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윤여동설 909

윤여동설 – 고조선(왕검조선) 왕검성(王儉城)의 서쪽에 위치했던 부여(夫餘, 扶餘)의 원래위치 - 최초공개

윤여동설 – 고조선(왕검조선) 왕검성(王儉城)의 서쪽에 위치했던 부여(夫餘, 扶餘)의 원래위치 - 최초공개 [옛 부여와 북부여의 도읍성이었을 지금의 하북성 장가구시 적성현(赤城縣)] [적성고루(赤城鼓樓)] 규원사화(揆園史話) 단군기(檀君記)를 보면, 고조선(왕검조선)의 초기강역에 대하여, “북쪽으로는 대황(大荒)에 이르고, 서쪽으로는 알유(猰貐. 필자주 : 흉노를 말한다)를 거느리고, 남쪽으로는 해대(海岱)에 이르고, 동쪽으로는 창해(蒼海, 필자주 : 대해의 오기이다)에 닿았다” 라고 기록되어 있고, 또 고조선(왕검조선)의 제후국에 대하여, “천하의 땅을 공적에 따라 나누어 주었다. 치우씨(蚩尤氏)의 후손에게는 남서쪽의 땅을 주었는데, 들이 넓고 바다와 하늘이 푸르러 남국(藍國)이라 하였다......[필..

카테고리 없음 2021.06.26

윤여동설 – 관세음응험기(觀世音應驗記) 기록 속 백제무광왕(百濟武廣王)은 무왕(武王)을 말하는게 아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관세음응험기(觀世音應驗記) 기록 속 백제무광왕(百濟武廣王)은 무왕(武王)을 말하는게 아니다 - 최초주장 觀世音應驗記(관세음응험기)를 보면, “百濟 武廣王 遷都 枳慕密地 新營精舍 백제 무광왕이 지모밀지로 천도하고 정사(절)를 새로 지었다. 以 貞觀 十三年 歲次 己亥 冬十一月 그런데 정관 13년(A.D.639) 기해년 겨울 11월에 天大雷雨 遂災帝釋精舍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져 제석정사에 불이 났다“ 라고 기록되어 있어 많은 사람들은 기록 속의 백제무광왕(百濟武廣王)이 백제 30대 무왕(武王)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하며, 백제 무왕 때 지모밀지(필자주 : 지금의 한반도 전북 익산 금마)로 도읍을 옮기려 했었는데, 무슨 사정이 생겨 그곳으로 도읍을 완전히 옮기지는 못했고, 부도읍 정도로 활용했었을 것..

카테고리 없음 2021.06.13

윤여동설 – 요녕성 조양시 북표(北票)의 라마동고분군(喇麻洞古墳群)은 고구려 호태왕(好太王) 때 망명해온 동부여인들의 무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요녕성 조양시 북표(北票)의 라마동고분군(喇麻洞古墳群)은 고구려 호태왕(好太王) 때 망명해온 동부여인들의 무덤 - 최초주장 [중국에서 선비묘군(鮮卑墓群)이라고 새겨 세워놓은 요녕성 조양시 북표의 라마동고분군(喇麻洞古墳群) 표지석]    중국 요녕성 조양시 북표시에서 발견된 라마동고분군(喇麻洞古墳群)]은 고구려 호태왕(광개토태왕)이 영락 20년(A.D.410)에 동부여를 침공하여 64개 성 1천4백개촌을 빼앗고 개선할 때 따라온 동부여 관리들과 그 후예들의 무덤일 것이다.[필자주 : 길림대 주홍(朱泓) 교수도 부여족의 무덤이라고 주장했다]    필자가 왜 라마동고분군이 동부여(東扶餘) 사람들의 무덤일 것이라고 하냐면,    호태왕 비문 영락 20년(A.D.410) 조에,   二..

