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위례성 18

윤여동설 - 백제의 초기강역은 지금의 하북성 도산(都山)을 중심으로 난하 동쪽, 청룡하 서쪽이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백제의 초기강역은 지금의 하북성 도산(都山)을 중심으로 난하 동쪽, 청룡하 서쪽이었다 - 최초주장     백제의 건국지는 한산(漢山) 부근이었다.   처음에 비류와 온조 그리고 신하들이 한산(漢山) 부아악(負兒嶽)에 올라 도읍할 장소를 물색했는데, 신하들이 한수(漢水) 남쪽에 도읍할 것을 건의했으나 비류는 그곳을 마다하고 미추홀(弥鄒忽)로 갔고, 온조는 신하들이 건의한 한산 부근의 위례성(慰禮城)에 도읍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 그를 알 수 있다.   [부아악(負兒嶽) : 어린아이를 업고 있는 형상의 산이라는 의미]   그런데 온조왕 2년(B.C.17) 조를 보면, “봄 정월에 왕이 신하들에게 말하기를, ‘말갈이 우리 북부 국경에 이어져 있고 그곳 사람들이 용기가 있고 거짓이 많으니 의당 병기..

카테고리 없음 2018.06.15

윤여동설 - 백제의 한성(漢城)에는 북성과 남성이 있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백제의 한성(漢城)에는 북성과 남성이 있었다 - 최초주장 삼국사기 백제본기 근초고왕 26년(A.D.371) 조를 보면, “고구려가 군사를 동원하여 침공하여 왔다. 왕이 이 말을 듣고 패하(패수)가에 군사를 숨겨 놓고 기다리다가 그들이 도착하자 갑자기 치니 고구려 군사가 패배하였다. 겨울에 왕이 태자와 함께 정예한 군사 3만을 거느리고 고구려를 침공하여 평양성을 공격하니 고구려왕 사유(고국원왕)가 힘을 다하여 항전하다가 화살에 맞아 죽으매 왕이 군사를 이끌고 돌아왔다. 도읍을 한산으로 옮겼다(移都漢山)” 라고 기록되어 있고, 또 중국 사서인 송서와 남사 그리고 양직공도 백제국사에는 백제가 요서 진평현을 차지하고 그곳에 백제군을 설치했다는 기록도 보이는데, 이때 옮긴 도읍이 바로 한성(漢城)이었..

카테고리 없음 2017.05.27

윤여동설 - 백제 한산부아악(漢山負兒嶽)의 위치 - 최초공개

윤여동설 - 백제 한산부아악(漢山負兒嶽)의 위치 공개 - 최초공개 삼국사기 백제본기 시조 온조왕 조를 보면, “.............이리하여 한산(漢山)에 이르러 부아악(負兒嶽)에 올라서 살만한 곳을 살피다가 비류가 바닷가에서 살고 싶어 하니 열 신하가 간하여 말하기를 ‘이 하남의 땅은 북대한수(북쪽으로 한수가 띠를 두르고)하고, 동거고악(동쪽은 높은 산이 있으며) 하며, 남망옥택(남쪽으로는 평야가 바라보이고)하고, 서조대해(서쪽은 대해로 막혀 있으니)하니 그 천험의 지리가 얻기 어려운 지세이오니, 이곳에 도읍을 정하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하였으나 비류가 그를 듣지 않고 그 백성들을 나누어 미추홀(弥鄒忽)로 돌아가 살았다. 온조는 하남위례성(필자주 : 한수 남쪽의 위례성이라는 의미)에 도읍을 정하고..

카테고리 없음 2014.09.28

윤여동설 - 소서노와 비류 온조의 남하로를 밝힌다 - 최초공개

윤여동설 - 소서노와 비류 온조의 남하로를 밝힌다 - 최초공개 삼국사기 백제본기를 보면, “주몽이 두 아들을 낳았는데 큰아들은 비류요, 둘째는 온조였다. 주몽이 북부여에서 낳은 아들(유리를 말함)이 와서 태자가 되매 비류와 온조는 태자에게 용납되지 못할까 염려하여 드디어 오간, 마려 등 열명의 신하들을 데리고 남쪽지방으로 떠나니 백성들 중에서 따르는 자가 많았다. 이리하여 한산(漢山)에 이르러 부아악에 올라서 살만한 곳을 살폈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삼국유사 기이 제2 남부여 전백제 북부여 조에는, “고전기(古典記)에 이르기를, ”동명왕의 세째아들 온조는 전한 홍가 3년 계유년에 졸본부여에서 위례성으로 와서 도읍을 정하고 왕이라 일컬었다. 14년 병진년에 도읍을 한산(漢山:지금의 광..

