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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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설 - 공주 송산리 6호분은 무령왕 소비(小妃)의 능인가?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공주 송산리 6호분은 무령왕 소비(小妃)의 능인가? - 최초주장 [공주 송산리 고분군 전경] [공주 송산리 고분군 무령왕릉 개봉전 모습] 충남 공주에서 우연히 발견된 무령왕릉은 백제의 영광을 세상에 드러낸 역사적 사건이었다. 도굴되지 않은 채 온전한 형태로 발견되어 백제의 높은 문화수준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했고, 특히 중요한 것은 지석이 함께 부장되어 있어 한반도에서 삼국시대 왕릉 중 유일하게 주인공을 확실하게 알 수 있는 왕릉이 되었기 때문이다. 삼국사기 백제본기에는, "무령왕의 이름은 사마(혹은 융이라고도 한다)로서 모대왕의 둘째 아들이다. 신장이 8척이요 눈썹과 눈이 그림 그린 것 같았고, 인자관후하니 민심이 귀부했다. 모대왕이 재위 23년(A.D.501)에 죽으니 즉위했다"..

카테고리 없음 2008.05.25

윤여동설 - 신라 왕릉들은 과연 지금의 어디에 조성했을까? - 최초공개

윤여동설 - 신라 왕릉들은 과연 지금의 어디에 조성했을까? - 최초공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의한 신라 왕릉의 조성위치  시조 혁거세거서간의 능은 담암사 북쪽(曇巖寺北) 사릉(蛇陵)(박씨)  ☆ 삼국유사에는 "나라를 다스린 지 61년 되는 어느 날 왕은 하늘로 올라갔다. 7일 뒤에 유체가 흩어져 땅에 떨어졌는데 왕후 역시 죽었다. 나라 사람들이 이들을 합해서 장사지내려 했으나 큰 뱀이 방해하므로 오체로서 오릉을 만들고 사릉(蛇陵)이라고 했다. 담엄사(曇嚴寺) 북릉이 이것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2대 남해차차웅의 능은 사릉원내(蛇陵園內)(박씨) 3대 유리이사금의 능은 사릉원내(蛇陵園內)(박씨) 4대 탈해이사금의 능..

카테고리 없음 2008.05.22

윤여동설 - 백제 왕릉들은 과연 지금의 어디에 조성했을까?

윤여동설 - 백제 왕릉들은 과연 지금의 어디에 조성했을까?      [삼국시대 왕릉 중 한반도에서 유일하게 주인공이 밝혀진 충남 공주의 백제 무령왕릉 내부]   백제 역사는 밝혀진 것이 거의 없는 비밀의 역사라고해도 과언이 아닌데, 삼국사기 백제본기에도 당나라로 끌려가 그곳에서 죽어 낙양 북망산에 묻혔을 것으로 추정되는 의자왕 이외에는 그 왕릉들의 조성 위치에 대해 단 한 줄의 기록도 없다.    왕릉의 조성위치를 숨기기 위해 일부러 기록을 남기지 않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고려사절요 현종 8년(A.D.1017) 12월 조를 보면, "교서를 내려 고구려, 신라, 백제왕의 능묘는 모두 소재지의 주와 현으로 하여금 수리하게 하고, 땔감을 베는 것을 금하고 지나는 사람은 말에서 내리도록 하라"고 했다는 기록이 ..

카테고리 없음 2008.05.20

윤여동설 - 고구려 왕릉들은 과연 지금의 어디에 조성했을까?

윤여동설 - 고구려 왕릉들은 과연 지금의 어디에 조성했을까?                                       우리는 지금 고구려가 28명의 왕들이 왕위를 이었던 것은 알고 있으나 확실한 고구려 왕릉은 한곳도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  북한 평양의 고구려 왕릉을 추모왕릉(주몽왕릉)으로 추정하고 있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북한 학자들의 일방적인 주장일 뿐이고, 집안의 태왕릉을 광개토왕릉, 장군총을 장수왕릉이라 하고 있으나 이 역시 확실한 것은 아니다.   보장왕의 능은 당나라 장안에 조성했다고 했으므로 실제 고구려 강역 내에는 27명의 왕릉만이 조성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까지 요녕성 환인을 졸본이라 했고, 길림성 집안을 국내성이라 했으며, 북한 평양을 평양성, 황성, 장안성이라 ..

