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윤여동설 901

윤여동설 - 위만조선의 기본강역과 주변국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위만조선의 기본강역과 주변국 - 최초주장 기원전 108년에 설치된 초기 전한낙랑군 11현 조선,남감,패수,점선,수성,증지,사망,둔유,누방,혼미,탄열 ☆ 초기 임둔군의 통현은 15개현, 진번군의 통현도 15개현이었다고 하고, 낙랑군의 통현은 11개현으로 나타나는데, 초기 현토군의 통현에 대한 기록은 전하지 않는다. 소제이후의 전한낙랑군 11현과 낙랑남부도위 7현, 낙랑동부도위 7현 조선,남감,패수,점선,수성,증지,사망,둔유,누방,혼미,탄열[낙랑군] 소명,대방,함자,해명,열구,장잠,제해[낙랑남부도위 : 옛 진번군지역의 일부] 불이,동이,잠대,화려,사두매,전막,부조[낙랑동부도위 : 옛 현토군지역의 일부] 후한낙랑군 18현 조선,감,패수,점선,수성,증지,사망,둔유,누방,혼미,낙도[낙랑군] 소명,대방..

카테고리 없음 2013.03.01

윤여동설 - 고대의 태백산(太白山)은 어디를 말하는가?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고대의 태백산(太白山)은 어디를 말하는가? - 최초주장 후한서 읍루전을 보면, “읍루는 옛 숙신국이다. 부여의 동북쪽 1천여리에 있는데, 동쪽은 대해에 닿고 남쪽은 북옥저와 접했으며, 북쪽은 그 끝을 알 수 없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신당서 흑수말갈전을 보면, “흑수말갈은 숙신(肅愼) 땅에 사는데, 또한 읍루(挹婁)라고도 하고, 원위 때에는 물길이라고도 했다. 직선으로 경사(장안)에서 동북쪽으로 6천리에 있는데, 동쪽은 바다에 접하고, 서쪽은 돌궐에 닿았으며, 남쪽은 고구려, 북쪽은 실위와 접했다. 수십부로 나누어져 있는데, 추장들이 각각 자치적으로 다스린다. 잘 알려진 것이 속말부로서 가장 남쪽에 위치하고 태백산(太白山)에 이른다. 도태산(徒太山)이라고도 하는데, 고구려에 접했다. 속말수에..

카테고리 없음 2013.02.16

윤여동설 - 신라 서라벌(금성)과 진한 6부의 배치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신라 서라벌(금성)과 진한 6부의 배치- 최초주장 - 계사년 새 봄의 시작인 입춘(立春)에 금산 가리촌(북촌) (한기부) 명활산 고야촌(동북촌) (습비부) (서촌) 무산 대수촌 (모량부) 서라벌 금성 알천 양산촌(동촌) (급량부) 자산 진지촌(동남촌) (본피부) 돌산 고허촌(남촌) (사량부) ☀ 삼국유사 신라시조 혁거세왕 조의 진한6부에 대한 기록 중 금산가리촌의 촌장 지타가 처음에 “명활산에 내려왔다”는 기록은 “금강산에 내려왔다”의 오기이고, 금산가리촌이 “동촌에 속한다”고 한 기록 역시 “북촌에 속한다”의 오기임에 틀림없다. 또한 명활산고야촌의 촌장 호진이 “금강산에 내려왔다”는 기록은 “명활산에 내려왔다”의 오기임이 확실하므로 필자가 바로 잡았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경주부 동으로 울산군..