카테고리 없음 2011.06.24

윤여동설 - 백제의 한성(漢城)은 한곳이 아니라 남한성과 북한성이 있었다

윤여동설 - 백제의 한성(漢城)은 한곳이 아니라 남한성과 북한성이 따로 있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한성(漢城)”을 “백제의 5백년 도읍지”라 인식하고 있는데, 그것이 과연 역사적 진실인 것일까? 백제의 온조왕은 기원전 18년에 위례성(하남위례성)에 도읍하고 국호를 십제(十濟)라 했다가 기원전 5년에 도읍을 한수의 남쪽(필자주 : 한수의 하류로 옮겼다고 했어야 정확한 표현이었다) 남한성으로 옮기게 된다. ☆ 백제 건국설화를 보면, 온조왕은 미추홀로 가서 나라를 세웠던 형인 비류왕이 죽자 그 신하들과 백성들을 십제에 귀속시키고 미추홀의 백성들이 즐겁게 따랐다 하여 국호를 백제로 바꾸었다고 전하는데, 아마 비류왕과 온조왕은 쌍둥이 형제였던 듯 하다. 이때 온조왕이 도읍을 옮기게 된 이유는 그가 전해인 기원전..

카테고리 없음 2010.10.25

윤여동설 - 백제의 위례성 - 하남위례성 - 남한성 - 한성 - 북한성의 관계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백제의 위례성 - 하남위례성 - 남한성 - 한성 - 북한성의 관계를 새롭게 정리한다 - 최초주장 [백제 한산 부아악 추정지] 삼국사기 기록 중 백제의 위례성, 하남위례성, 남한성, 한성, 북한성의 관계에 관한 기록들은 매우 혼란스럽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은 아직까지도 백제의 도읍들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사람마다 주장들만 난무하고 있는 실정이다. 삼국사기 백제본기 시조 온조왕 조를 보면, “비류는 듣지 않고 백성들을 나누어 가지고 미추홀(弥鄒忽)로 돌아가서 살게 되었고, 온조는 하남위례성(河南慰禮城)에 도읍을 정하고 열 신하로서 보좌역을 삼아 국호를 십제라 하였는데, 이때는 전한 성제 홍가 3년(B.C.18)이었다”고 기록함으로서 비류가 세운 나라의 도읍은 미추홀이었고, 온조십제의 최초 ..

카테고리 없음 2010.09.06

윤여동설 - 비류백제의 도읍 미추홀을 찾았다 - 최초공개

윤여동설 - 비류백제의 도읍 미추홀(弥鄒忽)을 찾았다 - 최초공개 삼국사기 백제본기 시조 온조왕 조를 보면, “............이리하여 한산에 이르러 부아악에 올라서 살 만한 곳을 살피다가 비류가 바닷가에서 살자고 하니 열 신하가 간하여 말하기를, ‘이 하남의 땅은 북으로는 한수를 띠었고, 동쪽에는 높은 산맥이 있으며, 남쪽으로는 비옥한 들판이 바라보이고, 서쪽은 큰 바다로 막혀 있습니다. 이렇듯 천험의 지리적 잇점을 갖춘 곳은 얻기 어려운 지세이니 이곳에 도읍을 정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하였으나 비류가 듣지 않고 그 백성들을 나누어 가지고 미추홀로 돌아가 살았다. 온조는 하남위례성(위례성)에 도읍을 정하고 열 신하로서 보좌를 삼아 나라 이름을 십제라 하니 이때가 전한 성제 홍가 3년(B.C..

카테고리 없음 2010.05.03

윤여동설 - 온조왕 탄생설화와 백제 건국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온조왕 탄생설화와 백제건국 - 최초주장    백제의 건국시조 비류왕과 온조왕의 혈통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기록에 나타난 탄생설화를 정리해 보면,   주몽과 졸본부여 공주 사이 탄생설,   주몽과 월군여인 사이 탄생설,   우태와 소서노 사이 탄생설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그리고 어느 사람은 비류는 우태와 소서노 사이에서 출생했고, 온조는 주몽과 소서노 사이에 출생한 이부동모(아버지는 다르고 어머니는 같다는 의미) 사이였을 것이라는 주장을 펴기도 하는데, 근거 없는 주장이다.    주몽과 졸본부여 공주 사이 탄생설은, 삼국사기 백제본기에 "백제 시조 온조왕은 그의 아버지가 추모인데 혹은 주몽이라고도 한다. 주몽이 북부여에서 난을 피하여 졸본부여에 이르렀더니 부..

