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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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설 - 고조선이 위치했던 “동해지내(東海之內) 북해지우(北海之隅)”의 진짜 위치 - 최초공개

윤여동설 - 고조선이 위치했던 “동해지내(東海之內) 북해지우(北海之隅)” - 최초공개공개의 진짜 위치 산해경의 해내경에는 “東海之內 北海之隅 有國名曰朝鮮(동해의 안쪽, 북해의 모퉁이에 나라가 있는데 조선(고조선)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기록은 바로 우리 고조선(왕검조선)의 위치에 대한 기록이기 때문에 역사연구자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이 기록을 읽게 되고, 산해경에서 언급하고 있는 동해가 지금의 어디를 말하며, 북해가 어디일까 찾으려 하게 된다. 그런데 산해경이라는 책이 중국에서 만들어진 것이므로 산해경이 말하는 동해는 당연히 중국 사람들이 인식한 중국대륙 동쪽에 있는 바다를 말한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일 것이고, 북해가 문제인데, 지금의 발해(渤海)로 볼 수도 있고, 바이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

카테고리 없음 2011.08.13

윤여동설 - 개마대산(蓋馬大山)과 단단대령(單單大嶺)의 위치찾기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개마대산(蓋馬大山)과 단단대령(單單大嶺)의 위치찾기 - 최초주장 후한서 예(동예) 전을 보면, “원봉 3년(B.C.108)에 이르러 조선을 멸망시키고 낙랑, 임둔, 현토, 진번으로 나누었다. 소제 시원 5년(B.C.82)에 이르러 임둔과 진번을 폐지하여 낙랑과 현토에 병합했다. (B.C.75에) 현토를 다시 구려로 옮겼으며 단단대령(單單大嶺) 동쪽의 옥저와 예(동예),맥은 모두 낙랑에 속하게 했다. 후에 그 지역이 넓고 멀어 다시 대령(단단대령) 동쪽 7개현을 나누어 낙랑동부도위를 설치하였다. 예(동예)가 한나라에 내속된 후 풍속이 점점 나빠져 금지하는 법도 늘어나 60여개조에 이르게 되었다. 건무 6년(A.D.30)에 도위(낙랑동부도위)를 폐지하고 대령(단단대령) 동쪽의 땅을 포기하고 그 ..

카테고리 없음 2011.08.11

윤여동설 - 죽령(竹嶺) 서북쪽 500리 땅의 진짜 위치 - 최초공개

윤여동설 - 죽령(竹嶺) 서북쪽 500리 땅의 진짜 위치 - 최초공개      신라 선덕여왕 11년(A.D.642)에 백제의 침공을 받아 신라의 대야성이 함락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리하여 대야성 도독인 김품석과 그의 아내 고타소가 백제군에 잡혀 죽게 되는데, 이때 죽은 고타소가 곧 김춘추의 첫딸이었다. 고타소가 목이 잘려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김춘추는 너무도 놀라 앞에 사람이 지나가도 모를 정도였다고 하고 이때 백제를 멸망시킬 결심을 하게 된다.   그리하여 김춘추는 백제를 멸망시켜 죽은 딸 고타소의 원한을 갚기 위해 고구려에 청병을 하러 가게 되는데, 그 때 고구려 보장왕이 말하기를,  “죽령은 본래 우리 땅이다. 네가 만일 죽령 서북쪽 땅을 돌려준다면 군사를 내어 주겠다” 고 했다는 것이다...

카테고리 없음 2011.08.07

윤여동설 - 고구려 광개토태왕의 직계혈통도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고구려 광개토태왕의 직계혈통도 - 최초주장 시조 추모왕(성은 해씨 이름은 주몽, 고구려 건국시조) ↓ ↓ 아들 2대 유리왕(성은 해씨 이름은 유류) 딸 추모왕의 공주 ↓[구려 고여달[高閭達)과 혼인] 고여율(高如栗) 외손자 ↓ 고막래(高莫來) 외증손자 ↓ 손자 3대 대무신왕 고추가 고재사(高再思) 외고손자 4대 민중왕 증손자 5대 모본왕 (유리왕은 막내아들 여진이 비류수에 빠져 죽은 후 이복여동생의 증손자이고, 죽은 막내아들 여진 또래인 고재사를 양자로 삼았던 듯하다. 그리하여 삼국사기 태조대왕 조에 재사가 태조대왕 궁의 아버지이고, 유리왕의 아들이라 기록될 수 있었을 것이다. 재사의 원래 성씨는 고씨, 왕위에 오르지 않았는데, 그의 장자인 태조대왕 궁이 고구려 6대 왕위에 오름으로써 이때 ..

카테고리 없음 2011.08.02

윤여동설 - 지두우(地豆于)는 어디를 말하는가?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지두우(地豆于)의 위치 - 최초주장   지두우(地豆于)는 과연 어디를 말하는 것일까?    역사연구자들이 기를 쓰고 이 지두우의 위치를 찾으려 하는 것은 장수왕 때의 고구려 강역을 밝히는데 이 지두우의 위치가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위서(북위, 후위) 거란전을 보면, 고구려 장수왕은 서기 479년(북위태화3년)에 유유와 공모하여 이 지두우를 빼앗아 나누려 하였다고 했기 때문에 기록대로라면 당시 고구려는 이 지두우와 국경을 접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두우는 과연 지금의 어디쯤에 위치했던 나라였을까?      위서 권100 열전제88을 보면,  “지두우국(地豆于國)은 실위 서쪽 1천여리에 있다. 소와 양이 많고 명마가 산출된다. 짐승가죽으로 옷을 만들어 입..

