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윤여동설 909

윤여동설 - 위만의 옛 도읍 험독(險瀆)은 지금의 북경 남쪽 대흥부근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위만의 옛 도읍 험독(險瀆)은 지금의 북경 남쪽 대흥부근 - 최초주장 앞서 위만이 연나라로부터 고조선으로 망명해 오자 고조선의 준왕은 위만을 나라 서쪽(사실은 서남쪽이다) 변경 백리 땅에 봉하여 그곳에서 살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 그러자 위만은 그곳에 자리잡고 험독(險瀆)을 치소로 삼아 다스렸고, 가까이 위치한 제나라, 연나라, 조나라의 유민들을 끌어들여 세력이 강해지자 고조선의 도읍 왕검성(왕험성이라고도 한다)을 공격하여 준왕을 쫓아내고는 스스로 왕위에 올랐는데, 이가 곧 위만조선의 시작이었다. 그런데 위만이 고조선으로 망명해 온 후 첫 치소로 사용했었다는 “험독(險瀆)”의 위치는 지금까지 그 위치가 어디인지 오리무중이었다. 험독(險瀆)에 대하여 전한서에는 요동군의 속현으로 기록되어 있고,..

카테고리 없음 2017.04.15

윤여동설 - 아메리카 인디언과 인디오는 동이족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아메리카 인디언과 인디오는 동이족 - 최초주장 북미의 인디언이나 중미, 남미의 인디오가 우리와 혈통이 같은 동이족이라는 것은 틀림없는 역사적 사실로 보인다. 우선 겉모습이 매우 같고, 동이족에게만 나타나는 몽골반점도 있다고 하고, 전통문화나 언어, 생활방식도 유사한 점이 많다고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동이족 중 과연 어느 부족의 후예일까? 옛날 하고도 아주 먼 옛날, 환인천제가 다스리던 환인국이 북해 즉 지금의 바이칼호수 동쪽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랬다가 그 중 일부가 남하하여 지금의 시라무렌하를 중심으로 환웅국이 서게 되고, 다시 또 남하하여 난하를 중심으로 왕검조선이 건국된다. 따라서 환인국, 환웅국, 왕검조선의 백성 일부였을 부여족, 숙신족, 예족, 옥저족, 한족(韓族), 왜족 중 이..

카테고리 없음 2017.04.01

윤여동설 - 한반도 김해는 금관가야의 도읍 금관성이 아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한반도 김해는 금관가야의 도읍 금관성이 아니다 - 최초주장 삼국사기 신라본기 파사이사금 8년(A.D.87) 조를 보면, "가을8월 왕이 명령을 내려 말하기를 '내가 덕이 없이 나라를 가져 서쪽으로는 백제와 이웃하고, 남쪽으로는 가야를 접하였는데도, 덕망은 백성들을 안정시키지 못하고 위엄은 외국이 경외하게 하기에 부족하다. 그러므로 성새와 보루를 수리하여 외적의 침략에 대비하라' 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신라의 서쪽 국경은 백제와 접하였고, 남쪽국경은 가야와 접하고 있었음을 알게 하고, 삼국유사 가락국기를 보면, 『즉위 2년(B.C.43) 계묘 정월에 왕이 말하기를, “내가 도읍을 정하려 한다” 하고는 곧 임시궁궐의 남쪽 신답평(新畓坪)으로 나아가 사방의 산악을 바라보다가 좌우 사람들을 보고..

카테고리 없음 2017.03.17

윤여동설 - 고대의 요동군 양평현(襄平縣)은 지금의 북경 창평(昌平) 부근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고대의 요동군 양평현(襄平縣)은 지금의 북경 창평(昌平) 부근 - 최초주장 전한서 권28하 지리지 제8하를 보면, “요동군 진나라 때 설치했는데, 유주에 속한다. 55,972호이고, 인구는 272,539명이며, 다스리는 현은 18현이다. 양평(襄平) : 목사관이 있고, 왕망이 창평(昌平)으로 고쳤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지금 많은 사람들은 전한서 기록 속 “요동군(遼東郡) 양평현(襄平縣)”의 위치를 전혀 엉뚱한 곳에서 찾고 있다. 양평(襄平)은 춘추전국시대 연나라가 고조선 땅 1천여리를 빼앗은 후 조양(造陽)에서부터 양평(襄平)까지 장성[이를 연장성이라 한다]을 쌓고 그곳에 요동군, 요서군, 상곡군, 우북평군, 어양군[이를 연5군이라 한다]을 설치했다는 곳이고, 후..