카테고리 없음 2013.02.04

윤여동설 - 신라 32대 효소왕의 실제 출생년도는 언제일까?-최초주장

윤여동설 - 신라 32대 효소왕의 실제 출생년도는 언제일까? - 최초주장 삼국유사 탑상 제4 대산 오만진신 편의 주를 보면, “상고해 보면, 효조(孝照)를 효소(孝昭)라고도 했다. 천수3년 임진년(A.D.692)에 즉위했는데, 이때 나이 16세였고, 장안 2년 임인년(A.D.702)에 죽었으니 나이 26세였고, 성덕왕이 이 해에 즉위했으니 나이 22세였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것이 역사적 사실이라면, 신라 32대 효소왕(김이홍)의 출생년도는 서기 677년으로서, 30대 문무왕 17년이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문무왕이 죽고 그 아들인 31대 신문왕(김정명)이 왕위를 이은 때가 서기 681년이었으므로 이때 신문왕의 장자였던 김이홍(후일의 효소왕)의 나이는 5세였다. 그리고 다시 31대 신문왕이 재위 12년..

카테고리 없음 2013.01.27

윤여동설 - 신라 13대 미추왕은 구도갈문왕의 아들이 아니라 고손자였다

윤여동설 - 신라 13대 미추왕은 구도갈문왕의 아들이 아니라 고손자였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13대 미추이사금 조를 보면, “미추이사금이 왕위에 오르니 성은 김씨이다. 어머니는 박씨이니 갈문왕 이칠의 딸이요, 왕비는 석씨 광명부인이니 조분왕의 딸이다. 그의 조상 알지가 계림에서 났..

카테고리 없음 2013.01.13

윤여동설 - 운주절도사 이사도의 난 진압을 위해 신라가 군사를 파병했다는 기록의 진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운주절도사 이사도의 난 진압을 위해 신라가 군사를 파병했다는 기록의 진실 - 최초주장 삼국사기 신라본기 41대 헌덕왕 11년(A.D.819) 조를 보면, “가을 7월 당나라 운주절도사(鄆州節度使) 이사도가 반란을 일으키므로 (당) 헌종이 장차 이를 토벌하여 평정하고자 양주절도사(楊州節度使) 조공을 보내 우리(신라) 병마의 징발을 요청하므로 왕이 칙지를 받들어 순천군(順天軍)장군 김웅원으로 하여금 갑옷 입은 병사 3만을 거느리고 가서 돕도록 하였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기록을 보고도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역사를 연구할 자질이 부족하다고 할 수 있다. 신라가 한반도에 위치하고 있었고, 당나라의 운주가 산동성에 위치했다면, 3만의 신라군사는 이사도의 반란을 진압하기..

카테고리 없음 2013.01.06

윤여동설 - 잃어버린 고대의 갈석산(碣石山)은 과연 지금의 어디일까?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잃어버린 고대의 갈석산(碣石山)은 과연 지금의 어디일까? - 최초주장       고대의 항산(恒山 : 常山)은 지금의 하북성 보정시에 있는 대무산(大茂山, 일명 신선산, 1,898m)이었다.  옛 항산(상산)은 지금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 산서성의 혼원에 있는 항산이 아니라 하북성의 대무산이었는데, 옛 지도들에는 한결같이 항산(상산)의 동쪽 또는 동북쪽 가까이에 갈석산을 그려 넣고 있다.  ☆ 현재의 산서성 혼원현의 항산(恒山)은 명나라 때 현악(玄岳)을 항산으로 개칭하였다고 한다. 따라서 현재의 항산은 명나라 이전의 북악인 항산(상산)이 아닌 것이다.    따라서 고대의 갈석산은 옛 항산(상산)인 지금의 대무산(大茂山) 동쪽 또는 동북쪽 멀지 않은 곳에서 찾아야 한다는 말이 된다.    ..

