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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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설 - 아메리카 인디언과 인디오는 동이족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아메리카 인디언과 인디오는 동이족 - 최초주장 북미의 인디언이나 중미, 남미의 인디오가 우리와 혈통이 같은 동이족이라는 것은 틀림없는 역사적 사실로 보인다. 우선 겉모습이 매우 같고, 동이족에게만 나타나는 몽골반점도 있다고 하고, 전통문화나 언어, 생활방식도 유사한 점이 많다고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동이족 중 과연 어느 부족의 후예일까? 옛날 하고도 아주 먼 옛날, 환인천제가 다스리던 환인국이 북해 즉 지금의 바이칼호수 동쪽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랬다가 그 중 일부가 남하하여 지금의 시라무렌하를 중심으로 환웅국이 서게 되고, 다시 또 남하하여 난하를 중심으로 왕검조선이 건국된다. 따라서 환인국, 환웅국, 왕검조선의 백성 일부였을 부여족, 숙신족, 예족, 옥저족, 한족(韓族), 왜족 중 이..

카테고리 없음 2017.04.01

윤여동설 - 한반도 김해는 금관가야의 도읍 금관성이 아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한반도 김해는 금관가야의 도읍 금관성이 아니다 - 최초주장 삼국사기 신라본기 파사이사금 8년(A.D.87) 조를 보면, "가을8월 왕이 명령을 내려 말하기를 '내가 덕이 없이 나라를 가져 서쪽으로는 백제와 이웃하고, 남쪽으로는 가야를 접하였는데도, 덕망은 백성들을 안정시키지 못하고 위엄은 외국이 경외하게 하기에 부족하다. 그러므로 성새와 보루를 수리하여 외적의 침략에 대비하라' 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신라의 서쪽 국경은 백제와 접하였고, 남쪽국경은 가야와 접하고 있었음을 알게 하고, 삼국유사 가락국기를 보면, 『즉위 2년(B.C.43) 계묘 정월에 왕이 말하기를, “내가 도읍을 정하려 한다” 하고는 곧 임시궁궐의 남쪽 신답평(新畓坪)으로 나아가 사방의 산악을 바라보다가 좌우 사람들을 보고..

카테고리 없음 2017.03.17

윤여동설 - 고대의 요동군 양평현(襄平縣)은 지금의 북경 창평(昌平) 부근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고대의 요동군 양평현(襄平縣)은 지금의 북경 창평(昌平) 부근 - 최초주장 전한서 권28하 지리지 제8하를 보면, “요동군 진나라 때 설치했는데, 유주에 속한다. 55,972호이고, 인구는 272,539명이며, 다스리는 현은 18현이다. 양평(襄平) : 목사관이 있고, 왕망이 창평(昌平)으로 고쳤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지금 많은 사람들은 전한서 기록 속 “요동군(遼東郡) 양평현(襄平縣)”의 위치를 전혀 엉뚱한 곳에서 찾고 있다. 양평(襄平)은 춘추전국시대 연나라가 고조선 땅 1천여리를 빼앗은 후 조양(造陽)에서부터 양평(襄平)까지 장성[이를 연장성이라 한다]을 쌓고 그곳에 요동군, 요서군, 상곡군, 우북평군, 어양군[이를 연5군이라 한다]을 설치했다는 곳이고, 후..

카테고리 없음 2017.03.05

윤여동설 - 열도에서의 일본 역사는 600년 뿐이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열도에서의 일본 역사는 600년 뿐이다 - 최초주장 고조선과 삼한은 지금의 북경 부근에 위치하고 있었고, 북경이 고대의 요동이었다. 따라서 고구려와 백제, 신라는 고조선과 삼한 땅에서 건국되었고, 왜국은 그 동남쪽 발해건너 지금의 요동반도에 위치하고 있었다. ☆ 후한서 권85 동이열전 제75 왜전을 보면, “왜(倭)는 한(韓)의 동남 대해(大海) 중에 있고, 산과 섬에 의지하여 살고 있는데 백여국으로 이루어져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백제는 지금 북경 부근의 대륙에서 13대 근초고왕이 12대 계왕의 아들 무광왕과 왕위쟁탈전을 벌여 승리하여 백제(대륙백제)를 이어갔고, 패한 무광왕은 한반도로 도망쳐 금마에 도읍하고 다시 백제(반도백제)를 건국하고 그 후손으로 왕위가 이어지다가 무광왕의 고손자..

카테고리 없음 2017.02.26

윤여동설 - 동부여 초기 왕들과 고구려 초기 왕들의 생몰년도 비교

윤여동설 - 동부여 초기 왕들과 고구려 초기 왕들의 생몰년도 비교 동부여 고구려 해부루왕(재위:B.C.86-B.C.48) 유화부인[주몽왕의 어머니] [추정생몰:B.C.120-B.C.48] [추정생몰:B.C.97-B.C.24] 약 73세졸 약 74세졸 ☆ 삼국사기에는 유화부인이 주몽을 잉태한 후 우발수에서 동부여 금와왕과 만난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오기로 보이고, 사실은 해부루왕 때이다. 금와왕(재위:B.C.48-B.C.7) 주몽왕(재위:B.C.58-B.C.19) [생몰:B.C.77-B.C.7] [생몰:B.C.79-B.C.19] 71세졸 61세졸 ☆ 주몽은 기원전 79년에 태어나 22세 때인 기원전 58년에 동부여에서 도망쳐 졸본으로 가서 졸본부여왕의 둘째공주와 혼인하였고, 왕이 죽자 그 왕위를 이어받아..

