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윤여동설 909

윤여동설 - 강화의 옛 이름 갑비고차(甲比古次)는 무슨 의미일까?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강화의 옛 이름 갑비고차(甲比古次)는 무슨 의미일까? - 최초주장     신증동국여지승람 강화도호부(江華都護府) 조를 보면,  "본래 고구려 혈구군(穴口郡)이다.[갑비고차(甲比古次)라고도 부른다] 신라 경덕왕이 해구(海口)라고 개칭했고, 원성왕이 혈구진(穴口鎭)을 설치했다. 고려 초에 지금의 이름으로 바꿔 (강화)현이 되었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많은 사람들이 한반도의 강화도에 관한 연혁으로 생각하겠지만, 사실 이 기록은 한반도 강화도의 연혁이 아니라, 지금 북경 동쪽 난하 반가구수고, 대흑정수고 동쪽에 위치한 하북성 천서현의 청산관(靑山關) 부근에 대한 연혁이다.           그리고 고조선 때의 갑비고차(甲比古次)를 고구려 때 왜 혈구(穴口)로 이름을 바꾸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확실히 ..

카테고리 없음 2019.11.23

윤여동설 - 신라 문무왕 생전의 모습은 실제 어땠을까? - 최초공개

윤여동설 - 신라 문무왕 생전의 모습은 실제 어땠을까? - 최초공개 [죽어 용이 되었다고 전해져 오는 신라 문무왕 생전의 모습 : 진황도 산해관 해신묘의 해신상]   [산해관 노룡두 해신묘 전경]    삼국을 통일하여 신라의 강역을 넓혔던 신라 문무왕의 생전의 모습은 실제 어떠했을까?   신라 문무왕의 이름은 김법민으로서 아버지는 태종무열왕 김춘추이고, 어머니는 김유신의 여동생인 문명왕후 김문희이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에는 그에 대하여 "외모가 영특하게 생겼고, 총명하고도 지략이 많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626년에 김춘추의 장자로 태어나 태종무열왕 2년(A.D.655)에 태자로 책봉되었다.   660년에 김유신을 이끌고, 당나라 소정방과 함께 백제를 멸망시켰다.   661년 6월에 그 아버지 태종무열..

카테고리 없음 2019.11.16

윤여동설 - 신라시조 혁거세의 어머니 사소(娑蘇) 상(像) - 최초공개

윤여동설 - 신라시조 혁거세의 어머니 사소(娑蘇) 상(像) - 최초공개 [천후성모 상 : 혁거세의 어머니 선도성모 사소(파소) 상) 신라 건국시조 혁거세거서간의 어머니 선도성모의 모습은 과연 어땠을까? 태백일사 고구려국본기를 보면, “사로(斯盧)의 시왕(始王)은 선도산 성모(聖母)의 아들이다. 옛날 부여제실(夫餘帝室)의 딸 파소(婆蘇)가 있었는데, 남편 없이 잉태했으므로 사람들이 의심할까 하여 부여에서 도망쳐 눈수(嫩水)까지 갔다가 다시 동옥저(東沃沮)에 이르렀다. 또 다시 배를 타고 남하하여 진한(辰韓)의 나을촌(奈乙村)에 와서 아이를 낳았다. 이때 소벌도리(蘇伐都利)라는 자가 있었는데, 그 소식을 듣고는 그 아이를 집에 데려다 길렀다. 나이 13세가 되자 지혜는 빼어나고 숙성하며 성덕이 있는지라 진한..

카테고리 없음 2019.11.10

윤여동설 - 고려의 도읍 개경 송악산에 나타나는 어린아이 형상 - 최초공개

윤여동설 - 고려의 도읍 개경 송악산에 나타나는 어린아이 형상 - 최초공개 [고려의 도읍 개경으로 비정되는 하북성 관성현과 그 북쪽의 송악] [개경 북쪽 송악산에 나타나는 어른(엄마?)과 무릎에 앉은 것처럼 보이는 어린아이 형상] 신증동국여지승람 개성부 상 산천 조를 보면, “송악(松嶽: 송악산)”이 개성부의 북쪽 5리에 있는데, 처음 이름은 부소(扶蘇: 부소산) 또는 곡령(鵠嶺)이라 하였다. 신라의 감간 팔원이 풍수에 능하였는데, 부소군에 이르러 살펴보니 산의 형승에서 어린아이(童)가 나타나므로(新羅監干八元善風水到扶蘇郡見山形勝而童) 강충(필자주 : 고려 태조 왕건의 선조)에게 말하기를 ‘만약 군(郡)을 산 남쪽으로 옮기고 소나무를 심어 암석이 드러나지 않게 하면 삼한을 통합할 인물이 출현할 것이다’ 하..

