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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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설 - 대방군(帶方郡)을 찾기 어려웠던 이유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대방군(帶方郡)을 찾기 어려웠던 이유 - 최초주장 천년의 의문 대방군(帶方郡)은 지금의 중국 하북성 준화(遵化) 부근을 말하는 것이다. [준화 부근의 지형] ☆ 공손강이 둔유현 남쪽의 황무지를 대방군으로 만들었다고 전하는데, 낙랑군 둔유현은 지금의 준화북쪽 백기영자(白旗營子), 반벽산진(半壁山鎭) 부근으로 비정된다. 그런데 반도식민사관론자들은 대방군이 한반도 황해도에 위치하고 있었다고 하니 이를 어찌 역사해석이라 할 수 있으랴. 고대의 요동(遼東)은 지금의 북경(北京)부근을 말하는 것이고, 요수(遼水)는 지금의 영정하(永定河)를 말하는 것이며, 전한 낙랑군은 피서산장이 있는 지금의 하북성 승덕시 부근을 말하는 것이며, 고대의 왜국은 지금의 요동반도에 위치하고 있었다. ☆ 후한서 권1하 광무제..

카테고리 없음 2018.01.29

윤여동설 - 한민족의 활 맥궁(貊弓)과 낙랑단궁(樂浪檀弓)의 원래 생산지 찾기 - 최초주장

윤여동설 - 한민족의 활 맥궁(貊弓)과 낙랑단궁(樂浪檀弓)의 원래 생산지 찾기 - 최초주장                                                                     [몽골인들의 활쏘기 : 화살이 활 몸통의 좌측에 위치하게 하고 쏜다]             후한서 고구려전 구려조를 보면,   “구려(句驪)는 일명 맥(貊)이라 한다. 별종으로서 소수(小水 : 소요수)에 의지하여 살기 때문에 소수맥(小水貊)이라 한다. 좋은 활이 생산되는데, 소위 맥궁(貊弓)이라 한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삼국지 고구려전에도,   “또 소수맥이 있는데, 구려가 대수(大水 : 대요수) 유역에 나라를 세우고 살았고, 서안평현의 북쪽에 소수(小水 : 소요수)가 있는데, 남쪽으로 흘..

카테고리 없음 2018.01.19

윤여동설 - 한반도 도깨비방망이의 원형을 찾았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한반도 도깨비방망이의 원형을 찾았다 - 최초주장 [심목목공예 머털도사 블로그에서 캡쳐] 우리가 알고 있는 도깨비는 덩치가 크고 몸에 털이 많이 나 있으며 험상궂은 얼굴을 하고 있지만, 약간은 어리석기도 하고, 때로는 장난끼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리고 도깨비들은 반드시 방망이를 들고 있는데, 그 방망이는 요술방망이로서 금 나와라 뚝딱 하면 금이 나오고, 은 나와라 뚝딱 하면 은이 나온다고 전해진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그 요술방망이를 도깨비방망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우리가 알고 있는 도깨비방망이는 다듬이방망이 같이 매끄럽게 생긴 것이 아니라 항상 울퉁불퉁한 모습으로 그려지는데, 왜 한국 사람들은 도깨비방망이가 매끄럽지 않고, 울퉁불퉁하게 생겼다고 생각하게 되었을까? 단순하게 상상으..

카테고리 없음 2018.01.05

윤여동설 - 조선태조 이성계의 출생지 영흥(永興)은 지금의 내몽골 적봉(赤峰) 부근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조선태조 이성계의 출생지 영흥(永興)은 지금의 내몽골 적봉(赤峰) 부근 - 최초주장 지금의 내몽골 적봉시(赤峰市), 옹우특기(翁牛特旗) 일원은 옛날 옥저(沃沮) 땅으로서, 한사군(漢四郡) 때는 초기 현토군(玄菟郡) 지역이었고, 고구려 태조대왕 때는 고구려 땅이 되었고, 발해 때는 남경남해부(南京南海府)에 속했다. 고려 때는 그 남쪽 철령을 지나도록 천리장성을 쌓았다. [이때 고려는 천리장성을 최소한 두만강이나 그 북쪽 산맥이나 강을 따라 쌓지 못하고 지금의 내몽골 적봉시 남쪽(이곳이 원래의 철령이다)을 지나도록 들여 쌓았는데, 이는 이때 그 북쪽은 거란과 여진족이 차지하고 살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원 나라 때는 조휘, 탁청이 영흥(화주) 이북 땅을 들어 바치자 원나라에서는 그곳에 쌍성..

