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북경 요동설 20

윤여동설 – 수양제의 고구려 2차 침공로와 퇴각로 – 최초공개

윤여동설 – 수양제의 고구려 2차 침공로와 퇴각로 – 최초공개  [수 양제 초상] (612년 6월) “옛날 명장들이 공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군사에 관한 일이 한사람에 의해 결정되었기 때문인데, 지금 우리는 사람마다 제각각 다른 마음을 가지고 있으니 어찌 적을 이길 수 있겠는가?” 하였다. 이때에 양제는 중문(우중문)이 계교와 전략이 있다하여 모든 부대들로 하여금 (우중문의) 지휘를 받도록 하였기 때문에 우중문이 이런 말을 하였던 것이다. 이리하여 우문술 등이 마지못하여 우중문(于仲文)의 말을 좇아 여러 장수들과 함께 강(필자주 : 압록강이다)을 건너 을지문덕을 추격 하였다. 을지문덕이 우문술(宇文述)의 군사가 굶주린 기색을 보았기 때문에 그들을 피로하게 하려고 싸우고는 달아나고, 또 싸우고는 달..

카테고리 없음 2023.12.09

윤여동설 – 통일신라 9주(九州) 5소경(五小京)의 진짜 위치 찾기 – 최초공개

윤여동설 – 통일신라 9주(九州) 5소경(五小京)의 진짜 위치 찾기 – 최초공개    통일신라의 9주(九州)는, 본래의 신라 땅에 설치한 상주(尙州), 양주(良州), 강주(康州), 본래의 백제 땅을 나누어 설치한 웅주(熊州), 전주(全州), 무주(武州), 본래의 고구려 땅 남부에 설치한 한주(漢州), 삭주(朔州), 명주(溟州) 등 아홉 개 주(州)를 말하는 것이고,   5소경(五小京)은, 옛 금관가야의 도읍 김해(金海)에 설치한 금관소경(金官小京), 옛 백제 땅 상당(上黨, 청주)에 설치한 서원소경(西原小京), 옛 백제 땅 남원(南原)에 설치한 남원소경(南原小京), 옛 고구려, 백제, 신라가 각축을 벌였던 한산(漢山), 북한산(北漢山)과 가까운 국원성(國原城, 충주)에 설치한 중원소경(中原小京), ..

카테고리 없음 2023.06.11

윤여동설 – 신라(新羅) 초기 강역확장과 서라벌(徐羅伐) 부근 소국(小國)들 위치 찾기 - 최초공개

윤여동설 – 신라(新羅) 초기 강역확장과 서라벌(徐羅伐) 부근 소국(小國)들 위치 찾기 - 최초공개 서라벌[徐羅伐, 徐耶伐(서야벌)이라고도 한다)의 진한(辰韓) 6촌을 중심으로 건국된 신라(新羅)가 어떻게 강국으로 부상할 수 있었을까? 오늘은 신라 초기에 신라가 주변 소국들을 병합해 나아간 방향과 소국들의 이름을 연구해 보자. [서라벌과 부근 소국] 서라벌(徐羅伐), 서야벌(徐耶伐), 사로(斯盧), 신라(新羅) : 경주(慶州) [지금의 중국 요녕성 금주시(錦州市)] 하슬라(何瑟羅) : 명주(溟州), 강릉(江陵) 450년(눌지왕34년) 이전에 병합. [지금의 내몽골 통요시 고륜기(庫倫旗) 부근] 실직국(悉直國, 悉直谷國) : 삼척(三陟) 102년(파사왕23년) 투항. [지금의 요녕성 부신시(阜新市)] 음즙..

카테고리 없음 2023.04.08

윤여동설 – 후백제 견훤의 신라 서라벌 침공로를 밝힌다 - 최초공개

윤여동설 – 후백제 견훤의 신라 서라벌 침공로를 밝힌다 - 최초공개 삼국사기 신라본기 경애왕 4년(A.D.927)조를 보면, "가을 9월 견훤이 고울부(高鬱府)로 신라군을 공격해와 왕이 고려 태조(왕건)에게 구원을 청하니 태조가 장수에게 명하여 강한 군사 1만을 출동시켜 구원하게 하였으나 구원병이 아직 오지 않았으므로 견훤이 겨울 11월에 도읍(서라벌)을 습격해 왔다. 이때 왕(경애왕)이 비빈과 종척들을 데리고 포석정(鮑石亭)에서 연회를 베풀어 즐겁게 놀고 있어 적병이 오는 것을 알지 못했다......중략...................... 왕은 비첩 몇 명과 함께 후궁에 있다가 (후백제군의) 군영으로 잡혀갔는데, (견훤이) 왕을 협박하여 자살하게 하고 왕비를 강제로 강간하고 그의 부하들로 하여금 비..

