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윤여동설 904

윤여동설 - 고려는 “철령(鐵嶺)” 때문에 망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고려는 “철령(鐵嶺)” 때문에 망했다 - 최초주장       고려가 “철령(鐵嶺)” 때문에 망했다고?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일까?      명사 조선전 홍무19년(A.D.1386) 12월 조를 보면,  “(명 태조 주원장이) 호부에 명하여 고려왕에게 말하기를   “철령 북쪽, 동쪽, 서쪽의 땅은 옛날부터 개원(開元:원나라 때의 개원로를 말함)에 속하였으니 요동(遼東)에서 통치하도록 하고, 철령(鐵嶺) 이남은 옛날부터 고려에 속하였으니 고려에서 통치하도록 하시오. 그리하여 서로 국경을 침범하는 일이 없도록 하시오”   하였다.[필자주 : 이는 관북, 관서지역을 명나라가 차지하겠다는 말이다]   그러자 고려에서는 홍무21년(A.D.1388) 4월에 표문을 보내 철령 이북 공험진(필자주 : 고..

카테고리 없음 2011.11.11

윤여동설 - 공주 의당면 수촌리고분은 반도백제 왕족의 무덤일 가능성이 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공주 의당면 수촌리고분은 반도백제 왕족의 무덤일 가능성이 있다 - 최초주장 백제 “무광왕(武廣王)”은 아직까지 비밀 속의 왕이다. 삼국사기, 삼국유사를 아무리 뒤져봐도 백제의 왕 중에 무광왕이라는 왕은 존재하지 않고, 백제의 도읍 중에 지모밀지라는 곳도 나타나지 않는다. 그에 대한 기록은 정사에는 단 한 줄도 나타나지 않고 오직 관세음응험기의 기록 속에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百濟武廣王遷都枳慕密地新營精舍(백제 무광왕이 지모밀지로 천도하고 새로이 절을 지었다)” 라고............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은 이 관세음응험기라는 기록의 신빙성에 대하여 의심의 눈초리를 늦추지 않는다. 그러나 백제 역사를 세밀하게 들여다보면 무광왕이라는 왕이 누구를 말하는지 알 수 있게 되고, 양서나 남사에 언..

카테고리 없음 2011.11.04

윤여동설 - 공주 공산성 출토 황칠갑옷은 백제갑옷 금휴개(金髹鎧)일 가능성이 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공주 공산성 출토 황칠갑옷은 백제갑옷 금휴개일 가능성이 있다 - 최초주장 삼국사기 백제본기 무왕 27년(A.D.626) 조를 보면,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 명광개(明光鎧)라는 갑옷을 바치고 고구려가 길을 막고 상국에 예방하지 못하게 한다는 것을 호소하였더니 당 고조가 산기상시 주사서를 보내 조서로써 우리와 고구려 사이의 원한을 풀라고 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신당서 백제전에도 “무덕9년(A.D.626) (백제가) 명광개를 바치고 고구려가 조공 길을 막는다고 하소연 하였다” 라고 기록되어 있어 이때 백제에서 명광개라는 갑옷을 만들어 당나라에 보냈음은 확실하다. 그런데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보장왕 4년(A.D.645) 조의 당 태종 고구려 침공시의 요동성전투 기록을 보면, “이 때에 백제가 금..

카테고리 없음 2011.10.28

윤여동설 - 고구려 “신성(新城)” 위치찾기 - 최초공개

윤여동설 - 고구려 “신성(新城)” 위치찾기 - 최초공개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13대 서천왕 조를 보면, “7년(A.D.276) 여름4월 왕이 신성[新城 혹자는 말하기를 신성은 나라 동북에 있는 큰 진이라 한다]에 가서 사냥을 하다가 백록을 잡았다. 가을8월에 왕이 신성으로부터 돌아왔다” 19년(A.D.288) 여름4월에 왕이 신성에 갔다. 겨울 11월에 왕이 신성으로부터 돌아왔다.” 라고 기록되어 있고, 또 14대 봉상왕 조를 보면, “2년(A.D.293) 가을8월에 모용외가 와서 침노하였다. 왕이 신성(新城)으로 가서 적을 피하려고 곡림까지 갔는데 모용외가 왕이 달아난 것을 알고 군사를 이끌고 추격하여 거의 잡히게 되매 왕이 두려워하였다. 이때에 신성성주인 고노자가 기병5백을 거느리고 나와서 왕을 영접..

