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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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설 - 신라의 진성여왕은 정말 비난받아 마땅한 왕일까? -최초주장

윤여동설 - 신라의 진성여왕은 정말 비난받아 마땅한 왕일까? - 최초주장    우리 역사상 여자가 왕위에 오른 나라는 신라 뿐으로서 27대 선덕여왕, 28대 진덕여왕, 51대 진성여왕이 바로 그들이다.   그런데 세 여왕 중 유독히 진성여왕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매우 좋지 않게 전해져 지금도 진성여왕은 신라시대의 난잡했던 여왕으로 인식되고 있고, 결국 나라를 혼란으로 몰고 간 대표적인 왕으로 치부되고 있다.      선덕여왕은 진평왕의 둘째 딸로서 진평왕에게 아들이 없었고, 그 언니였던 천명공주가 진골이었으며 진지왕의 장자였던 용수에게 시집을 갔던 관계로 진평왕은 성골인 둘째 딸 덕만공주에게 왕위를 물려주게 되어 왕위에 오를 수 있었는데, 이때 김유신이라는 용장을 얻게 되어 국방을 튼튼히 할 수 있었고,..

카테고리 없음 2008.02.15

윤여동시사 - 문화재 - 대한민국 국보1호 숭례문이 사라지고 말았다

윤여동시사 - 문화재 - 대한민국 국보1호 숭례문이 사라지고 말았다          옛날 어느 시골 사람들이 내기를 하고 있었다. 서울에 가본 적이 없는 사람은 남대문의 문지방이 대추나무로 만들어졌다고 하고, 서울에 가서 남대문을 구경하고 온 사람은 남대문에는 문지방이 없다고 했다.그런데 옆에 있던 사람들도 세상에 어떻게 대문에 문지방이 없겠느냐고 하여 결국 서울에 가본 사람이 내기에서 지고 말았다고 할 정도로 세상 모든 사람들의 관심의 대상이었던 남대문.   옛날 시골 사람들이 서울에 갔다왔다고 하면 남대문은 보았는가?얼마나 크던가? 하고 물었다는 바로 그 남대문이 불타 없어졌다. 아 안타깝다.2008년 2월 10일 밤 대한민국 국보1호 숭례문이 불탔다.무려 다섯시간 동안이나 불탄 후 역사에서 사라졌다..

카테고리 없음 2008.02.11

윤여동설 - 고구려의 황성(黃城)과 장안성(長安城)은 어디를 말하는가? - 최초공개

윤여동설 - 고구려의 황성(黃城)과 장안성(長安城)은 어디를 말하는가? - 최초공개    [하북성 승덕시 피서산장(열하행궁) 부근의 지형도인데, 이 부근이 고조선의 왕검성, 고구려의 평양성, 황성, 장안성 그리고 고려의 서경으로 비정되는 곳이다]   고구려, 백제, 신라의 중심 강역은 한반도가 아니라 지금의 발해 북쪽 북경 동쪽 난하를 중심으로 한 그 부근이었고, 난하가 옛 패수이다.   백제는 대륙인 발해 북쪽 지금의 중국 하북성 난하 부근에서 13대 근초고왕과 12대 계왕의 아들이었던 무광왕이 왕위다툼을 벌이다가, 패한 무광왕이 서기 365년경 한반도로 건너와 지모밀지에 도읍하고 다시 백제(반도백제)를 건국함으로써 한반도에 백제의 흔적을 남기기 시작했고,   대륙백제는 근초고왕의 후손들이 왕위를 이어..