카테고리 없음 2017.03.05

윤여동설 - 열도에서의 일본 역사는 600년 뿐이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열도에서의 일본 역사는 600년 뿐이다 - 최초주장       고조선과 삼한(마한, 진한, 변한)은 지금의 북경 부근에 위치하고 있었고, 북경이 고대의 요동이었다.  따라서 고구려와 백제, 신라는 고조선과 삼한 땅에서 건국되었고, 왜국은 그 동남쪽 발해건너 지금의 요동반도에 위치하고 있었다. ☆ 후한서 권85 동이열전 제75 왜전을 보면, “왜(倭)는 한(韓)의 동남 대해(大海) 중에 있고, 산과 섬에 의지하여 살고 있는데 백여국으로 이루어져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백제는 지금 북경 부근의 대륙에서 13대 근초고왕이 12대 계왕의 아들 무광왕과 왕위쟁탈전을 벌여 승리하여 백제(대륙백제)를 이어갔고,   패한 무광왕은 한반도로 도망쳐 지모밀지(익산 금마)에 도읍하고 다시 백제(반도백제..

카테고리 없음 2017.02.26

윤여동설 - 동부여 초기 왕들과 고구려 초기 왕들의 생몰년도 비교

윤여동설 - 동부여 초기 왕들과 고구려 초기 왕들의 생몰년도 비교 동부여 고구려 해부루왕(재위:B.C.86-B.C.48) 유화부인[주몽왕의 어머니] [추정생몰:B.C.120-B.C.48] [추정생몰:B.C.97-B.C.24] 약 73세졸 약 74세졸 ☆ 삼국사기에는 유화부인이 주몽을 잉태한 후 우발수에서 동부여 금와왕과 만난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오기로 보이고, 사실은 해부루왕 때이다. 금와왕(재위:B.C.48-B.C.7) 주몽왕(재위:B.C.58-B.C.19) [생몰:B.C.77-B.C.7] [생몰:B.C.79-B.C.19] 71세졸 61세졸 ☆ 주몽은 기원전 79년에 태어나 22세 때인 기원전 58년에 동부여에서 도망쳐 졸본으로 가서 졸본부여왕의 둘째공주와 혼인하였고, 왕이 죽자 그 왕위를 이어받아..

카테고리 없음 2017.02.18

윤여동설 - 고대의 왜국(倭國)은 지금의 요동반도에 위치했었고, 임나가라(任那加羅, 임나국)는 진황도 부근에 위치했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고대의 왜국(倭國)은 지금의 요동반도에 위치했었고, 임나가라(任那加羅, 임나국)는 진황도 부근에 위치했었다 - 최초주장 고대의 왜국은 지금의 요동반도에 위치하고 있었고, 우리의 삼국 즉 고구려는 지금의 하북성 승덕시 일부, 장가구시 일부, 북경시 일부, 산서성 일부, 내몽골 일부를 차지하고 있었고, 백제는 하북성 당산시, 진황도시, 승덕시 일부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신라는 요녕성 금주시(錦州市), 조양, 부신 일원을 차지하고 있었고, 가야는 요녕성 호로도, 흥성, 수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우리의 고대 역사를 한반도를 중심으로 해석함으로써 임나(임나국)도 한반도 남부에 위치했었다고 해석한다. 이는 우리가 지금 한반도에 살고 있고, 일본이 지금의 일본열도에 위치해 있기 때문..