카테고리 없음 2011.10.21

윤여동설 - 건안성(평곽)은 지금의 북경 동북쪽 난평 부근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건안성(평곽)은 지금의 북경 동북쪽 난평 부근 - 최초주장 645년 당 태종 고구려 침공시 난공불락의 요새 안시성을 먼저 쳐야 되느냐 안시성을 그대로 두고 건안성을 치고 평양성으로 향할 것이냐를 놓고 작전회의를 할 때, 이세적이 말하기를 “건안은 남쪽(필자주 : 북쪽의 오기일 것이다)에 있고, 안시는 북쪽(필자주 : 남쪽의 오기일 것이다)에 있는데, 우리의 군량은 모두 요동에 있습니다. 이제 안시를 넘어 건안을 치다가 만약 고구려 사람들이 우리의 군량 수송로를 끊게 된다면 어찌 되겠습니까?” 했다는 기록이 있음을 보면 안시성과 건안성은 모두 요동성 가까이 위치하고 있었고, 안시성이 남쪽(원문은 북쪽으로 되어 있다)에, 건안성이 북쪽(원문은 남쪽으로 되어 있다)에 위치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카테고리 없음 2011.10.17

윤여동설 - 고대의 요수(遼水)는 지금의 영정하(永定河)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고대의 요수(遼水)는 지금의 영정하(永定河)     - 최초주장         역사적으로 요수의 위치가 중요한 것은 대개의 경우 우리 고대역사강역의 서쪽 경계가 바로 이 요수였기 때문이다.   요수를 찾으면 우리 선조들이 살았던 역사강역이 과연 어디까지였으며,   그 강을 경계로 중국 세력들과 끊임없이 다투었던 곳이 어디인지를 알 수 있게 되고,   또 어떻게 고구려 초기인 5대 모본왕 때인 서기 49년에 장수를 보내 한나라의 우북평, 어양, 상곡, 태원 등지까지 습격할 수 있었던 것인지 그 해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고대의 요수는 지금의 동양하에서 양하로 이어져 관청수고로 흘러 들어갔다가 영정하로 이름을 바꾸어 북경 서쪽을 흐르다가 해하로 다시 이름을 바꾸어 발해로 흘러 들어가는..

카테고리 없음 2011.10.08

윤여동예언 - 붕새설화는 지구가 180도 축이동을 할 것이라는 예언

윤여동예언 - 붕새설화는 지구가 180도 축이동을 할 것이라는 예언 [동시베리아의 지형인데 산세를 잘 보면 마치 새의 형상을 하고 있다. 바이칼호수가 새의 부리에 해당하고 캄차카반도가 새의 발에 해당한다] [남북극이 뒤바뀐 지구의 모습. 남극해와 북극대륙 그리고 중앙의 대한민국] 곤(鯤)이라는 물고기가 새인 붕(鵬)이 되었고, 붕이 한번 날면 구만리를 날아 남쪽 바다로 간다?[장자 소요유편 참조] 이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 단순하게 옛 사람들이 재미로 만들어낸 이야기일 뿐일까? 그런데 이 붕새설화를 곰곰이 생각해보면, 물고기인 곤이 새인 붕이 되었다는 말은 동시베리아가 옛날에는 물속에 잠겨 있다가 육지가 되었고 그 지형이 큰 새를 닮았다는 의미로 생각해 볼 수 있고, 붕이 구만리를 날아 남쪽 바다로 ..

카테고리 없음 2011.10.04

윤여동설 - 요(거란) 동경요양부(東京遼陽府)는 지금의 북경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요(거란) 동경요양부(東京遼陽府)는 지금의 북경(北京) - 최초주장 요사지리지 동경도를 보면, 『요나라 태조(太祖: 야율아보기)가 나라를 세우고 발해를 공격하여 홀한성(忽汗城: 발해상경용천부)을 함락하고 그 왕 대인선을 사로잡았다. 동단왕국(東丹王國)을 세우고 태자 도욕(圖欲)을 인황왕(人皇王)으로 임명하여 다스리게 하였다. 신책(神冊) 4년(A.D.919)에 요양(遼陽) 옛 성(요동성)을 수리하고, 발해사람과 중국인으로 동평군(東平郡)을 만들어 방어주(防禦州)로 삼았다. 천현(天顯) 3년(A.D.928) 동단국 백성들을 (요양으로) 옮겨 살게 하고 남경(南京: 필자주 : 요나라에서는 옛 요동성을 남경요양부라 했다가 후일 동경요양부로 또 고쳤다)으로 승격시켰다. (남경)성의 이름은 천복성(天..

