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연경 19

윤여동설 - 원(元) 세조 쿠빌라이칸의 능은 과연 어디에 조성했을까? - 최초공개

윤여동설 - 원(元) 세조 쿠빌라이칸의 능은 과연 어디에 조성했을까? - 최초공개 쿠빌라이칸은 칭기즈칸이 총애한 아내에게서 출생한 4명의 아들 중 막내인 톨루이의 4번째 아들로 태어났다고 한다. 그는 30대 중반이던 1251년부터 몽골 제국의 영토 확장과 기반구축에 중요한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그의 형인 몽케칸은 칭기즈칸의 셋째 아들인 오고타이가 계획했던 송의 정복과 페르시아 정벌을 결심하고, 페르시아 정벌은 쿠빌라이의 또 다른 형인 훌라구에게 맡겼고, 쿠빌라이에게는 중국정벌에 대한 군사·행정의 전권이 주어졌다. 쿠빌라이는 중국어를 읽거나 쓸 줄은 몰랐지만 중국 사상의 우수함을 일찍 깨닫고 자신의 주변에 믿을 만한 유교학자들을 불러 모았다. 그의 통치술은 주위 한족 학자들의 영향 아래 형성된 것이다. ..

카테고리 없음 2019.03.22

윤여동설 - 전욱고양씨의 도읍 대극성(大棘城)은 지금의 어디를 말할까?

윤여동설 - 전욱고양씨의 도읍 대극성(大棘城)은 지금의 어디를 말할까? 황제헌원씨(黃帝軒轅氏)는 탁록(涿鹿 :지금의 하북성 탁주)에 도읍하고 치우천왕(蚩尤天王)과 천하를 놓고 다투었고, 황제헌원의 손자(외손자라고도 한다)인 전욱고양씨(顓頊高陽氏)는 대극성(大棘城 : 극성이라고도 한다)에 도읍했다고 전해 오는데, 지금 우리는 이 대극성의 위치를 잃어버렸다. 전설 속 대극성은 과연 지금의 어디를 말하는 것일까? 그런데 고대의 요수는 지금의 영정하(永定河)를 말하는 것이고, 고대의 요동(遼東)은 영정하 동쪽인 북경 부근을 말하는 것이며, 요서(遼西)는 영정하의 서쪽 방산(房山)부근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진서(晉書) 권108 재기 제8 모용외전을 보면, 전연(前燕)의 모용외(慕容廆)가 대극성이 전욱고양씨의 ..

카테고리 없음 2016.08.26

윤여동설 - 구려(句麗)의 위치찾기 - 최초공개

윤여동설 - 구려(句麗)의 위치찾기 - 최초공개 후한서 고구려전을 보면, 고구려에 이어 “구려(句麗)”에 대하여 별도로 기록을 남기고 있다. 그런데 아직까지 이 구려가 정확히 지금의 어디를 말하는지 밝혀지지 않고 있었는데 이제 그 위치를 찾아 공개한다. 우선 후한서의 구려(句麗)에 대한 기록을 보자. “구려는 일명 맥(貊)이라 한다. 별종으로서 소수(小水)에 의지하여 살기 때문에 소수맥(小水貊)이라 한다. 좋은 활이 생산되는데 소위 맥궁(貊弓)이라 한다. 왕망 초에 구려의 군사를 징발하여 흉노를 정벌하게 하였으나 그들이 가지 않으려해 강압적으로 보냈더니 모두 국경 너머로 도망한 뒤 중국의 군현을 노략질 하였다. 요서대윤 전담이 그들을 추격하다가 전사하자 왕망이 장수 엄우로 하여금 치게 하였다. 엄우는 구..

카테고리 없음 2016.02.27

윤여동설 - 위만의 고조선으로의 망명로와 왕검성 공격로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위만의 고조선으로의 망명로와 왕검성 공격로 - 최초주장 삼국지 한(韓) 전을 보면 위만이 고조선으로 망명해오는 과정과 왕검성을 탈취하는 과정을 위략의 기록을 인용하여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를 보면, “위략에 이르기를, 옛 기자의 후예인 조선후는 주(周)나라가 쇠약해지고, 연(燕)나라가 스스로 높여 왕을 칭하고 동쪽으로 침략하려는 것을 보고, 조선후 역시 스스로 왕을 칭하고 군사를 일으켜 연나라를 역격하여 주왕실을 보존시켜 주려고 하였으나 그의 대부 예(禮)가 간하므로 중지하였다. 그리고는 예를 파견하여 서쪽의 연나라를 설득하니 연나라도 전쟁을 멈추고 조선(朝鮮 : 고조선)을 침공하지 않았다. 그 뒤에 자손이 점점 교만해지고 포악해지자 연나라는 장군 진개를 보내 조선의 서쪽지방을 침공하여..