카테고리 없음 2012.12.23

윤여동설화 - 허유와 소부 고사 속 “기산(箕山)영수(潁水)”의 위치

윤여동설화 - 허유와 소부 고사 속 “기산(箕山)영수(潁水)”의 위치 옛날 요임금이 허유에게 나라를 물려주려하자, 못들을 말을 들어 귀가 더럽혀졌다고 하면서 귀를 씻었다는 허유(許由). 그리고 한 수 더 떠 허유의 귀 씻은 더러운 물을 소에게 먹일 수 없다고 하면서 그 상류로 소를 끌고 가서 먹였다는 소부(巢父: 소보라 불러야 옳을 것이다)의 이야기가 전해지는 영수(潁水)와 그들이 들어가 은둔했다는 기산(箕山). 그리하여 “기산영수(箕山潁水)”라는 고사성어가 만들어졌다고 하는 설화 속의 두 주인공 허유와 소부 그들은 과연 지금의 어디에서 살았고, 어디에 묻혔을까? [기산 허유묘] [기산 허유묘] ☆ 소부의 묘는 어디에 조성되었는지 전해지지 않았으나 허유의 묘가 있는 기산 어딘가에 묻혔을 것이다. 옛날 허..

카테고리 없음 2012.12.08

윤여동설 - 제요도당씨(요임금) 때의 요산(堯山), 고산(孤山), 당(唐) 그리고 도읍 평양(平陽)의 위치 - 최초공개

윤여동설 - 제요도당씨(요임금) 때의 요산(堯山), 고산(孤山), 당(唐) 그리고 도읍 평양(平陽)의 위치 - 최초공개 요임금 : 중국의 전설적인 임금. 성은 이기(伊耆), 이름은 방훈(放勛)이라 한다. 순임금에게 제위를 선양하였다고 하며(필자주 : 사실은 그렇지 않다고도 한다) 중국 역사상 요순시대가 최고의 태평성대였다고 한다. 제요도당씨(帝堯陶唐氏) : 요임금이 도(陶) 지방과 당(唐) 지방에 봉해졌었기 때문에 붙여진 별칭이다. 요도평양(堯都平陽) : 지금의 산서성 임분시 양분현(襄汾縣)이라 한다. 요산(堯山) : 요임금 때 강역의 중심에 위치한 산으로서 지금의 산서성 화염산(火焰山)을 말하는 듯하다. 고산(孤山) : 사기 진시황본기의 주를 보면, 요산의 남쪽 50리에 위치한 산으로서, 평지에 우뚝 ..

카테고리 없음 2012.12.02

윤여동설 - 옛 북악 항산(北岳恒山=常山)은 하북성 보정시에 있는 지금의 대무산(大茂山:神仙山)이었다 - 최초공개

윤여동설 - 옛 북악 항산(北岳恒山=常山)은 하북성 보정시에 있는 지금의 대무산(大茂山:神仙山)이었다 - 최초공개     [산서성 북부와 하북성 남부의 고 장성과 두 개의 항산(恒山)이 표시된 근대지도] ☆ 진, 한 이래 지금 하북성의 항산(지금의 대무산)을 북악으로 삼아 제사를 지내 왔으나, 명나라 때에 이르러 산서성의 “현악(玄岳)을 항산(恒山)으로 개칭”하였다고 한다. 또한 청나라 때에도 산서성의 항산에서 북악의 제사를 지냄으로서 명, 청 이후 사람들은 원래의 북악인 지금 하북성 보정시의 옛 항산(현 대무산)을 잃어버리게 되었고, 산서성 혼원현에 있는 항산이 원래의 북악이요 항산(상산)이었다고 잘못 인식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때부터 갈석산의 위치도 헷갈리게 되어 원래의 갈석산(우공갈석)을 잃어..

카테고리 없음 2012.11.23

윤여동설 - 신라 16대 흘해왕은 우로(于老)의 아들이 아니라 고손자

윤여동설 - 신라 16대 흘해왕은 우로(于老)의 아들이 아니라 고손자 9대벌휴왕(석씨) .................................................................. ↓장자 ↓차자 골정=옥모부인 이매=내례부인의 딸 ↓아들 ↓아들 ?(실명) 10대나해왕 ..................................... ................................ ↓장자 ↓딸 ..