카테고리 없음 2011.09.30

윤여동설 - 고구려 환도성(丸都城)은 지금의 북경 북쪽 발해진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고구려 환도성(丸都城)은 지금의 북경 북쪽 발해진(渤海鎭) - 최초주장 요사지리지는 환주(桓州)에 대하여, “환주(桓州)는 고구려 때 도성이었고, 옛날에는 현이 셋이었는데 환도(桓都), 신향(神鄕), 패수(浿水? 필자주 : 환도성 부근에는 패수가 흐르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이상하다) 3현이었다.[필자주 : 浿水는 淇水의 오기인 듯] 고구려왕(산상왕을 말함)이 이곳으로 도읍을 옮기자 백성들이 신국(新國)이라고 불렀고, 고국원왕 때에 불탔다” 고 기록하고 있어 고구려 환도성(丸都城)에 대한 역사기록과 일치한다. 따라서 요사지리지의 기록대로라면 요나라 때의 환주(桓州)가 곧 고구려의 환도성(丸都城)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고구려의 환도성은 지금의 어디를 말하는 것일까? 환도성은 고구려 산..

카테고리 없음 2011.09.24

윤여동설 - 백제 아신왕과 진사왕은 무슨 관계였을까?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백제 아신왕과 진사왕은 무슨 관계였을까? - 최초주장     [백제 16대 진사왕 2년(A.D.386)에 국내의 15세 이상되는 백성들을 동원하여 청목령으로부터 북쪽으로는 팔곤성까지, 서쪽으로는 바다까지 쌓았다는 무너진 백제장성] 일본서기를 보면, 신공황후 섭정 55년 백제의 초고왕(필자주 : 13대 근초고왕의 오기이다)이 죽었다. 56년 백제의 왕자 귀수(필자주 : 14대 근구수왕의 오기이다)가 왕이 되었다.64년 백제국의 귀수왕이 죽었다. 왕자 침류왕(15대  침류왕)이 왕이 되었다.65년 침류왕이 죽었다. 왕자 아화(후일의 17대 아신왕)가 나이가 어려 숙부 진사(16대 진사왕)가 빼앗아 왕이 되었다.응신천황 3년 백제의 진사왕이 왕위에 올라 귀국(貴國)의 천황에게 무례하였다. 그래서 ..

카테고리 없음 2011.09.21

윤여동설 - 황룡국(黃龍國)은 고구려의 졸본,국내성 부근 - 최초주장

윤여동설 - 황룡국(黃龍國)은 고구려의 졸본,국내성 부근 - 최초주장 삼국사기 고구려본기를 보면, 『유리왕 20년(A.D.1) 봄정월 태자 도절이 죽었다. 22년(A.D.3) 겨울10월 왕이 국내로 도읍을 옮기고 위나암성을 쌓았다. 23년(A.D.4) 봄2월에 왕의 아들 해명을 세워 태자를 삼고 전 국내의 죄수들을 크게 사면하였다” 27년(A.D.8) 봄 정월에 왕의 태자 해명이 옛 도읍에 남아 있었는데 힘이 세고 용감하였다. 황룡국(黃龍國) 왕이 이 소문을 듣고 사신을 보내 강궁을 선물하였더니 해명이 그 사신 앞에서 활을 잡아당겨 꺾으면서 말하기를 ‘내가 힘이 센 것이 아니라 활 자체가 단단하지 못하다’ 하니 황룡왕이 무안해 하였다. 왕이 이 말을 듣고 화가 나서 황룡왕에게 말하기를 ‘해명은 자식으로서..

카테고리 없음 2011.09.16

윤여동설 - 송양의 비류국(沸流國)은 졸본 서쪽에 위치했었다 - 최초공개

윤여동설 - 송양의 비류국(沸流國)은 졸본 서쪽에 위치했었다 - 최초공개 삼국사기 고구려본기를 보면, 『추모왕 원년(B.C.37) 왕이 비류수 중류에 채소잎이 떠내려오는 것을 보고 그 상류에 사람이 사는 것을 알고 사냥을 하면서 찾아 올라가 비류국에 이르렀다. 그 나라왕 송양이 나와보고 말하기를 ‘내가 궁벽한 바다 모퉁이에 외따로 살기 때문에 아직 군자를 만나보지 못했는데, 오늘 서로 만나게 되었으니 이 또한 다행한 일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그대가 어디서 왔는지 전연 알지 못하겠소’ 하였다. 주몽이 대답하기를 ‘나는 천제의 자손으로서 아무 아무 곳에 와서 도읍을 정했소’했다. 송양이 말하기를 ‘우리는 여러 대째 왕이 되어 온 터에 땅이 적어 두 임금은 용납할 수 없고, 그대는 도읍을 정한지도 얼마되지 않..