카테고리 없음 2017.12.30

윤여동설 - 고려말 8도와 이성계의 권력기반 동북면(東北面)의 진짜위치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고려말 8도와 이성계의 권력기반 동북면(東北面)의 진짜위치 - 최초주장 이성계는 1361년 10월에 독로강만호 박의의 반란을 진압하면서 고려 공민왕의 신임을 얻기 시작했고, 홍건적의 침입 때는 사병 2천을 이끌고 개경 수복작전에 참여하여 개경에 맨 먼저 입성하는 공을 세우기도 했다. 또한 고려가 1258년 원나라에게 빼앗겼다가 1356년 99년 만에 탈환한 쌍성총관부를 1362년 2월에 이르러 원나라가 재탈환하기 위하여 여진장수 나하추로 하여금 수만 명의 군사를 동원하여 고려를 침입하자 공민왕은 동북면 도지휘사로 하여금 그를 막게 했으나 계속 패배하자, 7월에 이성계를 동북면 병마사로 임명하여 나하추를 막게 했다. 그러자 이성계는 나하추가 이끄는 침공군을 전멸시켰고 나하추는 겨우 목숨을 건져..

카테고리 없음 2017.12.17

윤여동설 - 압록강 건너 집안(集安)은 탈해의 고향 다파나국(多婆那國)이었을 가능성이 많은 곳이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압록강 건너 집안(集安)은 탈해의 고향 다파나국(多婆那國)이었을 가능성이 많은 곳이다 - 최초주장 많은 사람들은 지금 압록강 너머 길림성 집안을 고구려의 도읍 국내성(國內城)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아마 그곳에 고구려 19대왕이었던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 즉 광개토왕의 묘비가 서 있고, 역사학자라는 사람들이 그곳이 고구려의 도읍이 틀림없다고 했기 때문에 그렇게 인식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곳의 태왕릉이라는 곳을 광개토왕의 능일 것이라고 하게 되었고, 장군총이라는 곳을 광개토왕의 아들인 장수왕의 능일 것이라고도 하게 되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고구려 건국시조 추모왕은 졸본에 도읍하고 그곳에서 살다가 죽었고, 2대 유리왕 때 졸본으로부터 국내성으로 도읍을 옮겨 2대 유리왕, 3대 대무신왕,..

카테고리 없음 2017.12.11

윤여동설 - 거란지리지도(契丹地理之圖)와 추리도(墜理圖) 속 고구려, 백제, 신라 표기의 진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거란지리지도(契丹地理之圖)와 추리도(墜理圖) 속 고구려, 백제, 신라 표기의 진실 - 최초주장 거란지리지도에 표기되어 있는“고려백제신라계(高麗百濟新羅界)"의 진짜 의미 - 최초주장    위 거란지리지도를 보고 재야 역사연구자들은 우리의 대륙사를 밝혀줄 왜곡되지 않은 보물같은 지도라고 반색하는 반면 강단사학자들은 말도 안되는 잘못 그려진 엉터리 지도라 폄훼한다.   그런데 진실은 하나 뿐일 것이다.  재야 역사연구자들이 틀렸거나 강단사학자들이 틀렸거나 둘 중의 하나만이 옳다는 말이 되는데, 필자는 고구려, 백제, 신라가 실제 지금의 북경(필자 주 : 북경 부근이 옛 요동이었고, 요나라, 금나라 때의 동경요양부였다) 동쪽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위와 같은 지도가 그려졌고, 그리하여 그곳에 “고..

카테고리 없음 2017.11.23

화제 - 가시랏농원에 명품사과가 빨갛게 익어가고 있어요

화제 - 가시랏농원에 명품사과가 빨갛게 익어가고 있어요 가시랏 농원 박영근 사장한테서 전화가 왔다. 올해 사과도 잘 익어가고 있고, 마침 아는 분이 염소고기 몇근을 가져다 주었는데, 친구들과 함께 소주한잔 하고 싶으니 빨리 오라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갔더니 사람 좋은 박영근 사장이 어서 오라고 반갑게 반겨준다. 사과는 빨갛게 익어가고 있었다. 친구들이 모이기를 기다리는 사이에 사과사진을 찍고나자 박사장이 사과나무에서 잘 익은 사과 하나를 따서 일반사과와 맛을 비교해 보라고 하며 준다. 한 입 베어 물었더니 역시 명품사과는 그 맛이 보통 사과하고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달고 맛이 있었다. 사각사각 씹히는 그 맛도 천하 일품이었다. 이곳 가시랏농원의 명품사과는 "지금까지 시장에 판매한 적이 없다"고 한다..

