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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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설 - 요(거란) 동경요양부(東京遼陽府)는 지금의 북경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요(거란) 동경요양부(東京遼陽府)는 지금의 북경(北京) - 최초주장 요사지리지 동경도를 보면, 『요나라 태조(太祖: 야율아보기)가 나라를 세우고 발해를 공격하여 홀한성(忽汗城: 발해상경용천부)을 함락하고 그 왕 대인선을 사로잡았다. 동단왕국(東丹王國)을 세우고 태자 도욕(圖欲)을 인황왕(人皇王)으로 임명하여 다스리게 하였다. 신책(神冊) 4년(A.D.919)에 요양(遼陽) 옛 성(요동성)을 수리하고, 발해사람과 중국인으로 동평군(東平郡)을 만들어 방어주(防禦州)로 삼았다. 천현(天顯) 3년(A.D.928) 동단국 백성들을 (요양으로) 옮겨 살게 하고 남경(南京: 필자주 : 요나라에서는 옛 요동성을 남경요양부라 했다가 후일 동경요양부로 또 고쳤다)으로 승격시켰다. (남경)성의 이름은 천복성(天..

카테고리 없음 2011.09.30

윤여동설 - 고구려 환도성(丸都城)은 지금의 북경 북쪽 발해진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고구려 환도성(丸都城)은 지금의 북경 북쪽 발해진(渤海鎭) - 최초주장 요사지리지는 환주(桓州)에 대하여, “환주(桓州)는 고구려 때 도성이었고, 옛날에는 현이 셋이었는데 환도(桓都), 신향(神鄕), 패수(浿水? 필자주 : 환도성 부근에는 패수가 흐르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이상하다) 3현이었다.[필자주 : 浿水는 淇水의 오기인 듯] 고구려왕(산상왕을 말함)이 이곳으로 도읍을 옮기자 백성들이 신국(新國)이라고 불렀고, 고국원왕 때에 불탔다” 고 기록하고 있어 고구려 환도성(丸都城)에 대한 역사기록과 일치한다. 따라서 요사지리지의 기록대로라면 요나라 때의 환주(桓州)가 곧 고구려의 환도성(丸都城)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고구려의 환도성은 지금의 어디를 말하는 것일까? 환도성은 고구려 산..

카테고리 없음 2011.09.24

윤여동설 - 백제 아신왕과 진사왕은 무슨 관계였을까?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백제 아신왕과 진사왕은 무슨 관계였을까? - 최초주장     [백제 16대 진사왕 2년(A.D.386)에 국내의 15세 이상되는 백성들을 동원하여 청목령으로부터 북쪽으로는 팔곤성까지, 서쪽으로는 바다까지 쌓았다는 무너진 백제장성] 일본서기를 보면, 신공황후 섭정 55년 백제의 초고왕(필자주 : 13대 근초고왕의 오기이다)이 죽었다. 56년 백제의 왕자 귀수(필자주 : 14대 근구수왕의 오기이다)가 왕이 되었다.64년 백제국의 귀수왕이 죽었다. 왕자 침류왕(15대  침류왕)이 왕이 되었다.65년 침류왕이 죽었다. 왕자 아화(후일의 17대 아신왕)가 나이가 어려 숙부 진사(16대 진사왕)가 빼앗아 왕이 되었다.응신천황 3년 백제의 진사왕이 왕위에 올라 귀국(貴國)의 천황에게 무례하였다. 그래서 ..

카테고리 없음 2011.09.21

윤여동설 - 황룡국(黃龍國)은 고구려의 졸본,국내성 부근 - 최초주장

윤여동설 - 황룡국(黃龍國)은 고구려의 졸본,국내성 부근 - 최초주장 삼국사기 고구려본기를 보면, 『유리왕 20년(A.D.1) 봄정월 태자 도절이 죽었다. 22년(A.D.3) 겨울10월 왕이 국내로 도읍을 옮기고 위나암성을 쌓았다. 23년(A.D.4) 봄2월에 왕의 아들 해명을 세워 태자를 삼고 전 국내의 죄수들을 크게 사면하였다” 27년(A.D.8) 봄 정월에 왕의 태자 해명이 옛 도읍에 남아 있었는데 힘이 세고 용감하였다. 황룡국(黃龍國) 왕이 이 소문을 듣고 사신을 보내 강궁을 선물하였더니 해명이 그 사신 앞에서 활을 잡아당겨 꺾으면서 말하기를 ‘내가 힘이 센 것이 아니라 활 자체가 단단하지 못하다’ 하니 황룡왕이 무안해 하였다. 왕이 이 말을 듣고 화가 나서 황룡왕에게 말하기를 ‘해명은 자식으로서..

카테고리 없음 2011.09.16

윤여동설 - 송양의 비류국(沸流國)은 졸본 서쪽에 위치했었다 - 최초공개

윤여동설 - 송양의 비류국(沸流國)은 졸본 서쪽에 위치했었다 - 최초공개 삼국사기 고구려본기를 보면, 『추모왕 원년(B.C.37) 왕이 비류수 중류에 채소잎이 떠내려오는 것을 보고 그 상류에 사람이 사는 것을 알고 사냥을 하면서 찾아 올라가 비류국에 이르렀다. 그 나라왕 송양이 나와보고 말하기를 ‘내가 궁벽한 바다 모퉁이에 외따로 살기 때문에 아직 군자를 만나보지 못했는데, 오늘 서로 만나게 되었으니 이 또한 다행한 일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그대가 어디서 왔는지 전연 알지 못하겠소’ 하였다. 주몽이 대답하기를 ‘나는 천제의 자손으로서 아무 아무 곳에 와서 도읍을 정했소’했다. 송양이 말하기를 ‘우리는 여러 대째 왕이 되어 온 터에 땅이 적어 두 임금은 용납할 수 없고, 그대는 도읍을 정한지도 얼마되지 않..

