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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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설 - 해두국(海頭國)은 어디에 위치했을까?

윤여동설 - 해두국(海頭國)은 어디에 위치했을까?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대무신왕 5년(A.D.22) 조를 보면,  “여름4월 부여왕 대소의 동생이 갈사수(曷思水) 가에 나라를 세우고 왕이 되었다.   이는 금와왕의 막내아들인데 그의 이름은 실명되어 알 수 없다.  앞서 그는 대소왕이 피살되자 장차 나라가 망할 것으로 짐작하고 자기를 따르는 무리 1백여명과 함께 압록곡에 이르렀을 때 해두왕(海頭王)이 사냥 나온 것을 보고 그를 죽이고 그 백성을 빼앗았었다.  이때에 이르러 (갈사수 가에) 도읍을 정하고 갈사왕이 되었다” 라고 기록되어 있어 압록강에서 멀지 않은 곳에 해두국이 위치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고, 갈사수 역시 압록강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강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갈사국은 고구..

카테고리 없음 2011.01.14

윤여동설 - 고구려 졸본, 국내성과 작위 속 요동군개국공의 의미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고구려 졸본, 국내성과 고구려 왕들에게 주어진 작위 속 “요동군개국공”의 의미 - 최초주장 고구려 왕들에게 주어진 작위를 보면 한결같이 “요동군개국공”이란 문구가 들어가 있다. 북위에서 장수왕에게 보낸 작위는 “도독요해제군사 정동장군 영호동이중랑장 요동군개국공 고구려왕”이었고, 문자왕에게 보낸 작위는 “사지절도독요해제군사 정동장군 영호동이중랑장 요동군개국공 고구려왕”이었으며, 안장왕에게 보낸 작위는 “안동장군 영호동이교위 요동군개국공 고구려왕”이었으며, 안원왕에게 보낸 작위는 “사지절 산기상시 영호동이교위 요동군개국공 고구려왕”이었으며, 북제에서 양원왕에게 보낸 작위는 “사지절 시중 표기대장군 영호동이교위 요동군개국공 고구려왕”이었다. 그리고 이후에도 고구려 왕들에게 주어진 작위에는 대개 “..

카테고리 없음 2011.01.12

윤여동설 - 연(燕)나라가 제비연(燕)자를 국호로 삼은 이유

윤여동설 - 연(燕)나라가 제비연(燕)자를 국호로 삼은 이유 역사에서 “연(燕)”이라는 나라는 그 역사가 매우 깊고, 우리의 고대 역사와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데 지금까지 그 중심 강역이 어디인지, 도읍 연경(燕京)이 어디인지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연나라는 춘추시대에도 5패(五覇)에 들지는 못했지만 그때에도 분명 “연(燕)”이라는 나라가 존재하고 있었고, 전국시대에는 7웅의 하나가 될 정도로 강대국이었다. 전국시대에 연나라의 진개가 고조선을 침공하여 요서군과 요동군 등 5군지역을 빼앗아 강역이 많이 넓어졌기 때문에 강국으로 부상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진(秦)나라가 대륙을 통일하게 되자 연나라는 진나라에 병합됨으로써 그 세력권내에 들어가게 되었고 이어 한(漢), 위(魏), 서진(西晉)에..

카테고리 없음 2011.01.07

윤여동설 - 치우천왕과 황제헌원이 다투었던 탁록벌판의 원래 위치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치우천왕과 황제헌원이 다투었던 탁록벌판의 원래 위치를 찾았다 - 최초주장 [1번은 현재 중국 사람들이 지명을 이동시켜 만들어 놓은 탁록이고, 2번은 치우천왕과 황제헌원이 다툰 진짜 탁록벌판이다] 원동중의 삼성기 신시역대기는 14세 자오지(慈烏支)환웅을 치우천왕이라 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너무도 많은 세월이 흘러 그의 생몰연대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당시 치우천왕이 황제헌원과 탁록의 벌판에서 국운을 건 전쟁을 했었다는 이야기는 설화가 되어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전해지고는 있다. 그러나 그 탁록벌판이라는 곳이 정확하게 지금의 어디를 말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런데 대명일통지 순천부 조를 보면, 탁주(涿州)가 순천부 서남 140리에 있는데, 춘추전국 때는 연나라의 탁읍이었고, 진(秦)나라 때는 ..

카테고리 없음 2011.01.03

윤여동예언 - 동이,서융,남만,북적의 위치와 미래

윤여동예언 - 동이,서융,남만,북적의 위치와 미래 지나(중국) 사람들은 요(요임금)를 북적사람, 순(순임금)을 동이사람, 우(하나라의 우임금)를 남이(남만)사람, 탕(은나라의 탕왕)을 동이사람, 주나라의 무왕을 서이(서융)사람이라 한다. 그들 스스로 중국 역사상 최고의 태평성세를 이루었다는 훌륭한 임금으로 추앙하는 요임금과 순임금에 대하여 북적지인(북적사람), 동이지인(동이사람)이라 하는 것이다. 일반사람들의 인식대로 동이, 서융, 남만, 북적이 사방의 미개한 오랑캐를 말하는 것이라면 “훌륭하신 요임금은 미개한 북적 오랑캐였고, 순임금도 미개한 동이 오랑캐였다” 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이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이(夷), 융(戎), 만(蠻), 적(狄)은 원래 비하해서 부르는 말이 아니라 민족의 ..