카테고리 없음 2017.11.09

윤여동설 - 삼국시대 예(濊, 동예)와 맥(貊)의 위치 - 최초공개

윤여동설 - 삼국시대 예(濊, 동예)와 맥(貊)의 위치 - 최초공개 창해군(滄海郡, 蒼海郡) 고지(옛 땅)를 새로 찾고보니 예(濊, 동예)와 맥(貊)의 위치를 확실하게 비정할 수 있게 되었다. ☆ 후한서 고구려전을 보면, " 구려는 일명 맥(貊)이라 한다. 별종으로서 소수(小水: 소요수)에 의지하고 살았기 때문에 소수맥(小水貊)이라 한다. 좋은 활이 생산되는데 소위 맥궁(貊弓)이라 한다." 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원래의 맥의 위치에서 소요수 부근으로 이주해간 맥족을 말하는 듯하다. 구려는 원래 소요수 부근에 살던 소수맥의 나라였다가 북부여, 졸본부여에 통합되었고, 부여(夫餘)는 북부여, 졸본부여 그리고 동부여로 나누어졌다. 졸본부여(卒本夫餘)에서 고구려와 백제가 나왔고, 동부여(東夫餘)는 북부여에서 북쪽..

카테고리 없음 2017.10.27

윤여동설 - 원래의 창해군 예(蒼海郡, 滄海郡 ,濊)와 이동 후 동예(東濊)의 위치 찾기 - 최초공개

윤여동설 - 창해군 예(蒼海郡, 滄海郡, 濊)와 이동 후 동예(東濊)의 위치 찾기 - 최초공개 후한서 예(濊) 전을 보면, “예(濊)는 북쪽으로는 고구려와 옥저, 남쪽으로는 진한과 접했고, 동쪽은 대해에 닿았으며, 서쪽은 낙랑까지이다. 예, 옥저, 고구려는 본래 모두 조선(고조선) 땅이었다. 원삭 원년(B.C.128) 예군(濊君) 남려(南閭) 등이 우거(위만조선 3대왕)를 배반하고 28만구를 이끌고 요동(요동군)으로 내속하였으므로 (전한) 무제는 그 땅을 창해군(蒼海郡)으로 만들었다가 수년 후에 폐했다. ☆ 이때 예(濊)가 전해지지 않은 어떤 이유로 위만조선과 갈등을 빚어 그 영향력에서 벗어나 전한(前漢)의 영향권 안으로 들어갔다는 말이고, 그 후에도 위만조선이 임둔국, 진번국 등 영향권 안에 있던 나라..

카테고리 없음 2017.10.21

윤여동설 - 진번군(眞番郡)의 진짜위치 찾기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진번군(眞番郡)의 진짜위치 찾기 - 최초주장 전한서 권6 무제기(武帝紀) 제6 원봉 3년(B.C.108) 조의 주를 보면, “臣瓚曰 茂陵書 臨屯郡治東暆縣 去長安六千一百三十八里 十五縣, 眞番郡治霅縣 去長安七千六百四十里 十五縣(신찬이 무릉서에는 임둔군의 치소는 동이현(東暆縣)으로서 장안에서 6,138리 떨어져 있고 통현은 15현이고, 진번군의 치소는 삽현(霅縣)으로서 장안에서 7,640리 떨어져 있고, 통현이 15현이라고 기록되어 있다고 말했다)”라고 임둔군과 진번군의 위치에 대하여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특히 진번군(眞番郡 필자주 : 사실은 番의 음이 普安反이라 하였으니 진반군이라 읽어야 옳다)의 위치에 대한 정설이 아직까지도 정립되어 있지 못하다. 아직까지 역사학자들조차 진번군의 위치를 정확..