카테고리 없음 2019.11.02

윤여동설 - 흑룡강성 삼강평원(三江平原) 생성의 비밀 - 최초주장

윤여동설 - 흑룡강성 삼강평원(三江平原) 생성의 비밀 - 최초주장  [위 : 동북평원의 사라진 대해흔적, 물결치며 형성되었을 지층의 형상이 지금까지도 선명하게 보인다]     후한서 읍루전을 보면,   “읍루는 옛 숙신국이다. 부여의 동북쪽 1천여리에 있는데, 동쪽은 대해(大海)에 닿고, 남쪽은 북옥저와 접했으며, 북쪽은 그 끝을 알 수 없다. 땅이 산이 많고 험준하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진서 숙신씨전을 보면,   “숙신씨는 일명 읍루라고도 하는데 불함산(不咸山) 북쪽에 있다. 부여에서 60일쯤(?) 가야하는 거리에 있다. 동쪽으로는 대해(大海)에 닿았고, 서쪽으로는 구만한국과 접해있으며, 북쪽 끝은 약수에까지 이른다. 그 땅의 경계는 매우 넓어 방 수천 리에 뻗쳐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구..

카테고리 없음 2019.10.26

윤여동설 - 낙양 동북 3,600리에 위치했던 고대의 요동군은 지금의 북경일원이 확실하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낙양 동북 3,600리에 위치했던 고대의 요동군은 지금의 북경일원이 확실하다 - 최초주장 전한서 권28하 지리지 제8하를 보면, "상곡군(上谷郡)은 진(秦)나라가 설치했다.(필자 주 : 사실은 진나라 이전의 춘추전국시대 연나라가 최초로 설치했다) 왕망은 삭조라 했는데 유주에 속했다. 36,008호이고, 인구는 117,762명이다. 15개현인데 저양(沮陽), 천상(泉上), 반(潘), 군도(軍都), 거용(居庸), 구무(구무), 이여(夷輿), 녕(寧), 창평(昌平), 광녕(廣寧), 탁록(涿鹿), 저거(저居), 여(茹), 여기(女祁), 하락(下落)이다. 어양군(漁陽郡)은 진(秦)나라가 설치했다. 왕망은 통로라 했는데 유주에 속했다. 68,802호이고, 인구는 264,116명이다. 12개현인데 어양(..

카테고리 없음 2019.10.05

윤여동설 - 백제의 건국지 검증 - 최초공개

윤여동설 - 백제의 건국지 검증 - 최초공개 백제의 시국처(건국지)는 발해 서북쪽 백제의 건국지에 대해서는 현재 여러 설이 전해지고 있는데, 첫째는 마한동북(馬韓東北) 건국설 둘째는 한산부근(漢山附近) 건국설 셋째는 대방고지(帶方故地) 건국설 넷째는 진번지간(辰番之間) 건국설 다섯째는 패대지간(浿帶之間) 건국설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여러 설 중에서 과연 어느 설이 옳고, 어느 설이 잘못 전해진 것일까? 마한동북(馬韓東北) 건국설은, 삼국사기 백제본기 온조왕 24년(A.D.6) 조에, “가을7월 왕이 웅천에 목책을 세웠더니 마한왕이 사신을 보내어 책망하여 이르기를 ‘왕이 처음으로 강을 건너와서 발붙일 곳이 없을 때에 내가 동북방 1백리 땅을 나누어 주어 살도록 하였으니 내가 왕을 대우한 ..

