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윤여동설 909

윤여동설 – 임나국(任那國)과 포상8국(蒲上八國)의 진짜 위치 – 최초공개

윤여동설 – 임나국(任那國)과 포상8국(蒲上八國)의 진짜 위치 – 최초공개 일본서기 10세 숭신천황 65년 조를 보면, “가을 7월 임나국(任那國)이 소나갈질지를 보내 조공하였다. 임나(任那)는 축자국에서 2천여리 떨어진 곳에 있다. 북쪽으로는 바다(필자주 : 큰 호수를 말하는 것으로 생각된다)로 막혀 있고 계림의 서남에 있다.”라고 기록하고 있고, 또 11세 수인천황 2년 조를 보면, “이해 임나인 소나갈질지가 나라에 돌아가고 싶다고 말하였다. 아마 선왕 대에 내조하여 아직 돌아가지 않았던 것인가? 고로 소나갈질지에게 후하게 상을 주었다. 붉은 비단 백필을 주어 임나의 왕에게 하사하였다. 그런데 신라인이 길을 막고 빼앗았다. 두 나라의 원한이 이때부터 시작되었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이때 임나국(任那國)..

카테고리 없음 2021.01.30

윤여동설 – 6가야(六伽倻)의 진짜위치 – 최초공개

윤여동설 – 6가야(六伽倻)의 진짜위치 – 최초공개       가야(伽倻 또는 伽耶)는 여섯이 있었다.   금관가야(金官伽倻), 대가야(大伽倻), 소가야(小伽倻), 성산가야(星山伽倻, 벽진가야라고도 한다), 고령가야(古寧伽倻), 아라가야(阿羅伽倻) 등이다.   그런데 지금 역사학자라는 사람들은 우리 6가야의 위치를 한반도 남부에 배치하고 있는데, 매우 잘못된 비정이다.   왜냐하면 고대의 요동은 지금의 북경이었고, 신라의 천년도읍지 서라벌(徐羅伐)은 한반도의 경주가 아니라 지금의 중국 요녕성 금주시(錦州市)이었으며, 백제의 도읍 웅진은 지금의 하북성 진황도 노룡(盧龍), 마지막 도읍 사비는 하북성 당산시 난현(灤縣)이었기 때문이며, 변한에서 건국된 가야는 진한이었던 신라와 마한의 동북쪽에서 건국된 백제의..

카테고리 없음 2021.01.23

윤여동설 – 주몽에게는 아들 유리와 졸본부여 둘째공주와의 사이에서 낳은 또 하나의 딸이 있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주몽에게는 아들 유리와 졸본부여 둘째공주와의 사이에서 낳은 또 하나의 딸이 있었다 - 최초주장 [고구려의 첫 도읍 졸본으로 비정되는 지금의 하북성 적성현 후성진의 풍광] 고구려의 왕위계승이 중간에 변화가 있었다는 것은 그 단서를 여러 사서들의 기록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 후한서 고구려전을 보면, “고구려에는 다섯 부족이 있는데, 소노부, 절노부, 순노부, 관노부, 계루부이다. 본래는 소노부에서 왕이 되었으나 점점 미약해진 뒤에는 계루부에서 왕위를 대신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삼국지 고구려전에도, “고구려에는 본래 다섯 부족이 있는데, 연노부, 절노부, 순노부, 관노부, 계루부이다. 원래 연노부에서 왕이 되었으나 점점 미약해져 지금은 계루부에서 대신한다..........연노부는 본래 나라..

카테고리 없음 2021.01.17

윤여동설 – 유주(幽州), 영주(營州), 병주(幷州)의 진짜위치 - 최초공개

윤여동설 – 유주(幽州), 영주(營州), 병주(幷州)의 진짜위치 - 최초공개       후진의 석경당이 거란에게 할양했다고 하는 연운16주(燕雲十六州)는, 유주(幽州), 탁주(涿州), 단주(檀州), 계주(薊州), 순주(順州), 영주(營州), 평주(平州), 울주(蔚州), 삭주(朔州), 운주(雲州), 응주(應州), 신주(新州), 규주(嬀州), 유주(儒州), 무주(武州), 환주(寰州)를 말하는 것인데, 아직까지도 그 정확한 위치가 밝혀지지 않고 있고, 연운16주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요5경 즉 거란의 상경임황부, 중경대정부, 남경석진부(연경), 동경요양부(요동), 서경대동부의 정확한 위치도 아직까지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요사(遼史)를 보면, 연운16주(燕雲十六州)에 포함되어 있는 유주(幽州)..