카테고리 없음 2021.04.10

윤여동설 – 고구려 고국원왕이 전연 모용황에게 쫓긴 단웅곡(斷熊谷)의 위치 찾기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고구려 고국원왕이 전연 모용황에게 쫓긴 단웅곡(斷熊谷)의 위치 찾기 - 최초주장 고구려 환도성(丸都城)은 10대 산상왕 2년((A.D.198)에 쌓고, 13년(A.D.209) 10월에 국내성(國內城)으로부터 옮긴 도읍이었다. 그랬다가 11대 동천왕 20년(A.D.246)에 위나라 관구검의 침공을 받아 환도성이 함락되자 고구려는 다음 해 2월 평양성으로 도읍을 옮겨, 12대 중천왕, 13대 서천왕, 14대 봉상왕, 15대 미천왕 대에 이르게 된다. 미천왕은 왕위에 올라 중국 5호16국의 혼란기를 틈타 302년에 현토군을 침공하고, 311년에 요동 서안평을 빼앗았으며, 313년에 낙랑군을 빼앗았고, 314년에 대방군을 빼앗았으며, 315년에 다시 현토성을 빼앗아 차지하게 되어 고구려의 강역이 중..

카테고리 없음 2020.09.26

윤여동설 – 요동 동쪽 1천여 리에 위치했던 고구려와 백제의 원래위치 - 최초공개

윤여동설 – 요동 동쪽 1천여 리에 위치했던 고구려와 백제의 원래위치 - 최초공개      후한서 고구려전을 보면,    “고구려는 요동 동쪽 1천여리에 있다. 남쪽은 조선과 예, 맥, 동쪽은 옥저, 북쪽은 부여(동부여)와 접했다. 땅이 방 2천리이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북사 고구려전을 보면,    “그 나라는 동쪽으로는 신라까지요, 서쪽으로는 요(요수)를 건너니 2천리요, 남쪽으로는 백제와 접하고, 북쪽으로는 말갈과 인접하니 1천여리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송서 백제국 전을 보면,    “백제국은 고려(고구려)와 함께 요동 동쪽 1천여리에 있다. 후에 고려(고구려)는 요동을, 백제는 요서를 경략하여 차지하였다. 백제가 통치한 곳을 진평군 진평현이라 한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양서..

카테고리 없음 2020.09.19

윤여동설 - 고구려가 점점 동쪽의 패수 옆으로 옮겼다는 삼국사기 기록의 진실여부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고구려가 점점 동쪽의 패수 옆으로 옮겼다는 삼국사기 기록의 진실여부 - 최초주장 삼국사기 권제37 잡지제6 지리4 고구려편을 보면, “고구려가 처음에는 중국 북쪽 땅에서 살았으나 점점 동쪽의 패수 옆으로 옮겼다(高句麗始居中國北地 則漸東遷于浿水之側)”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역사연구자들 사이에서는 이 기록의 진실여부를 놓고 논란이 많다. 반도사관론자들은 고구려의 도읍이전이 한반도 북쪽의 환인으로부터 집안을 거쳐 남쪽의 북한 평양으로 도읍을 옮겼으므로 점점 남쪽으로 옮겼다고 기록했어야 옳았는데, 점남천우(漸南遷于)를 점동천우(漸東遷于)로 잘못 기록했다고 하기도 한다. 그러나 필자는 이 삼국사기 기록이 매우 정확하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고대의 요동은 지금의 북경(北京) 부근을 말하는 것이고, 현토..