카테고리 없음 2021.05.29

윤여동설 – 백제 방어의 요충 탄현(炭峴)과 백강(白江), 기벌포(伎伐浦)의 진짜위치 - 최초공개

윤여동설 – 백제 방어의 요충 탄현(炭峴)과 백강(白江), 기벌포(伎伐浦)의 진짜위치 - 최초공개 삼국유사 기이 제1 태종 춘추공 조를 보면, “정관 15년(A.D.641) 신축에 (의자왕이) 왕위에 오르자 주색에 빠져서 정사는 어지럽고 나라는 위태로웠다. 좌평 성충이 힘 써 간했지만 듣지 않고 오히려 그를 옥에 가두니 몸이 쇠약해져 거의 죽을 지경이 되었으나 성충이 글을 올려 ‘충신은 죽어도 임금을 잊지 않는다 했습니다. 원하옵건대 한마디 말씀만 올리고 죽겠습니다. 신이 일찍이 시국의 변화를 살펴보니 반드시 병란이 있을 것 같습니다. 대체로 용병은 그 지세를 잘 가려야 하는 것인 즉 요충지에 진을 치고 적을 맞아 싸우게 되면 사직을 보존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또 만일 외국 군사가 오거든 육로는 탄현을..

카테고리 없음 2021.05.23

윤여동설 – 고대의 압록강(鴨淥江), 살수(薩水), 패수(浿水)는 한반도에 없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고대의 압록강(鴨淥江), 살수(薩水), 패수(浿水)는 한반도에 없었다 - 최초주장 [낙양동북 3,600리에 위치했던 고대의 요동(遼東)은 지금의 북경 일원] [위 : 북경(요동)에서 하북성 승덕시(평양성)까지의 거리는 고대의 거리단위로 1,000리쯤 된다] [위 : 북경(요동)에서 하북성 당산시 건창영진(백제 남한성)까지의 거리는 고대의 거리단위로 1,000여리쯤 된다] [위 : 요동 동쪽 1천여리에 위치했다고 중국 사서의 기록에 나타나는 고구려와 백제의 위치]     요동(遼東)은 요수(遼水)의 동쪽지역을 말하는 것으로서, 후한서에는 요동(遼東)이 낙양에서 동북쪽으로 3,600리 떨어져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고구려와 백제는 요동동쪽 1천여리에 위치했었다고 중국 사서들에 기록되..

카테고리 없음 2021.05.15

윤여동설 – 우리의 대륙고대사 진실(眞實)찾기의 지름길 영정하요수설(永定河遼水說)과 북경요동설(北京遼東說)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우리의 대륙고대사 진실(眞實)찾기의 지름길 영정하요수설(永定河遼水說)과 북경요동설(北京遼東說) - 최초주장 고대의 요동(遼東)은 낙양 동북3,600리에 위치한다고 하였고, 요수(遼水)를 건너면 바로 그 동쪽이 요동(遼東)이었다. ☆ 고대의 10리는 지금처럼 4km가 아니라 2.3km였다고 한다. 따라서 고대의 1,000리는 230km가 된다. 그런데 지금 낙양에서 북경까지의 고속도로 거리가 약800km쯤 된다. 환산해보면 약 3,500리쯤 된다. 지금의 북경 부근이 옛 요동이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고구려(高句麗)와 백제(百濟)는 요동(遼東) 동쪽 1천여리에 위치해 있었다고 수 많은 사서들에 기록되어 있고, 서진(西晉) 말기에 고구려는 요동(遼東 : 요수 동쪽)을 차지했었고, 백제는 요서..