카테고리 없음 2011.09.09

윤여동설 - 졸본(홀본)은 하북성 장가구시 적성현 후성진(后城鎭)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졸본(홀본)은 하북성 장가구시 적성현 후성진(后城鎭) - 최초주장 고구려의 첫 도읍 졸본(홀본)은 지금의 중국 하북성 장가구시 적성현 후성진(后城鎭)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졸본(홀본)을 찾으면 고구려 초기 역사기록에 나타나는 많은 실제의 장소들을 찾을 수 있게 되는데, 앞으로 그 위치들이 하나씩 공개될 것입니다. 사실 이는 내용 하나하나가 모두 박사학위논문 쓸 때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매우 중요한 내용들인데, 역사연구자들이 그 진실을 정확히 밝히지 못하고 주변만 맴돌고 있는 것이 안타까워 우리 역사연구를 위해 아낌없이 공개할 예정입니다. 역사를 연구하시는 분들께서 본 내용을 인용하실 땐 “윤여동설에 의하면 하북성 장가구시 적성현 후성진이 졸본(홀본)이라 한다”고 반드시 표기해 주시기 바라고,..

카테고리 없음 2011.09.02

윤여동설 - 알선동 석실은 환웅설화의 발생지일까?

윤여동설 - 알선동 석실은 환웅설화의 발생지일까? 위서 권100 열전 제88 오락후(烏洛侯) 조를 보면, “세조 (태평)진군4년(A.D.443)에 (오락후 사신이) 내조했는데 (말하기를) 그 나라의 서북쪽에 선제(先帝)의 옛터가 있고 석실로서 남북이 90보, 동서가 40보, 높이가 70보인데 그 석실에 신령스러움이 있어 많은 백성들이 소원을 빈다고 하였다. 세조가 중서시랑 이창(李敞)을 보내 고유제를 지내게 했고, 그 축문을 석실벽에 새기고 돌아왔다” 라고 기록되어 있어 탁발선비의 선조들이 살았었다는 석실(석굴)에 대하여 언급되어 있다. ☆ 그런데 북위 세조는 어떻게 오락후 사신이 와서 오락후에 있는 커다란 석굴이 탁발선비의 조상이 살았던 옛터라고 말한다고 하여 수천년 전의 일을 별도의 확인절차도 없이 ..

카테고리 없음 2011.08.26

윤여동설 - 후한 요동군 · 현토군 · 낙랑군 위치 찾기

윤여동설 - 후한 요동군 · 현토군 · 낙랑군 위치 찾기 [고대 강대국들의 위치와 그들이 어느 지역을 놓고 다투었는지를 먼저 이해하는 것이 역사를 이해하는 지름길입니다] 후한서지리지 제23 군국5를 보면, 상당군, 태원군, 상군, 서하군, 오원군, 운중군, 정양군, 안문군, 삭방군은 병주(幷州)에 속한다고 하였고,[필자 주 : 병주는 낙양의 북쪽 방향에 위치했다고 합니다] 탁군, 광양군, 대군, 상곡군, 어양군, 우북평군, 요서군, 요동군, 현토군, 낙랑군, 요동속국은 유주(幽州)에 속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탁군은 낙양에서 동북쪽으로 1,800리(?)에 위치해 있었고, 광양군은 낙양동북 2,000리(?)에 위치해 있었으며, 대군은 낙양동북 2,500리, 상곡군 낙양동북 3,200리, 어양군 낙양동..

카테고리 없음 2011.08.19

윤여동설 - 진시황이 올랐던 진짜 갈석산(碣石山)의 위치 - 최초공개

윤여동설 - 천년의 비밀 진시황이 올랐던 진짜 갈석산(碣石山)의 위치 - 최초공개     진시황은 평생에 다섯번 순행을 하였는데, 그 중 네 번째가 기원전 215년에 이루어진 진나라의 동북지방 순행이었다.  이때 진시황은 함양을 출발하여 동북쪽으로 향하여 한단에 도착한 후 북쪽으로 올라가 갈석산(碣石山)에 올랐고, 다시 서북쪽으로 향하여 요서를 둘러보고 다시 서남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황하를 건너 오르도스 지역을 통과하여 남쪽으로 향하여 함양으로 되돌아왔다.   그런데 이 순행이 우리 역사에 있어 중요한 것은 천년동안 그 위치를 찾지 못하고 있는 갈석산의 위치를 찾을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많은 옛 사서들은 “상산 구문현에 갈석산이 있다(常山 九門縣 有碣石山)”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카테고리 없음 2011.08.16

