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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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설 - 환도성(丸都城)과 안시성(安市城)은 같은 곳이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환도성(丸都城)과 안시성(安市城)은 같은 곳이다 - 최초주장 [학자들이 환도산성으로 비정하고 있는 집안 부근의 산성자산성 환도산성 표지석과 성벽인데 사실 이곳은 환도성이 아니다] 삼국유사 왕력 고구려 16대 국원왕(고국원왕) 조를 보면, “임인년(A.D.342) 8월 안시성으로 도읍을 옮기니 이것이 환도성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고, 또 흥법 순도조려 조에도, “상고해보면 고구려의 도읍은 안시성이며, 이곳을 혹은 안정홀(安丁忽 , 필자주 : 安寸忽의 오기인가?)이라고도 하는데 요수 북쪽에 있었다” 라고 기록하고 있어 우리를 매우 헷갈리게 한다. 왜냐하면 환도성은 서기 198년 고구려 산상왕 2년 2월에 처음으로 쌓았다고 하고, 서기 209년 산상왕 13년 10월에 국내성(국내위나암)으로부터 옮..

카테고리 없음 2010.05.30

윤여동설 - 광개토태왕(호태왕) 비문 속 비려와 염수의 위치를 찾았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광개토태왕(호태왕) 비문 속 “비려(碑麗)”와 “염수(鹽水)”의 위치를 찾았다 - 최초주장 호태왕 비문 영락 5년(A.D.395) 조를 보면, “영락 5년은 을미년이다. 왕이 비려(碑麗)가 (붙잡아간) 사람들을 돌려보내지 않으므로 몸소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토벌하였다. 부산(富山) 부산(負山)을 지나 염수(鹽水)에 이르러 세 개 부락 6, 7백영(營)을 격파하고, 셀 수 없을 만큼의 소, 말, 양떼를 노획하고 개선했다. 양평도를 지나 동쪽으로 ◯성 역성 북풍(北豐)을 거쳐왔다. 왕이 사냥을 준비시켜 국경도 구경하고 사냥도 즐기면서 돌아왔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아직까지 이 “비려(碑麗)”와 “염수(鹽水)”의 위치를 정확히 밝힌 사람은 없었다. 학자들은 비려가 거란의 한 일파였다고 알..

카테고리 없음 2010.05.09

윤여동설 - 조경일록 속의 백두산은 지금의 어느 산을 말하는 것일까? - 최초주장

윤여동설 -조경일록 속의 백두산(白頭山)은 지금의 어느 산을 말하는 것일까? - 최초주장 아래 글은 조선 인조 때 사람인 잠곡 김육 선생이 명나라의 도읍인 북경에 사신으로 갔다 오면서 쓴 일기인 “조경일록(朝京日錄)” 중 일부로서 북경을 향하여 갈 때의 진황도 산해관에서 북경 통주에 이르는 여정이다. 이때 잠곡은 지금의 한반도 서울을 출발하여 육로로 평양에 도착한 후 석다산에서 배로 갈아타고 연안항로를 따라 요동반도를 돌아 요녕성 금주(錦州) 부근에 도착하여 다시 육로를 이용하여 서쪽으로 흥성, 수중을 지나 산해관을 통과하고, 진황도시, 심하, 유관, 무령, 쌍망을 지나고, 노룡을 지나 난하를 건너 풍윤, 옥전, 계현, 삼하, 통주를 지나 북경에 도착했던 것으로 나타나고 돌아올 때는 갈 때의 육로와 해로..

카테고리 없음 2010.04.23

윤여동설 - 신라 탈해왕의 출생지 다파나국(多婆那國)의 위치를 찾았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신라 탈해왕의 출생지 다파나국(혹은 용성국)의 위치를 찾았다 - 최초주장 신라 4대 탈해이사금의 출생지는 용성국 혹은 다파나국으로 전해지고 있는데, 그 나라는 과연 지금의 어디에 위치하고 있었던 것일까? 삼국사기는 다파나국(多婆那國)이 왜국 동북쪽 1천리에 위치하고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고, 삼국유사는 용성국(龍城國, 정명국, 완하국, 화하국이라고도 한다)이 왜국 동북쪽 1천리에 위치하고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으니 결국 다파나국과 용성국은 동일한 지역에 있던 나라였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어찌되었든 탈해는 그 나라를 떠나 신라로 오게 되었고, 신라 2대 남해왕의 부마가 됨으로써 늦은 나이에 신라의 4대 왕위에 올랐고, 그 후손들 역시 신라의 왕위에 오를 수가 있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2대 남..