카테고리 없음 2011.07.30

윤여동설 - 황산벌전투와 계백장군

윤여동설 - 황산벌전투와 계백장군 [한반도 충남 논산시 부적면에 조성되어 있는 가짜 백제 계백장군묘] 백제장군 계백에 대하여 전해진 기록은 삼국사기 계백열전(삼국사기 권제47 열전 제7)의, 『계백은 백제 사람인데, 벼슬이 달솔(백제 16관품 중 2품)에 이르렀다. 당 현경5년 경신년(A.D.660)에 (당) 고종이 소정방으로 신구도대총관을 삼아 군사를 거느리고 바다를 건너 신라와 함께 백제를 쳤다. 이때에 계백이 장군이 되어 결사대 5천명을 뽑아서 이를 방어하게 되었는데, 그가 말하기를 “한 개 나라로서 당나라, 신라의 대병과 마주하게 되었으니 나라의 존망을 가늠할 수 없다. 나의 처자가 사로잡혀 노비가 될까 염려되니 살아서 치욕을 당하는 것보다 결연히 죽는 것만 같지 못하다”하고는 드디어 자기의 처자..

카테고리 없음 2011.07.20

윤여동설 - “하도낙서(河圖洛書)”는 장안(서안)부근의 산세에서 유래되었다

윤여동설 - “하도낙서(河圖洛書)”는 장안(서안)부근의 산세에서 유래되었다 [위: 황하 호구폭포. 복희씨는 이 호구폭포를 보고 깨달음을 얻어 팔괘를 그렸다] [위: 섬서성 서안 동쪽의 화산. 하나라의 우왕은 이 산을 보고 깨달음을 얻어 홍범구주를 지었다] [위: 장안(서안) 동쪽의 섬서성 화산에 세워져 있어야 할 하우상과 신귀상이 엉뚱하게도 황하 호구폭포의 맹문도에 세워져 있으니 중국학자들도 하도낙서의 발생유래를 정확하게 알지 못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지금 황하의 호구폭포는 복희씨의 상과 선천팔괘를 그려 놓아야 할 곳이다] 지금까지 잘 알 수 없었던 전설 속 “하도낙서(河圖洛書)”가 어디에서 유래되었는지 드디어 그 비밀이 풀렸다. “하도(河圖)”란 상고시대인 복희씨 때 황하에서 나온 용마(龍馬)가 등에 ..

카테고리 없음 2011.07.15

윤여동설 - 의문의 옛 성터 내몽골 아륜사목고성(阿倫斯木古城)

윤여동설 - 의문의 옛 성터 내몽골 아륜사목고성(阿倫斯木古城) [위: 내몽골 아륜사목고성유지][좌표 : 동경110도29분07초 북위41도57분35초] 원나라의 상도(上都)는 쿠빌라이칸이 몽골제국의 수도였던 카라코름(하라호름)과 연경(燕京) - 요나라 때의 남경(남경석진부)이었고 금나라 때의 중도(중도대흥부)였으며 원 나라 때의 대도(大都)가 되었던 곳 - 의 중간지역에 건설했다고 하는데, 원래의 연경(燕京)은 지금의 북경이 아니라 하북성 역현 부근이었다. 따라서 원 상도는 몽골제국의 도읍이었던 카라코름(하라호름)과 연경(하북성 역현)의 중간지역에 건설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수많은 역사학자들은 지금의 북경을 연경(燕京)이요 원 대도(大都)라 하면서 내몽골 정람기 북쪽 섬전하 변에 위치해 있고 가로 2.2k..

카테고리 없음 2011.07.08

윤여동설 - 춘추전국시대 운중(雲中)과 구원(九原)은 어디를 말하는가?

윤여동설 - 춘추전국시대 운중(雲中)과 구원(九原)은 어디를 말하는가? 전국책 권제29 연1을 보면, 소진이 연나라의 문후에게 말한 기록이 있어 춘추전국시대 연나라의 위치를 알 수 있게 한다. 기록을 보면, "蘇秦將爲從 北說燕文候曰 燕東有朝鮮遼東 北有林胡樓煩 西有雲中九原 南有呼 易水 地方二千餘里 帶甲數十萬 車七百乘 騎六千疋 粟支十年 南有碣石 門之饒 北有棗栗之利 民雖不由田作 棗栗之實 足食於民矣 此所謂天府也 (소진이 장래 합종을 하기 위해 북쪽으로 가서 연나라 문후에게 말하기를, 연나라는 동쪽으로 조선요동이 있고, 북쪽으로는 임호누번이 있으며, 서쪽으로는 운중구원이 있고, 남쪽으로는 호타역수가 있어 땅이 사방 2천여 리입니다. 갑옷 입은 병사가 10만이요, 전차는 7백대이며, 말은 6천 필이고, 10년 간 ..

카테고리 없음 2011.07.01

윤여동설 - 소서노와 비류 온조의 남하로를 밝힌다 - 최초공개

윤여동설 - 소서노와 비류 온조의 남하로를 밝힌다 - 최초공개 삼국사기 백제본기를 보면, “주몽이 두 아들을 낳았는데 큰아들은 비류요, 둘째는 온조였다. 주몽이 북부여에서 낳은 아들(유리를 말함)이 와서 태자가 되매 비류와 온조는 태자에게 용납되지 못할까 염려하여 드디어 오간, 마려 등 열명의 신하들을 데리고 남쪽지방으로 떠나니 백성들 중에서 따르는 자가 많았다. 이리하여 한산(漢山)에 이르러 부아악에 올라서 살만한 곳을 살폈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삼국유사 기이 제2 남부여 전백제 북부여 조에는, “고전기(古典記)에 이르기를, ”동명왕의 세째아들 온조는 전한 홍가 3년 계유년에 졸본부여에서 위례성으로 와서 도읍을 정하고 왕이라 일컬었다. 14년 병진년에 도읍을 한산(漢山:지금의 광..

카테고리 없음 2011.06.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