카테고리 없음 2021.05.08

윤여동설 – 동부여 금와왕과 고구려 주몽왕(추모왕)이 적대적이었던 이유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동부여 금와왕과 고구려 주몽왕(추모왕)이 적대적이었던 이유 - 최초주장      동부여 해부루왕과 주몽은 똑같이 북부여 건국시조 해모수 천제의 혈손으로서 집안 족보로 따져보면 큰아들 후손과 작은아들 후손 사이이다.    앞서 북부여 4대 해우루왕 때 졸본부여의 동명왕에 의해 북부여가 멸망하고 해우루왕이 죽자 왕의 동생이었던 해부루는 기원전 86년에 유민들을 이끌고 북쪽 예(濊 : 옛 창해군)의 땅으로 옮겨가서 그 땅을 빼앗아 차지하고 동부여(東扶餘, 東夫餘)를 건국하게 되고, 멸망한 북부여는 동명왕의 졸본부여에 흡수되어 나라가 없어지고 만다.   이렇듯 어수선한 시기인 기원전 80년 여름에 북부여 천제 해모수의 작은 아들 고리군왕 해진의 증손자(실명)가 압록강가에서 하백의 딸 유화를 겁탈하여..

카테고리 없음 2021.05.01

윤여동설 – 고구려(高句麗)라는 국호는 정말 언제부터 불리워졌을까?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고구려(高句麗)라는 국호는 정말 언제부터 불리워졌을까? - 최초주장     “고구려(高句麗)”라는 국호는 과연 언제부터 불리워졌을까 하는 것은 우리 역사 연구자들 모두의 공통 관심사일 것이다.   그런데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시조 추모왕(주몽왕) 조를 보면,    “졸본천(위서에는 홀승골성에 이르렀다고 하였다)에 이르러 그 지방의 토지가 비옥하고 산천이 준험함을 보고 드디어 도읍을 정하려 하였으나 미처 궁실을 지을 겨를이 없어 비류수 가에 초막을 짓고, 국호를 고구려(高句麗)라 하고, 고(高)씨로 성(姓)을 삼았다.[주몽이 졸본부여에 이르렀더니 졸본부여왕이 아들이 없었는데, 왕이 주몽을 보고는 비범한 사람이라 판단하고는 그의 공주로써 아내를 삼게 하였고, 왕이 죽으매 주몽이 왕위를 이어받았다는..

카테고리 없음 2021.04.24

윤여동설 – 중국의 역사왜곡 발해국의 진짜건국지와 가짜건국지 - 최초공개

윤여동설 – 중국의 역사왜곡 발해국의 진짜건국지와 가짜건국지 - 최초공개 지금도 역사왜곡은 진행중................. 중국서 발해 건국 새 추정지 나와… "고구려 관련성 강화" 관측 송고시간2021-04-17 07:07 중국이 발해사 최대 쟁점 중 하나인 건국지점 동모산의 위치로 추정되는 새로운 지역을 찾았다며, 이 유적을 주요 고고학적 발견이라고 선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18일 중국 문화재당국인 국가문물국 홈페이지에 따르면 동모산으로 추정되는 지린성 옌볜(延邊) 조선족자치주 투먼(圖們)시 마반(磨盤·모판)촌 산성 유적지가 '2020년 중국 10대 고고학 발견'에 포함됐다. 발굴을 진행한 지린성 문물고고연구소는 이곳이 "대조영이 무리를 거느리고 동모산에 근거해 성을 쌓고 살았다"는 발해 건국 ..

카테고리 없음 2021.04.17

윤여동설 – 후백제 견훤의 신라 서라벌 침공로를 밝힌다 - 최초공개

윤여동설 – 후백제 견훤의 신라 서라벌 침공로를 밝힌다 - 최초공개 삼국사기 신라본기 경애왕 4년(A.D.927)조를 보면, "가을 9월 견훤이 고울부(高鬱府)로 신라군을 공격해와 왕이 고려 태조(왕건)에게 구원을 청하니 태조가 장수에게 명하여 강한 군사 1만을 출동시켜 구원하게 하였으나 구원병이 아직 오지 않았으므로 견훤이 겨울 11월에 도읍(서라벌)을 습격해 왔다. 이때 왕(경애왕)이 비빈과 종척들을 데리고 포석정(鮑石亭)에서 연회를 베풀어 즐겁게 놀고 있어 적병이 오는 것을 알지 못했다......중략...................... 왕은 비첩 몇 명과 함께 후궁에 있다가 (후백제군의) 군영으로 잡혀갔는데, (견훤이) 왕을 협박하여 자살하게 하고 왕비를 강제로 강간하고 그의 부하들로 하여금 비..