카테고리 없음 2012.11.09

윤여동설 - 신라 10대 나해왕의 어머니는 내례부인(內禮夫人)이 아니다

윤여동설 - 신라 10대 나해왕의 어머니는 내례부인(內禮夫人)이 아니다 [박씨] 5대 파사왕 (재위80-112) ↓ 6대 지마왕 7대 일성왕 (재위112-134) (재위134-154) ↓ ↓ 내례 8대 아달라왕=내례부인 (재위154-184) [석씨] 9대 벌휴왕 (재위184-196) ............................. ↓ ↓ 골정=옥모부인 이매=내례부인..

카테고리 없음 2012.11.02

윤여동설 - 북연의 풍홍이 고구려로 망명하여 머물렀던 평곽과 북풍은 과연 지금의 어디일까? - 최초공개

윤여동설 - 북연의 풍홍이 고구려로 망명하여 머물렀던 평곽과 북풍은 과연 지금의 어디일까? - 최초공개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장수왕 15년(A.D.427) 조를 보면, “평양으로 도읍을 옮겼다” 라고 기록되어 있어 이때에 이르러 고구려 장수왕이 황성으로부터 평양성으로 도읍을 옮겼음을 알 수 있고, 장수왕 23년(A.D.435) 조를 보면, “위(북위)나라 사람들이 연나라를 빈번히 공격하니 연(북연)나라에서는 위험이 날로 절박하였다. 연나라 임금 풍홍이 ‘만일 사태가 위급하게 되면 동쪽의 고구려에 잠시 의탁하고 있다가 후일을 도모해야겠다’ 생각하고는 비밀리에 상서 양이를 우리나라에 보내 망명을 요청하였다.” 라고 기록되어 있고, 장수왕 24년(A.D.436) 조에는, “여름 4월에 위나라가 연나라의 백랑성(..

카테고리 없음 2012.10.19

윤여동설 - 광개토태왕이 시조 추모왕(주몽왕)의 17세손이라는 호태왕비문의 기록은 정확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광개토태왕이 시조 추모왕(주몽왕)의 17세손이라는 호태왕비문의 기록은 정확했다 - 최초주장 "광개토태왕이 고구려 건국시조 주몽의 17세손이 맞다"고 하면,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기록에 따라 주몽으로부터 족보를 따져보면 호태왕은 주몽의 12세손에 불과한데 무슨 헛소리를 하고 있는 것인가?” 라고 할 지도 모르겠다. 물론 필자도 이전에는 호태왕 비문의 17세손이라는 기록에 대하여 북부여 시조 해모수로부터 계산하여 광개토대왕이 북부여 천제 해모수의 17세손이라 기록한 것으로 이해했었으나, 호태왕비문을 자세히 보면 “惟昔始祖鄒牟王之創基也(옛날에 시조 추모왕이 터를 잡고 창업했도다)” 라고 하면서 비문을 시작했다. 따라서 문맥으로 볼 때 호태왕(광개토태왕)이 그 17세손이라면 이는 시조 추모왕(주몽왕..

카테고리 없음 2012.10.07

윤여동설 - 아리랑과 쓰리랑의 진짜 의미

윤여동설 - 아리랑과 쓰리랑의 진짜 의미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라고 노래하는 한국의 대표적인 전래 민요 “아리랑”의 진짜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 아리랑에 대하여 사람마다 각기 다른 의미를 부여하고 있어 어느 주장이 진실인지 알기 어렵지만 가사만 보면 이 노래는 “이별가” 임이 분명하다. 즉 어느 사랑하던 남녀가 있었는데, 남자가 변심하여 여인을 버리고 떠나버리자 버림받은 여인이 자기를 버리고 간 님이 십리도 못가서 발병이 나서 되돌아올 것을 기원했지만 결국 그 님은 고개를 넘어가서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아리랑은 “我離郞(아리랑)”이며, “나를 버리고 떠난 님”으..

카테고리 없음 2012.1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