카테고리 없음 2020.06.07

윤여동설 - 고구려 천리장성과 고려 천리장성의 위치비교 - 최초공개

윤여동설 - 고구려 천리장성과 고려 천리장성의 위치비교 - 최초공개 고구려 천리장성 구당서 고구려전 정관5년(A.D.631) 조를 보면, "건무(영류왕의 이름)는 그 나라가 침입당할 것을 두려워하여 장성을 쌓았는데, 동북쪽 부여성으로부터 서남쪽 바다에 이르기까지 1천여 리였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또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영류왕 14년(A.D.631) 조를 보면, "봄2월 왕이 백성들을 동원하여 장성을 쌓았는데, 그 성이 동북쪽은 부여성으로부터 동남쪽(필자주 : 서남쪽의 오기이다)으로 바다(해)까지 닿았는데 무려 16년 만에 준공되었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이때 고구려가 천리장성을 쌓았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위 : 내몽골 오란찰포 서남쪽 대해(岱海) 부근의 장성흔적 : 고구려 천리장성의 서남쪽 끝 부분으..

카테고리 없음 2019.06.28

윤여동설 - 졸본부여와 고구려의 건국지 졸본(卒本 : 홀본)은 지금의 하북성 장가구시 적성현 후성진(后城鎭) - 최초공개

윤여동설 - 졸본부여와 고구려의 건국지 졸본(卒本 : 홀본)은 지금의 중국 하북성 장가구시 적성현 후성진(后城鎭)- 최초공개     졸본[卒本 : 忽本(홀본)이라고도 한다)은 동명왕(東明王)이 세운 졸본부여의 건국지이기도 하고, 주몽이 세운 고구려의 건국지이기도 한 곳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그 졸본의 위치에 대해서는 여러 주장들이 있었을 뿐 사실 그 정확한 위치가 밝혀지지 않고 있었는데, 필자가 지금 북경의 북쪽에 위치한 중국 하북성 장가구시 적성현 후성진(后城鎭)이 바로 졸본임을 밝혀 냈다.   지금 후성진은 그 북쪽에 후성적벽(后城赤壁) 또는 적수애(滴水崖)라고 부르는 절벽으로 이루어진 어마어마하게 큰 바위산이 있고, 공기 맑고, 풍광 또한 아름다워 유명한 관광지가 되어 있는데, 그곳의 지세를 보면..

카테고리 없음 2019.03.24

윤여동설 - 궁예의 도읍 철원 풍천원(楓川原)은 하북성 평천(平泉)이 확실 - 최초공개

윤여동설 - 궁예의 도읍 철원 풍천원(楓川原)은 하북성 평천(平泉)이 확실 - 최초공개 신라의 천년도읍 서라벌(금성)은 지금의 요녕성 금주시(錦州市)이고, 궁예의 도읍 철원 북쪽 풍천원(楓川原)은 지금의 하북성 평천이고, 고려의 도읍 개경(송악)은 하북성 관성현이며, 양길의 북원은 객라심좌익이고, 명주는 내몽골 고륜기이며, 한산주는 진황도 도산 부근을 말하는 것이며, 패수는 난하를 말하는 것이고, 견훤의 전주는 당산이며, 고대의 요동은 지금의 북경이다. 따라서 궁예가 도읍했던 철원 북쪽 27리에 위치했었다는 풍천원(楓川原)은 지금의 중국 하북성 평천현(平泉縣)이 확실하며, 궁예가 한 때 차지했었다는 패서 13진은 패수(난하)와 살수(조하) 사이의 땅으로서 지금의 무령산 부근지역을 말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카테고리 없음 2018.11.16

윤여동설 - 홍산문화 옥룡(玉龍)의 원형은 전욱고양씨(顓頊高陽氏)의 도읍 대극성(大棘城)인가?

윤여동설 - 홍산문화 옥룡(玉龍)의 원형은 전욱고양씨(顓頊高陽氏)의 도읍 대극성(大棘城)인가? [위 홍산문화 옥룡은 북옥저였던 내몽골 적봉시 옹우특기 부근에서 발굴되었는데, 형태는 전욱고양씨의 도읍이었던 대극성(大棘城,, 棘城이라고도 한다)의 지형과 아주 유사하다. 따라서 필자는 이 옥룡이 전욱고양씨와 어떠한 관계가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전욱고양씨의 모습을 조각한 것으로 추정되는 홍산문화 옥제품. 전욱고양씨는 태어날 때부터 정수리 양쪽이 뿔처럼 솟아 오른 모습이었다고 하고, 그 아버지는 사람의 얼굴에 돼지입 모양을 하였고, 다리는 굽었다고 한다] 삼국사기 백제본기 의자왕 조의 맨 끝을 보면, 저자인 김부식의 의자왕에 대한 논평이 기록되어 있는데, 그 내용 중 고구려, 백제, 신라의 선조에 대하여..

