 사는 늙은 노파가 있어 궤를 열어 보니 웬 어린아이 하나가 들어 있었다. 그 노파가 이를 데려다 길렀다” 라..

카테고리 없음 2012.09.15

윤여동설 - 신라 지증왕-법흥왕-진흥왕 왕위계승의 진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신라 지증왕-법흥왕-진흥왕 왕위계승의 진실 - 최초주장             삼국사기 신라본기 22대 지증마립간 조를 보면,  “성은 김씨요 이름은 지대로이다[혹은 지도로 또는 지철로라고도 한다] 나물왕의 증손 습보갈문왕의 아들이요, 소지왕의 재종동생이다. 어머니는 김씨 조생부인이니 눌지왕의 딸이요, 왕비는 박씨 연제부인이니 등혼이찬의 딸이다. 왕은 체격이 크고 담력이 남보다 셌다. 전 임금(소지왕)이 죽고 아들이 없었으므로 왕위를 계승하니 이때 64세였다” 라고 기록되어 있어 지증마립간이 매우 늦은 나이에 왕위에 올랐고, 그가 나물왕의 증손인 습보갈문왕의 아들이라고 하였으니 지증왕 자신은 나물왕의 고손자였으며, 그의 출생년도가 서기 437년임을 알 수 있게 한다. 법흥왕은 지증왕의 아들이 ..

카테고리 없음 2012.09.09

윤여동설 - 신라 상대 왕위계승의 진실

윤여동설 - 신라 상대 왕위계승의 진실 삼국사기에는 신라 시조 혁거세거서간이 기원전 69년에 태어나 13세인 기원전 57년에 왕위에 올랐고, 재위 61년인 서기 4년 3월에 73세의 나이에 죽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고, 그 뒤를 이어 혁거세거서간의 아들인 남해왕(남해차차웅)이 왕위를 이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남해왕은 재위 21년인 서기 24년 9월에 죽고, 다시 그 아들인 유리왕이 왕위에 올라 재위 34년인 서기 57년 10월에 죽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신라 3대 유리왕과 4대 탈해왕은 처남매부사이였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므로 나이가 비슷하거나 동갑이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탈해왕이 유리왕의 뒤를 이어 4대 왕위에 오른 때인 서기 57년에 나이가 62세였다고 하였다. 따라서 탈해왕의 출생년도는 기원전..

카테고리 없음 2012.09.02

윤여동설 - 실위는 울란바토르 동쪽에 위치했던 나라

윤여동설 - 실위는 울란바토르 동쪽에 위치했던 나라 실위(失韋 또는 室韋로도 쓴다)는 지금 몽골의 선조라 한다. 위서(후위서, 북위서) 열전 실위 조를 보면, “실위국은 물길(필자주 : 거란) 북쪽 천리에 있는데, 낙양에서 6천리 떨어져 있다. 길을 나서 화룡에서 북쪽으로 천여리를 가면 거란국에 들어서고, 또 북쪽으로 10일을 가면 철수에 이르고, 또 북쪽으로 3일을 가면 개수가 있고, 또 북쪽으로 3일을 가면 독료산이 있는데, 그 산은 높고 크며 둘레가 3백여리이다. 또 북쪽으로 3일을 가면 큰 강이 있는데 이름은 굴리이다. 또 북쪽으로 3일을 가면 인수에 이르고, 또 북쪽으로 5일을 가면 그 나라에 도착한다(失韋國 在勿吉國北千里 去洛陽六千里 路出和龍北千餘里 入契丹國 又北行十日至啜水 又北行三日有蓋水, ..

카테고리 없음 2012.08.20

윤여동설 - 졸본부여와 백제 초기 왕위계승도 - 최초공개

윤여동설 - 졸본부여와 백제 초기 왕위계승도 - 최초공개                 졸본부여건국시조 동명왕(이름이 부여두막 혹은 두막루라 한다)......................................↓.................................. ↓                                            ↓2대 부여무서왕                            ?(실명) ↓                                            ↓3대 주몽왕(추모왕)                     우태(소서노와 혼인)(부여무서왕의 둘째부마, 고구려 건국시조)                                           ..

카테고리 없음 2012.07.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