카테고리 없음 2010.04.19

윤여동설 - 수 양제 고구려 침공 때의 좌12군, 우12군의 행군로는? - 최초공개

윤여동설 - 수 양제 고구려 침공 때의 좌12군, 우12군의 행군로는? - 최초공개 수 양제는 611년 2월 조서를 내려 고구려 침공을 공식화 하고, 군사를 탁군(涿郡)으로 모이도록 발표한 후, 자신도 도읍인 장안을 떠나 4월에 탁군의 임삭궁에 도착한다. 그리고는 전쟁 준비를 완벽하게 한 후 612년 정월에 이르러 군사들을 탁군에서 출발 시키게 되는데, 총 군사의 수효는 1,133,800명으로서 출발에만 40일이 소요되었고, 늘어선 군사들의 깃발이 960리에 이르렀었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것이 소위 말하는 수 양제 고구려 2차 침공이다. 이때 수 양제는 고구려 침공에 총 24군(여기에서의 한 개 군이 정확히 몇 명으로 구성되었는지는 기록이 없어 알 수 없다)을 동원하였는데, 좌12군, 우12군으로 나누..

카테고리 없음 2010.04.11

윤여동설 - 산해경이 말하는 북해(北海)는 지금의 발해인가 바이칼 호수인가

윤여동설 - 산해경이 말하는 “북해(北海)”는 지금의 발해인가 바이칼 호수인가 산해경(山海經) 해내경(海內經)을 보면, “동해지내 북해지우 유국명왈조선(東海之內 北海之隅 有國名曰朝鮮 동해의 안쪽 북해의 모퉁이에 나라가 있는데 이름하여 조선이라 한다)” 이라 기록되어 있어 지금까지 과연 이 기록 속의 “조선(고조선)”이 어디에 위치했었느냐를 가지고 논란들이 참도 많다. 한반도를 기준으로 역사를 해석하는 사람들은 고조선이 북한 평양을 중심으로 위치하고 있었고 동해는 지금의 동해바다를 말하는 것이고, 북해는 흑룡강을 말하는 것이라 하기도 하고, 필자 같은 사람은 고조선이 하북성 승덕시(왕검성) 부근을 중심으로 사방 수 천리를 차지하고 있던 대제국이었다고 했고, 또 어떤 사람은 북해란 지금의 바이칼 호수를 말하..

카테고리 없음 2010.03.28

윤여동설 - 연5군은 후대에 왜곡 분산 배치되었다

윤여동설 - 연5군은 후대에 왜곡 분산 배치되었다 전국시대 연나라의 진개가 동호(고조선)를 침공하여 그 땅을 빼앗아 설치했다는 연5군은 상곡군, 요서군, 요동군, 우북평군, 어양군이다. 그런데 원래의 연5군은 호타하 부근으로부터 하북성 역현 부근을 지나 북경부근까지에 설치되었던 듯 하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요동군은 요하 동쪽 요양 부근, 요서군은 요하 서쪽에, 북평군(우북평군)은 북경부근으로 알고 있다. 이는 언젠가 지명이 옮겨졌다는 말이 되는 것인데, 필자가 보기에 그 시기는 명, 청 대였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명, 청대 이전 사서의 기록에 나타나고 있는 5군의 지명들은 원래의 연5군 지역에서 찾아야 하고, 명, 청대 이후의 기록에 나타나는 지명들은 이동된 지역에서 찾아야 한다는 말이 된다. 이를..

카테고리 없음 2010.03.24

윤여동설 - 전국시대 연장성과 연5군의 위치를 찾았다 - 최초공개

윤여동설 - 전국시대 연장성(燕長城)과 연5군(燕五郡)의 위치를 찾았다 - 최초공개 지금까지도 그 위치가 밝혀지지 않고 있는 전국시대 연5군과 연장성의 위치를 찾아보자. 우리가 이 연5군의 위치를 찾으려 애쓰는 것은 바로 그 곳이 옛 고조선 땅으로서 그 위치를 찾으면 고조선의 서쪽 경계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연5군(燕五郡)”과 "연장성(燕長城)"은 사기 흉노전에 전국시대 연나라의 진개가 동호를 침공하여 1천여리(필자주 : 위략에는 2천여리라 했다)를 빼앗은 후 조양(造陽)으로부터 양평(襄平)까지 장성을 쌓고 그 땅에 설치했다는 어양군, 우북평군(북평군), 상곡군, 요서군, 요동군과 장성을 말하는 것이다. 전한서 권28하 지리지 제8하를 보면, "상곡군(上谷郡)은 진(秦)나라가 설치했다.(필자 주 :..