카테고리 없음 2008.02.03

윤여동설 - 근초고왕을 알면 백제(대륙백제)가 보인다(3)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근초고왕을 알면 백제(대륙백제)가 보인다 (3) - 최초주장 [2편에서 계속] 백제의 근초고왕은 실제로 요서 진평현 땅을 차지했었다   송서 백제국전을 보면, "百濟國 本與高驪俱在遼東之東千餘里 其後高驪略有遼東 百濟略有遼西 百濟所治 謂之晉平郡晉平縣(백제는 본래 고구려와 함께 요동 동쪽 1천여리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 후 고구려가 요동을 차지했고, 백제는 요서를 차지했다. 백제가 다스리던 곳을 소위 진평군 진평현이라 한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이때 백제가 요서 진평군 진평현 땅을 차지했음을 알 수 있고,   양직공도 백제국사를 보면, "百濟舊來夷馬韓之屬 晉末駒麗略有遼東樂浪 [百濟]亦 [略]有遼西晉平縣 自晉已來常修蕃貢(백제는 옛날에 왔던 마한의 속국이었다. 진나라 말기에 [고]구려가 요동, 낙랑을 ..

카테고리 없음 2008.01.31

윤여동설 - 근초고왕을 알면 백제(대륙백제)가 보인다(2)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근초고왕을 알면 백제(대륙백제)가 보인다 (2) - 최초주장 [1편에서 계속] 근초고왕의 업적은 왜 20년 간 비어 있을까? 근초고왕은 백제 역사에 있어 특별한 존재인데도 불구하고 그가 왕위에 오른 초기 업적은 전혀 기록되어 있지 않고, 재위 21년(A.D.366) 조부터 본격적으로 기록되기 시작한다. 그의 업적이 전혀 없는 것일까? 아니면 누락된 것일까? 이를 밝히는 것이야말로 대륙백제와 반도백제의 비밀을 알아낼 수 있는 단서임을 아는 이는 별로 많지 않은 듯하다. 앞에서도 언급되었듯이 근초고왕은 장자파로서 11대 비류왕의 둘째 아들이었고, 비류왕은 약 80세쯤의 나이로 죽었다. 그런데 이때 비류왕의 장자는 일찍 죽었던 것으로 보이므로 비류왕이 죽었을 때 근초고왕은 비류왕의 뒤를 이어 바로..

카테고리 없음 2008.01.30

윤여동설 - 근초고왕을 알면 백제(대륙백제)가 보인다(1)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근초고왕을 알면 백제(대륙백제)가 보인다 (1) - 최초주장 백제 13대 근초고왕은 비밀의 왕국 백제의 역사를 밝히기 위해 매우 중요한 왕이다. 지금 우리는 그가 백제 역사상 가장 넓은 강역을 이루었고, 고구려와의 전쟁에서도 승리했으며, 백제 최초의 역사서도 만들었고, 이때부터 백제가 비로소 중국과 교류하게 되었다고 알고 있다. 따라서 그가 백제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아직까지도 근초고왕에 대하여 확실하게 밝혀진 것은 없고, 그와 관련된 거의 모두가 논란 중에 있다. 즉 근초고왕의 이름이 무엇이고, 왕비는 누구이며, 삼국사기 백제본기에는 그의 업적이 왜 20년 간이나 아무 것도 기록되지 않았고, 앞 왕이었던 계왕과는 무슨 관계이며, 중국으로부터 받은 작위는 무엇이..

카테고리 없음 2008.01.29

윤여동설 - 한반도 지형과 일치하지 않는 지방별칭 속에 숨겨진 비밀 - 최초주장

윤여동설 - 한반도 지형과 일치하지 않는 지방별칭의 의미는? - 최초주장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신증동국여지승람의 팔도총도] 우리는 지금 한반도 강원도를 관동, 관서지방(關東地方)이라 하고, 평안도를 또 관서지방(關西地方)이라고도 하며, 함경도를 관북지방(關北地方)이라 하기도 하는데, 그 지명의 의미는 관(關)의 동쪽 또는 서쪽 그리고 관의 북쪽에 해당하는 지방이라는 뜻으로서 어느 관 즉 관문을 중심으로 나누고 있고, 관북 (함경도) 관서 관서 관(관문) 관동 (평안도) (강원도서쪽지역) (강원도동쪽지역) 전라도를 호남지방(湖南地方)이라 하고, 충청도를 호서지방(湖西地方)이라 하기도 하는데, 그 지명의 의미는 호수의 남쪽 또는 호수의 서쪽에 위치하는 지방이라는 뜻으로서 어느 호수를 중심으로 나누고 있다. ..