카테고리 없음 2019.10.01

윤여동시사 - 급진개혁으로 멸망한 왕망의 신(新)나라

윤여동시사 - 급진개혁으로 멸망한 왕망의 신(新)나라    왕망은 전한을 멸망사카고, 신(新)나라를 건국한 후, 황제의 자리에 오르자, 기존질서를 부정하고 각종 제도 모두를 바꾸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왕망의 신나라는 현실을 무시하고 너무도 무리하게 급진적으로 개혁을 추진했기 때문에,   일반 백성들의 지지를 받지 못함으로써 민심이 떠나가게 되었고,   호족들로부터도 배척받게 되어 결국은 몇 년 못가 멸망하고 말았다.   자, 그렇다면 과연 지금의 대한민국은?                                          [왕망 때의 화폐인 화천(貨泉) : 한반도에서도 많이 출토된다]    신(新)나라를 세운 왕망의 급진적인 개혁 왕망의 신나라 개창   왕망이..

카테고리 없음 2019.10.01

윤여동설 - 고조선 때의 개마국(蓋馬國) 남쪽이 후세에 북옥저(北沃沮)가 되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고조선 때의 개마국(蓋馬國) 남쪽이 후세에 북옥저(北沃沮)가 되었다 - 최초주장 [산악지형인 대광정자산(옛 태백산, 장백산) 북쪽 북옥저 추정지 ; 북옥저는 말갈족의 노략질을 피해 여름철에는 산악지역으로 피해 석굴속에서 살다가 겨울철이 되어야 내려와 읍락에서 살았다고 한다] 규원사화를 보면, “단군의 교화가 사방에 두루 미치게 되어 북쪽으로는 대황(大荒)에 이르고, 서쪽으로는 알유(猰貐)를 거느리고, 남쪽으로는 해대(海岱)에 이르고, 동쪽으로는 창해(蒼海, 필자주 : 대해의 오기이다)에 닿았다......... 천하를 나누어 공적에 따라 땅을 나누어 봉했다. 치우씨의 후손에게는 남서쪽의 땅을 주었는데, 들이 넓고 바다와 하늘이 푸르러 남국(藍國)이라 하고, 치소는 댁엄려홀(宅奄慮忽 : 북경 부..

카테고리 없음 2019.09.21

윤여동설 - 단군왕검(檀君王儉)은 환웅천왕(桓雄天王)의 아들이 아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단군왕검(檀君王儉)은 환웅천왕(桓雄天王)의 아들이 아니다 - 최초주장 산해경(山海經) 대황북경(大荒北經)을 보면, 대황가운데 산이 있어 이름하여 불함인데, 숙신씨의 나라에 있다.(大荒之中 有山 名曰不咸 有肅愼氏之國) 산해경(山海經) 해내경(海內經)을 보면, 동해의 안쪽 북해의 모퉁이에 나라가 있는데, 이름하여 조선이다.(東海之內 北海之隅 有國 名曰朝鮮) 환단고기(桓檀古記) 안함로(安含老) 삼성기(三聖記) 전상편(全上篇)을 보면, 뒤에 신인왕검(神人王儉)께서 불함산(不咸山)의 단목지허(檀木之墟)에 내려 오셨다. 그는 신의 덕과 성인의 어짐을 겸비하였으니 이에 능히 조칙을 받들어 하늘의 뜻을 이었다. 나라를 세운 뜻과 법은 높고도 넓고, 강하고도 열렬하였다. 이에 구환(九桓)의 백성들이 마음 깊..

카테고리 없음 2019.09.16

윤여동설 - 환웅천왕(桓雄天王)은 환인천제(桓因天帝)의 아들이 아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환웅천왕(桓雄天王)은 환인천제(桓因天帝)의 아들이 아니다 - 최초주장 어느 날 동녀동남 800이 흑수(黑水) 백산(白山)의 땅에 내려왔다. 이에 환인은 또한 감군으로서 천계(天界)에 계시면서 돌을 부딪쳐 불을 일으켜서 날 음식을 익혀 먹는 법을 처음으로 가르치셨다. 이를 환국(桓國)이라 하고 그를 가리켜 천제환인(天帝桓因)이라 불렀다. 또한 안파견(安巴堅)이라고도 했다. 환인은 일곱 대를 전했는데 그 연대는 알 수가 없다. 뒤에 환웅씨(桓雄氏)가 계속하여 일어나 천신의 뜻을 받들어 백산흑수지간(白山黑水之間)에 내려왔다.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을 천평(天坪)에 마련하고 그곳을 청구로 정했다. 천부(天符)의 징표[필자주 : 천부인 3개 즉 옥새 세 개를 말하는 것이다]를 지니시고 오사(五事)를 ..