카테고리 없음 2010.03.21

윤여동설 - 당 태종이 고생하며 건넌 "요택(요동늪)"을 찾았다 - 최초공개

윤여동설 - 당 태종이 고생하며 건넌 “요택(요동늪)”을 찾았다 - 최초공개 당 태종이 고구려를 침공할 때와 철군할 때 고생 하며 건넜다고 전해지는 요택(요동늪)은 과연 지금의 어디를 말하는 것일까? 많은 사람들은 요택이 지금의 요하 하류의 저습지를 말한다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이는 엉터리 중의 엉터리 주장이다. 왜냐하면 고대의 요수는 지금의 요하를 말하는게 아니라 북경 서쪽을 흐르는 영정하이었고, 북경 부근이 옛 요동군이었기 때문이다. 서기 645년 당 태종의 고구려 침공 기록을 보면, 이때 당 태종은 정주(定州)에서 출발하여 요동을 향하여 가다가 (필자주 : 이때 갈석산에도 올랐다고 한다) 요택(요동늪)을 통과하고, 요수(遼水)를 건너 요동성에 도착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학자들은 이러한 기록을..

카테고리 없음 2010.03.01

윤여동설 - 환웅의 신시(神市)는 칠로도산산맥의 대광정자산(大光頂子山) 부근이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환웅의 신시(神市)는 칠로도산산맥 대광정자산(大光頂子山) 부근이다 - 최초주장 삼국유사 고조선 왕검조선 조를 보면, 고기에 이르기를 “옛날 환인의 서자(庶子) 환웅이 있었는데 자주 천하를 차지할 뜻을 두어 인간 세상을 탐내고 있었다. 그 아버지가 아들의 뜻을 알고 삼위태백을 내려다보니 인간들에게 널리 이로운 땅이었다. 이에 환인은 천부인 세 개를 환웅에게 주어 인간 세상을 다스리게 했다. 환웅은 무리 3천을 거느리고 태백산 꼭대기(太伯山) 신단수 아래로 왔다. 이곳을 신시(神市)라 하고 이 분을 환웅천왕(桓雄天王)이라 한다” 라고 기록되어 있어 우리는 이 기록에 따라 환웅천왕이 나라를 처음 세운 곳이 태백산(太伯山 또는 太白山) 부근이고, 최초로 도읍한 곳이 “신시(神市)”였으며, 환인에게 ..

카테고리 없음 2010.02.17

윤여동설 - 환웅설화 속의 웅녀(熊女)는 왕비로 선발된 맥족(貊族)여인이었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환웅설화 속의 “웅녀(熊女)”는 왕비간택에서 최종으로 선발된 맥족(貊族)여인이었다 - 최초주장 삼국유사 고조선 왕검조선 조를 보면, 환웅설화가 비교적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는데, 그 중에 곰과 호랑이가 등장하여 곰이 웅녀로 변하여 환웅과 혼인하여 단군왕검을 낳았다고 기록하고 있고, 호랑이는 사람이 되지 못했다고 기록되어 있어 우리를 당혹스럽게 한다. 아무리 옛날이라지만 곰이 사람이 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일부 사람들은 그 기록을 잘못 이해하고는 직역하여 환인, 환웅, 단군왕검 시대를 역사가 아닌 신화로 치부해 버리는 우를 범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설화 형식을 빌어 전해졌을 뿐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다. 왜냐하면 이 기록은 환웅천왕이 왕비를 간택하는 과정에 대한 기록으로서..

카테고리 없음 2010.02.09

윤여동설 - 고려의 도읍 개경은 지금의 중국 하북성 관성현(寬城縣, 寬城滿族自治縣)이 확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고려의 도읍 개경은 지금의 중국 하북성 관성현(寬城縣, 寬城滿族自治縣)이 확실 - 최초주장     역사를 연구하는 방법에는 크게 나누어 두 가지가 있다고 보여진다.즉, 현재로부터 근세, 고대, 상고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방법과      상고로부터 고대, 근세, 현재로 내려오는 방법이다.  우리가 지금 한반도 대한민국에 살고 있으니 그 바로 앞 왕조인 조선이 한반도에, 또 그 앞 왕조인 고려 역시 한반도에, 후삼국도 한반도에, 삼국과 가야, 삼한과 위만조선, 고조선도 한반도를 중심으로 존속했다고 인식하는 논리가 역사를 현재로부터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며 고찰하는 방법인데, 강단사학은 이 방법을 채택한 것이다.    그런데 재야사학은 역사란 사건의 발생순서에 따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보아 과거로부..

