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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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설 - 한반도 부여 정림사지 5층석탑은 당나라의 승전비일까? - 최초주장

윤여동설 - 한반도 부여 정림사지 5층석탑은 당나라의 승전비일까? - 최초주장 충남 부여에 가면 부소산 남쪽에 정림사지가 있고, 그 곳에 국보로 지정되어 있는 정림사지 5층석탑이 있다. 그 탑은 백제 시대 목탑에서 석탑으로 변형되는 초기의 석탑으로서 불탑 형식연구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고 판단되어 국보로 지정되었는데, 그 형태가 매우 아름답고, 안정감이 있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석탑의 탑신에는 글자가 빼곡하게 새겨져 있는데 이것이 백제 멸망을 기록한 논란 많은 대당평백제국비명(大唐平百濟國碑銘)이다. 당나라가 백제국을 평정하고 세운 비석이라는 의미이고, 현경 5년(A.D.660) 경신년 8월 15일에 세웠다고 새겨져 있다. 기록대로라면 이 탑은 불탑이 아니라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여 세운 전..

카테고리 없음 2008.01.03

윤여동설 - 팔만대장경이 한반도 강화도에서 판각된 것이 아니라고라? - 최초주장

윤여동설 - 팔만대장경이 한반도 강화도에서 판각된 것이 아니라고라? - 최초주장                                       우리는 지금 한반도 황해도가 옛 대방군이었고, 고려가 황해도 개성을 도읍으로 하고 500년 왕조를 존속했던 것으로 알고 있으나 사서의 기록들은 우리의 상식과는 너무도 다르게 기록되어 있다.   구오대사 고려 전을 보면,  "고려는 본래 부여의 별종이다.  그 나라는 평양성에 도읍 하였는데 곧 한나라 낙랑군의 옛 땅으로서 경사의 동쪽 4천리쯤에 위치한다.  동쪽으로는 바다를 건너 신라에 이르고, 서북쪽으로는 요수를 건너 영주에 닿으며, 남쪽으로는 바다를 건너 백제에 닿고 북쪽으로는 말갈에 닿는다.   (강역의 크기가) 동서 3천1백 리이고, 남북 2천리이다."..

카테고리 없음 2008.01.02

윤여동설 - 한반도 제주도는 삼국사기 기록 속 탐라국이 아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한반도 제주도는 삼국사기 기록 속 탐라국이 아니다 - 최초주장 [한반도 제주 애월읍의 해중고인돌] 삼국사기 백제본기 동성왕 20년(A.D.498) 조를 보면, "8월 왕이 탐라(耽羅)에서 조공과 조세를 바치지 않는다 하여 그를 치려고 몸소 무진주에 이르니 탐라에서 이 소문을 듣고 사신을 보내 사죄하므로 중지했다[탐라는 탐모라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우리는 지금 이 사건이 한반도에서 일어났던 일이라고 생각해 이때의 백제가 지금의 충청, 전라도 지역에 위치하고 있었고, 탐라는 곧 제주도를 말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그리하여 당시 백제의 도읍이었던 웅진성 즉 지금의 충남 공주를 출발한 동성왕이 탐라국인 제주도를 침공하기 위해 무진주인 광주쯤에 도착했을 때 탐라에서 사신을 보내 사죄했기 때문에 정벌..

카테고리 없음 2007.12.31

윤여동설 - 한국인은 왜 족보를 만들었을까?

윤여동설 - 한국인은 왜 족보를 만들었을까? 우리는 지금 족보라는 것을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기 쉽지만 우리나라에서 개인의 신분을 확인해 줄 수 있는 서류 두 가지 중 하나가 바로 족보이다. 법적으로는 호적이 있고, 다른 하나는 각 가문에서 기록해 내려오고 있는 족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족보는 부모는 물론 출생년월일, 배우자, 자녀, 관직, 사망일시, 죽어 묻힌 묘의 위치 등이 세밀하게 기록되기 때문에 어찌 보면 호적보다도 더욱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족보라는 것이 일반적으로 1천년 내지 2천년 전의 조상들로부터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족보를 세밀하게 기록해 온 것이 아주 먼 옛날부터일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 우리가 현재 보고있는 각 성씨들의 족보는 거의 조..

카테고리 없음 2007.12.27

윤여동설 - 고인돌은 한반도에서 처음 만들어졌다?

윤여동설 - 고인돌은 한반도에서 처음 만들어졌다? 지금 한반도 어디를 가도 산이고 들이고 묘지를 볼 수 있듯이 어느 동네를 가도 고인돌 한 개쯤은 반드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옛날에는 훨씬 더 많았겠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훼손되어 지금 전해지는 것은 옛날에 비해 많이 줄어들었을 것이다. 우리가 고인돌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비교적 근세의 일로서 옛날에는 그것이 무슨 용도로 만들어졌는지 알지 못하고, 사람들은 고사를 지내는 제단으로 사용하기도 했고, 때로는 바위에 걸터앉아 쉬는 휴식장소로 사용하기도 했으며, 아이들은 소꿉장난놀이터로 이용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근세에 이르러 그 고인돌에서 돌칼, 돌화살촉, 청동기 등의 부장품이 출토되어 고인돌도 선사시대에 만들어졌음을 알게 되었고, 그 용도가 무덤일 ..

카테고리 없음 2007.12.25

윤여동설 - 울산 반구대는 사냥물을 나누던 장소였다?