카테고리 없음 2021.01.08

윤여동설 – 왕검조선의 첫 도읍 아사달(阿斯達)과 세 번째 도읍 백악산아사달(白岳山阿斯達)은 서로 다른 곳이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왕검조선의 첫 도읍 아사달(阿斯達)과 세 번째 도읍 백악산아사달(白岳山阿斯達)은 서로 다른 곳이다 - 최초주장 왕검조선(고조선)의 첫 도읍은 아사달(阿斯達, 필자주 : 우수하지원에 위치했다고 하였다)이었고, [아사달과 장당경(당장경)은 지금의 내몽골 적봉시 영성현(寧城縣) 부근] [아사달성이었던 지금의 내몽골 영성현 서쪽 대명진토성](좌표 동경119도08분50초, 북위41도33분57초) 두 번째 도읍은 왕검성(王儉城, 필자주 : 패수 동쪽에 위치했다)이었으며, [왕검성이었던 지금의 하북성 승덕시 피서산장(열하행궁) 전경] [왕검성이었던 지금의 하북성 승덕시 피서산장의 정문(麗正門)] [왕검성이었던 지금의 하북성 승덕시 피서산장 성벽] 세 번째 도읍은 백악산아사달(白岳山阿斯達, 필자주 : 궁홀..

카테고리 없음 2021.01.01

윤여동설 - 고려 동북9성과 공험진 선춘령(先春嶺)의 위치는 지금의 내몽골 서랍목륜하(시라무렌강) 남쪽 강변이 확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고려 동북9성과 공험진 선춘령(先春嶺)의 위치는 지금의 내몽골 서랍목륜하(시라무렌강) 남쪽 강변이 확실 - 최초주장 [내몽골 파림좌기고성터 : 요(거란) 상경임황부터가 아니라 발해상경홀한성(용천부)터이다] 고려의 동북9성은 서쪽 끝의 영주성(英州城)으로부터 동쪽으로 복주성(福州城), 공험진성(公嶮鎭城), 길주성(吉州城), 평융진성(平戎鎭城), 통태진성(通泰鎭城), 웅주성(雄州城), 의주성(宜州城), 함주성(咸州城 : 함주대도독부) 순으로 축성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지금의 북경 동북쪽 대광정자산 북쪽을 서쪽에서 동쪽 방향으로 가로질러 흐르는 지금의 서랍목륜하(시라무렌강) 남쪽 강변에 축성되었던 것이 확실하다. 따라서 공험진의 선춘령(先春嶺)에 세웠다는 고려지경비(선춘령비, 척경비) 역시..

카테고리 없음 2020.12.27

윤여동설 – 가야 수로왕릉과 허왕후릉 진짜 조성지 찾기 - 최초공개

윤여동설 – 가야 수로왕릉과 허왕후릉 진짜 조성지 찾기 - 최초공개 삼국유사 가락국기를 보면, “영제 중평6년 기사년(A.D.189) 3월1일에 왕후가 죽으니 나이 157세였다. 온 나라 백성들은 땅이 꺼진 듯 슬퍼하며 구지봉(龜旨峯) 동북쪽 동네언덕에 장사지냈다........... 왕후가 죽자 왕도 매양 외로운 베개를 벗 삼아 매우 슬퍼하다가 10년이 지난 헌제 입안4년 기묘년(A.D.199) 3월23일에 죽으니 나이 158세였다. 나라 사람들은 마치 부모를 잃은 듯 슬퍼하여 왕후가 죽던 때보다 더했다. 대궐 동북쪽 평지에 빈궁을 세우니 높이가 한 길이며, 둘레가 300보인데, 거기에 장사지내고 능호를 수릉왕묘(首陵王廟)라고 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문제는 고대 가야(금관가야)의 위치가 한반도..

카테고리 없음 2020.12.20

윤여동시사 - 12421법칙

윤여동시사 - 12421법칙 - 최초주장 이 세상은 대개 “12421법칙”으로 이루어져 있다. “12421법칙”이란 세상을 구성하고 있는 거의 모든 요소들이 전체를 100으로 보았을 때, 약 10%, 20%, 40%, 20%, 10%씩의 비율로 분포되어 있다는 말이다. 이는 정치에 있어서도 예외가 아니어서 현 정권이, 정치를 아주 잘한다고 느끼는 적극지지층 약10% 정치를 잘한다고 느끼는 지지층 약20% 보통이라고 느끼는 중도층 약40% 정치를 잘못한다고 느끼는 부정층 약20% 정치를 아주 잘못한다고 느끼는 적극부정층 약10%로 나타나고, 정치인에 대해서도, 아주 좋아하는 극선호층 약10% 좋아하는 선호층 약20% 보통이라고 느끼는 중도층 약40% 싫어하는 혐오층 약20% 아주 싫어하는 극혐오층 약10%..

