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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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설 - 삼국사기 신라본기 속 지진기록은 한반도 경주에서 발생한 지진 기록이 아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삼국사기 신라본기 속 지진기록은 한반도 경주에서 발생한 지진 기록이 아니다 - 최초주장 5대 파사왕 21년(A.D.100) 겨울10월 서울(서라벌)에 지진이 있어 민가가 쓰러지고 죽은 자가 생겼다. 11대 조분왕 17년(A.D.246) 11월에 서울(서라벌)에 지진이 있었다. 15대 기림왕 7년(A.D.304) 가을8월 지진이 있었고 샘이 솟았다. 9월에 서울(서라벌)에 지진이 있어 민가를 쓰러뜨리고 죽은 자가 있었다. 17대 나물왕 33년(A.D.388) 여름4월 서울(서라벌)에 지진이 있었다. 6월에 또 지진이 있었다. 18대 실성왕 5년(A.D.406) 겨울10월 서울(서라벌)에 지진이 있었다. 19대 눌지왕 42년(A.D.458) 봄2월 지진이 있었고 금성 남문이 저절로 무너졌다. 2..

카테고리 없음 2016.10.01

윤여동설 - “성정왕후(成貞王后)”는 신라 33대 성덕왕의 첫 왕비가 아니라 32대 효소왕비이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성정왕후(成貞王后)”는 신라 33대 성덕왕의 첫 왕비가 아니라 32대 효소왕비이다 - 최초주장 31대 신문왕 = 신목왕후 ..........................................|............................ ↓장자 ↓차자 32대 효소왕 = 성정왕후 33대 성덕왕 = 엄정왕후 = 소덕왕후 (687-702) (691-737) |................................. ↓유복자 ↓장자 ↓차자 ↓3자 김수충 김중경 34대효성왕 35대 경덕왕 (702년생) (705년생) (721년생) (722년생) (요절) ↓ 36대 혜공왕 (758년생) 필자는 지금까지 성정왕후의 신분에 대하여, 성정왕후는 신라 33대 성덕왕의 첫 왕비가 아니라 32대..

카테고리 없음 2016.09.10

윤여동설 - 전욱고양씨의 도읍 대극성(大棘城)은 지금의 어디를 말할까?

윤여동설 - 전욱고양씨의 도읍 대극성(大棘城)은 지금의 어디를 말할까? 황제헌원씨(黃帝軒轅氏)는 탁록(涿鹿 :지금의 하북성 탁주)에 도읍하고 치우천왕(蚩尤天王)과 천하를 놓고 다투었고, 황제헌원의 손자(외손자라고도 한다)인 전욱고양씨(顓頊高陽氏)는 대극성(大棘城 : 극성이라고도 한다)에 도읍했다고 전해 오는데, 지금 우리는 이 대극성의 위치를 잃어버렸다. 전설 속 대극성은 과연 지금의 어디를 말하는 것일까? 그런데 고대의 요수는 지금의 영정하(永定河)를 말하는 것이고, 고대의 요동(遼東)은 영정하 동쪽인 북경 부근을 말하는 것이며, 요서(遼西)는 영정하의 서쪽 방산(房山)부근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진서(晉書) 권108 재기 제8 모용외전을 보면, 전연(前燕)의 모용외(慕容廆)가 대극성이 전욱고양씨의 ..

카테고리 없음 2016.08.26

윤여동설 - 한반도 강화(江華)는 고대의 혈구(穴口)가 아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한반도 강화(江華)는 고대의 혈구(穴口)가 아니다 - 최초주장            규원사화 단군기를 보면, “단군이 제후를 봉한 후 천하가 밝아지고 고요하더니 10년 만에 남이(南夷)의 반란이 일어났다. 갑비고차(甲比古次)는 이미 남이인의 땅이었다. 그리하여 부여(夫餘)를 보내어 군사를 거느리고 평정하였다. 후에 부소(夫蘇)와 부우(夫虞)를 더 보내어 갑비고차에 성을 쌓게 하고, 남쪽으로 내려와서 지키게 하였다. 이곳이 지금 강화도의 삼랑성(三郞城)이다.   마리산(摩利山)에는 참성단(塹城壇)이 있으니 이것이 곧 단군이 단을 만들고 하늘에 제사지내던 두악(頭嶽)이다......  단군이 하늘에 제사지내는 곳은 북쪽으로 사냥가면 태백산(太白山)이었고, 남쪽으로 가면 두악(頭嶽)이었다.   갑비고..