카테고리 없음 2010.02.02

윤여동설 - 북경 서북쪽 영정하변에 유주촌(幽州村)이 있다?

윤여동설 - 북경 서북쪽 영정하변에 유주촌(幽州村)이 있다? (위 : 유주촌의 지형) (위 : 유주촌 여름풍경) 잃어버린 전설 속의 도시 "유주(幽州)"는 과연 지금의 어디에 위치했던 것일까? 지금 북경 서북쪽에 위치한 관청수고의 바로 남쪽 영정하 변에 “유주촌(幽州村)”이라는 역사 깊은 산동네가 있다. 영정하는 관청수고로부터 동남쪽으로 흘러 높은 서산산맥의 협곡을 가로질러 북경 서쪽 문두구로 나와 남쪽으로 흘러 해하가 되어 발해로 흘러들어가는 강인데, 그 영정하 변에 지금도 유주촌(幽州村)이라는 곳이 있는 것이다. 현재 중국 지도속에서 "유주(幽州)"라는 지명은 오직 이곳 한곳 밖에 없다. 그곳은 아주 심심산골로서 지금도 교통이 매우 불편한 곳이다. 북경에서 관청수고로 가는 지름길로서 교통의 요해처이기..

카테고리 없음 2010.01.28

윤여동설 - 진짜 금강산(金剛山)을 찾았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진짜 금강산을 찾았다 - 최초주장 금강산이라 하면 우리는 한반도 강원도에 있는 금강산을 떠 올리게 되고, 금강산을 철따라 봄에는 금강산, 여름에는 봉래산, 가을에는 풍악산, 겨울에는 개골산이라 부른다고 알고 있다. 그런데 신증동국여지승람 강원도 회양도호부 조를 보면, 금강산의 이름이 넷이 아니라 다섯 개 즉 금강산(金剛山), 개골산(皆骨山), 열반산(涅槃山), 풍악산(楓嶽山), 기달산(怾怛山)이라고도 불렀다고 기록되어 있어 우리의 일반적인 상식과는 다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금강산, 봉래산, 풍악산, 개골산이라는 이름은 신증동국여지승람 편찬 이후인 조선 후기에 이르러서야 붙여진 이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으니 원래 금강산의 이름은 넷이 아니라 모두 다섯 개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

카테고리 없음 2010.01.22

윤여동설 - 동명왕(東明王)은 주몽이 아니라, 백제 온조왕의 증조할아버지를 말한다 - 최초주장

윤여동설 - 동명왕(東明王)은 졸본부여의 건국시조로서 백제 온조왕의 증조할아버지이다 - 최초주장 역사적으로 나타나는 부여(扶餘)에는 북부여와 졸본부여 그리고 동부여가 있었다. 부여(扶餘)는 원래 단군왕검의 막내아들 부여(扶餘)에게 봉해진 나라였다. 따라서 그 후예들은 국호를 부여(扶餘)라 했고, 성씨도 부여(扶餘)씨로 자처하게 된다. 그런데 2천여년 후 부여는 성씨가 다른 해씨 즉 해모수가 왕위에 오르게 된다. 해모수가 부여왕실과 무슨 관계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해(解)씨를 성씨로 삼은 것을 보면 부여의 직계혈손은 아니라는 말이 된다.[필자주 : 외손일 가능성이 많다] 그렇다면 이때 부여에 역성혁명이 일어나 부여씨에서 해씨로 왕실의 성씨가 바뀌었다고 할 수 있는데, 부여라는 국호는 그대로 사용한 것으로 ..

