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윤여동설 901

윤여동설 - 거란 숭주(崇州)와 숭산(崇山)은 지금의 천진 계현부근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거란 숭주(崇州)와 숭산(崇山)은 지금의 천진 계현부근 [ “이 땅에 있었네 숭산준령 괴이한 돌 기이한 소나무”라는 의미인데, 바위에 이러한 글을 새긴 이는 지금의 반산이 옛 숭산(崇山)이었음을 알고 있었던가? : 북경 동북쪽 천진시 계현 반산(盤山)] 요사지리지 동경도 崇州 隆安軍刺史 本漢長岑縣地 渤海置州故縣三崇山溈木縁城皆廢 户五百 在京東北一百五十里 統縣崇信縣. 숭주(崇州) 융안군(隆安軍)이 설치되었으며 자사를 두었다. 본래 한나라 장잠현(長岑縣)이며 발해가 주를 설치하였는데, 옛 현은 숭산(崇山), 위수(潙水), 녹성(綠城) 등 셋이었는데 모두 폐지되었다. 호구수는 500이며, 동경에서 동북쪽으로 150리 떨어져 있다. 관할 현은 하나인데 숭신현(崇信縣)이다.

카테고리 없음 2014.03.15

윤여동설 - 주몽의 어머니 유화(柳花)의 고향은 지금의 어디였을까?

윤여동설 - 주몽의 어머니 유화(柳花)의 고향은 지금의 어디였을까?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시조 추모왕(주몽왕) 조를 보면,   “해부루가 죽고 금와가 왕위를 이었다.   (앞서 해부루왕이) 어느 날 태백산 남쪽 우발수(優渤水)에서 한 여자를 만나 물으니 ‘나는 하백의 딸로서 이름은 유화입니다. 동생들을 데리고 놀고 있는데 어떤 남자가 자칭 천제 해모수(의 후손이)라고 하면서 나를 웅심산(熊心山) 아래 압록강(鴨綠江)가에 있는 집안으로 유인하여 동침하고 가버린 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나의 부모는 내가 중매도 없이 남자와 관계한 것을 꾸짖고 우발수로 보내 귀양살이를 하게 하였습니다’ 하였다”라고 기록하고 있어 주몽의 어머니인 유화의 고향이 웅심산아래 압록강변이었음을 알게 하고, 하백(河伯..

카테고리 없음 2014.03.09

윤여동설 - 원래의 대방군(帶方郡)은 북경 동쪽 준화부근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원래의 대방군(帶方郡)은 북경 동쪽 준화부근 - 최초주장 전한서 권28하 지리지 제8하 낙랑군 조를 보면, 낙랑군 25개 현 중에 둔유현(屯有縣)과 대방현(帶方縣)이 있고, ☆전한낙랑군 25개현 : 조선현(朝鮮縣), 남감현(남邯縣), 패수현(浿水縣)), 함자현(含資縣), 점제현(黏蟬縣), 수성현(遂城縣), 증지현(增地縣), 대방현(帶方縣), 사망현(駟望縣), 해명현(海冥縣), 열구현(列口縣), 장잠현(長岑縣), 둔유현(屯有縣), 소명현(昭明縣), 누방현(鏤方縣), 제해현(提奚縣), 혼미현(渾彌縣), 탄열현(呑列縣), 동이현(東暆縣), 불이현(不而縣), 잠태현(蠶台縣), 화려현(華麗縣), 사두매현(邪頭昧縣), 전막현(前莫縣), 부조현(夫租縣) 후한서 지제23 군국5 낙랑군 조에도, 후한낙랑군 ..

카테고리 없음 2014.02.21

윤여동설 - 당 태종이 올랐던 안시성 밖 주필산(駐蹕山)을 찾았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당 태종이 올랐던 안시성 밖 주필산(駐蹕山)을 찾았다 - 최초주장 서기 645년 당 태종이 고구려를 침공할 때 요동성을 함락시키고 난 후 진군하여 안시성(安市城)을 공격할 때 올랐다고 전해지는 “주필산(駐蹕山)”이 지금 어느 곳에 위치하고 있는 산을 말하는지 아는 사람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까지 고구려 난공불락의 요새 “안시성(安市城)”의 위치 자체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옛 요동을 지금의 요동반도 부근이라고 이해하는 한 “건무 25년(A.D.49) 봄에 구려가 우북평, 어양, 상곡, 태원을 침입하여 노략질 하는 것을 요동태수 채동이 은의와 신의로 대하니 모두 요새 밖으로 철수하였다”라는 후한서 고구려전 구려 조의 기록을 설명할 수 없고, 중국 사서들에 “고구려와 백제..