카테고리 없음 2016.08.21

윤여동설 - 북경부근이 고대의 요동(遼東)이 확실하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북경부근이 고대의 요동(遼東)이 확실하다 - 최초주장 한반도를 중심으로 우리의 모든 역사를 해석하는 사람들은 요동(遼東)이 옛날이나 지금이나 그 위치가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지금의 요하가 옛 요수였고, 그 동쪽이 요동이었을 것으로 생각하여 옛 사서에 요수와 요동이 언급되면 응당 요하와 그 동쪽지역을 염두에 둔다. 옛날 당 태종이 고구려를 침공할 때 요택을 고생하며 건넜다는 기록을 보면 요하 하류의 저습지를 떠올리고, 요동성 전투에 관한 기록을 보면 요양지역을 떠 올리는 식이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일 뿐 고려 때까지의 요동은 지금의 북경부근을 말하는 것이었고, 요수는 지금의 영정하를 말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옛날 한 무제가 위만조선을 침공할 때 육군을 이끈 순체가 출발한 요동은 ..

카테고리 없음 2016.08.08

윤여동설 - 한반도에 고려(高麗)때 그린 지도는 한 점도 없고 조선(朝鮮)지도만 많이 있는 이유

윤여동설 - 한반도에 고려(高麗)때 그린 지도는 한 점도 없고 조선(朝鮮)지도만 많이 있는 이유 [원나라 때 제작된 거란지리지도로서 지금의 북경부근지도인데 지도의 동쪽 끝에 “고려(고구려), 백제, 신라계”라고 표시되어 있다. 이는 고구려, 백제, 신라가 한반도가 아닌 북경 부근에 위치하고 있었음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고, 그 삼국 땅에서 일어난 고려는 당연히 북경부근에 위치하고 있었음은 두 말할 것도 없는 일이다] [위 지도는 천하전여총도라고 하는 지도 중 고려부근지도이다. 천하전여총도는 1418년에 제작된 천하제번직공도라고 하는 옛 지도를 1763년도에 모사했다는 세계지도이다. 지도 자체가 현대처럼 정확하지는 않지만 고려를 등주와 내주가 있는 지금의 산동반도 북쪽에 표시해 놓았고, 왜노(왜국 즉 일본을..

카테고리 없음 2016.07.22

윤여동설 - 고려는 북경동쪽 발해 북쪽에 위치하고 있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고려는 북경동쪽 발해 북쪽에 위치하고 있었다 - 최초주장 선화봉사 고려도경 권3 봉경 조를 보면, “고려는 남쪽으로는 요해(遼海), 서쪽으로는 요수(遼水), 북쪽(필자주:사실은 서북쪽이다)으로는 옛 거란(契丹), 동쪽(필자주:사실은 동북쪽이다)으로는 대금(금나라)과 접해 있다. 그리고 일본, 유구, 담라, 흑수, 모인 등의 나라와 개의 이빨처럼 서로 맞물려 있다. ☆ 고려도경에서 말하는 요해는 지금의 발해를 말하는 것이고, 고대의 요수는 지금의 북경 서쪽을 흐르는 영정하를 말하는 것이며, 거란은 지금의 내몽골 상도 부근에, 금나라는 대흥안령 동쪽 파림좌기, 파림우기 부근에 위치하고 있었다. 따라서 고려는 지금의 요하서쪽 요녕성으로부터 하북성 진황도, 당산, 승덕시, 장가구 일부, 북경 일부,..

카테고리 없음 2016.07.17

윤여동설 - 신라의 탈해왕은 불로초를 찾으러 간 서복(徐福)의 먼 후예인가?

윤여동설 - 신라의 탈해왕은 불로초를 찾으러 간 서복(徐福)의 먼 후예인가? 신라 탈해왕은 원래 다파나국(용성국, 정명국, 완하국이라고도 한다)왕이 여국왕의 공주와 혼인하여 7년 만에 낳은 아들이라 전하고 있고, 다파나국은 왜국의 동북쪽 1천여리에 위치했다고 하였다. ☆ 삼국사기 신라본기 탈해이사금 조를 보면, “탈해이사금이 왕위에 오르니 이때의 나이가 62세였다. 성은 석씨요 왕비는 아효부인이다. 탈해는 본래 다파나국에서 태어났는데, 이 나라는 왜국의 동북쪽 1천여리에 있다. 앞서 그 나라 왕이 여국왕의 공주를 취하여 왕비로 삼았더니 임신한 지 7년 만에 큰 알을 낳았다. 그러자 왕이 말하기를 ‘사람으로써 알을 낳았으니 상서롭지 않다. 마땅히 버려야 한다’ 하였다. 왕비가 차마 버리지 못하고 비단으로 ..

카테고리 없음 2016.07.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