카테고리 없음 2021.04.10

윤여동설 – 신라 사람들은 왜 서라벌 천경림(天鏡林)을 신성한 장소로 여기게 되었을까?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신라 사람들은 왜 서라벌 천경림(天鏡林)을 신성한 장소로 여기게 되었을까? - 최초주장 [금주시박물관 천후궁(天后宮, 天后行宮)] [천후궁(天后宮) 마조묘(媽祖廟) : 사소태후의 모습으로 추정된다] [신라시조 혁거세의 어머니 사소(파소)태후의 젊을 때 모습으로 추정되는 진황도 산해관 해신묘 천후궁(天后宮)의 천후성모상(天后聖母像) : 사소(파소)태후는 신라에서 호국신으로 추앙받았던 듯하다] 발해 북쪽 지금의 요녕성 금주시(錦州市)는 필자가 신라(新羅)의 천년도읍지 서라벌(徐羅伐)로 밝힌 곳인데, 지금 그곳에 천후궁(天后宮)이 있다. 신라 역사에서 천후성모(天后聖母)로 추앙받을 인물이라면 건국시조인 혁거세거서간의 어머니 사소태후(필자주 : 동부여 해부루왕의 딸인 사소공주이다. 파소라고도 한다)..

카테고리 없음 2021.04.03

윤여동설 – 대륙백제 왕릉 조성지 찾기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대륙백제 왕릉 조성지 찾기 - 최초주장   대륙백제의 도읍이전 도읍명                   도읍기간                            왕위계승                             비고  위례성           B.C.18 – B.C.5(13년간)      시조 온조왕                          백제건국  남한성           B.C.5 – A.D.371(376년간) 시조 온조왕                          장자계승기                                                                2대 다루왕                                           ..

카테고리 없음 2021.03.28

윤여동설 – 신라 여근곡(女根谷)의 진짜위치 - 최초공개

윤여동설 – 신라 여근곡(女根谷)의 진짜위치 - 최초공개 [요녕성 조양시 조양현 양산진(羊山鎭) 칠도하자(七道河子), 좌표 : 동경120도25분33초 북위41도12분14초] 삼국사기 신라본기 27대 선덕여왕 5년(A.D.636) 조를 보면, “여름5월 두꺼비들이 대궐 서쪽 옥문지(玉門池)에 많이 모였다. 왕이 이 말을 듣고 측근들에게 말하기를, ”두꺼비의 성난 눈은 병사의 모습이다. 내가 일찍이 듣기로는 서남쪽 변경에 역시 옥문곡(玉門谷)이라는 곳이 있다하니 반드시 이웃나라 군사가 그 골짜기에 잠입한 것이 아닌가 싶다“하고는 곧 장군 알천과 필탄 등으로 하여금 가서 뒤지게 하였더니 과연 백제장군 우소가 독산성을 습격하려고 군사 5백명을 거느리고 와서 그곳에 숨어 있었으므로 알천이 이를 엄습하여 모조리 쳐..

카테고리 없음 2021.03.20

운석감정 - 머나먼 별나라에서 온 운석(隕石)일까요?

