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대륙가야 15

윤여동설 – 고대 우산국(于山國)의 원래 위치 찾기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고대 우산국(于山國)의 원래 위치 찾기 - 최초주장 삼국사기 신라본기 지증왕 13년(A.D.512) 조를 보면, 『여름6월 우산국(于山國)이 귀순하고 해마다 토산물로써 세공을 바치기로 하였다. 우산국(于山國)은 명주(溟州)의 정동쪽 바다 가운데 있는 섬으로 혹은 울릉도(鬱陵島)라고도 한다. 땅 둘레가 1백리인데, 지세가 험한 것을 믿고 항복하지 아니하였다. 이찬 이사부(異斯夫)가 하슬라(何瑟羅) 군주(軍主)가 되었는데, 우산인(于山人)들이 미련하고 사나우므로 위력으로서 복종시키기는 어려우니 계교로서 항복시켜야겠다고 생각하고는 곧 나무로 사자 모양을 만들어 전선(戰船)에 나누어 싣고 그 나라 해안에 다달아 거짓말로 말하기를 “너희들이 만약 항복하지 않는다면 이 맹수를 풀어 놓아 짓밟아 죽이겠다..

카테고리 없음 2023.05.07

윤여동설 – 의문의 섬 덕물도(德物島) 위치 찾기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의문의 섬 덕물도(德物島) 위치 찾기 – 최초주장 삼국사기 신라본기 태종무열왕 7년(A.D.660) 조를 보면, “3월 당나라 고종이 명을 내려 좌무위대장군 소정방(蘇定方)을 신구방면행군대총관으로 삼고, 김인문을 부대총관으로 삼아 좌효위장군 유백영 등 수륙군 13만명을 거느리고 백제를 치게 하고 왕(신라왕, 태종무열왕 김춘추)을 칙명으로 우이도행군총관을 삼아 군사로서 성원하도록 하였다. 여름5월26일에 왕이 김유신, 김진주, 김천존 등과 함께 군사를 거느리고 서울(서라벌)을 출발하여 6월18일에 남천정(南川停)에 머물렀다. 소정방은 래주(萊州, 필자주 : 산동반도 래주)로부터 출발하는데, 전선이 천리를 잇달아 물길을 따라 동쪽(?, 필자주 : 서북쪽으로 갔다가 동북쪽으로 향했다고 해야 옳은 ..

카테고리 없음 2022.01.29

윤여동설 – 후백제 견훤의 신라 서라벌 침공로를 밝힌다 - 최초공개

윤여동설 – 후백제 견훤의 신라 서라벌 침공로를 밝힌다 - 최초공개 삼국사기 신라본기 경애왕 4년(A.D.927)조를 보면, "가을 9월 견훤이 고울부(高鬱府)로 신라군을 공격해와 왕이 고려 태조(왕건)에게 구원을 청하니 태조가 장수에게 명하여 강한 군사 1만을 출동시켜 구원하게 하였으나 구원병이 아직 오지 않았으므로 견훤이 겨울 11월에 도읍(서라벌)을 습격해 왔다. 이때 왕(경애왕)이 비빈과 종척들을 데리고 포석정(鮑石亭)에서 연회를 베풀어 즐겁게 놀고 있어 적병이 오는 것을 알지 못했다......중략...................... 왕은 비첩 몇 명과 함께 후궁에 있다가 (후백제군의) 군영으로 잡혀갔는데, (견훤이) 왕을 협박하여 자살하게 하고 왕비를 강제로 강간하고 그의 부하들로 하여금 비..

카테고리 없음 2021.04.10

윤여동설 – 가라(加羅) 다사진(多沙津) 문제를 논의한 안라고당회의(安羅高堂會議) 장소는 지금의 어디였을까? - 최초공개

윤여동설 – 가라(加羅) 다사진(多沙津) 문제를 논의한 안라고당회의(安羅高堂會議) 장소는 지금의 어디였을까? - 최초공개 일본서기 계체천황 23년(A.D.533, 백제 성왕11년, 신라 법흥왕 20년) 조를 보면, “봄3월 백제왕이 하다리국수(下口+多唎國守) 수적압산신(穗積押山臣)에게 말하기를, ‘조공하러 가는 사자들이 항상 섬의 돌출부를 피할 때마다 매양 풍파에 시달립니다. 이로 인하여 가지고 가는 것들이 젖고 망가지게 됩니다. 그러하니 가라(加羅)의 다사진(多沙津)을 조공하는 길로 하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이를 압산신이 전하여 아뢰었다. 이달에 물부이세련부근(物部伊勢連父根), 길사노(吉士老)를 보내, 항구(다사진)를 백제왕에게 주었다. 가라왕(加羅王)이 칙사에게 말하기를, ‘이 항구는 관가를 둔 이래..