카테고리 없음 2009.04.15

윤여동설 - 백제와 낙랑 그 의문의 접촉기록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백제와 낙랑 그 의문의 접촉기록들 - 최초주장     백제는 기원전 18년에 건국된 나라이다.  그런데 백제(百濟)와 낙랑(樂浪)은 백제가 건국된 시점부터 국경을 직접 접하고 있었던 것으로 나타난다.  삼국사기 백제본기 온조왕 재위 4년(B.C.15) 조를 보면, "가을 8월 낙랑에 사신을 보내 우호관계를 맺었다" 라고 기록되어 있고, 재위 8년(B.C.11)조에는, 온조왕이 낙랑과의 접경지역에 마수성을 쌓고 병산에 목책을 세우자 낙랑태수가 사람을 보내 낙랑을 침공하려 하는 것이냐고 항의하면서 의심하지 않게 하려면 성과 목책을 헐어버릴 것을 요구하게 된다.   그런데 온조왕이 그 요구를 거부하자 그 일로 인하여 백제와 낙랑사이에 화친이 깨어지게 되었고, 그렇게 화친이 깨어진 재위 11년(B...

카테고리 없음 2009.02.13

윤여동설 - 근초고왕이 옮긴 백제의 도읍 한성(漢城)은 진황도 도산남쪽 - 최초공개

윤여동설 - 근초고왕이 옮긴 백제의 도읍 한성(漢城)은 진황도 도산남쪽 - 최초공개 - 삼국사기 백제본기 근초고왕 26년(A.D.371) 조를 보면, "고구려가 군사를 동원하여 침공해 왔다. 왕이 이 말을 듣고 패하가에 군사를 숨겨놓고 기다리다가 그들이 도착하자 급히 치니 고구려 군사가 패배하였다. 겨울에 왕이 태자와 함께 정병 3만을 거느리고 고구려에 침입하여 평양성을 공격하니 고구려왕 사유(고국원왕)가 힘을 다하여 항전하다가 날아오는 화살에 맞아 죽으니, 왕이 군사를 이끌고 물러왔다. 도읍을 한산으로 옮겼다(移都漢山)"라고 기록하고 있어 이때 백제가 도읍을 "한산"으로 도읍을 옮겼다는 것을 알게 한다. ☆ 그런데 삼국유사 왕력편에는 백제가 신미년(A.D.371)에 도읍을 "한산(漢山)"이 아닌 "북한..

카테고리 없음 2008.09.26

윤여동설 - 백제의 남한성은 하북성 당산 천안시 건창영 부근 - 최초공개

윤여동설 - 백제의 남한성은 하북성 당산 천안시 건창영부근 - 최초공개     사실 백제 최초의 도읍, 더 엄격히 말한다면 온조십제 최초의 도읍이 위례성(慰禮城)이냐 하남위례성(河南慰禮城)이냐 또는 위례성과 하남위례성이 동일한 장소를 말하는 것이고, 한산에 남한산과 북한산이 따로 존재했느냐, 한성이 두개로서 남한성과 북한성으로 나누어져 있었느냐 하는 것은 아직까지도 결론이 나지 않은 논란거리다.   왜냐하면 삼국사기 백제본기에 "온조는 하남위례성에 도읍을 정하고 열 신하로서 보좌역을 삼아 국호를 십제(十濟)라 하였는데, 이때는 전한 성제 홍가 3년(B.C.18)이었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또 기원전 6년 조에는 "여름 5월에 왕이 신하들에게 말하기를 ".......내가 어제 나가서 순행하다가 한수(漢水..

카테고리 없음 2008.09.22

윤여동설 - 백제의 건국지 위례성과 미추홀의 위치 찾기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백제의 건국지 위례성과 미추홀의 위치 찾기 - 최초주장 기원전 42년 기묘년에 소서노는 어린 두 아들의 손을 잡고 졸본의 압록강 나루에서 배에 몸을 실었다. 이때 소서노의 나이 25세였고, 비류는 4-5세정도, 온조는 2-3세 정도였다.[필자주 : 혹은 비류와 온조가 쌍둥이 형제였을 가능성도 있다] 원래 소서노는 졸본부여의 호족 연타발의 딸로서 졸본부여 왕족인 우태에게 시집가 두 아들을 낳았는데, 둘째 아들 온조를 낳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인 우태가 갑자기 죽어 젊은 나이에 아들 둘 딸린 과부가 되어 한숨으로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가 졸본에서 주몽왕과 재혼한 후 자신이 우태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을 졸본부여의 태자로 봉하려 하다가 그것이 여의치 않자 졸본을 떠나 압록강을 타고 내..

