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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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설 – 장보고의 진짜 청해진(淸海鎭)은 산동반도 적산법화원(赤山法華院) 부근이 확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장보고의 진짜 청해진(淸海鎭)은 산동반도 적산법화원(赤山法華院) 부근이 확실 – 최초주장 [위 : 백제가 해양강국으로 발돋움 할 수 있었던 것은, 대륙백제와 반도백제, 그리고 열도백제와 왜국, 중국 등을 오가며 무역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의 산동성은 옛 탐라와 동청주로서 백제 동성왕 때부터 우리의 백제 땅이 되었던 곳이었을 것인데, 후세 신라말 장보고도 이러한 기반을 바탕으로 동청주의 청해진을 중심으로 해상왕이 될 수 있었다고 생각된다] [대청광여도 산동반도 부분 지도 속 정해(靖海)와 적산(赤山)의 위치] [위 : 장보고의 청해진(淸海鎭)은 지금의 산동성 위해시 문등구 후가진(侯家鎭) 부근으로 비정된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42대 흥덕왕 3년(A.D.828) 조를 보면, “여름..

카테고리 없음 2022.02.25

윤여동설 – 신라 달구벌(達句伐)의 진짜 위치를 찾았다 – 최초공개

윤여동설 – 신라 달구벌(達句伐)의 진짜 위치를 찾았다 – 최초공개 삼국사기 신라본기 신문왕 9년(A.D.689) 조를 보면, "왕이 달구벌(達句伐)로 도읍을 옮기려다가 실현하지 못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하여 지금 이 기록을 본 우리는 이때 신라의 신문왕이 도읍을 서라벌(徐羅伐)로부터 달구벌(達句伐)로 옮기려고 시도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역사학자라는 사람들은 신라의 천년 도읍 서라벌(徐羅伐)을 한반도 경주(慶州)라고 하고 있고, 이때 신문왕이 도읍을 옮기려고 했던 달구벌(達句伐)이 대구(大邱)라고 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것이 정말 역사적 사실일까? 그런데 필자의 연구에 의하면, 우리의 신라(新羅)는 한반도에 위치하고 있던 나라가 아니라, 지금의 발해 북쪽에 위치하고 있었고,..

카테고리 없음 2022.02.13

윤여동설 – 요동(遼東) 동쪽 1천여리에 위치했던 고구려 평양성(平壤城)과 백제 웅진성(熊津城)의 위치 – 최초공개

윤여동설 – 요동(遼東) 동쪽 1천여리에 위치했던 고구려 평양성(平壤城)과 백제 웅진성(熊津城)의 위치 – 최초공개 2022 베이징 동계 올림픽 기념 [위 : 고대의 요동은 지금의 북경지역을 말하는 것으로서 고구려 평양성으로 비정되는 지금의 하북성 승덕시는 북경 동북쪽 231km로 나타난다. 고대의 10리는 약 2.3km로서 1천여리에 해당한다]      [위 : 고구려 평양성으로 비정되는 하북성 승덕시 피서산장 조감도]  [위 : 고구려 평양성으로 비정되는 하북성 승덕시 피서산장 성벽]     [위 : 고구려 평양성으로 비정되는 하북성 승덕시 피서산장의 정문 려정문(麗正門)]     [위 : 고구려 평양성으로 비정되는 하북성 승덕시 피서산장 현판]  [위 : 고구려 평양성으로 비정되는 하북성 승덕시 피..

카테고리 없음 2022.02.04

윤여동설 – 의문의 섬 덕물도(德物島) 위치 찾기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의문의 섬 덕물도(德物島) 위치 찾기 – 최초주장 삼국사기 신라본기 태종무열왕 7년(A.D.660) 조를 보면, “3월 당나라 고종이 명을 내려 좌무위대장군 소정방(蘇定方)을 신구방면행군대총관으로 삼고, 김인문을 부대총관으로 삼아 좌효위장군 유백영 등 수륙군 13만명을 거느리고 백제를 치게 하고 왕(신라왕, 태종무열왕 김춘추)을 칙명으로 우이도행군총관을 삼아 군사로서 성원하도록 하였다. 여름5월26일에 왕이 김유신, 김진주, 김천존 등과 함께 군사를 거느리고 서울(서라벌)을 출발하여 6월18일에 남천정(南川停)에 머물렀다. 소정방은 래주(萊州, 필자주 : 산동반도 래주)로부터 출발하는데, 전선이 천리를 잇달아 물길을 따라 동쪽(?, 필자주 : 서북쪽으로 갔다가 동북쪽으로 향했다고 해야 옳은 ..

