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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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설 - 고구려 시조 주몽왕(추모왕)의 일생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고구려 시조 주몽왕(추모왕)의 일생 - 최초주장 고구려 시조 주몽왕(추모왕)의 성은 해씨이고, 기원전 79년 5월 5일 동부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해불리지이고, 어머니는 유화이다. ☆ 주몽은 북부여 해모수의 고손자로서, 증조할아버지는 해모수의 둘째 아들인 해진이고, 할아버지의 이름은 실전 되었고, 아버지의 이름은 해불리지이다. 어머니는 하백의 딸 유화라고 전해졌는데, 하백이란 강에서 물고기를 잡아 살아가는 어부를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주몽의 어머니는 신분이 낮은 어부의 딸이었다. 북부여는 고조선 말기인 기원전 239년에 해모수에 의해 건국되어, 7년 동안 주변국을 통합한 후 기원전 232년에 이르러 천제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그리하여 왕위가 2대 해모수리왕, 3대 해해사왕, 4대 해우..

카테고리 없음 2008.03.20

윤여동설 - 백제, 신라는 한반도에서 건국되지 않았다(2)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백제·신라는 한반도에서 건국되지 않았다(2) - 최초주장     삼국사기에는 백제의 동쪽에 (신라가 있고, 서쪽에) 낙랑이 있으며, 북쪽에 말갈이 있다고 했고, 신라의 서쪽에 백제가 있고, 남쪽에 가야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우리가 지금 한반도에 살고 있고, 마침 경주에 신라의 흔적들이 많고, 공주·부여에는 백제의 흔적들이 많으며, 북한 평양에는 고구려의 흔적들이 많이 있으므로 우리는 삼국사기 기록을 별 의심없이 한반도에 적용해 삼국의 위치를 한반도로 비정해 삼국사기의 모든 기록을 해석하려 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북한 평양을 낙랑이라 하게 되었고, 황해도를 대방이라 했으며, 경상남도 지역을 가야라고 하게 되었고, 강원도를 예라고 했으며, 두만강 부근과 연해주를숙신이요 말갈이요, 여진이..

카테고리 없음 2008.03.19

윤여동설 - 백제 신라는 한반도에서 건국되지 않았다(1)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백제 · 신라는 한반도에서 건국되지 않았다(1) - 최초주장  우리는 백제의 건국지 위례성이 지금의 서울이라 하고, 미추홀을 인천이라 하며 신라의 천년도읍 서라벌(금성)이 경주라고 하면서 삼국사기 기록 속의 백제, 신라 역사를 해석하려 한다.   그리하여 비류와 온조가 올랐다는 한산을 서울의 북한산 또는 북악산이라 하고, 문주왕이 옮긴 도읍 웅진을 충남 공주라 하며, 계백장군이 신라군을 막다 전사한 황산이 충남 연산 부근이라 하며, 백제의 마지막 도읍 사비를 충남 부여라 한다.   그리하여 웅천을 금강이라 하고, 백강도 부여를 지날 때의 금강이라 하며, 기벌포와 웅진구를 금강 하구 부근에서 찾으려 한다.     그러나 서울 부근에서 백제 위례성의 확실한 흔적을 찾을 수 없고, 인천부근에서 미..

카테고리 없음 2008.03.18

윤여동설 - 태조대왕을 알면 고구려의 초기역사가 보인다(2) - 최초주장

윤여동설 - 태조대왕을 알면 고구려의 초기역사가 보인다(2) - 최초주장 고구려의 왕권교체 - 연노부(소노부)와 계루부 고구려 705년 역사에서 왕위 계승에 있어 성씨가 바뀐 시기로 추정해 볼 수 있는 때는 해씨인 모본왕에서 고씨인 태조대왕으로 왕위가 이어지는 시기 밖에는 없다. 따라서 모본왕 이전은 해씨였을 것이고, 태조대왕 이후는 고씨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인데, 삼국사기에도 5대 모본왕을 해우 또는 해애루로 기록하고 있고, 4대 민중왕을 해색주, 3대 대무신왕을 대해주류왕이라고도 한다라고 하여 그의 성명이 해주류였음을 확인해 볼 수 있고, 또 유리왕은 그 아버지 주몽의 원래 성씨가 해씨였으므로 그 아들인 유리왕 역시 해씨인 것이다. ☆ 주몽은 북부여의 건국시조 해모수의 고손자이므로 당연히 그의 원래 ..

카테고리 없음 2008.03.16

윤여동설 - 태조대왕을 알면 고구려의 초기 역사가 보인다(1) - 최초주장

윤여동설 - 태조대왕을 알면 고구려의 초기역사가 보인다(1) - 최초주장 고구려 6대 태조대왕 궁은 고구려의 초기 역사를 밝히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인물이다. 그의 아버지 재사라는 인물은 유리왕의 어떻게 된 아들이고, 그의 시호를 왜 건국시조에게나 붙일 수 있는 태조왕(太祖王) 혹은 국조왕(國祖王)이라 했는지, 고구려 왕실의 성씨가 원래의 성씨였던 해씨에서 왜 고씨로 바뀌게 되었는지, 후한서나 삼국지에 기록되어 있는 고구려가 "본래 소노부(연노부)에서 왕이 되었으나 점점 미약해져 계루부에서 왕위를 대신하게 되었다"는 기록이 무슨 의미인지 아직 명확하게 밝히지 못하고 있다. 또한 위서 고구려전의 "옛날에 주몽이 부여에 있을 때 부인이 임신을 하였다. 주몽이 도망친 후 아들을 낳았는데 이름을 여해라 하였다...