카테고리 없음 2014.02.15

윤여동설 - 고구려의 “고국(故國)”과 발해의 “서경압록부(西京鴨淥府)”는 같은 곳인가?

윤여동설 - 고구려의 “고국(故國)”과 발해의 “서경압록부(西京鴨淥府)”는 같은 곳인가? 삼국사기 고구려본기를 읽다보면 “고국(故國)”이라는 지명이 여러 번 언급된다. 8대 신대왕이 죽자 고국곡(故國谷)에 장사지냈다고 하였고, 9대 고국천왕의 능은 고국천원(故國川原)에 조성했다고 했으며, 16대 고국원왕(국강상왕)은 고국지원(故國之原)에 장사지냈고, 18대 고국양왕의 능은 고국양(故國壤)에 조성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지금까지 기록 속 “고국(故國)”의 위치를 확실히 밝힌 사람은 없다. 아직까지 고구려 “고국(故國)”의 위치를 확실하게 밝힐 수 없었던 것은 고구려의 건국지 졸본(홀본)이 어디인지 몰랐고, 국내성을 엉뚱하게도 압록강 북쪽 집안이라 하며, 환도산성 역시 그 부근이라 하였으며, 평양성을 한반..

카테고리 없음 2014.02.10

윤여동설 - 창해군 사건 - 위만조선 멸망 - 한사군 설치 - 이군으로 축소 - 삼국(고구려·백제·신라)의 흥기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창해군 사건 - 위만조선 멸망 - 한사군 설치 - 이군으로 축소 - 삼국(고구려·백제·신라)의 흥기- 최초주장 후한서 예전을 보면, “원삭 원년(B.C.128)에 예군 남려(南閭) 등이 우거(위만조선의 우거왕)를 배반하고 28만구를 이끌고, 요동으로 내속하였으므로 (한) 무제가 그 땅을 창해군(蒼海郡)으로 만들었다가 수년 후에 폐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 사기 권55 유후세가 제25 장량 전에 창해군(倉海郡) 관련 기록이 있고, 전한서 권6 무제기 제6에는,“元朔元年 秋 東夷薉君南閭等 口二十八萬人降 爲蒼海郡 元朔三年 春 罷蒼海郡” 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한서 권24하 식화지 제4하에는, “彭吳穿濊貊 朝鮮 置滄海郡 則燕齊之間靡然發動............. 東置滄海郡“ 이라고 기록되어 있으..

카테고리 없음 2014.02.01

윤여동설 - 고구려 5부의 진짜 위치 -최초공개

윤여동설 - 고구려 5부의 진짜 위치 - 최초공개     고구려에는 5부족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후한서 고구려전을 보면,   “고구려에는 5부족이 있는데, 소노부(消奴部) · 절로부(絶奴部) · 순노부(順奴部) · 관노부(灌奴部) · 계루부(桂婁部)이다. 본래는 소노부에서 왕이 되었으나 점점 미약해진 뒤에는 계루부에서 왕위를 대신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삼국지 고구려전을 보면,   “고구려에는 본래 5부족이 있는데, 연노부(涓奴部) · 절로부 · 순노부 · 관노부 · 계루부이다. 원래 연노부(涓奴部)에서 왕이 되었으나 점점 미약해져 지금은 계루부에서 대신한다................연노부는 본래 나라의 주인이었으므로 비록 지금은 왕이 되지 못하나, 그 적통의 대를 이은 사람은 고추가의 ..

카테고리 없음 2014.01.26

윤여동설 - 고구려의 비류수(沸流水)는 지금의 하북성 적성현의 홍하(紅河) - 최초공개

윤여동설 - 고구려의 비류수(沸流水)는 지금의 하북성 적성현의 홍하(紅河) - 최초공개 [하북성 장가구시 적성현의 위치]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시조 추모왕(주몽왕) 조를 보면, “졸본천[위서에는 흘승골성(紇升骨城)에 이르렀다고 하였다]에 이르러 그 지방의 토양이 비옥하고 산하가 험고함을 보고 곧 도읍을 정하였으나 미처 궁실을 지을 틈이 없어 비류수(沸流水)가에 초막을 짓고 살았다” 라고 기록되어 있어 주몽이 동부여에서 도망쳐 졸본으로 와서 비류수라는 강변에 허름하게 집을 짓고 살았음을 알게 하는데, 지금까지 기록 속 “비류수(沸流水)”가 지금의 어느 강을 말하는지 밝혀지지 않고 있었다. ☆ 주몽은 북부여 해모수의 고손자였다. 그 아버지 해불리지가 압록강가에서 어부(하백)의 딸 유화를 겁탈하여 잉태되었고, ..