카테고리 없음 2017.10.15

윤여동설 - 임둔군(臨屯郡)의 진짜위치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임둔군(臨屯郡)의 진짜위치 - 최초주장 우리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 중에 "임둔군(臨屯郡)"의 명칭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인데, 막상 그 위치가 어디였는가라는 질문을 받으면 대답하기가 마땅치 않다. 그런데 자치통감 권21 한기(漢紀)13 세종효무황제 원봉 3년(B.C.108) 조의 주를 보면, “臣瓚曰 茂陵書 臨屯郡治 東暆縣 去長安六千一百三十八里 領十五縣(신찬왈 무릉서에는 임둔군의 치소는 동이현이고, 장안에서 6,138리 떨어져 있다고 하였다)” 라고 기록되어 있고, 후한서 지제23 군국5에는, 낙양으로부터 동북쪽으로 요동군이 3,600리, 현토군(필자 주 : 초기 동옥저에 설치되었던 곳에서 이동하여 구려의 서북쪽에 다시 설치한 현토군을 말한다)이 4,000리, 낙랑군이 5,000리 떨어져 ..

카테고리 없음 2017.10.07

윤여동설 - 고려의 천리장성, 쌍성총관부, 동녕부의 진짜위치 공개(종합) - 최초공개

윤여동설 - 고려의 천리장성, 쌍성총관부, 동녕부의 진짜위치 공개(종합) - 최초공개   ○ 천리장성 : 고려 덕종 2년인 서기 1033년에 거란과 여진의 침공을 막기 위하여 압록강 하류로부터 동쪽(필자주 : 사실은 동북쪽방향임)으로 바다까지 천리장성 축성.   고려사절요 덕종 경강대왕 2년(계유년, 서기 1033년) 8월 조를 보면, “평장사 류소에게 명하여 북쪽 경계에 관방을 새로 설치하게 하였는데, 서해 바닷가의 옛 국내성 경계인 압록강이 바다로 들어가는 곳에서부터 쌓기 시작하여(起自西海濱古國內城界鴨綠江入海處) 동쪽으로 위원, 흥화, 정주, 영해, 영덕, 영삭, 운주, 안수, 청새, 평로, 영원, 정융, 맹주, 삭주 등 13성을 거쳐 요덕, 정변, 화주 등 3성에 대어 동쪽으로 바다에 이르니 길이가..

카테고리 없음 2017.09.29

윤여동설 - 환도성(丸都城)이 중국 세력들로부터 계속 침공을 당한 이유 - 최초주장

윤여동설 - 환도성(丸都城)이 중국 세력들로부터 계속 침공을 당한 이유 - 최초주장 삼국사기 고구려전을 보면, 6대 태조대왕 90년(A.D.142) 가을9월 환도(丸都)에 지진이 있었다. 10대 산상왕 2년(A.D.198) 봄2월 환도성(丸都城)을 쌓았다. 13년(A.D.209) 겨울10월 왕이 환도성으로 도읍을 옮겼다[冬十月 王移都於丸都) 11대 동천왕 20년(A.D.246) 가을8월 위나라에서 유주자사 관구검을 보내 1만여명으로서 현토로 나와 침입하였다......... 겨울 10월 관구검이 환도성을 쳐서 함락시켜 주민들을 도륙하고, 곧 장군 왕기를 시켜 왕을 추격하므로 왕이 남옥저로 달아나다가 죽령(필자 주 : 단단대령 또는 절령[자비령]의 오기인 듯)에 이르니 군사들은 분산되어 흩어지고.........

카테고리 없음 2017.09.11

윤여동설 - 부여(동부여)의 녹산(鹿山)을 찾았다 - 최초공개

윤여동설 - 부여(동부여)의 녹산(鹿山)을 찾았다 - 최초공개 부여(동부여)가 녹산(鹿山)이라는 산 일원에 위치했음은 사서의 기록으로 전해져 알려졌다. 그리하여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동부여의 정확한 위치를 확인하기 위하여 기록 속의 녹산을 찾게 되었다. 그런데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에 이르러 이름만 전해진 그 녹산을 어찌 쉽게 찾을 수 있었겠는가! 더구나 많은 사람들은 동부여가 위치한 적도 없는 엉뚱한 한반도의 백두산 북쪽에서 동부여를 찾으려 했고, 녹산을 찾으려 했으니 아무도 찾아낼 수가 없었던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그런데 필자는 일찌감치 우리의 삼국과 가야가 한반도가 아닌 지금의 발해 북쪽 북경 부근에서 건국되었다가 멸망했음을 파악하고 있었고, 따라서 동부여 역시 한반도 북쪽이 아닌 북..