카테고리 없음 2008.01.28

윤여동설화 - 효녀 심청의 고향과 인당수는 지금의 어디를 말하는가?

윤여동설화 - 효녀 심청의 고향과 인당수는 지금의 어디를 말하는가? 눈먼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려고 효녀 심청이 뱃상인에게 공양미 삼백석에 몸을 팔아 인당수에 몸을 던졌으나 심청의 효성에 감동한 용왕이 그녀를 환생시켜 살려보내 왕후가 되어 부녀가 다시 만나고 아버지도 눈을 뜨게 된다는 내용의 효녀 심청 이야기를 모르는 한국인은 없다. 자식이 부모에게 절대효도를 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유교를 숭상하던 조선시대에 이르러 이 이야기를 백성들에게 널리 전파해 지금까지도 전해지게 되었을 것인데, 이야기 줄거리가 너무도 사실적이기 때문에 사람들 중에는 이 이야기가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었거나 최소한 비슷한 일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지금 인천 옹진군과 전남 곡성군, 충남 예산군과 경기도 화성군이 심..

카테고리 없음 2008.01.24

윤여동설화 - 춘향전의 원전은 고구려 안장왕과 백제 처녀 한씨 미녀와의 사랑 이야기인가?

윤여동설화 - 춘향전은 고구려 안장왕과 백제 처녀 한씨 미녀와의 사랑이야기 남원 광한루 삼국사기 권제37 잡지제6 지리4 고구려, 백제 조를 보면, "왕봉현[개백이라고도 한다. 한씨 미녀가 안장왕을 만난 곳이라 하여 왕봉으로 불렀다]" "달을성현[한씨 미녀가 높은 산마루에서 봉화를 올려 안장왕을 맞은 곳이라 하여 후일에 고봉으로 불렀다]" 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이곳이 고구려 22대 안장왕과 한씨 미녀의 사랑 이야기가 시작된 곳이라는 것을 알 수 있고, 우리 삼국 역사의 정사를 기록한 삼국사기에도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이것이 역사적 사실일 가능성이 많다고 할 수 있다. 전해오기를 옛날 고구려 문자왕의 아들인 흥안이 태자시절 왕명을 받아 신분을 감추고 장사꾼으로 변복하고 백제의 개백현으로 몰..

카테고리 없음 2008.01.23

윤여동설 - 문익점이 목화씨를 정말로 처음 가져왔을까?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문익점이 정말로 목화씨를 처음 가져왔을까? - 최초주장 지금은 잘 볼 수 없는 목화꽃과 목화다래 그리고 하얗게 벌어진 목화송이. 달빛 비치는 밤에 들판을 하얗게 수놓던 약간은 낭만적이기도 한 목화. 화학섬유에 밀려 지금은 목화를 재배하는 사람이 거의 없고, 솜이불을 덮는 사람도 별로 없지만 몇 십년 전만 해도 시골에 가면 목화를 심는 집들이 꽤나 많았고, 이불은 거의 이 목화 솜으로 만들어 덮고 추운 겨울을 넘겼다. 특히 시집 보낼 딸을 둔 집에서는 반드시 목화를 심어 그 목화 솜으로 비단 원앙금침을 만들어 혼수품으로 보내곤 했는데, 먹을 것이 없던 시절 동네 개구장이들이 그 목화다래를 따먹다가 목화밭 주인에게 들켜 혼이 나기도 했다. ☆ 목화다래가 익어 벌어지기 전 푸를 때에는 수분도 많고..

카테고리 없음 2008.0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