카테고리 없음 2017.02.04

윤여동설 - 원(元) 지원(至元) 4년(A.D.1267)까지도 존재한 백제는 과연 어디에 있었을까?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원(元) 지원(至元) 4년(A.D.1267)까지도 존재한 백제는 과연 어디에 있었을까? - 최초주장    원사를 보면,  "세조 지원 4년(A.D.1267) 정월 백제가 그 신하 양호를 보내 내조하여 비단을 차등있게 하사했다(世祖至元四年正月百濟遣其臣梁浩來朝賜以錦繡有差)”라고 기록되어 있다.    우리가 모두 잘 알고 있다시피 백제는 서기 660년에 나당연합군의 침공을 받고 나라가 멸망했고, 견훤의 후백제 역시 936년에 소멸했다.   그런데 백제는 그 후에도 어디선가 명맥을 유지하면서 1267년에 원나라에 사신을 보내자 원 세조인 쿠빌라이 칸이 비단을 하사했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원사가 없는 사실을 기록했을 리도 없을 것인데, 백제가 멸망한지 600년도 더 지난 1267년까지 백제가..

카테고리 없음 2017.01.21

윤여동설 - 한글은 한자를 읽기위한 발음기호가 아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한글은 한자를 읽기위한 발음기호가 아니다 - 최초주장 일부 사람 중에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자들이 힘을 합하여 창제했다는 우리의 자랑 훈민정음(한글)이 문자가 아니라 한자의 발음을 표기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단순한 발음기호일 뿐이라고 비하하는 얼빠진 사람들이 가끔 있다. 세상의 수많은 석학들이 매우 과학적이고, 우수한 문자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고 있는 우리의 글 한글이 단순한 한자의 발음기호에 불과하다니............... 이들은 왜 이렇게 한글을 비하하는 주장을 하는 것일까? 그러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의 심리상태는 어떠한 것일까? 자신들의 글은 한글이 아니라 한자라고 인식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자신들이 수십년간 공들여 익힌 한자가 점점 그 효용성을 잃고 쓸모없게 되어가는 것이 억울하고..

카테고리 없음 2017.01.16

윤여동설 - 반도백제 무광왕(武廣王)이 세운 제석정사(제석사)의 창건연대는 370년경이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반도백제 무광왕(武廣王)이 세운 제석정사(제석사)의 창건연대는 370년경이다 - 최초주장 [익산 제석사지 목탑지 발굴당시 사진] [제석사지 목탑 심초석 발굴, 정비 전 사진] [익산 제석사지 출토 제석사(帝釋寺)명 와당] [익산 왕궁리 5층석탑 출토 사리병] 관세음응험기[觀世音應驗記] 중 백제 무광왕 관련 기사를 보면, 百濟 武廣王 遷都 枳慕密地 新營精舍 백제 무광왕이 지모밀지로 천도하고 정사(절)를 새로 지었다. 以貞觀 十三年 歲次 己亥 冬十一月 그런데 정관 13년(A.D.639) 기해년 겨울 11월에 天大雷雨 遂災帝釋精舍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져 제석정사에 불이 났다. 佛堂七級浮圖 乃至 廓房 一皆燒盡 불당과 일곱 개의 탱화와 곽방 한 개가 모두 불탔다. 塔下礎石中 有種種七寶 亦有佛舍利 睬水..

카테고리 없음 2017.01.06

윤여동설 - 익산 미륵사의 창건연도는 639년이 아니라 519년 기해년이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익산 미륵사의 창건연도는 639년이 아니라 519년 기해년이다 - 최초주장 익산 미륵사지 서탑에서 출토된 사리봉안기 삼가 생각해보면, 법왕(부처님)께서 세상에 나타나셔서 감응하시고, 현신 하시는 것은 물 속에 달이 비치는 것과 같습니다. 왕궁에서 태어나셨으나 쌍수 아래에서 열반에 드시면서 8곡의 사리를 남겨 3천 세계를 이익 되게 하셨으므로, 정신을 맑게 하고 오색으로 빛나는 사리를 돌면 그 신통변화는 불가사의할 것입니다. 우리 백제왕후께서는 좌평 사탁적덕의 따님으로 지극히 오랜 세월동안 선을 베풀어 금생에 좋은 보은을 받아 만민을 기르는 동량이 되셨으므로 재물을 희사하여 가람을 세우시고, 기해 년(己亥年) 정월 29일에 사리를 받들어 모시게 되었습니다. 원하오니, 세세토록 공양하겠으니 겁겁..