카테고리 없음 2022.01.29

한국민속 – 역술, 사주, 관상 등을 보는 것은 한국인의 풍속

한국민속 – 역술, 사주, 관상 등을 보는 것은 한국인의 풍속 立春大吉 建陽多慶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옛날에는 해가 바뀌면 대문에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이라 써서 붙여 놓았다. 이는 새해에는 길하고 경사스러운 일만 집안에 많이 들어오기를 기원한다는 의미로 붙여 놓았을 것인데, 이를 미신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고 그냥 민속, 풍속정도로 인식했다.[요즈음에도 이렇게 붙여 놓은 곳을 가끔 볼 수 있다] 그리고 옛날 시골 할머니, 어머니들은 장독대에 정화수를 떠 놓고 온 가족이 건강하게 해 달라고 하늘에 빌었고, 동네 뒷산 큰 바위 아래에 가서 아들 대학시험, 취직시험, 공무원시험에 합격하게 해 달라고 빌었다. 옛 사람들은 염원을 그렇게 표현한 것일테고, 인간 능력의 한계를 분명히 깨..

카테고리 없음 2022.01.19

윤여동설화 – 남태평양 심해에 가라앉은 전설 속 뮤(MU) 대륙

윤여동설화 – 남태평양 심해에 가라앉은 전설 속 뮤(MU) 대륙 [위 : 남태평양 해저 약 2천미터쯤에 가라앉아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뮤(MU)대륙의 추정위치] [위 :지금의 솔로몬제도,피지,뉴질랜드 등은 MU대륙의 남은 흔적일 가능성이 많은 곳이다] [위 : 2022.1월 15일 화산폭발로 큰 피해를 입은 오스트레일리아(호주) 동쪽 통가의 위치 : 이곳 통가는 전설 속 뮤(MU) 대륙의 일부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따라서 사라진 뮤(MU] 대륙은 화산폭발로 남태평양 깊은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을 가능성이 많다고 할 수 있다] ....................................................................................................

카테고리 없음 2022.01.19

윤여동설 – 한반도 경주에서 출토된 금관은 신라금관이 아니라 흉노족인 태조(太祖) 성한왕(星漢王) 김성(金星)이 세운 흉노족왕국의 왕관이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한반도 경주에서 출토된 금관은 신라금관이 아니라 흉노족인 태조(太祖) 성한왕(星漢王) 김성(金星)이 세운 흉노족왕국의 왕관이다 - 최초주장 [위 : 한반도 경주 금관총출토 흉노족왕국 금관] [위 : 한반도 경주 금령총출토 흉노족왕국 금관] [위 : 한반도 경주 서봉총출토 흉노족왕국 금관] [위 : 한반도 경주 천마총출토 흉노족왕국 금관] [위 : 한반도 경주 황남대총북분출토 흉노족왕국 금관]

카테고리 없음 2022.01.16

한국민속 – 2022년도 임인년(壬寅年) 토정비결 작괘 조견표

한국민속 - 2022년도 임인년(壬寅年) 토정비결 작괘 조견표 ○ 상괘 : 2022년 자신의 나이를 찾아 그 오른쪽 숫자로 상괘를 삼는다. ○ 중괘 : 음력 생월을 찾아 그 아래 숫자를 중괘로 삼는다. ○ 하괘 : 음력 생일을 찾아 그 숫자로 하괘를 삼는다. 예) 올해 24세(1999년 기묘년) 음력 9월 9일생의 경우 : 861 ○ 상, 중, 하 해당괘의 번호를 뽑은 후 토정비결에서 해당번호를 찾아 확인하시면 임인년 올해 자신의 운세를 알 수 있습니다.