카테고리 없음 2020.12.08

윤여동설 – 낙랑동부도위 화려성(華麗城)과 불내성(不耐城)은 지금의 어디에 위치했을까?-최초주장

윤여동설 – 낙랑동부도위 화려성(華麗城)과 불내성(不耐城)은 지금의 어디에 위치했을까? - 최초주장     삼국지 동옥저 전을 보면, “한(漢)나라는 그 땅이 넓고 멀어 단단대령의 동쪽을 나누어 동부도위(낙랑동부도위)를 설치하고 치소를 불내성(不耐城)에 두어 별도로 대령 동쪽의 7개현을 관할하게 하였다............건무 6년(A.D.30) 변경의 군을 줄일 때 도위도 폐지하고 그 후 모두 현의 거수로서 현후를 삼으니 불내(不耐), 화려(華麗), 옥저(沃沮) 등의 여러 현이 모두 후국이 되었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삼국지 예전에도, “예(濊 : 동예)는 남쪽으로는 진한(신라), 북쪽으로는 고구려, 옥저와 접하였고, 동쪽으로는 대해에 닿았다. 지금 조선(고조선, 위만조선) 동쪽이 모두 그 땅이다...

카테고리 없음 2020.12.06

윤여동설 – 고구려 초기 황룡국(黃龍國)의 위치를 찾았다 - 최초공개

윤여동설 – 고구려 초기 황룡국(黃龍國)의 위치를 찾았다 - 최초공개 [황룡국 왕성 황룡성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지금의 원중도유지 : 동경114도37분16초 북위41도17분33초]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유리왕 27년(A.D.8) 조를 보면, “봄 정월 왕의 태자 해명이 옛 도읍(졸본)에 남아 있었는데, 힘이 세고 용감했다. 황룡국(黃龍國) 왕이 이 소문을 듣고 사신을 보내 강궁을 선물했더니 해명이 사신이 보는 앞에서 그 활을 잡아당겨 꺾으면서 ”힘을 쓰지 않았는데도 활이 약해 부러졌다"고 하여 황룡국왕이 그 말을 전해 듣고는 매우 무안해 하였다는 기록이 보인다. 이때 고구려는 졸본(卒本)에서 국내성(國內城)으로 도읍을 옮긴 때였는데, 해명태자는 도읍이전을 반대하며 국내로 가지 않고 계속 졸본에 머무르고 있..

카테고리 없음 2020.11.29

윤여동설 – 주몽은 동부여(東扶餘)에서 도망쳐 어느 길을 따라 졸본(卒本)으로 왔으며, 처음 자리 잡은 비류수(沸流水) 중류는 지금의 어디일까?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주몽은 동부여(東扶餘)에서 도망쳐 어느 길을 따라 졸본(卒本)으로 왔으며, 처음 자리 잡은 비류수(沸流水) 중류는 지금의 어디일까? - 최초주장 『“삼국사기 고구려본기를 보면, ......(동부여의) 왕자와 여러 신하들이 또 주몽을 죽이려고 꾀하니, 주몽의 어머니가 그 음모를 알고는 주몽에게 말하기를, “나라 사람들이 장차 너를 해하려 하니, 너의 재주와 지략을 가지고 어디를 간들 어떠하겠느냐? 여기에서 머뭇거리다가 욕을 당하기보다는 차라리 멀리 가서 큰일을 도모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에 주몽은 오이(烏伊), 마리(摩離), 협보(陜父) 등 세 사람과 더불어 벗을 삼아 엄호수[일명 개사수(盖斯水)라고도 하는데, 지금 압록(鴨綠) 동북쪽에 있다]까지 가서 물을 건너려 하였으나 다..