카테고리 없음 2016.12.30

윤여동설- 가야 허왕후 설화 속 망산도(望山島)는 지금의 국화도(菊花島) - 최초공개

윤여동설- 가야 허왕후 설화 속 망산도(望山島)는 지금의 국화도(菊花島) - 최초공개 [가야왕성과 구지봉] 삼국유사 가락국기를 보면, “...............건무 24년 무신(A.D.48) 7월 27일에 구간 등이 조회를 할 때 말하기를, ‘대왕께서 강림하신 후로 좋은 배필을 구하지 못하셨으니 신들 집안에 있는 처녀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골라서 궁중에 들여보내 대왕의 짝으로 삼으면 어떻겠습니까?’ 하였다. 왕이 대답하기를, ‘내가 여기에 내려온 것은 하늘의 명령이었으므로 나에게 짝을 지어 왕후를 삼게 하는 것 역시 하늘의 명령이 있을 것이니 경들은 염려하지 말라’하였다. 그리고는 유천간에게 명하여 빠른 배와 준마를 가지고 망산도(望山島)에 가서 기다리게 하고, 신귀간에게 명하여 승점(乘岾 :..

카테고리 없음 2016.12.18

윤여동설 - 마고할미 전설의 발상지를 찾았다 - 최초공개

윤여동설 - 마고할미 전설의 발상지를 찾았다 - 최초공개 [노파의 얼굴 형상을 하고 있는 난하 대흑정수고 동쪽의 지세] 규원사화 단군기를 보면, “단군이 이미 제후를 봉한 후 천하가 밝아지고 고요하더니 10년 만에 남이의 환란이 일어났다. 갑비고차(甲比古次)는 이미 남이(南夷)인의 땅이었다. 그리하여 부여(夫餘)를 보내 군사를 거느리고 평정하게 하였다. 후에 부소(夫蘇)와 부우(夫虞)를 더 보내 갑비고차에 성을 쌓게 하고 남쪽으로 내려와서 지키게 하였다. 이곳이 지금 강화도의 삼랑성(三郞城)이다. 마리산(摩利山)에는 참성단(塹城壇)이 있으니 이것이 곧 단군이 단을 만들고 하늘에 제사지내던 두악(頭嶽)이다....... 단군이 하늘에 제사지내는 곳은 북쪽으로 사냥가면 태백산(太白山)이었고, 남쪽으로 가면 두..

카테고리 없음 2016.12.10

윤여동설 - 발해국의 특산물 산지 찾기 - 최초공개

윤여동설 - 발해국의 특산물 산지 찾기 - 최초공개      신당서 북적 발해전을 보면,   “발해의 국토는 5경 15부 62주이다.  숙신의 옛 땅으로 상경(上京)을 삼으니 용천부(龍泉府)이며, 용주(龍州), 호주(湖州), 발주(渤州)의 3개주를 다스린다.   그 남부를 중경(中京)으로 삼으니 현덕부(顯德府)이며, 노주(盧州), 현주(顯州), 철주(鐵州), 탕주(湯州), 영주(榮州), 흥주(興州)의 6개주를 다스린다.   예,맥의 옛 땅으로 동경(東京)을 삼으니 용원부(龍原府)인데, 책성부(柵城府)라고도 한다. 경주(慶州), 염주(鹽州), 목주(穆州), 하주(賀州)의 4개 주를 다스린다.   옥저의 옛 땅으로 남경(南京)을 삼으니 남해부(南海府)이며, 옥주(沃州), 정주(睛州), 초주(椒州)의 3개주를..