카테고리 없음 2022.01.14

윤여동설 – 사서의 기록과 다른 한반도 경주 안압지(雁鴨池)의 위치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사서의 기록과 다른 한반도 경주 안압지(雁鴨池)의 위치 – 최초주장 신증동국여지승람 경상도 경주부 불우(佛宇) 조를 보면, “天柱寺 在月城西北 ○俗傳炤智王射琴匣而倒,乃是寺僧也。其北有雁鴨池” 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를 해석해 보면, “천주사는 월성 서북쪽에 있다. 속전에 소지왕이 거문고갑을 활로 쏘아 쓰러뜨렸더니 그 속에 있던 자가 바로 이 절의 중이었다 한다. 그 북쪽에 안압지가 있다”라는 뜻이다. 즉 신라 월성(月城)의 서북쪽에 천주사(天柱寺)가 있었고, 그 천주사의 북쪽에 안압지(雁鴨池)가 위치하고 있었다라는 의미이다. 결국 원래의 안압지는 월성의 서북쪽 방향에 위치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지금 한반도 경주의 안압지(雁鴨池)는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기록과 달리 월성(月城)의 동북쪽 방..

카테고리 없음 2022.01.09

윤여동설 – 천년의 의문 열수(洌水, 列水), 습수(濕水), 선수(仙水)의 위치 찾기 – 최초공개

윤여동설 – 천년의 의문 열수(洌水, 列水), 습수(濕水), 선수(仙水)의 위치 찾기 – 최초공개 후한서 지리지 제23 군국5 낙랑군 조를 보면, “낙랑군은 (전한) 무제 때 설치했는데, 낙양 동북5천리에 위치한다. 18개성으로서 호구수는 61,492호이고, 인구는 257,050명이다. 조선(朝鮮), 감(邯 : 남감), 패수(浿水), 함자(含資), 점선(占蟬), 수성(遂城), 증지(增地), 대방(帶方), 사망(駟望), 해명(海冥), 열구(列口)[곽박 왈, 산해경(山海經)에 이르기를 열(列)은 물의 이름이라 했다. 열수(列水)는 요동(遼東)에 있다], 장잠(長岑), 둔유(屯有), 소명(昭明), 누방(鏤方), 제해,(提奚) 혼미(渾彌), 낙도(樂都)“라고 기록되어 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전한 무제 때..

카테고리 없음 2022.01.02

윤여동설 – 신라 서라벌 남산(南山) 서쪽 기슭의 진짜 포석정(鮑石亭) 터를 찾았다 – 최초공개

윤여동설 – 신라 서라벌 남산(南山) 서쪽 기슭의 진짜 포석정(鮑石亭) 터를 찾았다 – 최초공개 [진짜 포석정터 : 요녕성 금주시(錦州市) 남산 서쪽 기슭, 좌표 : 동경121도06분53초 북위41도04분21초] 삼국사기 신라본기 55대 경애왕 4년(A.D.927) 조를 보면, “강주(康州) 산하 돌산(突山 필자주 : 돌산고허촌, 남촌) 등 4개 고을이 태조(필자주 : 고려태조 왕건)에게로 귀순하여 왔다. 가을9월 견훤이 고울부(高鬱府)를 침공하므로 왕이 태조(왕건)에게 구원을 청하니 태조가 장수에게 명하여 강한 군사 1만으로서 구원하게 하였다. 이 구원병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는데, 견훤이 겨울 11월에 신라의 왕경(王京)을 습격하여 왔다. 이때 왕이 비빈종척(妃嬪宗戚)들과 함께 포석정(鮑石亭)에서 연회..