카테고리 없음 2015.08.09

윤여동설 - 금 6경과 고려의 위치 - 최초공개

윤여동설 - 금 6경과 고려의 위치 - 최초공개     발해(대진국)가 926년에 거란(요)에게 멸망한 지 189년이 지난 1115년에 이르러 다시 여진족 완안 아골타가 여진을 통합하고 나라를 세워 옛 발해의 상경용천부에 도읍하고 회령[會寧 : 지금의 내몽골 파림좌기 부근으로 비정된다]이라 하고, 국호를 금(金)이라 하게 된다.    그리고는 1125년에 서남쪽의 요나라를 멸망시킨 후,  건국지인 회령을 상경회령부[옛 발해의 상경용천부인 파림좌기이다]라 하고,   요나라 때의 중경대정부를 북경대정부[지금의 화초영진 부근으로 비정된다]라 하고,   요나라 때의 남경석진부는 중도대흥부[하북성 역현 부근으로 비정된다]라 하고,   요나라 때의 서경대동부는 그대로 서경대동부[산서성 대동이다]라 하고,   요나라..

카테고리 없음 2015.05.17

윤여동설 - 요(거란) 5경의 위치 찾기

윤여동설 - 요(거란) 5경의 위치 찾기 요(거란) 5경의 위치에 대한 기록 상경임황부 상경임황부(上京臨潢府)는 원래 한(漢)나라의 요동군(遼東郡) 서안평(西安平) 땅(?)이다. [필자주 : 상경임황부가 요동군에 속한 현이었다는 것은 오기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요동군은 지금의 북경 부근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신나라 왕망은 북안평(北安平)이라 불렀다. .....................(중략)....................... 요 태조 신책 3년(A.D.918)에 그곳에 성을 쌓고 황도(皇都)라고 불렀다. 천현 13년(A.D.938)에 이름을 상경(上京)으로 바꾸었고 부를 임황(臨潢)이라 하였다. 중경대정부 중경대정부(中京大定府)는 우순 때 영주(營州)가 되었고(?), 하나라 때는 기주(..

카테고리 없음 2012.06.25

윤여동설 - 의문의 옛 성터 내몽골 아륜사목고성(阿倫斯木古城)

윤여동설 - 의문의 옛 성터 내몽골 아륜사목고성(阿倫斯木古城)  [위: 내몽골 아륜사목고성유지][좌표 : 동경110도29분07초 북위41도57분35초]         원나라의 상도(上都)는 쿠빌라이칸이 몽골제국의 수도였던 카라코름(하라호름)과 연경(燕京) - 요나라 때의 남경(남경석진부)이었고 금나라 때의 중도(중도대흥부)였으며 원 나라 때의 대도(大都)가 되었던 곳 - 의 중간지역에 건설했다고 하는데, 원래의 연경(燕京)은 지금의 북경이 아니라 하북성 역현 부근이었다.     따라서 원 상도는 몽골제국의 도읍이었던 카라코름(하라호름)과 연경(하북성 역현)의 중간지역에 건설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수많은 역사학자들은 지금의 북경을 연경(燕京)이요 원 대도(大都)라 하면서 내몽골 정람기 북쪽 섬전하 변..

카테고리 없음 2011.07.08

윤여동설 - 춘추전국시대 운중(雲中)과 구원(九原)은 어디를 말하는가?

윤여동설 - 춘추전국시대 운중(雲中)과 구원(九原)은 어디를 말하는가? 전국책 권제29 연1을 보면, 소진이 연나라의 문후에게 말한 기록이 있어 춘추전국시대 연나라의 위치를 알 수 있게 한다. 기록을 보면, "蘇秦將爲從 北說燕文候曰 燕東有朝鮮遼東 北有林胡樓煩 西有雲中九原 南有呼 易水 地方二千餘里 帶甲數十萬 車七百乘 騎六千疋 粟支十年 南有碣石 門之饒 北有棗栗之利 民雖不由田作 棗栗之實 足食於民矣 此所謂天府也 (소진이 장래 합종을 하기 위해 북쪽으로 가서 연나라 문후에게 말하기를, 연나라는 동쪽으로 조선요동이 있고, 북쪽으로는 임호누번이 있으며, 서쪽으로는 운중구원이 있고, 남쪽으로는 호타역수가 있어 땅이 사방 2천여 리입니다. 갑옷 입은 병사가 10만이요, 전차는 7백대이며, 말은 6천 필이고, 10년 간 ..