카테고리 없음 2016.12.02

윤여동설 - 백제의 관미성(關彌城)은 지금의 하북성 청산관 부근 - 최초공개

윤여동설 - 백제의 관미성(關彌城)은 지금의 하북성 청산관 부근 - 최초공개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광개토왕 원년조를 보면, “10월 백제의 관미성을 쳐서 함락시켰다. 그 성은 사면이 절벽이고(四面峭絶), 해수로 둘러져 있어(海水環繞) 왕이 군사를 일곱 길로 나누어 공격한 지 20일 만에야 함락시킬 수 있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 우리는 그 관미성을 찾지 못하고 여기다 저기다 하면서 주장들만 분분했었는데, 필자가 드디어 관미성을 찾은 듯하다. 그런데 새로 찾은 관미성의 위치를 놓고 생각해보면, 왜 백제 아신왕이 왕위에 오르자마자 고구려에 빼앗긴 이 관미성을 되찾으려 했는지 충분히 이해가 된다. 왜냐하면 관미성으로부터 당시 백제의 도읍인 한성까지는 군사들이 하루정도면 행군할 수 있는 1백여리에..

카테고리 없음 2016.11.25

윤여동설 - 후삼국의 진짜 위치 - 최초공개

윤여동설 - 후삼국의 진짜 위치 - 최초공개     고대의 요동군(요 동경요양부, 금 동경요양부)은 지금의 북경 일원을 말하는 것이고,   신라의 천년도읍 서라벌(금성)은 지금의 요녕성 금주시(錦州市)였고,   고려의 도읍 개경(송악)은 지금의 하북성 관성(寬城)만족자치현이었으며,   후백제의 도읍 전주(완산)는 지금의 하북성 당산(唐山)이었다. ☆ 전주이씨(완산이씨)들의 원래 고향(본관)은 한반도의 전북 전주가 아니라 지금의 중국 하북성 당산이었다.    고조선은 한반도에 없었고,  삼한인 마한, 진한, 변한도 한반도에 없었으며,   삼국사기 기록 속 고구려, 백제(대륙백제), 신라, 가야 역시 한반도에 없었다.  따라서 후삼국인 고려, 후백제, 후기신라는 한반도에 위치하지 않았고,   발해북쪽 지금의..

카테고리 없음 2016.11.23

윤여동설 - 고구려 삼경(三京) 평양성(平壤城),국내성(國內城), 한성(漢城)의 진짜 위치 - 최초공개

윤여동설 - 고구려 삼경(三京) 평양성(平壤城),국내성(國內城),한성(漢城)의 진짜 위치 - 최초공개 주서 이역전 고려(고구려)전을 보면, “고구려는 그 선조가 부여에서 나왔다........그 땅이 동쪽으로는 신라에 이르고, 서쪽으로는 요수를 건너니 동서 2천리요, 남쪽으로는 백제와 접하고, 북쪽은 말갈과 이웃하여 남북이 1천여리였다. 도읍은 평양성(平壤城)으로 그 성은 동서가 6리이며, 남쪽으로는 패수에 닿았다........그 외에 국내성(國內城)과 한성(漢城)이 있는데 별도의 도읍지이다. 그리고 다시 요동과 현토 등 수십 개의 성이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북사 고구려전을 보면, “고구려의 도읍은 평양성으로서 장안성이라고도 부르고, 그 외에 국내성과 한성이 있는데, 그 나라에서는 삼경이라 부른다”라..

카테고리 없음 2016.11.13

윤여동설 - 직지심체요절(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 인쇄장소 찾기 - 최초공개

윤여동설 - 직지심체요절(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 인쇄장소 찾기 - 최초공개 우리가 보통 직지, 직지심체요절이라 부르고 있는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은 고려 공민왕 때인 1372년에 백운화상 경한(景閑)이 편찬하고, 선광7년인 1377년에 청주목외흥덕사에서 인쇄한 책이다. 세계적으로 현재까지 발견된 인쇄물 중 금속활자로 인쇄한 가장 오래된 책이라 한다. 그런데 아직까지 고려말 청주 외곽에 위치하고 있었다는 흥덕사(興德寺)의 위치를 확실하게 찾지 못하고 있는데, 왜 기록으로 전해진 흥덕사의 위치를 찾지 못하는 것일까? 이는 간단하다. 고려의 청주는 지금 한반도의 충청북도 청주가 아니기 때문이다. 고려는 한반도에 위치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지금 북경 동북쪽인 하북성 관성현..

카테고리 없음 2016.1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