카테고리 없음 2011.09.09

드라마 - 공주의 남자 김승유와 세령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드라마 - 공주의 남자 김승유와 세령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병약했던 문종이 재위 2년 만에 죽고 12세의 어린 단종이 왕위에 오른 후 좌의정이었던 김종서 등에게 권력이 집중되자 위기감을 느낀 수양대군은 김종서, 황보인 등을 죽이게 되는데, 역사에서는 이를 계유정난이라 한다. 그리하여 모든 권력은 수양대군에게 집중되게 되고, 결국 수양은 단종으로부터 왕위를 찬탈하게 되는데, 이 수양이 곧 조선 7대임금 세조이다.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역사드라마 “공주의 남자”의 시대적 배경은 조선 문종, 단종, 세조 대이고, 김종서의 아들과 수양대군의 딸이 사랑하는 것으로 그려지고 있는데, 사실은 김종서의 손자와 수양대군의 딸이 사랑하는 사이였다고 금계필담(錦溪筆談)에는 전한다. 단종이 왕위에 오르고 김종서, 황보인 ..

카테고리 없음 2011.09.07

윤여동설 - 졸본(홀본)은 하북성 장가구시 적성현 후성진(后城鎭)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졸본(홀본)은 하북성 장가구시 적성현 후성진(后城鎭) - 최초주장 고구려의 첫 도읍 졸본(홀본)은 지금의 중국 하북성 장가구시 적성현 후성진(后城鎭)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졸본(홀본)을 찾으면 고구려 초기 역사기록에 나타나는 많은 실제의 장소들을 찾을 수 있게 되는데, 앞으로 그 위치들이 하나씩 공개될 것입니다. 사실 이는 내용 하나하나가 모두 박사학위논문 쓸 때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매우 중요한 내용들인데, 역사연구자들이 그 진실을 정확히 밝히지 못하고 주변만 맴돌고 있는 것이 안타까워 우리 역사연구를 위해 아낌없이 공개할 예정입니다. 역사를 연구하시는 분들께서 본 내용을 인용하실 땐 “윤여동설에 의하면 하북성 장가구시 적성현 후성진이 졸본(홀본)이라 한다”고 반드시 표기해 주시기 바라고,..

카테고리 없음 2011.09.02

윤여동설 - 알선동 석실은 환웅설화의 발생지일까?

윤여동설 - 알선동 석실은 환웅설화의 발생지일까? 위서 권100 열전 제88 오락후(烏洛侯) 조를 보면, “세조 (태평)진군4년(A.D.443)에 (오락후 사신이) 내조했는데 (말하기를) 그 나라의 서북쪽에 선제(先帝)의 옛터가 있고 석실로서 남북이 90보, 동서가 40보, 높이가 70보인데 그 석실에 신령스러움이 있어 많은 백성들이 소원을 빈다고 하였다. 세조가 중서시랑 이창(李敞)을 보내 고유제를 지내게 했고, 그 축문을 석실벽에 새기고 돌아왔다” 라고 기록되어 있어 탁발선비의 선조들이 살았었다는 석실(석굴)에 대하여 언급되어 있다. ☆ 그런데 북위 세조는 어떻게 오락후 사신이 와서 오락후에 있는 커다란 석굴이 탁발선비의 조상이 살았던 옛터라고 말한다고 하여 수천년 전의 일을 별도의 확인절차도 없이 ..

카테고리 없음 2011.08.26

윤여동설 - 후한 요동군 · 현토군 · 낙랑군 위치 찾기

윤여동설 - 후한 요동군 · 현토군 · 낙랑군 위치 찾기 [고대 강대국들의 위치와 그들이 어느 지역을 놓고 다투었는지를 먼저 이해하는 것이 역사를 이해하는 지름길입니다] 후한서지리지 제23 군국5를 보면, 상당군, 태원군, 상군, 서하군, 오원군, 운중군, 정양군, 안문군, 삭방군은 병주(幷州)에 속한다고 하였고,[필자 주 : 병주는 낙양의 북쪽 방향에 위치했다고 합니다] 탁군, 광양군, 대군, 상곡군, 어양군, 우북평군, 요서군, 요동군, 현토군, 낙랑군, 요동속국은 유주(幽州)에 속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탁군은 낙양에서 동북쪽으로 1,800리(?)에 위치해 있었고, 광양군은 낙양동북 2,000리(?)에 위치해 있었으며, 대군은 낙양동북 2,500리, 상곡군 낙양동북 3,200리, 어양군 낙양동..

카테고리 없음 2011.08.19

윤여동설 - 진시황이 올랐던 진짜 갈석산(碣石山)의 위치 - 최초공개

윤여동설 - 천년의 비밀 진시황이 올랐던 진짜 갈석산(碣石山)의 위치 - 최초공개     진시황은 평생에 다섯번 순행을 하였는데, 그 중 네 번째가 기원전 215년에 이루어진 진나라의 동북지방 순행이었다.  이때 진시황은 함양을 출발하여 동북쪽으로 향하여 한단에 도착한 후 북쪽으로 올라가 갈석산(碣石山)에 올랐고, 다시 서북쪽으로 향하여 요서를 둘러보고 다시 서남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황하를 건너 오르도스 지역을 통과하여 남쪽으로 향하여 함양으로 되돌아왔다.   그런데 이 순행이 우리 역사에 있어 중요한 것은 천년동안 그 위치를 찾지 못하고 있는 갈석산의 위치를 찾을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많은 옛 사서들은 “상산 구문현에 갈석산이 있다(常山 九門縣 有碣石山)”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카테고리 없음 2011.08.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