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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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설 - (1) 대륙 낙랑군, 평양 낙랑국 분리설은 거짓말이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낙랑군은 대륙에 있었고, 낙랑국은 한반도 평양에 있었다는 주장은 거짓말이다(전편) - 최초주장 [하북성 승덕시 경추산] [하북성 승덕시 쌍탑산] [갈석산 입구에 있는 글- 천년의 수수께끼를 어찌 풀 수 있을 것인가?라고 쓰여 있는데, 이 산은 아홉명의 황제들이 올랐다는 원래의 우공갈석이 아니라 후대인 명나라때 붙여진 이름이다] 옛날 위만은 오갈 데 없던 자신의 망명을 받아들여주고 박사로 임명해 나라의 서쪽 변경에 영지까지 내려주었던 고조선 준왕의 은혜를 배반하고, 한나라 군이 열 군데 길로 침공해 오니 왕검성으로 가서 왕을 보호하겠다고 거짓말로 보고하고, 군사들을 이끌고 왕검성으로 온 뒤 갑자기 돌변하여 준왕이 있는 왕검성을 공격해 빼앗아 스스로 왕위에 오른 후 사방 수천리에 이르는 땅을 차..

카테고리 없음 2007.12.12

윤여동설 - 신라가 숯때문에 멸망했다고?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신라가 숯 때문에 멸망했다고? - 최초주장 천년 왕국 신라가 숯 때문에 멸망하게 되었을 것이라고 주장하면 많은 사람들은 무슨 뚱딴지같은 말을 하고 있는 것인가 하고 매우 의아하게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삼국유사에는 "49대 헌강대왕 때에는 서울로부터 지방에 이르기까지 집과 담이 이어져 있고, 초가는 하나도 없었다" 라고 기록하고 있고, 삼국사기 신라본기 헌강왕 6년(A.D.880) 조에는, "9월 9일에 왕이 좌우 신하들과 함께 월상루에 올라 사방을 바라보았는데, 경도(서라벌, 금성)의 민가들이 서로 이어져 있고, 노래와 풍악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왕이 시중 민공에게 말하기를, '내가 듣자니 지금 민간에서는 지붕을 기와로 덮고, 짚으로 해일지 않는다 하고, 밥을 숯으로 짓고 땔감을 때지 않는..

카테고리 없음 2007.12.11

윤여동설 - 포석정은 나라의 운명을 점치던 곳이었다?

윤여동설 - 포석정은 나라의 운명을 점치던 곳이었다? 삼국유사 기이 제2 처용랑과 망해사 조를 보면, 신라 49대 헌강왕 때 "왕이 포석정에 갔을 때 남산신이 왕 앞에 나타나 춤을 추어 보였는데, 좌우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고, 왕에게만 보였다. (남산신이) 춤을 추어 보였고, 왕이 손수 사람들 앞에서 춤을 따라 추었다. 신의 이름을 혹은 상심이라 했으므로 지금까지 나라 사람들에게 이 춤이 어무상심 또는 어무산신이라 전해지게 되었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또 삼국사기 신라본기 경애왕 4년(A.D.927)조를 보면, "가을 9월 견훤이 고울부로 신라군을 공격해와 왕이 고려 태조에게 구원을 청하니 태조가 장수에게 명하여 강한 군사 1만을 출동시켜 구원하게 하였으나 이 구원병이 아직 오지 않았으므로 견훤이 겨울..

카테고리 없음 2007.12.09

윤여동설 - 삼국유사는 일연 개인의 저작물이 아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삼국유사는 일연 개인의 저작물이 아니다 - 최초주장 삼국유사는 왕명에 의해 만들어진 삼국사기와는 달리 한 승려가 전국에 흩어져 전해지고 있던 비전의 이야기들을 모아 만든 책이라 전해지고 있다. 삼국유사는 우리 상고사로부터 후백제까지의 역사를 먼저 언급하고 그 다음에 불교의 역사를 알 수 있도록 기록되어 있어 우리 고대역사와 불교의 역사를 동시에 알 수 있게 하는데, 그 내용이 정사인 삼국사기와는 달리 역사의 전면보다는 잘 보이지 않는 역사 뒷면의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어 우리 역사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데 필자는 이 책을 만든 목적이 일반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실은 사찰의 승려들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고, 또 일연 개인이 아닌 종단차원에서 삼국유사를 만들었..

카테고리 없음 2007.12.07

윤여동설 -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난하 부근 대륙삼국의 역사서이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난하 부근 대륙삼국의 역사서이다 - 최초주장 세상이 또 한번의 새 시대를 맞이하기 위해 용틀임을 하고 있는 이때 우리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들도 새 시대를 맞이하기 위한 준비를 해야 할 때다. 우리는 지금 조선시대 사람들처럼 한반도만이 우리 역사의 전부라고 인식하며 웅크리고 살 것인지, 우리 선조들이 내몽골 부근까지를 차지하고 주변 세력들과 끊임없이 다투고 경쟁하며 역사를 이어온 민족이었다고 자부하며 활개펴고 살 것인지 선택해야할 기로에 서 있다. 그런데 우리 역사를 논하려면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제외하고는 단 한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우리가 잘 알고 있다시피 삼국사기는 김부식을 비롯한 고려의 학자들이 인종의 명을 받아 1145년에 편찬한 신라· 고구려· 백제 ..