운석감정 - 머나먼 별나라에서 온 운석(隕石)일까요? 운석 같기도 하고, 공룡알화석 같기도 하고, 그냥 돌멩이 같기도 합니다. 어떤 친구는 운석(隕石)같다고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운석신고센터에 알아보라고도 합니다. 필자는 이런 부문에 문외한이라서 잘 모르겠네요. 진짜 먼 어느 별나라에서 온 운석(隕石)일까요? 공룡알 화석일까요? 아니면 그냥 흔한 돌멩이일까요? 아시는 분들께서 감정 좀 해주세요. [위 : 두원운석] [위 : 사하라사막운석]

카테고리 없음 2021.03.17

윤여동설 – 호태왕(광개토왕)비문 영락6년(A.D.396) 병신년 조의 새 해석 - 최초주장

윤여동설 – 호태왕(광개토왕)비문 영락6년(A.D.396) 병신년 조의 새 해석 - 최초주장 영락 6년(A.D.396) 병신년 조 百殘新羅舊是屬民 백잔과 신라는 옛날 (우리의) 속민이었다 由來朝貢 그런 이유로 조공을 바쳐왔다 而(倦)以辛卯年來 그런데 신묘년이래 (조공 바치는 것을) 게을리 하였다 渡海破百殘☆☆新羅以爲臣民 바다를 건너 백잔... 신라를 격파하여 신민으로 만들기 위하여 以六年丙申 王躬率水軍 討伐殘國 영락 6년 병신년에 왕이 몸소 수군을 이끌고 백잔국을 토벌하였다 軍至窠南攻取 軍至窠南攻取 壹八城 臼模盧城 各模盧城 于氐利城 ☆☆城 閣彌城 牟盧城 彌沙城 古舍蔦城 阿旦城 古利城 ☆利城 雜濔城 奧利城 勾☆城 古模耶羅城 須鄒城 ☆☆城 ☆而耶羅城) 瑑城 於利城 ☆☆城 豆奴城 農賣城 沸城 比利城 彌鄒城 也..

카테고리 없음 2021.03.13

윤여동설 – 고구려 호태왕(好太王)의 강역확장 - 최초공개

윤여동설 – 고구려 호태왕(好太王)의 강역확장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비명(國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碑銘) 惟昔始祖鄒牟王之創基也 옛날 추모왕이 터를 잡고 창업했도다. 出自北夫餘天帝之子母河伯女郞 部卵降世生而有聖德☆☆☆☆ 출자는 북부여 천제의 자손이요 어머니는 하백의 딸이다. 알을 깨고 세상으로 내려와 태어나시니 성덕이 있고... (天)命駕巡幸南下路由夫餘奄利大水王臨津言曰我是皇天之子母河伯女郞鄒牟王 하늘의 명을 받아 남쪽으로 순행하며 부여의 엄리대수를 지날 때 왕이 나루에 다달아 말하기를 나는 황천의 자손이요 어머니는 하백의 딸인 추모왕이다. 爲我連葭浮龜應聲卽爲連葭浮龜然後造 나를 위하여 갈대로 엮은 거북이여 떠오르라 소리치니 갈대로 엮은 거북이 떠올라 다리를 만들어 주었다. 渡於沸流谷忽本西城山上而建都 강을 건너 비류..

카테고리 없음 2021.03.07

윤여동설 – 의무려산(醫巫閭山)은 명·청대에 위치가 이동되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의무려산(醫巫閭山)은 명·청대에 위치가 이동되었다 - 최초주장 [요동 동쪽 1천여리에 위치했던 고구려와 백제의 원래위치] 삼국사기 권제37 잡지 제6 지리4 고구려 백제 조를 보면, 『통전에 이르기를, “주몽이 한(漢)나라 건소2년(B.C.37, 필자주 : 사실 주몽이 동부여에서 도망쳐 졸본으로 간 때는 기원전 58년이었다)에 북부여[필자주 : 동부여]로부터 동남방으로 가서 보술수를 건너 흘승골성에 이르러 자리 잡고 국호를 구려라 하고 고로써 성씨를 삼았다”고 하였으며, 고기(古記)에는 이르기를, “주몽이 부여[필자주 : 동부여이다]에서 난을 피하여 졸본에 이르렀다”고 하였으니 흘승골성과 졸본은 거의 같은 곳인 듯하다. 한서지에 이르기를, “요동군(遼東郡)은 낙양에서 3,600리 떨어져 있고..