카테고리 없음 2008.09.19

윤여동설 - 백제 역사의 미스테리가 풀렸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백제 역사의 미스테리가 풀렸다 - 최초주장       지금까지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백제는 매우 미스테리한 나라였다.   왜냐하면 백제에 대하여 깊이 연구하면 할수록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같은 기록들에 부딪치기 때문이었다.  ☆ 옛 사서의 백제 관련 기록들을 모두 한반도에 비정하여 해석하려했기 때문에 미스테리하게 느껴졌을 것인데, 사실 백제는 한반도에서 건국된 나라가 아니었다.   삼국사기에는 백제의 동쪽에 (신라가 있고,서쪽에) 낙랑이 있으며, 북쪽에 말갈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기도 하고, 신라의 서쪽에 백제가 위치했다고도 기록되어 있고, 신라의 남쪽에는 가야가 있다고도 했고, 마한의 동북쪽에 백제가 위치하고 있었다고도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중국 사서들은 백제가 요동 동쪽 1천여 ..

카테고리 없음 2008.08.11

역사추리 - 비류백제의 태자는 어디로 갔을까?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비류백제의 태자는 어디로 갔을까? - 최초주장 [무너진 백제장성] 우리는 지금 백제의 건국시조를 "온조왕(溫祚王)"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나 삼국사기를 보면 원래 "백제(百濟)라는 나라의 건국시조는 '비류(沸流)'라고 기록하고 있고, 온조왕은 '십제(十濟)'의 건국시조였는데, 후일 형인 비류왕이 죽자 온조왕이 비류백제와 온조십제를 통합한 후 국호를 새롭게 "백제(百濟)"라고 정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때 온조왕은 자신이 세운 나라인 십제의 국호를 버리고 형이 세운 나라인 백제를 국호로 삼았다는 말이 되므로 엄격한 의미에서는 백제의 건국시조는 비류왕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고, 온조왕은 백제의 2대왕으로 기록해야 마땅할 것이나 삼국사기는 비류백제에 관한 기록을 남기고는 있지만 단순한 일화정도로 취..

카테고리 없음 2008.05.28

윤여동설 - 백제의 불교전래

윤여동설 - 백제의 불교 전래 삼국사기 백제본기 침류왕 원년(A.D.384) 9월 조에는, "호승(胡僧) 마라난타(摩羅難陀)가 진[東晋]나라로부터 와서 왕이 궁중으로 맞아들여 예우하고 공경하니 불교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삼국유사 흥법편 「난타벽제」조에도 동일한 기록이 있어 서기 384년에 동진으로부터 백제에 불교가 전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고구려에 불교가 처음으로 전래된 때가 372년이었으므로 백제는 그로부터 12년 후에 전해졌고, 고구려를 거쳐 전해진 것이 아니라 동진으로부터 직접 전해졌다는 것도 알 수 있는 기록인 것이다. ☆ 한반도에는 대륙백제와는 별도로 서기 365년경 무광왕이 대륙에서 근초고왕과의 왕위쟁탈전에서 패하고 한반도로 건너와 익산 금마에 반도백제를 다시 세우고 ..

카테고리 없음 2008.04.22

윤여동설 - 새롭게 비정하는 백제의 도읍과 그 위치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새롭게 비정하는 백제의 도읍과 그 위치 - 최초주장 온조백제는 기원전 18년 건국하여 위례성에 도읍했고, 기원전 5년 남한성으로 도읍을 옮겼으며, 서기 371년에 한성으로 다시 옮겼고, 475년에 웅진으로 옮기고, 538년에 도읍을 사비로 또 옮겼는데, 결국 이곳 사비에서 나·당연합군의 침공을 받고 의자왕이 서기 660년 7월 18일에 항복함으로써 백제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도읍명 왕대 도읍이전년도 도읍기간 비고 위례성 온조왕 B.C.18 13년 건국지 남한성 온조왕 B.C.5 376년 비류백제통합후 한성 근초고왕 A.D.371 104년 요서진출후 웅진 문주왕 A.D.475 63년 한성함락당한후 사비 성왕 A.D.538 - 660 122년 국세회복을 위해 그런데 후한서 한(韓)전을 보..

카테고리 없음 2008.03.23

윤여동설 - 온조백제의 건국지는 지금의 어디인가?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온조백제의 건국지는 지금의 어디인가? - 최초주장    우리는 삼국사기에 기록된 백제(온조백제)의 건국설화를 한반도에 비정하여,   비류와 온조가 졸본(환인)을 떠나 남쪽으로 내려와 압록강을 건너고, 패수(대동강)와 대수(예성강 또는 임진강)를 건너, 한산 부아악(서울 북한산)에 올라 지세를 살펴보고,   비류는 서쪽의 미추홀(인천)로 갔고 온조는 위례성(서울)에 도읍하였다고 해석한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까지 서울 부근에서 위례성의 확실한 흔적을 찾지 못했고, 인천에서 비류가 도읍 했던 미추홀의 흔적을 찾아내지 못했으며, 백제가 500여 년 간 도읍 했을 것이라는 지금의 서울지역에서 확실한 백제의 왕릉을 한 곳도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  ☆ 석촌동 적석총을 백제 왕릉으로 보는 견해..

카테고리 없음 2007.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