카테고리 없음 2020.11.21

윤여동설 – 백제 구마나리(久麻那利)는 지금의 하북성 진황도 노룡(盧龍)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백제 구마나리(久麻那利)는 지금의 하북성 진황도 노룡(盧龍) - 최초주장 일본서기 웅략천황 20년 조를 보면, 고구려 장수왕이 백제를 침공하였다는 기록과 함께 백제기(百濟記)의 기록을 인용하여 “개로왕 을묘년(A.D.475) 겨울 맥(고구려)의 대군이 와서 대성(大城 : 百濟漢城)을 친지 7일 7야에 왕성이 함락되어 드디어 위례(尉禮 : 慰禮城)를 잃었다.[필자주 : 당시의 백제 도읍이었던 한성과 위례성이 같은 성이거나 근접해 있던 성일 가능성이 있는 기록이다] 국왕 및 대후(왕후), 왕자 등이 모두 적의 손에 죽었다“라고 당시의 치열했던 전투상황과 당시 백제의 도읍 한성(漢城)이 함락될 때 백제 개로왕과 왕후, 왕자 등 일족이 모두 고구려군에게 잡혀 죽었다고 기록하고 있고, 21년 조를 보..

카테고리 없음 2020.11.07

윤여동설 – 고구려는 정말 졸본(卒本)에서 눌현(訥見)으로 도읍을 옮겼었을까? - 최초공개

윤여동설 – 고구려는 정말 졸본(卒本)에서 눌현(訥見)으로 도읍을 옮겼었을까? - 최초공개 [하북성 장가구시 적성현 주가요촌 부근의 지형] [북부여가 졸본부여 동명왕에게 그 땅을 빼앗기자, 북부여 해부루가 유민들을 이끌고 동북쪽으로 이동하여 가섭원에 세운 나라가 동부여인데, 사실 이 동부여 땅이 원래는 창해군 예의 땅이었다. 그런데 중국 사서들에는 이 동부여 땅이 동이 중에서 가장 평탄하다고 하였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석가모니의 제자인 마하가섭의 이름을 붙여 가섭원(迦葉原)이라 하였는데, 이는 패수의 최상류인 지금의 내몽골 섬전하(閃電河)가 정람기, 다륜 등을 위 사진처럼 둥그렇게 빙 돌아 감싸며 흐르는 형상이 마치 스님의 머리모양으로 보였기 때문인지 옛 사람들은 그곳을 가섭원이라 불렀다고 생각된다.] ..

카테고리 없음 2020.10.31

윤여동시사 – 목숨 걸고 독감예방주사를 맞아야 하는겨?

윤여동시사 – 목숨 걸고 독감예방주사를 맞아야 하는겨? 독감예방주사 접종 후 짧게는 수 시간, 길게는 며칠 후 수십 명이 죽었다고 하여 세상이 시끌시끌하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과연 독감예방주사를 맞아야 하는 것인지, 맞지 말아야 하는 것인지 매우 헷갈려 하고 있다. 그러자 관계 당국에서는 년 간 수천 명이 독감으로 사망하니 독감예방주사를 맞아야 한다고 권장하며, 지금까지 사망한 사람들은 독감예방주사를 맞지 않았어도 죽을 사람들이었고, 독감예방주사를 맞은 시기와 사망시기가 우연히 맞아 떨어졌을 뿐이라고 한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 격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쌩쌩하게 제 발로 걸어 가 독감예방주사를 맞고 돌아와 몇 시간도 안 되어 죽은 사람에게 그 사람은 독감예방주사를 맞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어차피 죽을 때..

카테고리 없음 2020.10.26

윤여동설 – 신라 토함산(吐含山)과 그 서쪽 곡사(鵠寺) 원성왕릉(元聖王陵)의 진짜 위치 찾기 - 최초공개

윤여동설 – 신라 토함산(吐含山)과 그 서쪽 곡사(鵠寺) 원성왕릉(元聖王陵)의 진짜 위치 찾기 - 최초공개 [신라 토함산 추정지 능해 구화산공원 전경] [고니형상? 새형상?] 삼국사기 신라본기 원성왕 조를 보면, “재위14년(A.D.798) 겨울 12월 29일 왕이 죽으매 시호를 원성(元聖)이라 하고 유언에 따라 관 채로 봉덕사(奉德寺) 남쪽에서 불태웠다”고 기록되어 있고, 삼국유사 제2권 기이 제2 원성대왕(元聖大王) 조를 보면, “왕의 능이 토함산(吐含山) 서쪽 동네 곡사(鵠寺 : 고니사, 지금의 숭복사)에 있는데, 최치원이 지은 비문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고운 최치원 초상] ☆ 고운 최치원이 지었다는 초월산(初月山) 대숭복사비명(大崇福寺碑銘)을 보면 산의 바위가 고니형상을 하고 있어 곡사(..