카테고리 없음 2007.12.06

설화 - 별빛이 입속으로 들어가 아들을 낳은 신라 유례왕의 어머니

별빛이 입 속으로 들어가 임신되어 아들을 낳은 신라 유례왕의 어머니 삼국사기 신라본기 11대 조분이사금 조를 보면, "왕비는 아이혜부인인데 나해왕의 딸이다" 라는 기록이 보이고, 14대 유례이사금 조에는, "조분왕의 장자이다. 어머니는 나음갈문왕의 딸 박씨인데, 그녀가 밤길을 가다가 별빛이 입..

카테고리 없음 2007.12.05

윤여동설 - 실패한 백제 최초의 수렴청정 - 팔수태후

윤여동설 - 욕정에 눈이 멀어 명을 재촉한 구이신왕의 어머니 팔수태후   백제 18대 전지왕의 왕비 이름은 팔수이다.  전지왕의 아버지는 17대 아신왕이고 어머니는 해씨였고, 아신왕의 아버지는 15대 침류왕이고 어머니는 진씨였고, 침류왕의 아버지는 14대 근구수왕이고 어머니는 아이부인이었다. [가계도]                                  14대 근구수왕 = 아이왕비(진씨)                                        .............................|.......................                    ↓장자                                            ↓차자             ..

카테고리 없음 2007.12.04

윤여동설 - 바보온달은 한반도에서 죽지 않았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바보온달은 한반도에서 죽지 않았다 - 최초주장 『온달은 고구려 25대 평강왕(평원왕, 재위 559-590)시대 사람이다. 그의 용모는 용을 닮았으나 동냥그릇을 들고 맨 날 웃고 다녔다. 집안이 몹시 가난하여 항상 걸식으로서 어머니를 봉양하였는데 찢어진 옷과 낡은 신발을 신고 거리를 왕래하니 당시 사람들이 그를 바보온달이라 불렀다. 고구려 25대 평원왕의 딸이 어려서 울기를 잘하므로 왕이 웃으며 말하기를, "네가 항상 울어 내 귀를 시끄럽게 하니 커서도 필시 사대부의 아내가 되기는 틀렸으니 바보온달에게나 시집보내야 하겠다" 하였는데, 왕이 그런 말을 자주 하였다. 딸의 나이 16세가 되어 왕이 상부 고씨에게 시집을 보내려 하였더니 공주가 말하기를 "대왕께서 항상 말씀하시기를 '너는 필시 온달의..

카테고리 없음 2007.12.03

윤여동설화 - 호동왕자와 낙랑공주

윤여동설화 -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 호동왕자와 낙랑공주 피서산장 현판 피서산장(열하행궁) 상제각 우리는 지금 고구려 호동왕자와 낙랑공주의 이루지 못한 사랑 이야기를 매우 안타까워하는데, 삼국사기를 잘 읽어보면 호동왕자의 아버지인 대무신왕이 호동왕자와 낙랑공주의 사랑을 역이용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고구려 대무신왕의 아들이었던 호동왕자가 남옥저에 놀러 갔는데, 낙랑왕 최리가 그를 보고 "그대의 용모를 보니 보통 사람이 아니다. 그대가 북국 신왕(대무신왕)의 아들이 아닌가?" 하고는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가 자기의 딸로써 아내를 삼게 하였다. 뒤에 호동이 본국으로 돌아와 가만히 사람을 보내 낙랑공주에게 말하기를 "당신이 무기고에 들어가 (낙랑국의) 북과 나팔을 부수어 버릴 수 있다면 ..

카테고리 없음 2007.12.02

윤여동설 - 청나라는 신라 마의태자의 후예가 세운 나라인가?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청나라는 신라 마의태자의 후예가 세운 나라인가? - 최초주장 고려사절요 고려 예종 을미 10년(A.D.1115) 조에는, "생여진의 완안아골타가 황제라 칭하고, 이름을 민(旻)이라 고쳤으며, 국호를 금(金)이라 했다. 그 풍속이 흉노와 같아서 모든 부락에 성곽이 없고, 산과 들에 흩어져 살며, 문자가 없어 끈을 매어 의사소통을 했다. 그 지방에 돼지, 양, 소, 말이 많은데, 말은 준마가 많다. 사람들은 사납고 날래며 어릴 때부터 활을 당겨 새나 쥐를 쏘기 때문에 장성하여 활을 쏘지 못하는 사람이 없으며, 말달리는 전쟁연습을 해 경병이 되는데, 여러 부족이 제각각 우두머리라 하여 통일되지 못했다. 그 땅의 서쪽이 바로 거란이고, 남쪽은 바로 우리나라(고려)이기 때문에 그들은 일찍부터 거란과 ..

카테고리 없음 2007.1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