카테고리 없음 2010.01.16

윤여동설 - 청주 동쪽 60리 청천현에 있다는 진짜 미륵산을 찾았다

윤여동설 - 청주 동쪽 60리 청천현에 있다는 진짜 미륵산을 찾았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충청도 청주목 조를 보면, “[건치연혁] 본래 백제의 상당현(낭비성이라고도 하고 낭자곡이라고도 하였다)이다.  신라 신문왕 5년에 처음 서원소경을 두었다가 경덕왕 때에 서원경으로 승격시켰고, 고려 태조 23년에 지금 이름으로 고쳤다.   성종 2년에 목을 설치하고 14년에 절도사를 두어 전절군이라 불렀고 중원도에 소속시켰다가 현종 3년에 폐지하고 안무사로 삼았다가 9년에 8목을 설치할 때 다시 목으로 만들었다. 본조(조선)에 들어와서도 그대로 계속하여 오다가 세종 31년에 관찰사가 목의 일을 겸하여 맡아보게 하다가 곧 폐지하였고 세조 때에는 진을 두었다” 라고 기록되어 있고, [산천] 조를 보면, “미륵산(彌勒山)은 ..

카테고리 없음 2010.01.08

윤여동설 - 고조선의 준왕이 한(韓)을 세운 진짜 "금마(金馬)"를 찾았다 - 최초공개

윤여동설 - 고조선의 준왕이 한을 세운 진짜 “금마(金馬)”를 찾았다 - 최초공개 삼국지 한 전에 인용된 위략(魏略)의 기록을 보면, “옛 기자의 후예인 조선후는 주나라가 쇠약해지고 연(燕)나라가 스스로 높여 왕이라 칭하고 동쪽으로 침략하려는 것을 보고, 조선후 역시 스스로 왕호를 칭하고 군사를 일으켜 연나라를 거꾸로 공격하여 주 왕실을 보존해 주려 하였는데, 그 대부 예가 간하므로 중지하고, 대부 예를 서쪽으로 파견하여 연나라를 설득하니 연나라도 전쟁을 멈추고 침공하지 않았다. 그 뒤에 자손이 점점 교만하고 포학해지자 연나라는 장군 진개를 파견하여 조선의 서쪽 지방을 침공하고 2천여 리(사기 흉노전에는 1천여리라고 했다)의 땅을 빼앗아 만번한(滿番汗 ; 滿潘汗이라고도 한다)을 경계로 삼아 마침내 조선의..

카테고리 없음 2009.12.27

윤여동설 - 선덕여왕이 죽어 묻힌 진짜 능 도리천의 위치 - 최초공개

윤여동설 - 선덕여왕이 죽어 묻힌 진짜 능 도리천의 위치 - 최초공개 선덕여왕은 647년 8월에 환갑쯤의 나이로 죽었는데, 여왕은 생전에 자신이 죽을 날을 정확히 예언했고, 바로 그날 죽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신라에서는 시호를 선덕(善德)이라 하고 낭산(狼山) 남쪽에 장사지내게 되는데, 그 능 자리 역시 선덕여왕 자신이 생전에 “도리천(忉利天)”이라 말하며 지정했던 곳으로서 삼국유사 기이 제1 선덕여왕 지기삼사 조에 그 내막이 기록되어 전한다. “왕이 아무 병이 없을 때에 여러 신하들에게 말했다. ‘나는 아무 해, 아무 날에 죽을 것이니 나를 도리천(忉利天)에 장사지내도록 하라’ 여러 신하들이 그곳이 어느 곳인지를 알지 못해서 물으니 왕이 말하기를 ‘낭산의 남쪽이니라’ 했다. 그 날이 이르니 과연 왕이 ..

카테고리 없음 2009.12.20

윤여동설 - 천년의 의문 훈요십조 속의 진짜 차현(車峴)을 찾았다 - 최초공개

윤여동설 - 천년의 의문 훈요십조 속의 진짜 차현을 찾았다 - 최초공개 [찾고보니 차현이라는 의미는 수레(마차)가 넘어갈 수 있는 고개라는 의미였다. 급경사가 아니고, 예로부터 교통의 요지였기 때문에 고개였지만 마차가 다닐 수 있을 정도의 넓은 도로가 만들어져 있었던 듯 하다] 천여년전 고려 태조 왕건이 죽으면서 남긴 훈요10조 제8조에서 말한 차현(車峴)을 최초로 공개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이 차현이 어디를 말하는지 몰라 많은 오해와 불신을 불러 일으켰다. 찾고보니 차현은 한반도 공주 북쪽을 지나는 차령산맥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고, 차현이남은 한반도의 전라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고려의 시조 왕건은 자신의 죽음을 예측했던지 서기 943년 4월에 대광인 박술희를 불러 자기가 이루어 놓은 고려를 후손들..

카테고리 없음 2009.11.17