카테고리 없음 2010.12.10

윤여동설화 - 서시, 왕소군, 초선, 양귀비 그들은 얼마나 예뻤을까?

윤여동설화 - 서시, 왕소군, 초선, 양귀비 그들은 얼마나 예뻤을까? 서시(西施)를 본 물고기가 헤엄치는 것을 잊고 가라앉았고, - 침어(沈魚) 왕소군(王昭君)을 본 기러기가 날개짓 하는 것을 잊고 떨어졌으며, - 낙안(落雁) 초선(貂嬋)을 본 달이 부끄러워 숨었고, - 폐월(閉月) 양귀비(楊貴妃)를 본 꽃이 수줍어 꽃잎을 접었다네. - 수화(羞花) 과장이 심한 중국 사람들의 비유이지만 그 발상이 기가 막힌다. 그리하여 아래와 같은 말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沈魚落雁(침어낙안) 閉月羞花(폐월수화)

카테고리 없음 2010.12.05

윤여동설 - 단동의 호산장성은 가짜 구련성(九連城)이다 -최초주장

윤여동설 - 단동의 호산장성은 가짜 구련성(九連城)이다 - 최초주장   [위 : 필자가 하북성 북부 장북 북쪽에서 찾아낸 구련성]   [위 : 구련성유적지 구글사진, 좌표 : 동경114도59분20초, 북위41도35분08초]                  [위 : 구련성 유적지 토성터 사진]             [위 : 요녕성 단동의 가짜 호산장성]        [위 : 요녕성 단동의 가짜 구련성지 표지석]     중국은 몇년전 압록강 하류 요녕성 단동의 호산에 장성을 새롭게 쌓아 놓고는 호산장성(虎山長城)이라는 현판을 붙여 놓았다.  그리고는 만리장성이 산해관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그곳 단동 호산장성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선전하며, 그곳이 바로 고구려 때의 박..

카테고리 없음 2010.11.29

윤여동자료실 - 중국학자들이 말하는 금 항주성(恒州城)터와 원 상도성(上都城)터 구경

윤여동자료실 - 중국학자들이 말하는 금 항주성(恒州城)터와 원 상도성(上都城)터 구경 [위 : 중국에서 금 항주성터라고 하고 있는 지금의 내몽골 정람기 고성터이다. 항주성이라 하기전에는 "시랑성(侍郞城)" 이라고 불렀었다고 한다.] [위 : 지금 중국학자들이 원 상도성터라고 하는 내몽골 정람기부근의 고성터] 송사 몽고열전에는 “유병충(劉秉忠)을 시켜 환주(桓州) 동쪽 난수(灤水) 북쪽 용강에 성곽을 쌓고 '개평(開平)'이라 하였다가 (원) 상도(上都)라고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지금의 난하 상류 섬전하 강가인 정람기 부근에 중국 학자들이 원 상도유지라고 하는 큰 성터가 있다. 과연 이곳이 진짜 원 상도였을까?

카테고리 없음 2010.11.26

윤여동설 - 칠지도의 "태화(泰和)"는 백제 12대 계왕의 연호였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칠지도의 “태화(泰和)”는 백제 12대 계왕의 연호였다 - 최초주장 백제 12대 계왕에 관하여 전해지는 기록은 지극히 단편적이다. 그가 10대 분서왕의 장자였다는 것과 천성이 강직하고 용맹했으며, 말타고 활을 잘 쏘았으며, 앞서 분서왕이 죽었을 때에는 어려서 왕위에 오를 수 없었고, 비류왕이 재위 41년에 죽으매 왕위에 올랐으나 재위 3년 9월에 죽고 말았다는 것 뿐이다. 그러나 이는 겉으로만 보여지는 계왕에 관한 기록일 뿐 사실 이때 백제에서는 장자파인 초고왕계와 차자파인 고이왕계가 왕위찬탈전을 벌이고 있었다. 4대 개루왕 (장자파) (차자파) .......................................I............................................

카테고리 없음 2010.11.21

윤여동설 - 정확하게 그린 고구려의 왕위계승도 - 최초공개

윤여동설 - 정확하게 그린 고구려의 왕위계승도 - 최초공개                                 고구려시조 주몽(추모왕)                                     (재위 B.C.37-B.C.19)                                                          .............................................................................                            ↓                                           ↓                2대 유리명왕                             추모왕의 ..

카테고리 없음 2010.1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