카테고리 없음 2008.05.19

윤여동설 - 일본 국보 스타하치망인물화상경 명문의 비밀 - 최초공개

윤여동설 - 일본 국보 스타하치망 인물화상경 명문의 비밀 - 최초공개                                                          지금 일본 국보로 지정되어 있는 우전팔번(스타하치망)신사 인물화상경(隅田八幡神祠 人物畵像鏡)에는 우리 역사와 관련된 명문이 새겨져 있어 한·일간에 그 명문의 해석을 놓고 주장들이 분분하다.  왜냐하면 그 명문에 "사마"와 "남제왕"이라는 두 사람의 왕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데, 남제왕의 신분에 대해서는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고, 사마란 백제 무령왕의 이름이기 때문이다.   칠지도 명문과 함께 이 명문 역시 아직까지 명쾌하게 해독되지 못하고 있는데,   기록을 보면,"癸未年八月 日十六王年男弟王在意紫沙加宮時斯麻念長壽遣開中費直 穢人今..

카테고리 없음 2008.05.16

윤여동설 - 칠지도 명문의 올바른 해석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칠지도는 반도백제 무광왕(武廣王)이 왜왕이 된 그 아들에게 하사한 것이다 - 최초주장 지금 일본의 석상신궁(石上神宮)에는 칠지도(七支刀)라는 칼이 전하고 있는데, 그 칼의 전면에는, "泰(和)四年五月十六日丙午正陽造百鍊鐵七支刀世辟百兵宜供供侯王☆☆☆☆作(태(화)4년5월16일병오정양조백련철칠지도세벽백병의공공후왕****작)" 이라 되어 있는데, 칠지도가 처음 만들어진 시기와 왕에게 받쳐진 때 그리고 제작자를 금상감으로 새겨 놓았고, 그 칼의 후면에는, "先世以來未有此刀 百濟王世子奇生聖音 故爲倭王 旨造 傳示後世(선세이래미유차도백제왕세자기생성음고위왜왕지조전시후세)"라는 명문이 금상감으로 새겨져 있는데, 칼에 글자를 새긴 이유와 받은 사람 그리고 하사한 이유가 적혀 있다. 그런데 일본 학자들은 일본서기 ..

카테고리 없음 2008.05.15

윤여동설 - 한반도 동해 감포의 대왕암은 신라 문무왕릉 아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한반도 동해 감포의 대왕암은 신라 문무왕릉이 아니다 - 최초주장    서기 681년 6월 문무왕은 죽음이 임박해지자 자신이 죽거든 장례를 호화롭게 치르지 말 것이며, 무덤도 커다랗게 만들지 말고, 서역 법식에 따라 화장하여 간단하게 장례를 치르라고 유언하고는 7월 초하룻날 죽게 된다.  그리하여 그 아들인 신문왕은 유언에 따라 문무왕의 시신을 불에 태운 후 동해구의 큰 돌 위에 장사 지냈는데, 그리하여 사람들은 그 바위를 대왕석이라고 불렀고, 신문왕은 문무왕이 동해 바닷가에 짓다가 미처 완공하지 못한 감은사를 완공하여 아버지인 문무왕의 능을 수호하고 영혼의 극락왕생을 비는 원찰로서의 역할을 하도록 조치한다.   그런데 그 다음해 5월 초하루에 해관인 파진찬 박숙청이 아뢰기를 "동해에 작은 산..

카테고리 없음 2008.05.13

윤여동설 - 한반도 경주의 불국사와 석굴암은 신라 김대성이 지은 것이 아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한반도 경주의 불국사와 석굴암은 신라 김대성이 지은 것이 아니다 - 최초주장 삼국유사 효선편 대성효2세부모 신문왕대 조에 의하면, 향전의 기록을 인용하여, "모량리(혹은 부운촌이라고도 한다)의 가난한 여인 경조에게 아이가 있었는데, 머리가 크고 정수리가 평평하여 성과 같았으므로 이름을 대성이라 하였다. 집이 가난하여 부자인 복안의 집에 가서 머슴살이를 하여 그 대가로 조그만 밭을 새경으로 받았는데, 그 밭을 절에 시주했다. 얼마 후 대성이 죽었는데, 이날 밤 국상 김문량의 집에 하늘로부터 '모량리 김대성이란 아이가 너의 집에 태어날 것이다.' 하였다. 그로부터 김문량의 아내가 임신하여 아이를 낳았는데 왼쪽 손을 꼭 쥐고 있다가 7일만에 폈는데 "대성(大城)"이라는 두 글자가 새겨진 금간자가 ..

카테고리 없음 2008.0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