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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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설 - 일본천황은 요동반도에서 일본열도로 건너간 도래인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일본천황은 요동반도에서 살다가 일본열도로 건너간 도래인이다 - 최초주장 지금 일본 사람들은 일본의 천황들이 원래부터 지금의 일본열도에서 수천 년 간 대를 이어 천황노릇을 했으며, 왜국의 건국시조라는 신무천황으로부터 평성천황까지 125대이고, 기원전 660년부터 2008년 현재까지 2,669년 간 이어진 세계에서 가장 오래 유지하고 있는 유일무이한 왕조라고 자랑한다. 그런데 문제는 고대의 왜국이 지금의 일본열도에 위치하고 있던 나라가 아니라 중국 요녕성 요동반도에 위치하고 있던 나라였고, 서기 670년에 국호를 일본으로 바꾼 뒤에도 수백년 간 요동반도에 그대로 위치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따라서 고대의 왜국은 섬나라가 아니었으나, 지금의 일본은 일본열도에 위치하고 있으므로, 언젠가 요동반도를 떠..

카테고리 없음 2008.07.20

윤여동설 - 백강구 전투는 발해의 난하하류에서 일어났던 일이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백강구 전투는 발해의 난하하류에서 일어났던 일이다 - 최초주장 백제는 서기 660년 7월 18일 백제 의자왕이 항복을 하고 9월 3일에 왕과 태자, 왕자 ,장군, 대신 등 98명과 백성 1만 2천명이 당나라 장안으로 끌려가게 되자 좌평 복신이 중심이 되어 주류성을 거점으로 삼고 부흥운동을 시작하게 된다. 그리고 당나라에 끌려갔던 의자왕이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10월에 이르러 복신은 왜국으로 사람을 보내 왜국에 가 있던 왕자 부여풍(일본서기에는 부여풍장이라고 기록되어 있다)을 왕으로 추대하려고 하니 풍을 보내달라고 요청하게 되고, 왜국에서는 군사 5천으로 호위하게 하여 부여풍을 백제로 호송한다. 복신 등은 부여풍이 돌아오자 풍을 왕으로 추대하고 본격적으로 부흥운동을 시작하게 되고, 왜국에서..

카테고리 없음 2008.07.13

윤여동설 - 고대의 왜국은 지금의 요동반도에 위치했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고대의 왜국은 지금의 요동반도에 위치했었다 - 최초주장 왜국은 서기 670년 12월에 이르러 나라 이름을 "일본(日本)"으로 고쳤는데, 그 이유는 해 뜨는 곳과 가까우므로 그렇게 이름했다고도 하고, "왜(倭)"라는 국호가 좋지 않기 때문에 바꾸었다고도 한다. 이를 보면 고대의 왜국이 곧 일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 삼국사기 신라본기 문무왕 10년(A.D.670) 12월 조에는, "倭國更號日本 自言近日所出以爲名(왜국이 국호를 일본으로 바꾸었는데, 스스로 말하기를 해 뜨는 곳과 가까우므로 이름으로 삼았다고 했다)"이라 기록되어 있고, 신당서 권 220 열전 제145 동이 왜국 조에는, "惡倭名更號日本(왜라는 이름이 나쁘기 때문에 국호를 일본으로 바꾸었다)"이라 하였다고도 기록되어 있다. 그..

카테고리 없음 2008.07.10

윤여동설화 - 역관 홍순언과 보은단동 이야기

윤여동설화 - 역관 홍순언과 보은단동(報恩緞洞) 이야기 [경복궁 자경전 꽃담] 옛날 조선시대 한성부에 보은단동이 있었으니 곧 역관 홍순언이 살던 곳이다. 순언은 호협하고 의를 좋아하였는데, 젊을 때 명나라의 서울인 북경에 가서 일세의 미인을 품어보고자 하여 많은 은자를 가지고 화방(기생촌)으로 가서 제일가는 명기를 찾았는데, 한 여자가 있어 생김은 절세가인인데, 소복을 입고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였다. 순언이 괴이하게 여겨 물으니 대답하기를, "첩은 본래 사천사람으로서 아버지의 관직이 주사에 이르렀는데, 갑자기 돌아가시게 되었고 어머니도 뒤 따라 돌아가셨으며, 또한 형 마저 죽어 세 분을 임시로 매장하여 두었는데, 고향으로 모셔다가 장사지낼 방도가 없어 부득이 화류계에 나와 몸을 팔아서라도 장사를 치르려 ..

카테고리 없음 2008.07.08

윤여동설 - 요하문명은 우리 선조들의 동이문명이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요하문명은 우리 선조들의 동이문명이다 - 최초주장 지금까지 중국학자들은 황하의 앙소문화와 양자강의 양저문화를 중국 문명의 시원이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엉뚱하게도 만리장성 외곽인 요하 부근으로부터 내몽골 적봉 부근에 이르는 넓은 지역에서 발견된 홍산문화 때문에 입장이 매우 난처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이 요하문명이 중국 문명과는 전혀 이질적이고, 시기적으로 훨씬 앞서 있었으며, 문화적으로도 발전된 형태를 띠고 있었기 때문에 이 홍산문화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난감해졌기 때문이다. 지금 한반도의 경주나 김해에서 기존의 역사와 전혀 이질적인 문화형태인 오르도스형 금관이나 동복이 출토됨으로써 1만리쯤이나 떨어져 있는 중국 북쪽의 오르도스 지방의 문화가 어떻게 한반도 남부에 갑자기 나타나는지 그를 논리..