카테고리 없음 2011.07.01

윤여동설 - 수 양제가 만든 운하 통제거(通濟渠)와 영제거(永濟渠)의 위치

윤여동설 - 수 양제가 만든 운하 통제거(通濟渠)와 영제거(永濟渠)의 위치 지금 중국에서는 수 양제 때 만들었다는 운하 통제거와 영제거가 지금의 북경에서 항주까지 장장 1,764km에 이르렀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역사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그러한 중국의 주장에 대하여 대체적으로 ..

카테고리 없음 2011.02.21

윤여동설 - 연(燕)나라가 제비연(燕)자를 국호로 삼은 이유

윤여동설 - 연(燕)나라가 제비연(燕)자를 국호로 삼은 이유      역사에서 “연(燕)”이라는 나라는 그 역사가 매우 깊고, 우리의 고대 역사와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데 지금까지 그 중심 강역이 어디인지, 도읍 연경(燕京)이 어디인지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연나라는 춘추시대에도 5패(五覇)에 들지는 못했지만 그때에도 분명 “연(燕)”이라는 나라가 존재하고 있었고, 전국시대에는 7웅의 하나가 될 정도로 강대국이었다.   전국시대에 연나라의 진개가 고조선을 침공하여 요서군과 요동군 등 5군지역을 빼앗아 강역이 많이 넓어졌기 때문에 강국으로 부상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진(秦)나라가 대륙을 통일하게 되자 연나라는 진나라에 병합됨으로써 그 세력권내에 들어가게 되었고 이어 한(漢), 위(..

카테고리 없음 2011.01.07

윤여동설 - 치우천왕과 황제헌원이 다투었던 탁록벌판의 원래 위치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치우천왕과 황제헌원이 다투었던 탁록벌판의 원래 위치를 찾았다 - 최초주장 [1번은 현재 중국 사람들이 지명을 이동시켜 만들어 놓은 탁록이고, 2번은 치우천왕과 황제헌원이 다툰 진짜 탁록벌판이다] 원동중의 삼성기 신시역대기는 14세 자오지(慈烏支)환웅을 치우천왕이라 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너무도 많은 세월이 흘러 그의 생몰연대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당시 치우천왕이 황제헌원과 탁록의 벌판에서 국운을 건 전쟁을 했었다는 이야기는 설화가 되어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전해지고는 있다. 그러나 그 탁록벌판이라는 곳이 정확하게 지금의 어디를 말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런데 대명일통지 순천부 조를 보면, 탁주(涿州)가 순천부 서남 140리에 있는데, 춘추전국 때는 연나라의 탁읍이었고, 진(秦)나라 때는 ..

카테고리 없음 2011.01.03

윤여동설 - 고려 사신들의 연경(燕京) 사행로를 밝힌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고려 사신들의 연경(燕京) 사행로를 밝힌다 - 최초주장 삼국사기 권제37 잡지 제6 지리4 고구려 백제 조를 보면, 『통전에 이르기를 “주몽이 한나라 건소2년에 북부여[필자주 : 동부여의 오기이다]로부터 동남방[필자주 : 서남쪽의 오기이다]으로 가서 보술수를 건너 흘승골성에 이르러 자리잡고 국호를 구려라 하고 고로써 성씨를 삼았다” 고 하였으며, ☆ 삼국사기 찬자들이 인용했다고 밝히고 있는 통전의 기록이란 통전 권186 변방2 동이하 고구려 조를 말하는 것으로서 그곳에는 “朱蒙棄夫餘 東南走渡普述水 至紇升骨城 遂居焉 號曰句麗 以高爲氏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그 의미는 ”주몽이 부여를 버리고 동남쪽으로 달아나 보술수를 건너 흘승골성에 이르러 자리를 잡고 국호를 구려라 하고 고로서 성씨를 삼았다” ..

카테고리 없음 2010.06.28

윤여동설 - 험독과 왕험(왕검성)은 같은 곳이 아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험독(險瀆)과 왕험(王險:왕검성)은 같은 곳이 아니다 - 최초주장 사기 조선전을 보면, “조선왕 만(위만)은 옛 연나라 사람이다. 전연 때 진번조선을 침략하여 빼앗아 관리를 보내 장새를 쌓고 다스렸다. 진(秦)나라가 연나라를 멸망시키고 (진번조선 지역을) 요동외요에 속하게 했는데, 한나라가 흥기하자 그 땅이 멀고 지키기가 어렵다 하여 다시 요동고새를 수리하고 패수(浿水)를 경계로 삼아 연나라에 속하게 했다. 연왕 노관이 (한나라에) 반하고 흉노로 들어가자 만(위만)도 무리 수천인을 모아 추결과 만이의 복장을 하고 동쪽으로 도망쳐 요새를 넘고 패수를 건너 (고조선에 망명한 후) 진나라의 옛 빈 땅인 상하장에서 살았다. 점점 진번조선의 만이들과 옛 연나라,제나라 망명자들을 받아들여 왕이 되고 왕..