윤여동설 - 고조선이 위치했던 “동해지내(東海之內) 북해지우(北海之隅)”의 진짜 위치 - 최초공개

윤여동설 - 고조선이 위치했던 “동해지내(東海之內) 북해지우(北海之隅)” - 최초공개공개의 진짜 위치 산해경의 해내경에는 “東海之內 北海之隅 有國名曰朝鮮(동해의 안쪽, 북해의 모퉁이에 나라가 있는데 조선(고조선)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기록은 바로 우리 고조선(왕검조선)의 위치에 대한 기록이기 때문에 역사연구자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이 기록을 읽게 되고, 산해경에서 언급하고 있는 동해가 지금의 어디를 말하며, 북해가 어디일까 찾으려 하게 된다. 그런데 산해경이라는 책이 중국에서 만들어진 것이므로 산해경이 말하는 동해는 당연히 중국 사람들이 인식한 중국대륙 동쪽에 있는 바다를 말한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일 것이고, 북해가 문제인데, 지금의 발해(渤海)로 볼 수도 있고, 바이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

카테고리 없음 2011.08.13

윤여동설 - 개마대산(蓋馬大山)과 단단대령(單單大嶺)의 위치찾기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개마대산(蓋馬大山)과 단단대령(單單大嶺)의 위치찾기 - 최초주장 후한서 예(동예) 전을 보면, “원봉 3년(B.C.108)에 이르러 조선을 멸망시키고 낙랑, 임둔, 현토, 진번으로 나누었다. 소제 시원 5년(B.C.82)에 이르러 임둔과 진번을 폐지하여 낙랑과 현토에 병합했다. (B.C.75에) 현토를 다시 구려로 옮겼으며 단단대령(單單大嶺) 동쪽의 옥저와 예(동예),맥은 모두 낙랑에 속하게 했다. 후에 그 지역이 넓고 멀어 다시 대령(단단대령) 동쪽 7개현을 나누어 낙랑동부도위를 설치하였다. 예(동예)가 한나라에 내속된 후 풍속이 점점 나빠져 금지하는 법도 늘어나 60여개조에 이르게 되었다. 건무 6년(A.D.30)에 도위(낙랑동부도위)를 폐지하고 대령(단단대령) 동쪽의 땅을 포기하고 그 ..

카테고리 없음 2011.08.11

윤여동설 - 죽령(竹嶺) 서북쪽 500리 땅의 진짜 위치 - 최초공개

윤여동설 - 죽령(竹嶺) 서북쪽 500리 땅의 진짜 위치 - 최초공개      신라 선덕여왕 11년(A.D.642)에 백제의 침공을 받아 신라의 대야성이 함락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리하여 대야성 도독인 김품석과 그의 아내 고타소가 백제군에 잡혀 죽게 되는데, 이때 죽은 고타소가 곧 김춘추의 첫딸이었다. 고타소가 목이 잘려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김춘추는 너무도 놀라 앞에 사람이 지나가도 모를 정도였다고 하고 이때 백제를 멸망시킬 결심을 하게 된다.   그리하여 김춘추는 백제를 멸망시켜 죽은 딸 고타소의 원한을 갚기 위해 고구려에 청병을 하러 가게 되는데, 그 때 고구려 보장왕이 말하기를,  “죽령은 본래 우리 땅이다. 네가 만일 죽령 서북쪽 땅을 돌려준다면 군사를 내어 주겠다” 고 했다는 것이다...

카테고리 없음 2011.08.07

윤여동설 - 고구려 광개토태왕의 직계혈통도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고구려 광개토태왕의 직계혈통도 - 최초주장 시조 추모왕(성은 해씨 이름은 주몽, 고구려 건국시조) ↓ ↓ 아들 2대 유리왕(성은 해씨 이름은 유류) 딸 추모왕의 공주 ↓[구려 고여달[高閭達)과 혼인] 고여율(高如栗) 외손자 ↓ 고막래(高莫來) 외증손자 ↓ 손자 3대 대무신왕 고추가 고재사(高再思) 외고손자 4대 민중왕 증손자 5대 모본왕 (유리왕은 막내아들 여진이 비류수에 빠져 죽은 후 이복여동생의 증손자이고, 죽은 막내아들 여진 또래인 고재사를 양자로 삼았던 듯하다. 그리하여 삼국사기 태조대왕 조에 재사가 태조대왕 궁의 아버지이고, 유리왕의 아들이라 기록될 수 있었을 것이다. 재사의 원래 성씨는 고씨, 왕위에 오르지 않았는데, 그의 장자인 태조대왕 궁이 고구려 6대 왕위에 오름으로써 이때 ..

카테고리 없음 2011.08.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