카테고리 없음 2021.12.26

윤여동설 – 세 부여(북부여, 졸본부여, 동부여)의 삼각관계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세 부여(북부여, 졸본부여, 동부여)의 삼각관계 – 최초주장 단군왕검 천제 해씨 해씨 넷째아들 해모수 |→ 해모수 북부여 → 해부루 동부여(가섭원부여) 부여 → 부여 → | |→ 동명왕 졸본부여 | → 추모 고구려(해씨,고씨) 부여씨 | | → 온조 백제(부여씨) ☀ 단군왕검의 넷째 아들이었던 부여씨(扶餘氏)의 맥이 졸본부여의 동명왕과 백제 온조왕으로 이어졌으니 백제가 고조선(왕검조선)의 정통맥을 이었다고 볼 수 있다. 우리 역사상 나타나는 부여(扶餘)는 넷이다. 고조선의 도읍 왕검성의 서쪽방향에 위치했으며, 단군왕검의 넷째 막내아들 부여(扶餘)에게 봉했던 원래의 부여(扶餘)가 있었고,[필자주 : 하북성 장가구시 일원] 고조선(왕검조선) 말기에 왕실의 외척으로 보이는 해모수(解慕漱)가 기원전..

카테고리 없음 2021.12.18

윤여동설 – 신장위구르 타림분지(타클라마칸사막) 생성의 비밀 - 최초공개

윤여동설 – 신장위구르 타림분지(타클라마칸사막) 생성의 비밀 - 최초공개 신장위구르 타림분지(타클라마칸사막)는 세계 최대의 크레이터(운석충돌구)였다. 운석을 찾으려면 그곳으로 가야한다. 타림분지(타클라마칸사막)는 한반도 보다도 넓은 곳인데, 이 정도 넓이의 충돌구(크레이터)가 형성될 정도라면, 운석이 떨어졌던 당시에 그 부근에 살던 모든 인간과 동물은 그 충격파로 인하여 전멸했을 것이다. [14,000년전 흑피옥 조각품(내몽골 화덕 부근 출토)을 만든 사람들도 이 운석충돌의 충격파와 기후변화로 멸종했을지도 모른다] [코뿔소 머리모양의 왼쪽 눈에 해당하는 아프리카 대륙의 빅토리아호도 운석충돌구(크레이터)일 가능성이 많은 곳이다]

카테고리 없음 2021.12.11

윤여동설 - 고려 윤관장군이 여진을 정벌하고 동북9성을 쌓았던 곳은 옛 북옥저(北沃沮) 땅이었다 – 최초공개

윤여동설 - 고려 윤관장군이 여진을 정벌하고 동북9성을 쌓았던 곳은 옛 북옥저(北沃沮) 땅이었다 – 최초공개 고려는 1107년 10월에 이르러, 여진(女眞) 정벌을 위해 17만의 별무반을 출동시키기로 결정하고, 윤관 장군을 원수로, 오연총을 부원수로 삼는다. 그리고 여진 정벌을 위해 출병하는 장수들을 전송하기 위하여 예종은 11월9일 개경을 출발하여 15일에 서경에 도착했고, 12월에 이르러 왕은 윤관 장군과 오연총에게 부월을 하사함으로써 군사들의 출발을 명령했다. 그리하여 왕의 명을 받은 윤관장군은 별무반을 이끌고 북쪽으로 진군하여 여진을 축출하고 그곳에 아홉 개의 성을 쌓는다. 소위 고려 동북9성인데, 영주성(英州城)을 몽라골현(몽라골령이라고도 한다) 아래에 9백50칸 규모로 쌓았고, 웅주성(雄州城)..

카테고리 없음 2021.12.05

윤여동설 – 고려의 청자(靑瓷)에서 조선의 백자(白瓷)로 갑자기 변화된 숨겨진 이유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고려의 청자(靑瓷)에서 조선의 백자(白瓷)로 갑자기 변화된 숨겨진 이유 - 최초주장 [위 : 고려상감청자주병] [조선백자무문주병] 대체적으로 고려시대 사람들은 청자(靑瓷)를 매우 선호했다고 전해지고 있고, 조선시대 사람들은 청자보다는 백자(白瓷)를 더 선호하며 사용했고, 그 전통이 지금까지도 이어져 현대인들도 백자를 많이 사용한다. 그런데 고려시대 사람들은 푸른 청자를 진짜 비취옥으로 만든 그릇인양 애지중지 하며 그 대체품으로 사용했다고 하는데, 그 바로 후대인 조선시대 사람들은 왜 그토록 귀한 청자를 버리고 새롭게 하얀 백자를 만들어 사용했던 것일까? 단순하게 백자가 청자에 비하여 깨끗해 보이고 소박한 아름다움을 풍기기 때문에 좋아하게 되었던 것일까? 물론 무슨 물건이던지 수백 년을 이어 ..