카테고리 없음 2018.06.29

윤여동설 - 내몽골 적봉시 파림좌기 요(거란) 태조릉이라고 하는 것은 사실은 발해왕릉이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내몽골 적봉시 파림좌기 요(거란) 태조릉이라고 하는 것은 사실은 발해 왕릉이다 - 최초주장 [내몽골 파림좌기에 있는 고성터. 중국 학자들은 이곳을 요(거란)의 도읍 상경임황부터라고 하고 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고, 이 성터는 발해의 도읍 상경용천부터이다] [지금 파림좌기 고성터에 세워져 있는 요상경유지(요 상경성터라는 의미) 안내판인데, 발해상경유지라고 바꾸어야 한다] [발해왕릉 발굴지 좌표 : 동경119도07분36초 북위43도52분37초] 지금 중국에서는 내몽골 파림좌기를 "거란(요) 상경임황부"라고 하고 있고, 그곳에서 왕릉이 발견되자 요(거란) 태조릉인 조릉이라고 하고 있다. 그러나 그곳 "파림좌기는 발해의 상경용천부"로 비정되는 곳으로서 그곳에서 왕릉이 발굴되었다면 당연히 발해의 왕..

카테고리 없음 2016.05.07

윤여동설 - 고구려 미천왕 을불설화 현장찾기 - 최초공개

윤여동설 - 고구려 미천왕 을불설화 현장찾기 - 최초공개      미천왕[주 : 고구려 15대왕]의 이름은 을불[혹은 우불이라고도 한다]이니 서천왕의 아들 고추가 돌고의 아들이다.   앞서 봉상왕이 아우인 돌고가 다른 마음을 가졌다고 의심하여 죽이니 돌고의 아들 을불이 자기에게도 해가 미칠까 두려워 도망했었다. 처음에는 수실촌 사람 음모의 집으로 가서 머슴살이를 하였는데, 음모는 을불이 어떠한 사람인지 알지 못하고 심하게 일을 시켰다. 그 집 옆에 있는 늪에서 개구리가 울었는데, 음모는 을불을 시켜 밤새도록 기와조각을 던져 개구리가 울지 못하게 하고, 낮이면 온 종일 땔나무를 하여 오라고 독촉하여 잠시도 쉬지 못하게 하므로 고생을 견디다 못해 1년 만에 그 집을 떠나서 동촌 사람 재모와 함께 소금장사를 ..

카테고리 없음 2016.03.21

윤여동설 - 천년의 의문 “요택(遼澤)”의 위치찾기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천년의 의문 “요택(遼澤)”의 위치찾기 - 최초주장 요택(遼澤)의 위치는 지금까지 의문의 장소였다. 정확한 요택의 위치를 찾지 못해 우리의 역사해석은 한없는 수렁 속으로 빠져 들어가야만 했다. 그런데 자치통감에 당 태종이 고구려를 침공했다가 안시성에서 철군할 때의 기록이 일자별로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자치통감 권198 당기14 태종문무대성대광효황제 조를 보면, “․(貞觀 十九年 九月) 癸未 敕班师 先拔辽․蓋二州户口渡辽 乃耀兵於安市城下而旋 (서기 645년 9월18일 (안시성에서) 경사로 회군할 것을 명하였다. 요주, 개주 두 주의 백성을 먼저 요수를 건너게 하고 안시성 아래에서 시위하고 개선하였다) ․乙酉 至辽东(9월20일 요동에 이르다) ☆ 안시성에서 요동성까지 2일이 걸렸다. ․丙戌 渡..