카테고리 없음 2021.02.21

윤여동설 - 고구려 천리장성과 고려 천리장성의 위치비교 - 최초공개

윤여동설 - 고구려 천리장성과 고려 천리장성의 위치비교 - 최초공개 고구려 천리장성 구당서 고구려전 정관5년(A.D.631) 조를 보면, "건무(영류왕의 이름)는 그 나라가 침입당할 것을 두려워하여 장성을 쌓았는데, 동북쪽 부여성으로부터 서남쪽 바다에 이르기까지 1천여 리였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또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영류왕 14년(A.D.631) 조를 보면, "봄2월 왕이 백성들을 동원하여 장성을 쌓았는데, 그 성이 동북쪽은 부여성으로부터 동남쪽(필자주 : 서남쪽의 오기이다)으로 바다(해)까지 닿았는데 무려 16년 만에 준공되었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이때 고구려가 천리장성을 쌓았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위 : 내몽골 오란찰포 서남쪽 대해(岱海) 부근의 장성흔적 : 고구려 천리장성의 서남쪽 끝 부분으..

카테고리 없음 2019.06.28

윤여동설 - 신라(新羅), 가야(伽倻)는 한반도에 없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신라(新羅), 가야(伽倻)는 한반도에 없었다 - 최초주장 지금 많은 사람들은 신라가 흉노족과 관련 있는 나라였다고 잘못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이는 한반도 경주 부근에 우리의 신라가 위치했었다고 인식하고 있고, 김해 부근에 가야가 위치했었다고 인식하고 있으며, 그 부근에서 유목민족이었던 흉노족들의 문화와 관련된 유물들이 다수 출토되기 때문에 신라, 가야와 흉노를 결부시켜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고, 또한 신라 김씨의 시조인 김알지를 흉노족인 투후 김일제의 후예로 인식하기 때문일 것이다. 더구나 경주에서 발견된 문무왕비편이라는 명문으로 인하여 신라 김씨왕들이 흉노족인 투후 김일제의 후예가 틀림없다고 믿게 되었다고 판단된다. 그러나 사실 한반도 경주 부근에 천년왕국 신라가 위치한 적은 없고, 가야 ..

카테고리 없음 2018.03.10

윤여동설 - 환도성(丸都城)이 중국 세력들로부터 계속 침공을 당한 이유 - 최초주장

윤여동설 - 환도성(丸都城)이 중국 세력들로부터 계속 침공을 당한 이유 - 최초주장 삼국사기 고구려전을 보면, 6대 태조대왕 90년(A.D.142) 가을9월 환도(丸都)에 지진이 있었다. 10대 산상왕 2년(A.D.198) 봄2월 환도성(丸都城)을 쌓았다. 13년(A.D.209) 겨울10월 왕이 환도성으로 도읍을 옮겼다[冬十月 王移都於丸都) 11대 동천왕 20년(A.D.246) 가을8월 위나라에서 유주자사 관구검을 보내 1만여명으로서 현토로 나와 침입하였다......... 겨울 10월 관구검이 환도성을 쳐서 함락시켜 주민들을 도륙하고, 곧 장군 왕기를 시켜 왕을 추격하므로 왕이 남옥저로 달아나다가 죽령(필자 주 : 단단대령 또는 절령[자비령]의 오기인 듯)에 이르니 군사들은 분산되어 흩어지고.........