카테고리 없음 2021.11.27

윤여동설 – 청자(靑瓷)는 비취옥기(翡翠玉器)의 대체품이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청자(靑瓷)는 비취옥기(翡翠玉器)의 대체품이었다 - 최초주장 세상 사람들은 왜 그 하고 많은 그릇 중에서 하필이면 색깔이 초록빛인 청자(靑瓷)를 선호하고 귀하게 여기게 되었던 것일까? 언뜻 생각하면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보면, 그 이유가 의외로 간단해진다. 그것은 바로 그 빛깔이 예로부터 천지의 정수(精髓)로 여겨온 옥(玉) 특히 비취옥(翡翠玉)을 닮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옥(玉)이란 아주 먼 옛날부터 귀한 보물이라서 누구나 가지고 싶어 했겠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웬만한 재력을 가지고 있는 부자라 하더라도 그 값비싼 옥을 마음껏 가질 수는 없었을 것이고, 더구나 모든 생활용품을 진짜 옥으로 만들어 사용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것은 누구나 충분히 짐작이..

카테고리 없음 2021.11.20

윤여동설 – 한반도에는 어떠한 낙랑(樂浪)도 존재한 적이 없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한반도에는 어떠한 낙랑(樂浪)도 존재한 적이 없었다 – 최초주장 한반도에는 어떠한 낙랑도 존재한 적이 없었다. 낙랑군도 없었고, 최숭이나 최리로 대표되는 낙랑국도 없었다. 왜냐하면 환인의 환국, 환웅의 단국, 왕검의 조선(고조선)과 부여, 예, 개마, 옥저 그리고 위만조선과 삼한이 모두 한반도가 아닌 지금의 발해 북쪽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이고, ☆ 환단고기 단군세기 13세 단군 흘달 조를 보면, “갑오16년(B.C.1782) 이해 겨울에 은나라 사람이 하나라를 정벌하니 하나라 걸왕이 구원을 청하였다. 이에 흘달단제께서 읍차인 말량으로 하여금 구한의 군대를 이끌고 가서 돕게 하니 은나라의 탕왕이 사신을 보내 사죄하였다. 이에 말량에게 어명을 내려 군사를 되돌리게 하였는데, 하나라 걸왕이 조약..

카테고리 없음 2021.11.07

윤여동설 – 고조선(왕검조선)과 고구려,백제,신라,가야,고려까지의 천문관측지는 발해 북쪽이 확실 - 최초공개

윤여동설 – 고조선(왕검조선)과 고구려,백제,신라,가야,고려까지의 천문관측지는 발해 북쪽이 확실 - 최초공개 [필자가 밝힌 고대의 요동과 발해 북쪽 고조선(왕검조선)과 삼한 그리고 고구려,백제,신라,가야와 고려의 중심강역] [박창범이 그의 저서 "하늘에 새긴 우리 역사"에서 밝힌 백제의 일식 최적관측지의 중심지가 지금의 발해 북쪽 지역인데, 윤여동설에 따르면 우리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의 중심 강역이 바로 이 지역으로 나타난다] [삼국사기 백제본기 천문관측 기록] 온조왕 6년(B.C.13) 가을7월 그믐날 신미에 일식이 있었다. 다루왕 7년(A.D.34) 여름4월 동방에 붉은 기운이 나타났다. 46년(A.D.73) 여름5월 그믐날 무오에 일식이 있었다. 기루왕 9년(A.D.85) 여름4월 을사에 객..

카테고리 없음 2021.1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