카테고리 없음 2012.05.28

윤여동설 - 전연 모용황의 고구려 환도성 침공로를 밝힌다 - 최초공개

윤여동설 - 전연 모용황의 고구려 환도성 침공로를 밝힌다 - 최초공개 [방산 유리하진 부근의 고죽성터와 용성(화룡성)터 추정지]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16대 고국원왕 12년(A.D.342) 조를 보면, “봄2월 환도성을 보수하고 또 국내성을 쌓았다. 가을 8월 왕이 환도성으로 옮겨왔다. 겨울 10월 연나라(전연) 임금 황(모용황)이 용성(龍城: 화룡)으로 도읍을 옮겼다. 입위장군 한(모용한)이 황(모용황)에게 청하기를 ‘고구려를 먼저 빼앗은 다음 우문(우문선비)을 쳐부숴야만 중원을 도모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였다. 고구려로 가는 길은 두 길이 있는데, 북쪽 길은 평탄하고 넓으며(?), 남쪽 길은 험하고 좁기 때문에(?) 군사들이 북쪽(?) 길로 가자고 하였다. 한이 말하기를 ‘적국이 우리의 대군이 반드시..

카테고리 없음 2010.07.12

윤여동설 - 북경은 우리의 옛 땅이었다 - 2008 북경 올림픽에 붙여

윤여동설 - 북경은 우리 땅 - 2008 북경 올림픽에 붙여     2008 북경 올림픽이 열린다.  그런데 바로 그 북경이 우리의 옛 땅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옛날 고조선은 왕검성(지금의 중국 하북성 승덕시 피서산장)에 도읍하고 북경 서쪽 태행산맥까지를 차지하고 있었고, 위만조선은 왕검성에 도읍하고 하북성 승덕시와 동내몽골까지를 차지하고 있었고,   한(삼한)은 북경 동쪽 하북성 당산시 풍윤(월지국)에 도읍하고 사방 4천리에 이르는 땅을 차지하고 있었다. 마한은 풍윤에 도읍하고 있었고, 진한은 요녕성 금주시(錦州) 부근, 변한은 호로도 부근을 말하는 것으로서 이때 북경은 요동군에 속했고, 호로도는 변한 땅이었고, 진황도 도산 북쪽 내몽골 영성, 능원부근은 진번군 땅이었다...

카테고리 없음 2008.08.08

윤여동설 - 보덕왕 안승이 살았던 금마저(金馬渚)는 어디를 말하는가? - 최초공개

윤여동설 - 보덕왕 안승이 살았던 금마저(金馬渚)는 어디를 말하는가? - 최초공개 문무왕 10년 서기 670년 6월 고구려 수림성 사람 모잠 대형이 668년에 멸망한 고구려 유민들을 이끌고 신라로 오다가 고구려 귀족인 안승을 만나 백제의 옛 도읍인 한성에서 안승을 왕위에 올린 후 신라에 망명을 요청해 오는 일이 발생하게 된다. 삼국사기에는 안승의 신분에 대하여 고구려의 대신 연정토의 아들이라 기록하고 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문무왕이 안승에게 내린 책명문에 "공의 태조 중모왕은 덕을 북산에 쌓고, 공을 남쪽 바다에 세워 위풍이 청구에 떨쳤고, 어진 교화는 현토를 덮었었다"라고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안승의 신분은 고구려의 왕족으로 추정해 볼 수 있을 것이고, 한성이란 한반도의 서울을 말하..

카테고리 없음 2008.04.03

윤여동설 - 한사군의 원래위치와 2군 1도위로의 변화도 - 최초주장

윤여동설 - 한사군의 원래위치와 2군 1도위로의 변화도 - 최초주장 전한서의 원문과 해석문을 함께 올리는 것은 우리의 일반적인 역사 상식과 같이 옛날 한나라의 현토군이 한반도의 함경도 지방에 위치했는지, 아니면 필자의 주장과 같이 (원래 내몽골 옹우특기 부근에 있다가) 북경(옛 요동군이었다) 서북쪽 부근으로 옮겼는지, 낙랑군이 북한 평양 부근에 설치되었는지 아니면 필자의 주장과 같이 중국 하북성 승덕시 부근에 설치되었는지를 확인해 보라는 의미이니, 지도를 펴놓고 지명을 짚어가면서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현토군(玄토郡) (전한) 무제 원봉 4년(B.C.107)에 설치했다. 고구려를 왕망이 하구려라 했다. 유주에 속한다.[응소는 말하기를 옛 진번조선호(고)국이라 했다] 호수는 45,006호이고, 인구는 221..

카테고리 없음 2008.0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