카테고리 없음 2017.09.01

윤여동설 - 한반도 개성 부근의 고려왕릉은 모두 가짜 - 최초주장

윤여동설 - 한반도 개성 부근의 고려왕릉은 모두 가짜 - 최초주장 북한에서 개성 근교에서 고려 15대 숙종릉을 발굴했다고 발표했단다. 한마디로 소가 웃을 일이다. 그들은 고려의 도읍 개경(開京)이 실제 어디인지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고려는 한반도에 없었다. 고려의 도읍 개경은 한반도의 황해도 개성이 아니라 발해 북쪽 지금의 중국 하북성 관성현(寬城縣, 관성만족자치현)이었다. 관성현(寬城縣) 그곳이 고려의 도읍이었고, 신라의 도읍 서라벌(금성)은 그 동쪽 지금의 요녕성 금주시(錦州市)였으며, 고구려의 도읍 평양성은 지금 관성의 서북쪽 하북성 승덕시(承德市)였고, 고대의 요동(遼東)은 지금의 북경(北京) 부근을 말하는 것이다. 고려의 동북면은 지금의 내몽골 옹우특기, 적봉 부근을 말하는 것이지 한반도의..

카테고리 없음 2017.08.20

윤여동설 - 태백산과 환웅의 신시(神市)는 지금의 내몽골 적봉 부근 - 최초주장

윤여동설 - 태백산과 환웅의 신시(神市)는 지금의 내몽골 적봉 부근 - 최초주장 삼국유사 고조선 왕검조선 조를 보면, “고기(古記)에 이르기를, ”옛날 환인의 서자 환웅(桓雄)이란 이가 있었는데, 수차 천하에 뜻을 두고 인간세상을 탐내고 있었다. 그 아버지가 아들의 뜻을 알고 삼위태백(三危太伯)을 내려다보니 가히 홍익인간 할 만 했다. 이에 천부인 3개를 주어 인간세상을 다스리게 했다. 환웅은 무리 3천을 거느리고 태백산(太伯山: 太白山) 꼭대기에 있는 신단수 아래로 내려와 그곳을 신시(神市)라 하였고, 이분을 환웅천왕(桓雄天王)이라 한다“ 라고 기록되어 있어 환웅천왕이 도읍한 곳이 태백산 아래 신시(神市)였음을 알게 한다. 아마 이때 환웅은 태백산 꼭대기 신단수가 있는 곳에 올라 좌우를 둘러보며, 과연..

카테고리 없음 2017.08.19

윤여동설 - 임나(任那)는 있었다 지금의 중국 하북성 진황도에......- 최초주장

윤여동설 - 임나(任那)는 있었다 지금의 중국 하북성 진황도에......- 최초주장 임나(任那)가 있었다 없었다, 임나(任那)가 한반도 남부에 있었다, 아니다 대마도에 있었다, 아니다 큐우슈우에 있었다 등등 임나에 대하여 논란들이 아주 많다. 그런데 필자는 임나(任那)가 어디에 위치하고 있었느냐를 찾기에 앞서 먼저 고대 왜국이 과연 어디에 위치하고 있었는지, 우리 신라, 백제, 고구려, 가야가 과연 어디에 위치했었는지를 먼저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임나는 가야의 일원이었고, 백제와 가까이 접하고 있었으며, 고구려 광개토왕이 임나의 종발성을 공격한 기록이 호태왕비문에 전하기 때문이다. [필자주 : 삼국사기 강수열전에도 강수 스스로 자신이 임나가량(任那加良) 사람이라 하였고, 진경대사탑비문에도 "..

카테고리 없음 2017.08.12

윤여동설 - 환인 환국(桓國)의 중심강역 - 최초주장

윤여동설 - 환인 환국(桓國)의 중심강역 - 최초주장 안함로의 삼성기를 보면, "어느 날 동녀동남 8백이 흑수(黑水) 백산(白山)의 땅에 내려왔는데, 이에 환인(桓因)은 또한 감군(監群)으로서 천계에 계시며............이를 환국(桓國)이라 하고 그를 가리켜 천제환인(天帝桓因)이라고 불렀다. 또한 안파견(安巴堅)이라고도 했다. 환인은 7대를 전했는데, 그 연대는 알 수가 없다” 라고 기록되어 있고, 삼국유사 고조선 왕검조선 조를 보면, “환웅은 무리 3천을 거느리고 태백산(太伯山, 太白山) 꼭대기에 있는 신단수 밑으로 내려왔다. 이곳을 신시(神市)라 하고 이 분을 환웅천왕이라 한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환인 환국(桓國)의 중심지는 흑수가 있고, 백산이 있는 그 일대이고, 환웅천왕의 도읍 신시는 태..

카테고리 없음 2017.08.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