카테고리 없음 2020.10.10

윤여동설 – 요동군 서안평(西安平)과 거란(요) 상경임황부(上京臨潢府)의 관련성 여부에 대한 새로운 가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요동군 서안평(西安平)과 거란(요) 상경임황부(上京臨潢府)의 관련성 여부에 대한 새로운 가설 - 최초주장 전한서 요동군(遼東郡) 조를 보면, 요동군의 통현 18개현 중에 “서안평현(西安平縣)”이 있고, 왕망이 북안평 (北安平)이라 고쳤다고 기록되어 있고, 또 후한서 요동군 조에도 11개현 중에 서안평현(西安平縣)이 기록되어 있는데, 필자의 연구에 의하면, 고대의 요동(遼東)은 지금의 북경(北京) 일원을 말하는 것이고, 요수(遼水)는 지금의 영정하(永定河)를 말하는 것으로서 고대에는 대개의 경우 이곳은 중국과 동이 세력 간 상호 공수의 요충지인 접경 지역이었다. 그런데 후대에 이르러 거란(요)이 발해를 멸망시키고는 이 요동(지금의 북경부근)을 차지하자 처음에는 남경(南京)이라 하였는데, 그 후..

카테고리 없음 2020.10.03

윤여동설 – 고구려 고국원왕이 전연 모용황에게 쫓긴 단웅곡(斷熊谷)의 위치 찾기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고구려 고국원왕이 전연 모용황에게 쫓긴 단웅곡(斷熊谷)의 위치 찾기 - 최초주장 고구려 환도성(丸都城)은 10대 산상왕 2년((A.D.198)에 쌓고, 13년(A.D.209) 10월에 국내성(國內城)으로부터 옮긴 도읍이었다. 그랬다가 11대 동천왕 20년(A.D.246)에 위나라 관구검의 침공을 받아 환도성이 함락되자 고구려는 다음 해 2월 평양성으로 도읍을 옮겨, 12대 중천왕, 13대 서천왕, 14대 봉상왕, 15대 미천왕 대에 이르게 된다. 미천왕은 왕위에 올라 중국 5호16국의 혼란기를 틈타 302년에 현토군을 침공하고, 311년에 요동 서안평을 빼앗았으며, 313년에 낙랑군을 빼앗았고, 314년에 대방군을 빼앗았으며, 315년에 다시 현토성을 빼앗아 차지하게 되어 고구려의 강역이 중..

카테고리 없음 2020.09.26

윤여동설 – 요동 동쪽 1천여 리에 위치했던 고구려와 백제의 원래위치 - 최초공개

윤여동설 – 요동 동쪽 1천여 리에 위치했던 고구려와 백제의 원래위치 - 최초공개      후한서 고구려전을 보면,    “고구려는 요동 동쪽 1천여리에 있다. 남쪽은 조선과 예, 맥, 동쪽은 옥저, 북쪽은 부여(동부여)와 접했다. 땅이 방 2천리이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북사 고구려전을 보면,    “그 나라는 동쪽으로는 신라까지요, 서쪽으로는 요(요수)를 건너니 2천리요, 남쪽으로는 백제와 접하고, 북쪽으로는 말갈과 인접하니 1천여리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송서 백제국 전을 보면,    “백제국은 고려(고구려)와 함께 요동 동쪽 1천여리에 있다. 후에 고려(고구려)는 요동을, 백제는 요서를 경략하여 차지하였다. 백제가 통치한 곳을 진평군 진평현이라 한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양서..

카테고리 없음 2020.09.19

윤여동설 - 고조선(왕검조선)의 세 번째 도읍 백악산아사달(白岳山阿斯達) 위치 찾기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고조선(왕검조선)의 세 번째 도읍 백악산아사달(白岳山阿斯達) 위치 찾기 – 최초주장 일연(一然)의 삼국유사(三國遺事)를 보면, 고조선 왕검조선 조에, “위서에 이르기를 “지금으로부터 2천 년 전에 단군왕검(檀君王儉)이 있었다. 그는 아사달(阿斯達)에 도읍을 정하고 새로이 나라를 세워 국호를 조선(朝鮮)이라 하였다. 이것은 고(高: 요임금)와 같은 시기였다....... 단군왕검은 당고(唐高: 唐堯)가 즉위한 지 50년에 평양성(平壤城)에 도읍하여 비로소 조선(朝鮮)이라고 불렀다. [필자주 : 고조선(왕검조선)은 요 25년 무진년(B.C.2333)에 건국되었다고 전해온다. 삼국유사의 찬자가 고조선의 건국연도를 잘못 알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 도읍을 백악산아사달(白岳山阿斯達)로 옮겼는데, 궁..

카테고리 없음 2020.09.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