윤여동설 - 울산 반구대는 사냥물을 나누던 장소였다? 한반도 울산 반구대 근처에 살던 옛 사람들이 강변의 바위에 그림을 새겨 놓았는데, 우리는 지금 그것을 "울산 반구대 암각화"라 부른다. 그들이 언제, 왜 이러한 그림을 바위에 새겨 놓았는지 지금 그것을 확실히는 알 수 없으나 무언가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바위 돌을 쪼아 그림을 새겨야 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고, 그곳에 온갖 그림을 새겨 놓았을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울산 반구대 암각화인데, 대곡천 중류의 천변에 위치한 넓은 바위 면에 여러 종류의 고래, 여러 종류의 동물, 옛사람모양 등을 새겨 놓은 것이다. 실물을 보고 그렸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상당히 사실적이다. 그리하여 어느 사람은 그곳이 수렵어로를 잘 하게 해달라고 천지신명에게 제사지내는..

카테고리 없음 2007.12.23

윤여동시사 - 이제는 역사를 바꾸어야 할 때다

윤여동시사 - 역사학자들은 왜 잃어버린 대륙의 옛 땅을 찾으려 하지 않는가?    한국의 역사학자라는 사람들은 참으로 이상한 사람들이다.  그 수많은 역사서들이 우리의 옛 땅이 대륙의 북경 부근까지였다고 알려 주고 있는데도 그들은 지금까지도 그 땅이 우리의 옛 땅이 아니라고 한다.    다른 나라는 단 한줄 역사서의 기록을 근거로 자기들의 옛 땅을 주장하는데, 우리의 역사학자들은 그 많고 많은 사서들의 기록을 뻔히 보고 있으면서도 그 기록을 억지로라도 한반도로 끌어들여 해석함으로써 어떻게 하면 역사강역을 조금이라도 줄여볼까 생각하는 사람들로 보인다.    일반 국민들 중에도 북경 부근까지가 우리의 옛 땅이었음을 인식하고 있는 사람들이 무수히 많은데도 불구하고 정작 역사학자라는 사람들은 좀처럼 그를 인정하..

카테고리 없음 2007.12.21

윤여동설 - 한반도에 한(韓)이 없었다고라? - 최초주장

윤여동설 - 한반도(韓半島)에 한(韓)이 없었다고라? - 최초주장 우리는 지금 역사적으로 한반도의 남부에 "한(韓)"이 위치하고 있었다고 인식하고 "한반도(韓半島)"라고 부른다. 그러나 한반도에 한(韓)은 없었다. 마한(馬韓)도 없었고, 진한(辰韓)도 없었고, 변한(弁韓) 역시 한반도에는 없었다. 경기, 서울, 충청, 전라도는 마한이 아니었고, 경상북도는 진한이 아니었으며, 경상남도는 변한이 아니었다. 한은 방 4천리에 이르는 넓은 강역을 가진 나라였고, 마한에는 무려 54국에 이르는 소국이 있었고, 진한은 12소국, 변한도 12소국으로 이루어진 나라였다. 한왕은 사실 왕이 아니라 78개 제후국을 다스리는 황제였다. 아래 글은 중국 사서들이 말하는 한(韓)에 대한 기록이다. 필자는 방 4천리에 이르는 대..

카테고리 없음 2007.12.18

윤여동설 - 우리의 강단사학과 재야사학은 무엇을 가지고 논쟁하는가?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우리의 강단사학과 재야사학은 왜 우리 고대사에 대해 끝없는 논쟁을 하고 있는 것일까? - 최초주장 승덕시 피서산장(열하행궁) 승덕시 피서산장(열하행궁) 승덕시 피서산장(열하행궁) 승덕시 봉추산 지금 우리 역사의 상고사와 고대사에 대한 정설은 존재하지 않는다. 재야사학은 우리 고대사의 중심이 대륙이라 하고, 강단사학은 한반도라 한다. 그리하여 강단사학에서 우리 고대사에 대한 연구발표를 하면 재야사학은 그를 인정하지 않고 거침없이 반도식민사관이라 매도하고, 재야사학에서 우리 고대사에 대해 기존 역사 인식과 다른 새로운 주장을 하게 되면 강단사학은 노인네들이 역사소설을 쓰고 있다고 치부해 버린다. 이들은 왜 같은 우리 역사를 연구하면서도 역사의 중심점을 보는 시각이 대륙과 한반도로 확연히 다르게 ..

카테고리 없음 2007.12.17

윤여동설 - (2)대륙 낙랑군, 평양 낙랑국 분리설은 거짓말이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낙랑군은 대륙에 있었고, 낙랑국은 한반도 평양에 있었다는 주장은 거짓말이다(후편) - 최초주장 [전편에서 계속] [일제강점기에 발견 되었다는 낙랑 점제현 신사비 - 역사 왜곡을 위해 일제가 갈석산 부근으로부터 옮겨왔다는 주장이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한반도 역사와 대륙역사를 어떻게 연결 지어 설명해야 하는 것일까? 우리가 지금까지 그 관계를 명쾌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낙랑군과 낙랑국 그리고 후한 광무제가 살수이남 땅에 설치했던 후한낙랑군과의 관계는 그리 혼란스러워 할 일이 아니다. 기원전 194년 위만이 준왕의 왕검성인 지금의 하북성 승덕시 부근을 갑자기 쳐서 빼앗아 스스로 왕위에 오르자 고조선의 준왕은 그 남쪽으로 도망쳐 지금의 하북성 당산 풍윤부근에 다시 도읍을 정하고 한왕에 올랐다...

카테고리 없음 2007.1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