카테고리 없음 2019.09.08

윤여동설 - 삼국사기 백제본기 속 “백제의 동쪽에 낙랑(樂浪)이 있고, 북쪽에 말갈(靺鞨)이 있다”는 온조왕의 말은 잘못된 기록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삼국사기 백제본기 속 “백제의 동쪽에 낙랑(樂浪)이 있고, 북쪽에 말갈(靺鞨)이 있다”는 온조왕의 말은 잘못된 기록 - 최초주장 삼국사기 백제본기 온조왕 조를 보면, “2년(B.C.17) 봄 정월 왕이 여러 신하들에게 이르기를 “말갈이 우리의 북부국경에 연접하여 있으며, 그곳 사람들이 용기가 있고, 거짓이 많으니 우리는 병기를 수선하고 곡식을 저장하여 그들을 방비할 계책을 세워야 한다”하였다. 3년(B.C.16) 가을9월 말갈이 북부 국경을 침범하므로 왕이 강력한 군사를 거느리고 급격히 쳐서 그를 크게 패하게 하니 적들이 살아 돌아간 자가 열에 한 둘에 지나지 않았다. 8년(B.C.11) 봄2월 말갈적군 3천명이 침입하여 위례성을 포위하였다. 왕이 성문을 닫고 나가지 않았더니 열흘이 지나 적..

카테고리 없음 2019.08.31

윤여동설 - 고려 남경(南京)의 면악(面嶽)을 찾았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고려 남경(南京)의 면악(面嶽)을 찾았다 - 최초주장 고려는 개국초기에는 도읍인 개경(開京)을 중경이라 하고, 옛 고구려의 도읍 평양을 서경(西京)이라 했으며, 옛 신라의 도읍 금성을 동경(東京)이라 했다. 그러다가 동경을 주(경주)로 격하시키게 되어 중경과 서경 만이 남게 되자 후일에 이르러 새로이 남경(南京)을 건설하게 된다. 그런데 고려는 한반도가 아닌 북경 동쪽의 대륙이 중심 강역이었고, 고려의 도읍 개경(開京)은 지금의 중국 하북성 관성(寬城 : 관성만족자치현)으로 밝혀졌다. 따라서 고려의 남경은 지금 하북성 관성의 남쪽에서 찾아야 하는 것이다. 세월이 흘러 고려 숙종 원년(A.D.1096) 8월에 이르자 위위승 동정 김위제가 글을 올려 남경(南京)으로 도읍을 옮기기를 청하게 된다...

카테고리 없음 2019.08.25

윤여동설 - 고구려 남평양(하평양)은 지금의 어디를 말하는가?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고구려 남평양(하평양)은 지금의 어디를 말하는가? - 최초주장 삼국사기 권제37 잡지 제6 지리 백제 조를 보면, “온조가 전한 성제 홍가 3년(B.C.18) 계묘에 졸본부여로부터 위례성(慰禮城)으로 가서 도읍을 세우고 왕을 칭했으며, (다시 도읍을 남한성으로 옮겼는데) 389년을 지나 13대 근초고왕 때에 이르러 고구려 남평양(南平壤)을 빼앗고 한성(漢城)에 도읍하여 105년을 지냈으며, 22대 문주왕 때에 이르러 도읍을 웅천(웅진성)으로 옮겨 63년을 지냈고, 26대 성왕 때에 이르러 도읍을 소부리(사비성)로 옮기고 국호를 남부여라 하였고, 31대 의자왕에 이르기까지 122년을 지냈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백제 근초고왕 때 백제가 남평양(필자주 : 호태왕 비문에는 하평양이라 하였다)을 고..