카테고리 없음 2017.02.18

윤여동설 - 고대의 왜국(倭國)은 지금의 요동반도에 위치했었고, 임나가라(任那加羅, 임나국)는 진황도 부근에 위치했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고대의 왜국(倭國)은 지금의 요동반도에 위치했었고, 임나가라(任那加羅, 임나국)는 진황도 부근에 위치했었다 - 최초주장 고대의 왜국은 지금의 요동반도에 위치하고 있었고, 우리의 삼국 즉 고구려는 지금의 하북성 승덕시 일부, 장가구시 일부, 북경시 일부, 산서성 일부, 내몽골 일부를 차지하고 있었고, 백제는 하북성 당산시, 진황도시, 승덕시 일부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신라는 요녕성 금주시(錦州市), 조양, 부신 일원을 차지하고 있었고, 가야는 요녕성 호로도, 흥성, 수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우리의 고대 역사를 한반도를 중심으로 해석함으로써 임나(임나국)도 한반도 남부에 위치했었다고 해석한다. 이는 우리가 지금 한반도에 살고 있고, 일본이 지금의 일본열도에 위치해 있기 때문..

카테고리 없음 2017.02.04

윤여동설 - 원(元) 지원(至元) 4년(A.D.1267)까지도 존재한 백제는 과연 어디에 있었을까?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원(元) 지원(至元) 4년(A.D.1267)까지도 존재한 백제는 과연 어디에 있었을까? - 최초주장 원사를 보면, "세조 지원 4년(A.D.1267) 정월 백제가 그 신하 양호를 보내 내조하여 비단을 차등있게 하사했다(世祖至元四年正月百濟遣其臣梁浩來朝賜以錦繡有差)”라고 기록되어 있다. 우리가 모두 잘 알고 있다시피 백제는 서기 660년에 나당연합군의 침공을 받고 나라가 멸망했고, 견훤의 후백제 역시 936년에 소멸했다. 그런데 백제는 그 후에도 어디선가 명맥을 유지하면서 1267년에 원나라에 사신을 보내자 원 세조인 쿠빌라이 칸이 비단을 하사했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원사가 없는 사실을 기록했을 리도 없을 것인데, 백제가 멸망한지 600년도 더 지난 1267년까지 백제가 원나라에 사신을 보..

카테고리 없음 2017.01.21

윤여동설 - 한글은 한자를 읽기위한 발음기호가 아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한글은 한자를 읽기위한 발음기호가 아니다 - 최초주장 일부 사람 중에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자들이 힘을 합하여 창제했다는 우리의 자랑 훈민정음(한글)이 문자가 아니라 한자의 발음을 표기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단순한 발음기호일 뿐이라고 비하하는 얼빠진 사람들이 가끔 있다. 세상의 수많은 석학들이 매우 과학적이고, 우수한 문자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고 있는 우리의 글 한글이 단순한 한자의 발음기호에 불과하다니............... 이들은 왜 이렇게 한글을 비하하는 주장을 하는 것일까? 그러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의 심리상태는 어떠한 것일까? 자신들의 글은 한글이 아니라 한자라고 인식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자신들이 수십년간 공들여 익힌 한자가 점점 그 효용성을 잃고 쓸모없게 되어가는 것이 억울하고..

카테고리 없음 2017.01.16

윤여동설 - 반도백제 무광왕(武廣王)이 세운 제석정사(제석사)의 창건연대는 370년경이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반도백제 무광왕(武廣王)이 세운 제석정사(제석사)의 창건연대는 370년경이다 - 최초주장 [익산 제석사지 목탑지 발굴당시 사진] [제석사지 목탑 심초석 발굴, 정비 전 사진] [익산 제석사지 출토 제석사(帝釋寺)명 와당] [익산 왕궁리 5층석탑 출토 사리병] 관세음응험기[觀世音應驗記] 중 백제 무광왕 관련 기사를 보면, 百濟 武廣王 遷都 枳慕密地 新營精舍 백제 무광왕이 지모밀지로 천도하고 정사(절)를 새로 지었다. 以貞觀 十三年 歲次 己亥 冬十一月 그런데 정관 13년(A.D.639) 기해년 겨울 11월에 天大雷雨 遂災帝釋精舍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져 제석정사에 불이 났다. 佛堂七級浮圖 乃至 廓房 一皆燒盡 불당과 일곱 개의 탱화와 곽방 한 개가 모두 불탔다. 塔下礎石中 有種種七寶 亦有佛舍利 睬水..

카테고리 없음 2017.01.06

윤여동설 - 익산 미륵사의 창건연도는 639년이 아니라 519년 기해년이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익산 미륵사의 창건연도는 639년이 아니라 519년 기해년이다 - 최초주장 익산 미륵사지 서탑에서 출토된 사리봉안기 삼가 생각해보면, 법왕(부처님)께서 세상에 나타나셔서 감응하시고, 현신 하시는 것은 물 속에 달이 비치는 것과 같습니다. 왕궁에서 태어나셨으나 쌍수 아래에서 열반에 드시면서 8곡의 사리를 남겨 3천 세계를 이익 되게 하셨으므로, 정신을 맑게 하고 오색으로 빛나는 사리를 돌면 그 신통변화는 불가사의할 것입니다. 우리 백제왕후께서는 좌평 사탁적덕의 따님으로 지극히 오랜 세월동안 선을 베풀어 금생에 좋은 보은을 받아 만민을 기르는 동량이 되셨으므로 재물을 희사하여 가람을 세우시고, 기해 년(己亥年) 정월 29일에 사리를 받들어 모시게 되었습니다. 원하오니, 세세토록 공양하겠으니 겁겁..

카테고리 없음 2016.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