카테고리 없음 2008.03.14

윤여동설 - 스키타이식 금관이 말해주는 한반도 고대사의 의문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스키타이식 금관이 말해주는 한반도 고대사의 의문 - 최초주장 [위 : 사마르티아 금관] [위 : 아프카니스탄 출토 금관] [위 : 한반도 고령에서 출토되었다고 전해지는 금관] [위 : 한반도 경주 황남대총 출토금관] 한반도 경주 부근의 고분들에서 출토된 금관들은 그 형태가 아름답기로 세계적으로도 유명한데, 금관총, 금령총, 서봉총, 황남대총, 천마총 등에서 출토되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러한 멋진 금관을 쓴 신라왕들의 모습을 마음 속으로 그려보기도 한다. 그런데 신라금관, 가야금관과 비슷한 형태를 가졌으며, 시기적으로 앞서는 금관이 중앙아시아 흑해연안에서도 발굴되어 우리를 매우 혼란스럽게 한다. 어떻게 그 멀리 떨어져 있는 곳에서 출토된 금관의 형태와 그곳으로부터 수만리나 떨어진 한반도 남쪽..

카테고리 없음 2008.03.12

윤여동설 - 위나라 관구검 기공비 비편이라 하는 것은 관구검비가 아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관구검기공비 비편이라 하는 것은 관구검비가 아니다 - 최초주장 서기 1906년 길림성 집안 판석령에서 도로공사를 하다가 손바닥 크기보다 조금 큰 비편이 하나 발견되었는데, 그 비편에는 "正始三年高句驪反/ 督七牙門討句驪五/ 復遣寇六年五月旋/ 討寇將軍巍烏丸單于/ 威寇將軍都亭侯/ 行裨將軍領"이라 새겨져 있었다. 그러자 사람들은 내용도 정확히 알 수 없는 그 비편 중의 "정시 3년에 고구려가 반했다"는 기록을 보고는 이 비편이 위나라 관구검기공비의 일부였을 것이라고 말들하고 있다. 이는 정시 3년에 고구려의 동천왕이 장수를 보내 요동 서안평을 침공했고, 정시 5년에 관구검이 격파했다"는 삼국지나 양서의 기록과 정시 7년에 위나라 관구검이 고구려를 침공해 환도성을 함락시키고, 장군 왕기를 시켜 동천왕..

카테고리 없음 2008.03.11

윤여동설 - 내몽골 오르도스형 동복(청동솥)이 한반도 김해에서 발굴된 이유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내몽골 오르도스형 동복(청동솥)이 한반도 김해에서 발굴된 이유 - 최초주장                                                                                                                                      오르도스란 지금의 내몽골 악이다사(鄂爾多斯)를 말하는 것으로서 섬서성 북쪽에 바로 위치하는데, 그 부근에서 출토된 동복과 동일한 형태의 동복(청동솥)이 한반도 김해에서도 출토되었고, 경주에서는 기마인물형토기가 발굴되어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따라서 오르도스 지역과 한반도 남쪽 지역 사이에 문화적 교류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어떻게 한반도 김해에서부터 무려 만리쯤이나 멀리..

카테고리 없음 2008.03.09

윤여동설 - 고이왕은 백제판 수양대군인가?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고이왕은 백제판 수양대군인가? - 최초주장 백제 8대 고이왕은 왕위에 올라 백제의 기초를 충실하게 닦아 놓은 왕이다. 그리하여 어느 역사학자는 수서와 북사에 기록되어 있는 "동명의 후손에 구태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매우 어질고 신의가 두터웠다. 비로소 대방 옛 땅에 나라를 세웠다. 한나라 요동태수 공손도의 딸을 아내로 삼았는데, 나라가 점점 번창하여 동이 중 강국이 되었다" 라는 기록과 연관시켜 백제가 실제 고이왕 때 건국되었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백제의 왕위 계승에 대하여 세밀하게 연구해보지 않고 말하는 엉터리 같은 주장이다. 삼국사기 백제본기 8대 고이왕 조를 보면, "고이왕은 개루왕의 둘째 아들이다. 구수왕이 왕위에 있은 지 21년에 죽고 그의 장자 사반이 왕위를 이..

카테고리 없음 2008.03.06

윤여동설 - 김헌창의 장안국(長安國)은 어디에 있었을까?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김헌창이 세운 한달 왕국 장안국의 위치 - 최초주장     우리는 고려 인종 때인 1135년에 일어났던 묘청의 난에 대해서 잘 알고 있고, 그때 묘청이 서경을 중심으로 세운 나라 이름이 대위국(大爲國)이었으며,   또한 신라 헌덕왕 때인 822년에 일어났던 김헌창의 난을 알고 있고 그때 김헌창이 웅천주를 중심으로 꽤나 넓은 강역을 차지하고 장안국(長安國)이라는 나라를 세웠었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리하여 우리는 지금 서경을 한반도 평양이라 하고,   웅천주는 충남 공주 부근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함으로써,  묘청은 한반도의 북한 평양을 중심으로 나라를 세웠었고,   김헌창은 한반도의 충남 공주를 중심으로 충청, 전라, 경상남도 지역을 차지하고 나라를 세웠었던 것이라고 역사를 해석하고 있는데..

카테고리 없음 2008.03.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