카테고리 없음 2008.07.06

윤여동설 - 고조선과 삼한은 북경 부근에 위치하고 있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고조선(古朝鮮)과 삼한(三韓)은 북경 부근에 위치하고 있었다 - 최초주장      중국의 주나라가 평왕 때에 이르러 도읍을 낙양으로 옮김으로써 동주시대가 시작되는데, 이 시기를 역사에서는 춘추전국시대라고 한다.   그런데 이때는 주나라의 세력이 약화되어 가던 때였으므로 제후국이 강성해져 패자의 자리를 놓고 다투게 되는데, 이 시기를 춘추시대(春秋時代)라 하며, 기원전 770년부터 기원전 454년 사이의 기간을 말한다.  이때 소위 춘추오패(春秋五覇)라 하여 한때라도 패자의 자리를 차지했던 다섯 나라인 진(晉), 제(齊), 초(楚), 오(吳), 월(越)이 있었지만 그 외에도 연(燕), 진(秦), 위(衛), 송(宋), 정(鄭), 노(魯), 조(曹), 진(陳), 채(蔡), 기(杞) 등의 나라가 있..

카테고리 없음 2008.07.03

윤여동설 - 말갈(숙신,읍루,물길 여진)은 서랍목륜하(시라무렌강) 부근에 위치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말갈은 서랍목륜하(시라무렌강) 부근에 위치했다 - 최초주장 말갈은 숙신이요, 읍루요, 물길이요, 여진이다. 그런데 이 말갈의 위치에 대하여 우리는 지금 한반도 동북쪽 연해주지역이라 하고 있으나, 이것이 과연 역사적 사실인 것일까? 후한서 읍루전에는, "읍루는 옛 숙신국이다. 부여의 동북쪽 1천여 리에 있는데, 동쪽은 큰 바다에 닿고, 남쪽은 북옥저와 접했으며, 북쪽은 그 끝을 알 수 없다" 라고 그 위치가 기록되어 있고, 삼국지 읍루전에도, "읍루는 부여의 동북쪽 1천여 리에 있다. (동쪽은) 큰 바다에 닿았으며, 남쪽은 북옥저와 접했는데, 북쪽은 그 끝이 어디인지 알지 못한다" 라고 후한서와 동일하게 기록되어 있는데, 우리는 지금까지 이러한 기록을 보고는, 부여는 백두산 북쪽 길림성 지역으..

카테고리 없음 2008.07.01

윤여동설 - 동부여는 내몽골 정람기 부근에 위치했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동부여는 내몽골 정람기 부근에 위치했었다 - 최초주장 [위 : 내몽골 정람기 동북쪽에 위치한 대형고성터. 지금 중국에서 원 상도유지라고 하고 있으나 사실 이곳은 옛 예성(濊城)이었을 가능성이 많은 곳이다] [위 : 내몽골 정람기에 위치한 고성터로서 지금 사랑성(四郞城)이라 부르고 있다] 부여는 아주 오래된 나라의 이름이다. 옛날 고조선의 건국시조 단군 왕검에게는 네 아들이 있었다고 한다. 장자는 부루, 둘째는 부소, 셋째는 부우, 막내는 부여(夫餘, 扶餘)였는데, 단군왕검이 왕검성의 서쪽지역을 부여에게 영지로 내려주게 되어 나라 이름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부여는 고조선이 멸망하자 북부여, 졸본부여, 동부여로 나누어지게 되는데, 북부여는 고구려 왕실에 혈통이 닿아있고, 졸본부여는..

카테고리 없음 2008.06.29

윤여동설 - 옥저는 어디에 위치했을까?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옥저는 어디에 위치했을까? - 최초주장 옥저에는 북옥저, 남옥저, 동옥저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그 정확한 위치를 잘 모르고 있다. 다만 삼국지와 후한서 동옥저전의 기록 즉 동옥저는 고구려 개마대산의 동쪽에 위치해 있는데, 동쪽으로는 바다에 닿았고, 북쪽은 읍루와 부여, 남쪽은 예, 맥과 접했다는 기록을 한반도에 적용하여 동쪽의 바다는 동해로, 개마대산은 개마고원으로, 읍루는 두만강 북쪽 연해주로, 부여는 백두산 북쪽으로, 예, 맥은 강원도로 비정하여 함경남도 함흥 부근을 동옥저로 비정하기도 하고, 또 어느 사람은 함경북도 길주 부근이 동옥저였을 것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사서의 기록을 한반도 함경도에 비정한 것일 뿐 실제 그 곳에서 동옥저의 왕궁이나 무덤 그..

카테고리 없음 2008.06.26

윤여동설 - 동예(東濊)는 내몽골 통요시 고륜기 부근에 위치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동예(東濊)는 내몽골 통요시 고륜기 부근에 위치했다 - 최초주장      역사적으로 나타나는 동예(東濊)를 우리는 지금 한반도의 강원도 일원에 위치하고 있었던 나라였다고 이해하고 있는데, 이것이 과연 역사적 사실인 것일까?  옛 사서의 기록들에는 예(濊) 또는 예맥(濊貊)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그 위치에 대하여 후한서는 "예(동예)는 북쪽으로는 고구려와 옥저, 남쪽으로는 진한과 접했고, 동쪽은 대해에 닿았으며, 서쪽은 낙랑까지이다. 예(동예), 옥저, 고구려는 본래 모두 조선(고조선) 땅이었다" 라고 기록하고 있고,   삼국지는 "예(동예)는 남쪽으로는 진한, 북쪽으로는 고구려, 옥저와 접하였고, 동쪽으로는 대해에 닿았다. 지금 조선 동쪽이 모두 그 땅이다. 백성이 2만 호이다" 라고 기록하..

카테고리 없음 2008.06.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