카테고리 없음 2014.01.19

윤여동설 - 고구려 유리왕이 지은 골천이궁[鶻川離宮]터를 찾았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고구려 유리왕이 지은 골천이궁[鶻川離宮]터를 찾았다 - 최초주장 [고구려 초기 유리왕이 지은 골천이궁터로서 졸본의 북쪽 공기 맑고 경치좋은 곳에 위치한다. 이러한 인연 때문이었는지 유리왕은 이곳 골천호족의 딸을 계비로 맞아들이기도 했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유리왕 3년(B.C.17) 조를 보면,   “가을 7월 골천(鶻川)에 이궁을 지었다.[秋七月 作離宮於鶻川]” 라고 기록되어 있고, 또  “겨울10월 왕비 송씨가 죽으매 왕이 다시 두 여자를 취하여 계실로 삼았다. 하나는 화희이니 골천(鶻川)사람의 딸이요, 하나는 치희이니 한나라 사람의 딸이었다. 두 여자가 질투하여 화목하지 못하므로 왕이 양곡(凉谷)에 동, 서 두 궁을 지어 각각 따로 있게 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골천(鶻川)이 언급..

카테고리 없음 2014.01.10

윤여동설 - 고구려 시조 추모왕릉(주몽왕릉) 용산(龍山)의 위치 - 최초공개

윤여동설 - 고구려 시조 추모왕릉(주몽왕릉) 용산(龍山)의 위치 - 최초공개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추모왕(주몽왕) 19년(B.C.19) 조를 보면, "가을 9월 왕이 죽으니 이 때에 나이 40세(필자주 : 사실은 61세였다)였다. 용산(龍山)에 장사지냈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 주몽왕(추모왕)은 기원전 79년에 동부여에서 태어나 22세 때인 기원전 58년에 동부여에서 도망쳐 졸본으로 갔고, 그곳에서 졸본부여왕의 둘째공주와 혼인함으로써 부마가 되었다가 졸본부여왕이 죽자 그 왕위를 물려받았다. 그러다가 기원전 37년에 졸본부여의 국호를 고구려로 바꿈으로서 고구려의 건국시조가 되었고, 기원전 19년에 죽었으니 61세에 죽은 것이다. 그런데 주몽왕(추모왕)이 동명왕이 세운 졸본부여의 국호를 버리고 “고구려”라고..

카테고리 없음 2014.01.05

윤여동설 - 백제가 요서에 설치했던 진평군 진평현(백제군)의 위치를 찾았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백제가 요서에 설치했던 진평군 진평현(백제군)의 위치를 찾았다 - 최초주장 송서 백제국 전에는, "백제국은 본래 고(구)려와 함께 요동 동쪽 1천여 리에 있다. 그후 고(구)려는 요동을, 백제는 요서를 경략하여 차지했는데, 백제가 통치한 곳을 진평군 진평현이라 한다(百濟國 本與高麗俱在遼東之東千餘里 其後高麗略有遼東 百濟略有遼西 百濟所治 謂之晉平郡晉平縣)"라고 기록되어 있고, 양서에는, "그 나라(백제)는 본래 (고)구려와 함께 요동의 동쪽에 있다. 진(晉)나라 때 (고)구려가 요동을 차지하자 백제 역시 요서·진평 두 군의 땅을 점거하고 스스로 백제군을 설치했다(其國本與句驪在遼東之東 晉世句驪卽略有遼東 百濟亦據有遼西,晋平二郡地矣 自置百濟郡)"라고 기록되어 있어 백제가 요서군의 일부와 진평군의 일부..

카테고리 없음 2013.12.28

윤여동설 - 고구려 환도산(丸都山)은 북경 북쪽 군도산(軍都山)

윤여동설 - 고구려 환도산(丸都山)은 북경 북쪽 군도산(軍都山)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동천왕 20년(A.D.246) 조를 보면, 가을 8월에 위나라 관구검이 고구려를 침입했다는 기사가 기록되어 있고, 10월에 고구려 환도성(丸都城)이 함락되자 동천왕이 남옥저까지 도망쳐야 했고, 이때 위나라 장수 왕기가 숙신 남쪽 경계까지 동천왕을 뒤쫓아와서 그곳의 돌에 공을 새겨 기념하고, 돌아가면서 또한 환도산(丸都山)에 이르러 불내성(不耐城)이라고 새겼다고 기록되어 있고, 결국 동천왕은 이 전쟁으로 환도성이 병란을 겪어서 다시 도읍할 수 없다하여 평양성을 쌓고 백성들과 종묘와 사직을 옮겼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북사 고구려전을 보면, “정시 5년(A.D.244) 유주자사 관구검이 장수와 1만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