카테고리 없음 2010.04.04

윤여동설 - 고려의 도읍 개경은 발해 북쪽 지금의 중국 하북성 관성현(寬城縣, 寬城滿族自治縣)이 확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고려의 도읍 개경은 발해 북쪽 지금의 중국 하북성 관성현(寬城縣, 寬城滿族自治縣)이 확실 - 최초주장     역사를 연구하는 방법에는 크게 나누어 두 가지가 있다고 보여진다.즉, 현재로부터 근세, 고대, 상고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방법과      상고로부터 고대, 근세, 현재로 내려오는 방법이다.  우리가 지금 한반도 대한민국에 살고 있으니 그 바로 앞 왕조인 조선이 한반도에, 또 그 앞 왕조인 고려 역시 한반도에, 후삼국도 한반도에, 삼국과 가야, 삼한과 위만조선, 고조선도 한반도를 중심으로 존속했다고 인식하는 논리가 역사를 현재로부터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며 고찰하는 방법인데, 강단사학은 이 방법을 채택한 것이다.    그런데 재야사학은 역사란 사건의 발생순서에 따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보..

카테고리 없음 2010.02.02

윤여동설 - 지금의 북경은 옛 연경, 옛 북평이 아니라 고대의 요동이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지금의 북경은 옛 연경, 옛 북평이 아니라 고대의 요동이었다 - 최초주장     많은 사람들은 지금의 북경과 연경을 동일한 장소로 이해하지만 사실 그것은 틀린 것이다.   북평은 옛날 중국 세력들이 서안이나 낙양 등에 도읍하고 있을 때 그 동북쪽인 하북성 평원 지역을 일컫던 이름이었는데, 춘추전국시대부터 선비족인 연나라가 차지하고 도읍을 하게 되어 연경(燕京)이라고 불리웠던 곳이다.   요나라, 금나라, 원나라 등 북방세력들이 흥기하여 남하한 후 연경을 차지하고  도읍을 건설했는데, 요나라는 남경석진부라 했고, 금나라는 중도대흥부라 했으며, 원나라는 대도라 했고, 후일 명나라의 영락제가 북경을 건설하고 “북경순천부”라 명명하였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연경”이라 부르기를 좋아했다.    그렇게 ..

카테고리 없음 2009.09.22

윤여동설 - 원나라의 대도(大都)는 지금의 북경이 아니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원나라의 대도(大都)는 지금의 북경(北京)이 아니었다 - 최초주장 [위 : 지금 중국에서는 하북성 장가구시 장북에 있는 위 옛 성터를 원나라의 중도성터(원 중도유지)라 한다]  [위 : 중국에서 원 중도성터(원 중도유지]라고 하는 곳의 발굴된 현장모습인데, 사실 이곳은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유리왕대의 기록에 나타나는 옛 황룡국의 도읍성터이다][좌표 동경114도37분16초 북위41도17분34초]    일반적으로 우리는 원나라의 대도(大都)가 지금의 중국 북경(베이징)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정작 중국에서는 원나라의 중도(中都)가 북경이 아닌 북경에서 서북쪽으로 700리쯤 떨어져 있는 하북성 장가구시 장북 부근에 위치하고 있었다고 하며, 지금 “원 중도유지(元 中都遺址, 가로세로 각 550m..

카테고리 없음 2009.09.14

윤여동설 - 고구려 안시성(安市城)은 어디에 위치하고 있었을까? - 최초공개

윤여동설 - 고구려 안시성(安市城)은 어디에 위치하고 있었을까? - 최초공개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보장왕 3년(A.D.644) 조를 보면,   『가을7월 당나라 태종이 장차 군사를 출동시키기로 하고 홍주, 요주, 강주 3개 주에 명령하여 배 4백 척을 만들어서 군량을 싣게 하고,   영주도독 장검을 보내어 유주, 영주 두 도독의 군사와 거란, 해, 말갈 등을 거느리고 먼저 요동을 쳐서 그 형세를 보게 하고,   대리경 위정으로 괴수사를 삼아 하북의 여러 주들은 모두 위정의 지휘를 받게 하고, 위정으로 하여금 상황에 따라 황제의 명령을 기다리지 않고도 먼저 적당히 일을 처리하도록 하였다.   또 소경 소예에게 명하여 하남 여러 주의 식량을 바닷길로 운반하게 하였다.   겨울10월 당나라 황제(태종)가 ..

카테고리 없음 2007.1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