카테고리 없음 2017.09.11

윤여동설 - 임나(任那)는 있었다 지금의 중국 하북성 진황도에......- 최초주장

윤여동설 - 임나(任那)는 있었다 지금의 중국 하북성 진황도에......- 최초주장 임나(任那)가 있었다 없었다, 임나(任那)가 한반도 남부에 있었다, 아니다 대마도에 있었다, 아니다 큐우슈우에 있었다 등등 임나에 대하여 논란들이 아주 많다. 그런데 필자는 임나(任那)가 어디에 위치하고 있었느냐를 찾기에 앞서 먼저 고대 왜국이 과연 어디에 위치하고 있었는지, 우리 신라, 백제, 고구려, 가야가 과연 어디에 위치했었는지를 먼저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임나는 가야의 일원이었고, 백제와 가까이 접하고 있었으며, 고구려 광개토왕이 임나의 종발성을 공격한 기록이 호태왕비문에 전하기 때문이다. [필자주 : 삼국사기 강수열전에도 강수 스스로 자신이 임나가량(任那加良) 사람이라 하였고, 진경대사탑비문에도 "..

카테고리 없음 2017.08.12

윤여동설 - 한반도 김해는 금관가야의 도읍 금관성이 아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한반도 김해는 금관가야의 도읍 금관성이 아니다 - 최초주장 삼국사기 신라본기 파사이사금 8년(A.D.87) 조를 보면, "가을8월 왕이 명령을 내려 말하기를 '내가 덕이 없이 나라를 가져 서쪽으로는 백제와 이웃하고, 남쪽으로는 가야를 접하였는데도, 덕망은 백성들을 안정시키지 못하고 위엄은 외국이 경외하게 하기에 부족하다. 그러므로 성새와 보루를 수리하여 외적의 침략에 대비하라' 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신라의 서쪽 국경은 백제와 접하였고, 남쪽국경은 가야와 접하고 있었음을 알게 하고, 삼국유사 가락국기를 보면, 『즉위 2년(B.C.43) 계묘 정월에 왕이 말하기를, “내가 도읍을 정하려 한다” 하고는 곧 임시궁궐의 남쪽 신답평(新畓坪)으로 나아가 사방의 산악을 바라보다가 좌우 사람들을 보고..

카테고리 없음 2017.03.17

윤여동설 - 고대의 왜국(倭國)은 지금의 요동반도에 위치했었고, 임나가라(任那加羅, 임나국)는 진황도 부근에 위치했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고대의 왜국(倭國)은 지금의 요동반도에 위치했었고, 임나가라(任那加羅, 임나국)는 진황도 부근에 위치했었다 - 최초주장 고대의 왜국은 지금의 요동반도에 위치하고 있었고, 우리의 삼국 즉 고구려는 지금의 하북성 승덕시 일부, 장가구시 일부, 북경시 일부, 산서성 일부, 내몽골 일부를 차지하고 있었고, 백제는 하북성 당산시, 진황도시, 승덕시 일부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신라는 요녕성 금주시(錦州市), 조양, 부신 일원을 차지하고 있었고, 가야는 요녕성 호로도, 흥성, 수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우리의 고대 역사를 한반도를 중심으로 해석함으로써 임나(임나국)도 한반도 남부에 위치했었다고 해석한다. 이는 우리가 지금 한반도에 살고 있고, 일본이 지금의 일본열도에 위치해 있기 때문..

카테고리 없음 2017.02.04

윤여동설- 가야 허왕후 설화 속 망산도(望山島)는 지금의 국화도(菊花島) - 최초공개

윤여동설- 가야 허왕후 설화 속 망산도(望山島)는 지금의 국화도(菊花島) - 최초공개 [가야왕성과 구지봉] 삼국유사 가락국기를 보면, “...............건무 24년 무신(A.D.48) 7월 27일에 구간 등이 조회를 할 때 말하기를, ‘대왕께서 강림하신 후로 좋은 배필을 구하지 못하셨으니 신들 집안에 있는 처녀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골라서 궁중에 들여보내 대왕의 짝으로 삼으면 어떻겠습니까?’ 하였다. 왕이 대답하기를, ‘내가 여기에 내려온 것은 하늘의 명령이었으므로 나에게 짝을 지어 왕후를 삼게 하는 것 역시 하늘의 명령이 있을 것이니 경들은 염려하지 말라’하였다. 그리고는 유천간에게 명하여 빠른 배와 준마를 가지고 망산도(望山島)에 가서 기다리게 하고, 신귀간에게 명하여 승점(乘岾 :..