카테고리 없음 2013.12.23

윤여동설 - 고구려 마다산(馬多山)을 찾았다 - 최초공개

윤여동설 - 고구려 마다산(馬多山)을 찾았다 - 최초공개 한원(翰苑) 고구려 편을 보면, 고구려의 북쪽에 마다산(馬多山)이 있는데, 이 산이 고구려에서 가장 크고, 인삼, 부자, 방풍, 세신이 많이 자라고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산이 험해 오직 말을 타야 통행을 할 수 있다고 하였고, 그 산에 남북으로 통행하는 길이 있는데, 그 길의 동쪽에 높은 석벽이 있고, 그 아래에 수천명이 들어갈 수 있는 석실이 있고, 두개의 혈(구멍)이 있는데, 전해지기를 고구려 선조 주몽이 부여에서 도망쳐 졸본으로 올 때 처음에는 말을 타지 않고 걸어서 왔는데 이 산에 이르렀을 때 홀현히 말떼가 혈(구멍) 속에서 나타났기 때문에 마다산이라고 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고구려의 마다산 석벽과 석실은 지금의 어디를 말하는 것일까? 찾..

카테고리 없음 2013.12.14

윤여동설 - 전설 속의 나라 고죽국과 연5군의 관계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전설 속의 나라 고죽국과 연5군의 관계 - 최초주장 옛 요수가 지금의 북경 서쪽을 흐르는 영정하(永定河) 임이 밝혀졌다. 그리고 전국시대 연나라의 진개가 고조선을 침공하여 2천여리(혹은 1천여리)를 빼앗아 설치했다는 5군 즉 요동군, 요서군, 상곡군, 우북평군, 어양군의 위치가 북경부근으로부터 서남쪽으로 호타하 부근까지였음이 밝혀졌는데, 연5군 지역과 고죽국의 위치가 겹치는 것으로 나타난다. 염철론 권제8 벌공 제45를 보면, “齊桓公越燕 伐山戎 破孤竹 殘令支(제환공이 연나라를 넘어 산융을 정벌하고, 고죽을 격파하였으며, 영지는 남겨두었다)” 라고 기록하고 있고, 또 사기 권32 제태공세가 제2 환공 23년(B.C.653) 조를 보면, “山戎伐燕 燕告急於齊 齊桓公救燕 遂伐山戎 至于孤竹而還(산..

카테고리 없음 2013.12.07

윤여동설 - 고대의 요동군(遼東郡)은 지금의 북경 부근, 요수는 영정하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고대의 요동군(遼東郡)은 지금의 북경 부근, 요수는 영정하 - 최초주장 전한서 권28하 지리지 제8하를 보면, “요동군은 진나라가 설치하였는데 유주에 속한다. 호수는 55,972호이고, 인구는 272,539명이며, 18개 현을 관할한다. 양평현,신창현,무려현,망평현,방현,후성현,요대현,요양현,험독현,거취현,고현현,안시현,무차현,평곽현,서안평현,문현,번한현,답씨현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고, 후한서 지제23 군국5를 보면, “요동군은 낙양동북 3,600리에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 후한서에는 요동군 이외에도 낙랑군은 낙양동북 5,000리에, 현토군은 낙양동북 4,000리에, 요서군은 낙양동북 3,300리에, 상곡군은 낙양동북 3,200리에 위치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또 우북평군은 낙..

카테고리 없음 2013.12.02

윤여동설 - 신라와 말갈의 국경 니하(泥河)의 위치 찾기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신라와 말갈의 국경 니하(泥河)의 위치 찾기 - 최초주장   [신라의 니하(泥河)는 요녕성 조양시 북표시 동쪽 망우하(牤牛河)]    삼국사기 신라 6대 지마왕 14년(A.D.125) 조를 보면, “봄 정월에 말갈이 북쪽 변경으로 대부대로 몰려와서 관리와 백성들을 죽이고 노략질을 하더니 가을 7월에 또 대령책을 습격하고 니하(泥河)를 넘었다. 왕이 백제에 글을 보내 구원을 청하니 백제가 5명의 장군을 보내 도우매 적병이 소문을 듣고 물러갔다”고 기록되어 있고,  또 20대 자비왕 11년(A.D.468) 조를 보면, “봄에 고구려가 말갈과 함께 북쪽 변경의 실직성(悉直城)을 습격하였다. 가을 9월에 하슬라 백성들로서 15세 이상되는 사람들을 징발하여 니하(泥河)에 성을 쌓았다[니하는 일명 니천..

카테고리 없음 2013.1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