카테고리 없음 2019.08.03

경제전쟁 - 혐일(嫌日), 반일(反日), 극일(克日)을 넘어 초일(超日)로 나아가야 한다

경제전쟁 - 혐일(嫌日), 반일(反日), 극일(克日)을 넘어 초일(超日)로 나아가야 한다 [일본에 선진문화를 전수해주러 갔던 조선통신사 그림] 지금 세계에서 왜국(倭國 : 일본의 옛 국호)을 싹 무시할 수 있는 나라는 한국 밖에 없다. 왜국이 지리적으로 가까이 이웃하고 있었고, 역사적, 문화적으로 한참 뒤떨어진 미개한 나라였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임진왜란을 거치며 혐일(嫌日)이 되었고, 일제강점기를 지나며 반일(反日)이 되었다. ☆ 조선시대에 임진왜란 전쟁배상금을 받았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 임진왜란으로 얼마나 많은 조선백성이 죽었고, 온 백성이 얼마나 고생을 많이 했는데, 전쟁배상금을 왜 받지 않은겨? 지금이라도 임진왜란 전쟁배상금을 받아내면 안되나? 배상금으로 한 1경엔쯤 받아내라. ..

카테고리 없음 2019.08.01

윤여동설 - 고대의 불함산(不咸山), 태백산(太白山), 도태산(徒太山), 장백산(長白山), 백두산(白頭山)의 진짜 위치 - 최초공개

윤여동설 - 고대의 불함산(不咸山), 태백산(太白山), 도태산(徒太山), 장백산(長白山), 백두산(白頭山)의 진짜 위치 - 최초공개 산해경(山海經) 대황북경(大荒北經) 대황 가운데 산이 있는데 이름은 불함(不咸)이다. 숙신씨의 나라에 있다(大荒之中 有山 名曰不咸 有肅愼氏之國) 산해경(山海經) 해내경(海內經) 동해의 안쪽, 북해의 모퉁이에 나라가 있는데 이름은 조선(필자주 : 고조선이다)이다(東海之內 北海之隅 有國 名曰朝鮮). 삼국유사(三國遺事) 고조선[왕검조선] 조 환웅은 무리 3천을 거느리고 태백산(太伯山) 꼭대기에 있는 신단수 아래로 내려왔다. 이곳을 신시(神市)라 하고 이분을 환웅천왕(桓雄天王)이라 한다. 규원사화 단군기(檀君紀) 여러 고을 땅의 길흉을 판단하여 도읍을 태백산(太白山) 서남쪽(필자주..

카테고리 없음 2019.07.28

윤여동설 - 고대 왜국(倭國)과 현재 왜국(일본)의 위치비교 - 최초공개

윤여동설 - 고대 왜국(倭國)과 현재 왜국(일본)의 위치비교 - 최초공개 [발해 해수면 10m상승시 발해연안 지형변화도] 왜(倭)의 위치에 관한 고대 사서들의 기록들 전한서(前漢書) : 낙랑해 중 후한서(後漢書) : 한(韓)의 동남 대해 중 삼국지(三國志) : 대방 동남 대해 중 진서(晉書) : 대방 동남 대해 중 송서(宋書) : 고구려 동남쪽 대해 중 남제서(南齊書) : 고구려 동남쪽 대해 중 수서(隋書) : 백제, 신라의 동남쪽 북사(北史) : 백제, 신라의 동남쪽 구당서(舊唐書) : 신라 동남쪽 대해 중 통전(通典) : 대방 동남쪽 대해 중 ☆ 지들 선조들이 원래 살던 곳이 어디였는지도 모르고 있는 왜인들이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는 둥 헛소리를 해대고 있으니 참 한심하고 엉뚱한 족속들이다. 그리고 신..

카테고리 없음 2019.07.24

윤여동자료실 - 양직공도(梁職貢圖)속 왜국사신(倭國使)의 꼬락서니

윤여동자료실 - 양직공도(梁職貢圖)속 왜국사신(倭國使)의 꼬락서니 [양직공도 왜국사 : 맨발에 둘둘 말아 묶은 치마 ㅋㅋ 이게 바로 6세기 초에 양나라에 온 왜국 사신의 옷차림이었다. 사신의 옷차림이 저 정도였다면 당시 왜국의 문화 수준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백제국사 : 왜국사신의 모습과 비교해보면 당시 어느 나라가 문명국이었는지 금방 비교가 가능하다] [활국사] [파사국사] [구자국사] [등지국사] [주고가국사]

카테고리 없음 2019.07.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