카테고리 없음 2016.12.18

윤여동설 - 일본에서도 왜 흉노 유물이 출토되는 것일까?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일본에서도 왜 흉노 유물이 출토되는 것일까? - 최초주장 후한(後漢)의 광무제가 왕망의 신(新)나라를 멸망시키고 한(漢)나라를 부활하자 신나라의 정치에 깊이 관여했던 지금의 산동성 하택시 부근에 봉해졌던 투후 김일제의 후예들은 어디론가 도망쳐야 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광무제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일단 가까운 요동(遼東)으로 도망치게 되는데, 고대의 요동은 지금의 북경 부근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후한 광무제의 추적은 집요했고, 요동 부근에 위치하고 있던 고구려, 백제는 도망자들을 선뜻 받아들이지 못한다. 괜히 강한 세력인 후한과 척을 지으면 침공을 당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인데, 어느 나라가 그러한 위험부담을 안고 도망쳐 온 사람들의 망명을 흔쾌히 받..

카테고리 없음 2014.12.28

윤여동설 - 가야는 한반도가 아니라 발해 북쪽에 위치하고 있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가야는 한반도가 아니라 발해 북쪽에 위치하고 있었다 - 최초주장    일반적으로 우리는 가야가 지금 한반도 가야산의 남쪽, 지리산의 동쪽지역에 위치하고 있었다고 인식하고 있으나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기록되어 있는 가야의 위치에 대한 기록과는 그 지형이 다르다.   삼국유사 가락국기에는 가야의 서북쪽(필자주 : 사실은 서남쪽이다)에 지리산이 위치했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한반도의 지리산은 서북쪽이 아닌 서쪽에 위치하고 있고, 삼국유사 가락국기에는 가야산이 가야의 동북쪽에 위치했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한반도의 가야산은 북쪽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가야와 국경을 접하고 있었으며, 때로는 수교하고, 때로는 전쟁을 했으며, 결국 후대에 이르러 가야를 병합한 것으로 나타나는 가야 북쪽에 위치했었다..

카테고리 없음 2012.02.25

윤여동설 - 백제 초기 낙랑 우두산성(牛頭山城)의 위치를 공개한다 - 최초공개

윤여동설 - 백제 초기 낙랑 우두산성(牛頭山城)의 위치를 공개한다 - 최초공개    삼국사기 백제본기 시조 온조왕 18년(B.C.1) 조를 보면, “11월 왕이 낙랑의 우두산성(牛頭山城)을 습격하려고 구곡(臼谷)까지 갔다가 큰 눈을 만나 돌아오고 말았다” 라고 하면서 우리 삼국역사서에 우두산성(우수산성)이 등장하고, 신증동국여지승람 강원도 춘천도호부 건치연혁을 보면, “본래 맥국인데 신라의 선덕여왕 6년에 우수주(牛首州 : 首는 頭로도 쓴다)로 만들고 군주를 두었다. 문무왕 13년에는 수약주(水若州 : 오근내라고도 하고 수차약이라고도 한다)라고 불렀고, 경덕왕이 삭주(朔州)로 고쳤다가 뒤에 광해주(光海州)로 고쳤다. 고려 태조 23년에 춘주(春州)로 만들었고..............조선 태종 13년에 지..

카테고리 없음 2011.12.10

윤여동설 - 삼국유사는 일연 개인의 저작물이 아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삼국유사는 일연 개인의 저작물이 아니다 - 최초주장 삼국유사는 왕명에 의해 만들어진 삼국사기와는 달리 한 승려가 전국에 흩어져 전해지고 있던 비전의 이야기들을 모아 만든 책이라 전해지고 있다. 삼국유사는 우리 상고사로부터 후백제까지의 역사를 먼저 언급하고 그 다음에 불교의 역사를 알 수 있도록 기록되어 있어 우리 고대역사와 불교의 역사를 동시에 알 수 있게 하는데, 그 내용이 정사인 삼국사기와는 달리 역사의 전면보다는 잘 보이지 않는 역사 뒷면의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어 우리 역사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데 필자는 이 책을 만든 목적이 일반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실은 사찰의 승려들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고, 또 일연 개인이 아닌 종단차원에서 삼국유사를 만들었..

카테고리 없음 2007.1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