카테고리 없음 2021.02.27

윤여동설 – 가라(加羅) 다사진(多沙津) 문제를 논의한 안라고당회의(安羅高堂會議) 장소는 지금의 어디였을까? - 최초공개

윤여동설 – 가라(加羅) 다사진(多沙津) 문제를 논의한 안라고당회의(安羅高堂會議) 장소는 지금의 어디였을까? - 최초공개 일본서기 계체천황 23년(A.D.533, 백제 성왕11년, 신라 법흥왕 20년) 조를 보면, “봄3월 백제왕이 하다리국수(下口+多唎國守) 수적압산신(穗積押山臣)에게 말하기를, ‘조공하러 가는 사자들이 항상 섬의 돌출부를 피할 때마다 매양 풍파에 시달립니다. 이로 인하여 가지고 가는 것들이 젖고 망가지게 됩니다. 그러하니 가라(加羅)의 다사진(多沙津)을 조공하는 길로 하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이를 압산신이 전하여 아뢰었다. 이달에 물부이세련부근(物部伊勢連父根), 길사노(吉士老)를 보내, 항구(다사진)를 백제왕에게 주었다. 가라왕(加羅王)이 칙사에게 말하기를, ‘이 항구는 관가를 둔 이래..

카테고리 없음 2021.02.21

윤여동설 – 임나(任那) 종발성(從拔城)의 위치와 호태왕비문 영락10년(A.D.400) 조의 이해 - 최초공개

윤여동설 – 임나(任那) 종발성(從拔城)의 위치와 호태왕비문 영락10년(A.D.400) 조의 이해 - 최초공개 위 그림과 아래의 호태왕비문 영락9년(A.D.399)조, 영락10년(A.D.400)조 그리고 영락14년(A.D,400)조를 비교하여 보면, 고구려 평양성의 위치와 신라, 가야, 백제, 왜국, 대방 그리고 임나의 위치를 정확히 알 수 있고, 필자가 왜 임나(任那)가 한반도 남쪽이 아닌 하북성 진황도시 부근에 위치했으며, 임나(任那) 종발성(從拔城)의 위치가 지금의 하북성 진황도 산해관고성(山海關古城) 부근이라고 하는지 이해가 될 것이다. 영락 9년(A.D.399) 기해년 조 [쟁점 : 고구려 평양,하평양,신라,백잔(대륙백제),임나,왜국의 위치] 九年 己亥 百殘違誓 與倭和通 영락 9년 기해년에 백잔..

카테고리 없음 2021.02.14

윤여동설 – 위화도회군(威化島回軍)의 현장 위화도(威化島)의 진짜위치를 찾았다 – 최초공개

윤여동설 – 위화도회군(威化島回軍)의 현장 위화도(威化島)의 진짜위치를 찾았다 – 최초공개 [위 : 북경시 회유구] [위 : 위화도 태조봉(太祖峰) 추정지 : 지금의 북경 회유구 대라산(大羅山, 해발 약95m) 좌표 동경116도44분03초 북위40도18분04초] 신증동국여지승람 권지53 평안도 의주목(義州牧) 산천(山川) 조를 보면, “어적도(於赤島)는 난자도(蘭子島)의 북쪽에 있는데, 둘레가 17리이다. 그 땅이 평평하고 넓어서 밭 60여경(頃)을 일구었다. 검동도(黔同島)는 의주(義州)에서 서쪽으로 15리 떨어져 있는데, 둘레가 15리이다. 압록강이 여기에 이르러서 3갈래로 나누어지는데, 이 섬이 두 섬사이에 있으며, 삼씨량(三氏梁)이 있다. 모든 강을 건너는 사람들이 반드시 이 섬의 북쪽을 지나는데..

카테고리 없음 2021.0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